[문학칼럼] 백수린 작가의 단편 '고요한 사건'에서 바라보는 고요함이란
민병식
뱁수린 작가는 1982년생으로 연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였고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거짓말 연습'이 당선되어 등단 후 이 시대의 젊은 작가로 광받고 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소설집 '여름의 빌라'에 세 번째로 실린 단편이다.
사진 네이버
주인공의 집은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다. 재개발로 아파트 입주권을 얻기 위해 ‘소금고개’라는 산동네로 일부러 이사를 온 것이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가진 돈이 많지 않아 달동네의 집을 매입해 재개발을 통한 부동산의 차익을 노리고 있었다. 지방의 아파트에서 살던 주인공은 비탈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칠이 벗어진 담벼락과 동그란 엉덩이를 내놓고 아무데나 주저앉는 아이들의 오줌 자국이 길바닥 여기저기에 말라가던 골목"에 위치한 좁은 단독주택을 보고 이런 곳도 서울이냐고 묻는다. 아버지는 옥상에 올라가 바로 옆 동네에 있는 아파트를 보여주며 길어야 일 년 아니면 이 년이니 너는 공부만 지금처럼 열심히 하라고 하며, 이왕이면 전학 간 학교에서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고 절대로 재개발 때문에 이사 왔다는 이야길 하지 말라는 말을 당부한다.
주인공은 전교3등을 했고, 가족들은 예의바르고, 문화가 달랐다. 전학 간 학교에서는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소금고개에 사는 아이들이 섞이는 법이 없었고 주인공은 소금고개에 살았지만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이도저도 아닌 중간자적인 존재로 남아 있었다. 이곳에서 주인공은 이 곳에서 주인공은 해지와 무학을 만나고 절 친이 된다. 셋은 굴다리 너머의 버려진 부지에서 저녁까지 놀다 집에 가곤 했는데 돌아가는 길에는 늘 길 고양이들이 있었고 고양이 들에게 밥을 챙겨주는 ‘고양이’ 아저씨가 있었다.
3년이 지나고 재개발 찬반 이야기가 오가면서 사람들의 의견의 나뉘고,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던 아저씨가 재개발을 반대하자 고양이 먹이에 독극물을 넣어서 길고양이를 죽이는 일이 벌어진다. 이에 항의하는 고양이 아저씨가 동네 사람들에게 맞는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해결해주리라고 믿고, 아버지에게 달려가지만 아버지는 모른 채한다. 아버지는 그저 "얼굴이 꽁꽁 얼었다. 따뜻한 아랫목에 가서 몸 좀 녹여라."라며 다독이는 게 전부였다. 재개발 지연에 대한 분풀이였던, 독극물이 든 닭고기를 먹은 채 죽어 있던 고양이를 묻어주기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주인공은 파카를 걸치고 조심스레 현관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문 위의 창밖을 내다보는 순간, 세상에 라는 탄성을 내뱉으며 눈이 펑펑 오는 모습을 한참 지켜본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튀어나왔다. 창밖에는 커다란 눈송이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깃털처럼 부드러운 눈송이가. 역청빛 어둠을 칠한 이웃의 지붕위에도 옥상 위의 장독대와 비탈 아래쪽의 앙상한 나무초리 위에도, 고요하게.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것은 정말 내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커다란 눈송이 였다.
-중략-
그리고 나는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댄 채 그렇게 한동안 서있었다. 구겨진 신발 위에. 양말도 없이. 까치발을 한 채로. 돌이켜보면 그 것이 내 인생에 결정적 한 장면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평생 이렇게 나가지 못하고 문고리를 붙잡은 채 창밖을 기웃거리는 보잘 것 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으니까.'
-본문 중에서
주인공은 잊은 것일까. 고양이를 묻어 주리라는 마음은 간데없고 눈을 보며 감탄하는 주인공의 마음은 고양이를 잊은 것일까. 모른 체 한 것일까. 비극적이고 슬픈 현실과는 상반되게 내리는 눈은 온 세상을 덮고 주인공은 눈을 바라보며 부당한 것에 대해 저항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눈을 통해 피하고 있는지 모른다. 마치 맞고 있는 고양이 아저씨를 외면한 아버지처럼..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중년의 삶을 살면서 주인공과 똑같이 문고리를 잡은 채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창밖만 기웃거리는 삶을 살지 않았느냐고 아니 아예 창밖도 쳐다보지 않고 따뜻한 아랫목 방구들만 지고 아이들에게도 그런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았느냐고..옳지 않은 것은 잘못되었다고 옳은 것을 가르쳐야 하는 어른임에도 현실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나, 바른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내가 참여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밀고 있다는 생각에 주인공을 탓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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