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선로에 나동그라져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휠체어와 함께 지하철 선로로 떨어진 것이다. 머리를 박박 깎은 60대 정도 되는 사람이 철로로 내려가 그를 도와주고 있었다.
그는 침착하게 장애인을 껴안아 승강장으로 들어 올렸다. 휠체어도 올리고 마지막으로 본인이 올라섰다. 사람들이 그를 끌어당겼다. 잠시 후, 전동차 불빛이 뿌아잉~ 하는 소리와 함께 들이닥쳤다.
묵묵한 그의 얼굴이 나의 가슴속 깊이 뭉클하게 자리를 잡았다.
대엿 세 전, 미국 뉴욕시 지하철에서 일어난 일이다.
일본인들은 친구 집에 있다 가도 밥 먹을 때는 자기 집에 가서 먹는다고 한다.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는 선로로 몸을 던지는 일이 빈번하다고 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평소의 행동도 죽음 앞에서는 무력하다.
사람들은 그가 무슨 사연으로 목숨을 던졌을까, 그런 생각은 별로 안 한다고 한다. '오늘 출근 또 늦게 생겼네.., ' 그런 식의 반응이라고 한다.
오래전 도교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가 목숨을 잃은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 씨가 있다. 일본인들은 아직도 그를 기리고 있다고 한다. 이 세상에는 없는 이수현 씨, 그의 앞으로 보낸 편지가 수천 통이 넘는다고 한다. 동기가 부여되면 그렇게 인종, 국적 가릴 거 없이 아름답고도 아픈 그 마음을 가슴에 품을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이수현 씨 같은 사람들을, 뉴욕 지하철 그 남자처럼 묵묵한 얼굴들을 가슴에 담는다. 멀리 있는 신을 대신해 자리를 잡는다.
어느 날 다리 위를 지나가다가 차도에 넘어진 오토바이를 목격했다. 무거운 짐과 함께 넘어진 오토바이를 위험한 차도로 뛰어들어 같이 일으켜 세운 적이 있었다.
그런 것들은 아름다웠던 사람들이 나의 가슴에 남긴 흔적이다.
첫댓글 양화가 악화를 구축히기도 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기도 한다.
어떤 말이 자연스러운가요?
<惡貨가 良貨를 구축한다>가 맞습니다.
유정 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금본위 시대에는 화폐 자체로 지닌 가치가 있었지요. 금화에 금이 들어 있었으니까요. (70년대까지만 해도 종이 돈이라 하더라도 금을 담보로 돈을 찍어냈습니다)
그러나 국가재정이 열악해 금의 함량을 적게 넣었죠. 부패한 정부가 국민들을 속인 거지요. 국민들이 그것을 알아채고 금이 제대로 들어 있는 금화는 시장에 통용시키지 않고 금이 적게 들어간 가짜 돈만 통용시킨 것은 익히 다 아실 겁니다. 그것을 아는 분들은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나 의아하게 생각할 겁니다. 그런 분 중에 한 분이 유정님이시네요. 선함이 악함을 몰아내야 된다고 생각에 마음만 앞서서 섣부르게 제목을 붙였네요.
나 자신을 바라보니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나마 님같이 착한 사람들이 이 세상의 반은 되기에 유지 되는 것 아닐까...
외부에서 에너지를 얻어야민 살 수 있는 인간이기에 나쁘다고 생각하는 이기심인 욕심이지만 없으면 살아갈 수 없겠지요. 동전의 양면처럼 측은지심과 함께 이렇게도 발현이 되고 저렇게도 발현이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근본적으로 악한 사람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나 자신이 신처럼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어서 내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지들 가운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은 것이라고 인식되고 있는 탐욕을 완전히 뿌리칠 자신이 없습니다. 현실에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상대는 나를 악마처럼 인식을 하겠지요.
그러고 보니 신이 있다면 신도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꼬리를 뭅니다. 신과 악마가 같은 반열에서 대립, 또는 양립을 하는 것도 같으니깐요
그러나 인간은 그것을 넘어서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신을 창조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파생이 되었습니다.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