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출발
박운현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 어느 시기에 이르면 결혼을 한다. 결혼이란 인간이 태어나서 겪게 되는 통과의례로, 이 관문을 거치면서 어른이 된다. 물론, 결혼이란 관문을 거치지 않고 나이가 들면 어른이 되지만, 대개 결혼적령기가 되어 결혼이란 관문을 통과해서 어른으로 대우 받는다.
얼마 전 인척 어느 결혼식에 가게 되어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왠지 악천후로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었다. 집을 나설 때부터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쳤다. 집에서 역까지 도보로 20분이나 되는 거리라, 비바람 때문에 아내더러 역까지 승용차로 태워달라고 하여 이동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사부작사부작 걸어가도 되는 거리다.
역 앞에서 내려 대합실에 가서 20분가량 기다리다 부산행 새마을호 열차에 몸을 싣고 목적지 부산으로 향했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몰아치는 비바람은 그칠 줄을 모르고 차창을 무자비하게 내리쳤다.
차창으로 부서지며 물방울 자국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양새는 차창 안의 내 시선을 가로 막으며 시야를 가렸다. 비바람은 강하게 약하게 리듬을 탄 듯 바꿔가며 강약을 조절하고 차창을 후려갈겼다. 모처럼만에 열차로 나들이를 하는 터인데, 이날따라 비바람이 몰아쳐서 내려가는 기찻길 옆의 광경은 보기가 어려워졌다.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하늘이 하는 일인데 우리 인간이 어쩌겠는가,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인간의 힘이란 대자연의 위력 앞에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던가. 그냥 가만히 앉아 내려갈 수밖에. 열차 안은 조용했다. 차안 모습은 날씨 탓인지는 몰라도 빈자리가 많이 눈에 띄었다. 주말인데도 말이다.
어느 듯 목적지 부산에 도착하였다. 비는 여전히 천지를 삼키듯 야멸치게 내렸다. 부산역에서 내려 부산도시철도역이 있는 곳으로 향해갔다. 과거 넓은 부산역 광장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이젠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 되어 있었다. 미로 같은 첩첩건물 속을 뚫고 도시철도공사 열차를 운행하는 곳에 도착하였다.
1호선 열차길. 나도 이젠 예순 다섯을 넘겼으니 경로우대권으로 열차를 승차할 수가 있다. 그런데 막상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내 돈 내지 않고 승차를 할 수 있으니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늙어졌다는 의미이기에.
나이는 가만히 있어도 그저 먹게 되는 그런 것이다. 도시철도 1호선을 타고 2번째 역인 부산진역에 도착하였다. 시간은 얼마 소요되지 않는 짧은 거리였다. 역에서 내려 B일보 사옥 8층 결혼예식장을 찾아 승강기를 타고 올라갔다. 예식장에는 이미 많은 하객들이 와 있었다. 하지만 지면이 있는 사람들은 얼마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낮선 곳에다 연고도 별로 없는 넓은 지역이라서.
먼저 혼주를 찾아 인사를 나누고 축하의 말을 건넸다. 이날의 결혼식은 혼주 딸의 결혼식이다. 혼주는 남이 아니고 내 고종사촌 동생이다. 혼주는 예순의 나이고 내종질녀는 서른을 앞둔 젊은 나이다. 요즘으로 보면 신부가 다소 이른 나이인지도 모르겠다. 대개 만혼을 하는 세상이니.
아무렴 신부 나이가 젊어서 하는 결혼이 좋지, 사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들어서 하는 결혼은 좋을 것 같지는 않다. 여자는 20대에 결혼을 하고 일찍 아이를 낳아 늙기 전에 출산을 끝내야만 2세는 물론 산모건강에도 좋다고 하니 말이다.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주례는 없었다. 사회자의 진행으로 첫 순서는 이 날의 하이라이트인 신랑신부 입장이었다. 두 사람이 입장하면서 행진곡이 연주 되었고, 많은 하객들이 이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어 두 사람의 결혼서약이 있었다. 두 사람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잘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어서 신랑 측 어른이 대표로 신랑신부 두 사람에게 “서로서로 의지하며 행복하게 잘 살아라”는 덕담과 함께 하객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신랑신부 두 사람이 축하케이크를 자르고 나서 신부우인이 우렁차게 축가를 부르고 다시 신랑신부 양가분의 하객들에 대한 인사를 끝으로 결혼식은 무사히 끝났다.
사회자의 마무리 발언 및 행진곡 연주와 함께 신랑신부 퇴장이 이어졌다. 아울러 이날의 추억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사진촬영 시간을 갖고 신랑신부, 신랑 신부댁 및 신랑신부 우인들의 기념 사진촬영이 있었다.
결혼식을 보면서 불현 듯 옛 시절의 전통 혼례식이 오버랩 되었다. 사모관대 차림을 한 신랑, 족두리에다 원삼 활옷을 입은 신부. 신부의 쪽진 머리에는 두 갈래의 비단으로 화려하게 수놓은 긴 수건이 달린다. 그중 하나는 ‘二姓之合’, 또 다른 하나는 ‘萬福之原’이 새겨진 글귀가 그것. 음양이 결합하여 행복을 추구하는 만물의 이치를 실현하는 영광스런 잔치이다.
부디 우주만물의 기를 받고 조화를 이루어 아들딸 많이 낳아 오순도순 행복하게 잘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무릇 결혼의 의미는 대내외에 자신들의 결혼사실을 천지신명과 조상에 고하고 또한 세상 사람들에 선언하는 것이다. 이에 하객들이 축하의 성원을 보낸다. 많은 하객들이 모인자리에서 결혼을 천명하고 축하를 받은 이상 두 사람이 행복하게 오순도순 잘 살아가야 하리다.
결혼식을 보면서 두 사람의 앞날에 진정한 행복과 행운이 늘 함께 하기를 다시 한 번 기원한다. 그런데 행복이나 행운은 누가 그저 주는 건 아니다. 남에게서 주기를 바라지 말고 자기가 열심히 노력하여 자기 자신들이 창조해 가야하는 것이다.
결혼은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선남선녀의 첫 출발선이다. 태어나서 결혼을 하기 전까지를 인생의 첫 출발이라면,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는 제2의 출발이다. 제2의 출발은 첫 출발과는 사뭇 다르다. 첫 출발은 가족의 애틋한 보살핌 속에 산 삶이라면, 제2의 출발은 부부 두 사람이 함께 공동으로 앞날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또한 그만큼 가족과 사회에 무거운 책임감과 의무를 다해야 하며 막중한 짐을 진다. 오늘 새로 출발하는 두 사람은 이점 간과하지 말고 명심하여야 하며 그래야만 가족 친지 동료 및 이웃들이 성원한 보람이 헛되지 않는 성공한 결혼이 될 것이리라.
첫댓글 제2의 인생 출발이 참 어렵고 힘이 들때도 있지요.
잘 감상하고 갑니다.
주례사가 없었는데, 주례사가 되었군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