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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귀검신 30장 : 사천행(四川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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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표물이라니… 그것도 하필 은마표국!’
놀란 것은 노적삼뿐만 아니었다. 계구도 자신의 불안한 예감
이 적중하자 짧은 침음성을 내뱉었다.
“아, 송표두시군요. 은마표국에서 이 먼 곳까지 오시느라 고
생이 많으시겠습니다.”
“하하, 고생이라니요. 원래 표국이 하는 일이 그런 것 아니
겠습니까? 저야 이번에 처음 예까지 왔지만 다른 표두들이야
수도 없이 다닌 길이 아니겠습니까? 노채주와도 많은 인연
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송염은 은마표국과 용골채의 관계를 은연중 강조하며 슬쩍
노적삼을 살펴보았다. 예상대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좋지 않은데… 어쩌면 이곳에서 뼈를 묻을지도….’
“뭐, 인연이라고 까지 말할 것은 없고 그저 약간 면식이 있
기야 하지요.”
노적삼은 심드렁한 말투로 대꾸를 했다. 그때 송염의 곁에서
있던 치평이 송염으로부터 무슨 말을 듣고는 선실로 향했다.
잠시 후, 선실에서 나온 그의 손에 작은 주머니 하나가 들
려 있었다. 주머니를 받은 송염은 노적삼에게 다가갔다.
“하하, 은마표국과 용골채와의 관계도 있고 해서 약간의 준
비를 했습니다. 비록 많지 않은 액수지만 수채의 호걸들과
술이라도 한잔 하시지요.”
‘제길, 은자 오십 냥이 술값이라니 지나가는 개도 웃겠다.’
송염과 치평의 대화를 살짝 엿들은 예도준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을 알지만 자꾸 화가 나는 자신의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예도준만이 그런 게 아니라 자리에 있는 모든 표
사들의 심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실 송염도 이 돈이 아깝
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통상 은자 삼십 냥이면 적당히 위
신을 세우고 물러나는 것이 그 동안의 관례였지만 오늘은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 거기에다 무려 이십여 냥을 더 얹어서
주었다. 그 정도의 돈이면 이번 표행에서 남길 이문의 상
당한 부분을 차지할 정도의 거액이었다. 송염에겐 이문을
포기하더라도 표물과 사람들을 지킬 수 있으면 그것으로도
만족이었다. 하지만 그런 송염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적삼은 주머니를 받지 않고 있었다.
“하하, 항상 이렇게 신경을 써 주셔서 고맙소이다. 하지만
이제 곧 겨울도 다가오고 수채에 많은 일들이 있어서….”
노적삼은 송염이 내미는 주머니를 받으라는 계구의 눈치에도
계속 딴청을 피웠다.
“은자가 적다는 것이오? 그 정도의 은자라면 지금까지 내오
던 액수에 거의 두 배나 되는 양이거늘… 하지만 노채주의
말에도 일리가 있구려. 어느 정도 더 내놓을 의향이 있으니
원하는 액수를 말해 보시오.”
송염은 어떻게 하든지 타협점을 찾아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노적삼은 여전히 딴 짓을 하고 있었다.
‘쯧쯧, 저 놈의 눈을 보고 말 좀 하시지. 저게 어디 적당한
액수에 우리를 보내 줄 눈이냐고? 탐욕으로 번들거리고 있
는데….’
소문은 더 이상의 타협은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
나 자신이 나설 입장도 아니었기에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요즘 수채의 사정이 몹시 좋지 않
아서….”
한참 만에 열린 노적삼의 입에서는 아까와 똑 같은 말만 되
풀이되었다. 마침내 송염의 목소리에도 냉기가 흐르기 시작
했다.
“그래서 어쩌시겠다는 것이오? 아예 표물을 몽땅 내놓으라는
말이오?”
“아니, 뭐 그렇다기 보다는….”
살짝 말을 얼버무리는 노적삼의 행동에 그의 의중을 확실하
게 알아차린 송염은 차갑게 말을 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이 없었는데 그 동안 쌓았던 친분을 이렇
게 허물어트릴지는 내 미처 생각을 못했소. 물론 우리의 수가
적어 노채주가 하는 행동을 막지는 못하겠지만 나와 우리
은마표국에선 오늘의 일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오.”
“…….”
노적삼은 송염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까짓것 없애 버리면 되겠지. 보아하니
표사도 몇 명 되는 것 같지 않고, 선원까지 모두 없애버리면
꼬투리를 잡고 싶어도 잡을 건덕지가 없겠지.’
마침내 노적삼은 결정을 내렸다. 자연 말투도 사나워졌다.
“내가 그런 말에 겁을 먹기를 바라는 것이오? 허나 다른 곳
은 모르겠지만 우리 용골채는 은마표국을 두려워하지 않소.”
“흥, 어디 두고 보자. 과연 그 말을 끝까지 지킬 수 있는
지….”
더 이상 참지 못한 예도준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를 질렀다.
“훗, 두고 보면 되겠지. 그런데 과연 두고 볼 수 있을까?”
노적삼의 빈정거리며 한 말의 의미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
은 역시 경험이 많은 송염이었다.
“살인멸구(殺人滅口)를 하겠다는 것인가?”
“머, 은마표국이 우리를 치러오든 말든 그다지 두려울 것은
없지만 조금 귀찮기는 하겠지. 잠깐의 수고를 통해 그런 귀
찮음을 막는 것이 좋다면야….”
“하지만 절대 네놈 뜻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노적삼의 말이 끝나자마자 칼을 빼어든 송염이 소리를 질렀
다. 송염이 무기를 들자 송염의 주위에 있던 표사들 또한
자신의 무기를 곧추 세웠다. 쟁자수들도 하나둘 주변에서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을 집어 들며 전의를 불태웠다. 모두 죽
기를 각오한 모습이었다. 그런 그들을 가소롭다는 듯이 쳐
다보던 노적삼은 표국의 인물들과는 다른 한 편에 서있는
선원들을 보며 한마디 던졌다.
“네놈들은 왜 그러고 있는 것이냐? 덤비지 않는다고 살려주
지 않는다. 오늘 이 배에 탄 사람들은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도 무기를 들고 덤비거라. 죽을
때 죽더라도 찍 소리는 하고 죽어야 할 것이 아니더냐? 하하하!”
노적삼이 큰 소리로 웃자 주변의 수적들도 크게 웃으며 떠들
어 댔다. 선원들은 불똥이 자신들에게까지 떨어지자 저마다
두려움에 떨며 두아의 주변에 하나둘 모여 들고 있었다.
그들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계구지만 이젠 돌이키기에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흠,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군. 그나저나 내가 가는 곳은 싸움
이 끊임이 없으니 내가 재수가 없는 건지. 아님 저놈들이
재수가 없는 건… 젠장.’
소문은 또 싸우게 생겼다며 투덜대며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두아를 힐끗 쳐다보았다. 물론 자신이 지켜주기야 하겠지만
과연 두아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궁금하여 바라보았는데
두아는 생각보다 침착하게 서 있었다. 제각기 무기를 들고
있는 표국사람들의 표정이야 결연했지만 표두인 송염을
제외하고는 하나 같이 떨고 있었다. 선원들도 별반 다를 것이
없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 있었는데 두아에게선 조금의
두려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호, 처음 볼 때부터 보통이 아니란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
상황에서도 이렇게 침착할 줄이야… 아! 한때는 힘 꽤나 썼
다고 했지. 하지만 저들은 보통 시정잡배가 아닐 텐데….’
소문이 이런 생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상황은 점점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흐흐, 왜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느냐? 무기를 들 때
의 그 기세는 어디가고? 막상 죽으려니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이더냐? 지금이라도 무기를 버린다면 편안한 죽음을 마련
해 주마. 괜시리 반항하다가 고통스럽게 죽는 것 보다 그게
낫지 않겠느냐?”
노적삼이 큰 선심이나 쓴다는 듯이 싱글거리며 말을 하자 기
가 죽기 싫었던 예도준이 발작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닥쳐라! 누가 죽음 따위를 두려워 할 줄 아느냐?”
“호, 그래?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얘들아!”
마침내 노적삼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좌우에 넓게 포진
하고 있던 수적들이 음침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기 시작
했다. 그러자 겁에 질린 선원들이 그들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
을 가기 시작했다. 소문의 옆에 서있던 두아의 눈빛이 차갑
게 빛난 건 바로 이때부터였다. 소문은 두아와 자신을 지나쳐
배의 후미로 도망가는 사람들을 보며 이제는 자신이 나설
때라고 생각했다.
‘귀찮다. 귀찮아!’
비록 손에 활은 없었지만 저런 수적들을 상대하는 데는 맨손
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소문은 수적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나 소문은 더 이상 앞으로 걸어갈 수가
없었다.
“큭! 이게….”
짧은 신음성을 내 뱉고 뒷걸음질 치고 있는 소문은 지금의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제법 싸움을 했었지만
자신의 가슴에 칼이 박히는 상황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 길이가 얼마인지 알 수 없는 단검이 자신
의 가슴을 꽤 뚫고 박혀 있었다.
“왜…?”
소문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단검의 주인을 바라보았
다. 그토록 자신에게 정성을 다했던 두칠이 왜 갑자기 자신을
헤치려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자 곧 두칠의 비웃음
섞인 말이 들려왔다.
“훗, 왜냐고? 그건 네놈이 더 잘 알 것 아니더냐? 감히 우리
의 우리에게 대항하고도 살아남기를 바랬더냐?”
그제 서야 구양풍이 떠나며 패천궁에서 보낼 살수를 조심하
라는 말이 떠올랐다.
“설마… 패…천…궁?”
“어리석은 놈! 이제야 감이 잡히는 것이냐? 그런데 네놈 따
위를 죽이는데 위에서는 그 토록 걱정을 하다니. 아무래도
네놈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모양인 모양이다. 네놈
에 대한 소문은 그저 과장된 것일 뿐인데… 하하하하하!”
두칠은 임무를 무사히 해냈다는 기쁨에 크게 웃음을 터뜨렸
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배에 있던 모든 이들의 움직임이
멈춰졌다. 도망가던 선원들은 물론이고 공격을 하던 수적들
도 잠시 공격을 멈추고 흥미롭게 사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문을 보며 크게 웃었던 두칠은 곧 고개를 돌려 노적삼을
바라보았다.
“보다시피 난 패천궁에서 왔다. 우리 패천궁에선 이미 중원
의 절반을 차지했고 조만간 전 중원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물론 장강수로연맹 또한 우리에게 굴복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사실 너희들이나 우리나 백도에서 경원시 하는 흑
도이기엔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어쩌면 우리는 한 가족이라
할 수 있겠지. 암튼 난 나의 임무였던 이 어린놈을 죽였으
니 나는 상관하지 말고 하던 일을 계속해라.”
두칠, 아니 혈영일호는 할 말을 다 하고는 태연한 걸음걸이
로 한쪽 갑판으로 물러났다. 자신이 할 일은 끝났으니 싸움
구경이나 하겠다는 심산이었는데….
“누가 누구를 죽였다는 것이지?”
발걸음을 잠시 멈춘 혈영일호는 불쌍하다는 듯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이런, 몹시 아플 텐데 용케도 서 있군. 잠시 기다리면 편안
한 세상으로 떠날 것이니 괜히 고생을 자초하지 말게나. 하
하하!”
틀림없이 심장을 찔렀는데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 약간은 찜
찜하지만 혈영일호는 자신의 솜씨를 믿었다. 소문은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지루하다. 빨리 시작해라.”
“예? 아예.”
갑작스런 호통에 노적삼은 얼떨결에 대답을 하고는 수하들에
게 눈짓을 보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지 않느냐!!”
소문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추스르며 소리를 질렀다. 그런 소
문의 어깨를 잡는 손이 있었다. 손의 주인공은 의아하게 쳐
다보는 소문을 외면하고 노적삼을 노려보았다.
“노적삼! 언제부터 네놈이 패천궁의 개가 되었더냐? 장강의
형제들은 그 누구의 간섭도 지배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모
르느냐? 멍청한놈!”
두아는 한기가 느껴지는 말투로 노적삼을 꾸짖었다. 그런데
노적삼은 일개 선원이 자신에게 욕을 하는 것을 듣고 참을
만큼 정신적 수양이 깊지 못했다.
“저, 저놈이! 뭣들 하느냐? 당장 저놈의 목을 내 앞에 대령
시켜라.”
길길이 날뛰는 두목의 화를 풀지 않으면 그 여파가 자신들에
게 까지 돌아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용골채의 수적들은
저마다 흉흉한 기세를 뿜으며 두아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두아는 그들은 거들떠보지 않고 혈영일호를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네놈이 패천궁에서 왔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두칠
은 어찌 되었나?”
“아, 그 멍청한 놈? 그놈은 얼굴을 나에게 빌려준 대가로 곱
게 저승으로 보내주었다. 생긴 것처럼 얼굴 가죽이 두꺼워서
벗기는데 오래 걸렸지.”
싱글거리며 대답을 하는 혈영일호에게는 여유가 넘쳐흘렀다.
주제에 배의 주인이라고 나서 두아가 영 가소로웠다.
“물러서랏!”
두아는 어느새 자신에게 다가온 수적들에게 호통을 쳤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수적들의 동작이 일시에 멈춰버렸다.
“노적삼!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느냐? 그러고도 네놈
이 장강의 호걸이라더냐? 내 오늘 네놈의 어리석음을 단단히
고쳐 주어야겠구나!”
“닥쳐라. 네놈이 머라고 그 따위 망발을 하다니….”
부하들 앞에서 욕을 먹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
올랐다.
“계구! 난 그래도 네놈만은 제대로 정신이 박혀 있다고 생각
해서 용골채는 옛날부터 그다지 걱정을 하지 않았건만. 너도
똑 같은 놈이었구나!”
“…….”
두아의 말에 계구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계구는 자신의 머릿속의 기억을 되살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처음 두아가 나설 때만 해도 잘 느끼지 못했지만 두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더 해질수록 아련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아직 확연히 기억이 난 것은 아니지만 왠지 두려운
, 그러면서도 존경심이 솟아났던 그런 목소리였다. 그리고
두아의 마지막 호통에 결국 그가 누구인지 확연하게 떠올랐다.
“초, 총순찰!”
계구는 감았던 눈을 번쩍 뜨며 소리쳤다.
“총순찰? 총순찰이라니? 무슨 소릴 하는 겐가?”
노적삼은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는 듯이 계구를 쳐다보
았다. 하지만 계구는 그런 노적삼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
았다.
“용골채의 계구가 총순찰을 뵙습니다.”
계구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그 모습에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노적삼은 다시 한번 두아를 살펴보았다.
그다지 크지 않은 몸집, 그러나 싸늘하게 자신을 노려보는
저 눈, 그리고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 엄청난 기도! 비
록 그때에 비해 행색이나 모든 것들이 많은 변화가 있었지
만 틀림없이 자신의 기억 저편에 자리 잡고 있는 장강수로
연맹의 총순찰 두일충(斗一忠)이 틀림없었다.
“요, 용골채의 채주 노적삼이 총…총순찰을 뵙습니다….”
노적삼이 두아를 알아보는 순간 모든 상황은 종료가 되었다.
노적삼은 계구와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두목이 그러고 있는데 수하들이야 말할 나위가 없었다.
두아! 아니 광풍노도(狂風怒濤) 두일충(斗一忠)!
이 이름이 장강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어마어마했다. 어
디서 굴러먹은 지도 모르는 두일충이 나이 스물일곱에 장강
수로연맹의 총순찰이라는 지위에 오르자 모든 사람들은 그런
맹주의 결정에 우려와 조소를 보냈다. 하지만 단 일년 만
에 두일충은 그런 시선을 불식시키고 남을 정도의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수로연맹의 내부 결속은 물론매일 같이 장강
곳곳에 퍼져 있는 수채들을 순찰하며 각 채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이어져 내려오던 폐단들을 과감하게 개
혁하고, 신상필벌(信賞必罰)을 확고히 하여 수로연맹의 기
강을 바로 세웠다. 수로맹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시작된 두일충의 이런 개혁들은 탄생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
고 아직은 그저 단순히 수적 떼에 불과했던 수로연맹을 단
숨에 중원의 한 자라를 차지하는 거대 세력으로 탈바꿈시켰
다. 당연히 장강의 모든 수채의 주인들과 수하들은 그런
두일충를 존경하면서도 은연중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런 두일
충의 능력이 더욱 빛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팔년 전, 두일충
이 총순찰의 지위에 올라 개혁의 성공으로 수로연맹이 어느
정도 안정된 성세를 이루게 되었을 때였다. 수로맹주 용유
명(龍遊瞑)의 갑작스런 와병과 죽음은 장강에 일대 혈풍을
몰고 왔다.
여러 채주들은 저마다 수로맹의 맹주자리를 넘보며 세력을
구축하고, 이합집산(離合集散)을 하고 있었다. 이는 비단 수
채들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장강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라고 했던가? 저마다 자신의 세력을 넓히고자 많은
대소문파에서도 호시탐탐 수로연맹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 그
들에게 이번 기회는 놓치기 힘든 호재였다. 특히 패천궁에
서는 맹주자리를 노리는 채주들을 은근히 지원하는 다른 문파
와는 달리 아예 직접적으로 수로맹의 정벌을 계획하고자 계
획을 세우고 행동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일이 이런 지경에
이르자 전임 맹주와 총순찰인 두일충의 노력으로 안정이 되고
세력을 넓히고 있던 장강수로연맹은 갈갈이 찢긴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대로 가다간 수로연맹이 다른 세력에게 먹
히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누구도 수로연맹의 이런 사
태를 수습할 여력이 없었다. 물론 수로연맹에서도 그들의
장래에 대래 우려와 염려를 하고 있는 몇 몇 장로들과 채주
들이 있었으나 그들에겐 힘이 없었다. 바야흐로 수로연맹은
미쳐 꽃을 피우기도 전에 사그라들 위험에 처해 있었는데 그
런 수로연맹을 구하고자 나선 사람이 바로 두일충이었다.
그는 우선 수로맹의 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규합하여 힘
을 키웠다. 모든 행동엔 대의명분(大義名分)이 있어야 했기에
두일충은 전임 맹주의 둘째 아들인 용태성(龍太星)을 세로
운 맹주로 추대했다. 비록 그가 무공이 약하기는 했지만 온
화한 성품과 행동으로 장강의 형제들에게 많은 신망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도 큰 반발이 있을 것이라고 사람
들이 예상했던 용유명의 장자이자 두일충의 절친한 친구인
용진성(龍辰星)은 이런 두일충의 생각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동조를 해 주었다. 비록 자신이 장자이고 무공에 있어서도
동생보다 월등하게 앞서고 있었지만 한 세력을 이끈다는 것
은 그런 것 이외에도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의 능력으론 턱 없이 모자란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용진성과 손을 잡은 두일충은 제일
먼저 맹주직을 노리고 있는 수채와 채주들을 구분하고 아직
그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았거나 애초에 욕심이 없던
수채들을 포섭해 나가며 은밀히 힘을 길렀다. 그리고 그 힘이
어느 정도 그 힘이 모아졌다고 생각한 두일충은 실로 과감
한 결단을 내렸다. 은연중 맹주 자리를 노리며 세력을 키
우고 있었지만 수로맹의 형제들끼리 싸워 피를 흘린다는 것을
은근히 저어하고 있던 반대 세력을 급습해 일시에 쓸어버린
것이었다. 대항이고 머고 할 시간도 없이 전격적으로 시
작된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은 이틀
간의 치열한 싸움 끝에 결국 두일충이 이끄는 세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용진성의 만
류에도 불구하고 두일충은 항복했던 수채의 사람들 중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모조리 목을 베어버렸다. 그리
고 자신의 행동을 못 마땅하게 바라보는 용진성에게 두일충은
딱 한마디를 했을 뿐이다.
“한번 배신을 한 사람들은 두 번, 세 번 언제든 배신을 하기
마련이지. 비록 그들이 우리의 형제라 하지만 언제가 자네나
태성아우의 힘이 약해진다면 언제든지 뒤통수를 칠 수 있
는 자들이네. 애초에 시작이 되지 않았다면 모를까 기왕 시
작된 싸움, 앞으로 있을 모든 화근은 제거 하는 것이 좋다네
. 그리고 그 비난은 내가 짊어지겠네.”
두일충의 판단은 정확했다. 용태성이라는 젊은 맹주를 추대
한 수로맹은 빠른 속도로 안정을 되찾았고, 그토록 많은 사
람들이 죽었음에도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전임 맹주
의 시대보다 더욱 탄탄한 세력을 만들어 갔다. 거기에는 젊
은 맹주 형제와 두일충의 힘이 작용을 하기도 했지만 무엇
보다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인해 다른 세력에 잡아먹힐
뻔한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경계한 수로맹의 형제들의 적극적
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 동안에도 약
간의 반발은 있었지만 그런 일은 두일충과 용진성이 힘으로
제압했다.
그렇게 삼 년이 지나고 수로맹의 세력이 더욱 공고해 질 때
두일충은 갑자기 일선에서의 은퇴를 선언했다. 친구인 용진
성은 물론이고 맹주 또한 적극적으로 이를 만류하였지만 두
일충의 결심은 꺾지 못했다. 두일충은 만류하는 용진성에게
조용히 말을 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네. 크크, 유언(遺言)으로 나에게 배 한
척도 남기셨다는군. 아무리 말을 안 듣는 나라지만 그래도
유언인데 한번 정도는 따라야겠지. 그리고 사실 조금 쉬고
싶기도 하다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얼떨결에 자네 아버
지, 아니 사부를 따라 나섰다가 고생만 죽어라 하지 않았나
. 하하하! 이제 나의 힘이 없어도 맹주는 잘 해낼 것이네.
그리고 자네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언제든지 나의 힘이
필요하면 연락을 하게. 내 만 리 길이라도 한 달음에 달려올테니….”
두일충은 그렇게 떠났다. 그러나 맹주인 용태성은 결코 그를
보낼 수 없었다.
“총순찰은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뿐이다. 총순찰이란 지위를
지닐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두총순찰 뿐이다. 또한 언제 어
디서건 그를 보면 나를 보듯 존경하고 대우하여야 할 것이다.”
정확하게 오년 전에 장강수로연맹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궁귀검신 30장 : 사천행(四川行)-8
“언제부터 우리가 패천궁의 일개 수하 따위의 말에 고
개를 숙이게 되었지?”
“그, 그게 아니라….”
노적삼은 계속되는 두일충의 추궁에 몸둘바를 몰랐다.
“한심한 놈!”
두일충은 그저 고개만 숙이고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노
적삼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다 한쪽 갑판에서 현 상
황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혈영일호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대가 말을 해 주겠나? 우리 수로연맹이 언제부터
패천궁의 말을 들어야 했는지….”
“후후, 이제부터라고 해두지. 이제 곧 중원 무림은 우
리의 발아래 무릎 꿇게 될 것이고 수로연맹 또한 같은
운명이니 어차피 우리의 명을 따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비릿한 조소를 지으며 말을 하는 혈영일호의 자세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호, 네놈의 말대로라면 패천궁이 곧 중원의 주인이
되겠구나. 물론 그리 되려면 패천궁의 모든 무인들의
실력이 출중하다는 말일 텐데… 과연 그런 실력을
지녔는지 어디한번 볼까?”
담담하게 말하던 두일충의 기도가 순식간에 변하기 시
작했다.
“어리석은 놈. 내 비록 명을 받아 저 어린놈을 제거하
기 위해 잠시 이런 꼴을 하고 있다지만 네놈 따위가
넘볼 만큼 약하지 않다. 좋다. 내 오늘 한수 가르쳐 주마
. 물론 대가는 네놈의 목이다.”
혈영일호는 싸늘하게 웃으며 대꾸를 했다. 두일충 또
한 그저 웃을 뿐인데, 오히려 벌컥 화를 낸 사람은
지금껏 엎드려 있던 노적삼이었다.
“어디서 감히 주둥이를 놀리는 것이냐? 이분이 어떤
분인지 알고나 그러는 것이더냐?”
노적삼은 두일충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총순찰님! 제게 맡겨 주십시오. 총순찰께서 나설 필요
도 없이 제가 저놈을 단박에 요절을 내겠습니다.”
“하하하! 정말 보자보자 하니 우습지도 않구나. 일개
해적 따위가 그 따위 소리를 늘어놓다니… 좋다. 아
무나 덤벼라. 하늘위에 하늘이 있음을 가르쳐주마.”
혈영일호는 누가 덤벼도 자신이 있다는 듯 크게 웃으
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건 혈영일호의 너무나 큰 착
각이었다. 의외로 싶게 소문을 제거하여 자신도 모르
게 자만심에 빠진 혈영일호는 수로연맹을 그저 그런
해적 나부랭이들의 모임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
몇 년 전에 있었던 수로연맹의 혼란이후 내치에만 힘을
쏟고, 대외적으로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아서 그
렇지 혈영일호가 생각하는 것 만큼 수로연맹은 약하지
않았다. 물론 수로연맹이 물에선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명성이 뛰어난 것에 비해 개개인의 무공
이 그다지 뛰어나지 못함도 사실이었다. 허나 그것은
일반적인 수하들에 국한 된 것이고, 어느 정도 지위에
있는 자들의 무공은 나름대로 뛰어났다. 지금 혈영일
호의 앞에서 쌍심지를 켜며 그를 노려보는 노적삼만 하
더라도 그저 일개 해적 두목으로 보이지만 그 본신
실력이 혈영일호는 가볍게 꺾을 수 있을 정도라는 것
을 혈영일호는 물론이고 수하들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 게다가 혈영일호의 결정적 실수는 담담한 웃음만을
짓고 있는 두일충이 그 유명한 광풍노도란 사실을 알
지 못하고 단지 노적삼의 위에 있는 인물이려니 하고
가벼이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혈영일호의 말에 발작적으로 반응하려하는 노적삼을
말린 두일충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런
그의 발걸음도 한사람에 의해 가로막혔다.
“……?”
두일충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이 자신의 팔목을 잡은
인물을 바라보았다. 상당한 고통이 있는지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소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네가 상당한 실력을 지닌 무인인라는 것은 패천궁
의 표적이 되었다는 것으로 알 수 있네. 하지만 지금
그 몸으로는 무리네. 나에게 맡기고 자넨 뒤로 물러
나 있게.”
“…….”
소문은 두일충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고는 물러서
지 않았다.
“어허, 이 친구야. 그런 상처를 지니고 어떻게 싸운다
는 것인가? 그 심정은 알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
닌가?”
“큭, 저놈은 내 꺼요. 이 따위 상처는 문제가 아니요…
윽!”
소문은 말을 하면서 자신의 가슴에 박힌 단검을 뽑았
다. 가슴에 박혔던 단검이 얼마나 깊이 박혔는지 한
번에 뽑아내지 못하고 두어 번에 걸쳐 힘을 주어 뽑을
수 있었다.
“아니, 뭐 하는 짓인가?”
소문을 지켜보던 두일충은 단검을 따라 피가 솟구치자
깜짝 놀라 재빨리 가슴 근처의 혈도를 짚어 지혈을
했다. 그러나 워낙 큰 상처여서 그런지 좀처럼 피가 멈
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흐흐, 네놈! 제법 그럴 듯한 단검을 지니고 있구나.
하지만 어쩌지? 내 심장을 노린 것 같은데 심장에서
약간은 벗어난 듯 하니….”
피가 흐르건 말건 자신의 피로 점철되어 있는 단검을
흔들며 실실 웃는 소문을 바라보는 혈영일호는 얼굴
가득 불신의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럴 리가 없다. 정확하게 가슴을 찔렀거늘….”
“크크크, 하지만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 증거
아니겠느냐? 암튼 난 은혜를 원수로 갚진 않지. 이처럼
멋진 선물을 받았는데 나도 그 정도의 보답은 해
주어야 겠지.”
소문은 두일충이 말릴 사이도 없이 혈영일호에게 다가
갔다.
“후후, 어리석은 놈. 조용히 처박혀 있으면 혹시 건질
수도 있었을 목을 굳이 베어달라고 재촉을 하는 구나.”
“네놈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자객이라는 놈이겠지?”
“훗, 그렇다고 해두지.”
혈영일호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꾸를 했다.
“듣기엔 자객들은 쾌검(快劍)을 사용한다고 하던가?”
“…….”
“그걸 견식하고 싶군. 나도 알고 있는 쾌검식이 하나
있으니 서로 비교를 해볼까나?”
소문은 웃으며 말을 했지만 그 안에 내포된 살기를 느
끼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천천히 혈영일호에게 다가간 소문은 겨우 반장 정도의
거리에서 마주보게 되자 발걸음을 멈추었다.
“최선을 다해라. 다시는 그런 기회가 없을 테니까.”
혈영일호는 냉랭한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초식을 전개
할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소문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아니, 어째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지? 설마, 부상 때문
에?’
두일충은 소문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자 덜컥 겁이 났
다. 사실 자객 수업을 받은 자와 저렇게 지근거리에서
쾌검을 논한다는 것은 보통 무인이라면 절대로 시
도하지 않는 웬만한 무공실력으론 이기기 힘든 승부였다.
그런 승부를 하면서 저리 머뭇거려서야 그나마
있는 가능성도 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두일충
의 염려와는 다르게 소문의 눈은 혈영일호의 동작 하
나 하나를 빠짐없이 관찰하고 있었다.
자객은 말이 없다. 아무런 기척 없이 다가가 조용히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사람들이 자객이었다. 그들의
무공은 어떤 형식이나 화려함 보다는 가장 실용적이고
효과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초식만을 연구하
고 익힌다. 자연히 직선적이며 단순했다. 혈영일호의
공격도 이를 말해주듯이 아무런 예고 없이 시작되었는데
, 그저 찌르는 동작 하나가 전부였다.
“저런!”
두일충은 너무나 순식간에 소문의 목을 노리며 날아오
는 검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역시, 말렸어야 했는데….’
혹시나 하는 자신의 어리석은 기대로 아까운 젊은이가
죽었다는 것에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그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소문은 당당하게 서 있었다. 오히려
공격을 시도했던 혈영일호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
는 듯이 소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그게 무슨 무공이냐? 어찌 인간의 몸으로 그토록
빠른 쾌검을 구사한단 말이냐?”
“…….”
소문은 아무런 말도 없이 점점 무너지고 있는 혈영일
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절대삼검 제1초, 무심지검(無心之劍)… 제길, 상처만
아니었으면….’
소문이 자신이 방금 시전한 무심지검의 결과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 불만스러웠다. 갑작스런 상황에 어
리둥절했던 두일충이 소문에게 달려왔다.
“자네. 괜찮은 것인가?”
“예.”
두일충은 소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살펴보며 거듭 물었다.
“정말 괜찮은 것인가? 틀림없이 저놈의 공격이 먼저
시작 되었는데….”
아무리 확인해도 처음 가슴에 입은 상처 외에는 아무
런 이상이 없자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두일충을 보며 소문은 그저 한 마디 했을
뿐이었다.
“저런 놈에게 당할 정도면 무공을 익히지도 않았을 것
입니다.”
‘허, 엄청난 자신감이로구나! 그러나 결과가 이리 나왔
으니 뭐라 말을 할 수도 없고….’
두일충은 황당하다는 듯이 소문을 바라보다 돛대에서
처진 줄을 잡고 몸을 일으키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혈영일호를 바라보았다. 갈라진 가슴사이로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쯔쯔, 그 자신감은 어디로 가고 그러고 있느냐? 네놈
이 한 말에 따르면 그러고 있어야 하는 것은 이 친구일
텐데….”
간신히 몸을 일으킨 혈영일호는 두일충의 조롱 따위에
는 아랑곳 하지 않고 소문을 노려보았다.
“아, 아직… 내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도…
대체 그, 그건 어떤 수법이냐…?”
“내가 순간적으로 가슴에 통증을 느끼지 않았으면 넌
서 있지도 못했다. 훗, 무슨 말을 기대하는 것이지? 난
이기고 넌 졌다. 그게 중요한 것이지. 내가 어떤 무공
을 사용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너무나 냉정한 소문의 말에 일순 힘이 빠진 혈영일호
는 잡고 있던 줄을 놓치며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크크크, 하긴 죽을… 놈이 알아서 무었…하겠느냐…
하지만 너도 곧 내… 꼴이 될 것이니… 너무 좋…아할
것은….”
혈영일호는 결국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
구고 말았다.
“큭!”
혈영일호의 죽음을 확인한 소문이 갑자기 가슴을 부여
잡으며 신음성을 내뱉었다. 지금껏 참고 있던 고통이
긴장을 풀자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 했다.
“이런, 괜찮은가?”
“견딜만은 합니다.”
소문은 나름대로 웃는다고 하였지만 일그러진 얼굴엔
고통의 빛이 역력했다.
“그런데 정말 심장에서 칼이 벗어났는가?”
“……?”
엉뚱한 두일충의 말에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이 쳐
다보는 소문을 향해 두일충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한번 말을 했다.
“이상해서 하는 말일세. 패천궁에서 보낸 자객 정도면
정확하게 심장을 노린다는 것은 너무나도 손쉬운 것
이었을 텐데, 그런 실수를 하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흠, 그도 그렇군요. 하지만 한 치만 빗나갔어도 심장
에 찔렸을 것입니다. 정말 운이 좋은….”
소문은 구멍이 난 옷을 들춰 보이며 말을 하다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는지 급히 품을 뒤졌다.
“하하하하!”
소문은 미친 듯이 웃어댔다. 영문을 모르는 두일충은
그저 두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소문은 그런 두일충에게 하나의 물건을 내밀었다. 반쪽
으로 갈라진 조그마한 옥패였다.
“이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옥패 아닌가? 뜬금없이 옥패는 왜?”
“이게 제 가슴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이 옥패가 제 심
장을 노리며 파고들은 단검의 끝을 가로 막아 심장이
아닌 다른 곳을 찌르도록 한 모양입니다. 저놈에겐
억울한 일이겠지만 제게는 천우신조(天佑神助)가 아닐
수 없군요.”
“허, 이런 경우가 있나. 하하, 자넨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 또한 좋군. 이 사실을 저 친구가 안다면 억울해서
눈도 감지 못했을 것이네.”
두일충은 소문과 옥패를 번갈아 보며 놀라워했다.
“그나저나 어찌 처리하실 겁니까? 우리의 목을 노리는
사람이 또 있는데….”
“아, 아닙니다. 목숨을 노리다니요. 감히 제가 어
찌….”
소문이 툭 던진 한마디에 화들짝 놀란 노적삼이 두일
충을 보며 재빨리 변명을 했다.
“이번일은 노채주께서 잘못 판단하신 듯 하오. 패천궁
의 자객이 말한 대로 지금 무림의 상황이 몹시 안 좋
으니 이럴수록 내실을 다지며 방비를 튼튼히 해야 할
것이오.”
“예. 그 말 명심하겠습니다.”
험악한 상황이 지나가자 두일충도 제법 예의를 차려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노적삼이 자신의 눈 아
래에 있고, 잘못을 저질렀지만 용골채의 채주이고 보
니 어느 정도 인정을 해주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어려워하는 것은 노적삼 본인과 계구,
주변의 수하들이었다.
잠시 후, 두일충은 여전히 경계의 눈으로 자신들을 바
라보는 은마표국의 일행에게 다가갔다.
“용골채에 급박한 사정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제 얼굴
을 봐서 이번 한번은 그냥 넘겨주시지요.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재발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무슨 말씀을… 총순찰님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
습니다. 약간의 불미스런 일이 있었지만 더 큰 일이
없었으니 이만하면 다행 아니겠습니까? 염려하지 마
십시오,”
송염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 대꾸했다.
‘후, 하늘이 우리를 보살폈구나. 허허! 다행이야. 다행!’
모든 일이 그렇듯 한번 꼬인 일이 되지 않으려면 아무
리 기를 써도 풀리지 않고 풀리기 시작하면 너무 쉽게
풀리곤 한다. 이처럼, 서로의 목숨을 위협하며 꼬여가
던 은마표국과 용골채의 사람들은 두일충의 중재로
서로 화해하며 다음의 만남(?)을 기약했다. 노적삼과
그의 수하들이 두일충에게 인사를 하고 서둘러 자신
들의 본채로 돌아가자 모든 것은 정상으로 되돌아 왔다.
은마표국 사람들은 갑판위의 표물을 돌보고 있었고,
두일충은 어기적거리고 있는 선원을 다그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소문은 상처주위를 붕대로 감싸 상처를 보호한 후에
갑판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은마표국에서 준비해온
금창약이 제법 효과가 있는지 고통이 금방 사그라
들었다. 한결 여유가 생긴 소문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옥패를 손위에 올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옥패로 인하여 목숨을 보존케 되다니… 당소희라고
했던가? 나와 혼인을 할 여인이… 이제 얼마 남지 않
았구나!’
소문은 예도준이 가르쳐준, 사천당가가 위치하고 있다
는 성도가 위치하고 있을 북서쪽을 바라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첫댓글 즐감하고갑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즐겁게 보고갑니다!
ㅈㄷㄱ~~~~~~~``````````````
감사해요~~~^~
ㅎㅎㅎ
잼납니다
에고 아까버라.옥패가 두동강 나다니
당가
ㅈㄷㄳ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아좋아
즐독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