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신고의 중요성
비가 약간 오는 날 아침 출근길에 차를 몰고 아파트 정문을 나서 좌회전을 하려고 전방의 횡단보도 신호등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좌측에서 자전거가 하나 달려와 내차 왼쪽 옆구리 백밀러 부근을 받았습니다.
왼쪽 창문을 열고 보니 중1,2 정도 되어 보이는 남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다 받은 것이었고 세게 받지는 않아서 넘어지지는 않고 다리로 받치고 서있었습니다
아이에게 “괜찮냐? 다친데 없어? 아픈데 없어?” 하고 물었는데 아이는 “괜찮아요, 아픈데 없어요”라고 말하며 자전거를 빼서 내차 뒤로 급하게 달려갔습니다.
아마도 학원시간이 늦었거나 아이가 내차를 박은 것이니 수리비를 달라고 할까봐 도망가는 모양으로 보였습니다.
나는 잠시 갈등에 빠져 “내차에 약간이라도 흠집이 났을 것 같은데 차를 세워두고 그 아이를 쫓아가 잡고 아빠 전화번호 달라고 해서 수리비 물어달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마침 횡단보도 신호가 들어오고 아파트에서 나오는 차들이 뒤에서 빨리 비키라고 빵빵거리므로 “별거 아닐 것 같으니 내가 손해보고 말자” 생각하고 그냥 좌회전해서 출근하고 말았습니다.
출근해서 차를 세워놓고 보니 왼쪽 백밀러 옆에 고무바퀴로 눌린 흔적과 긁힌 흔적이 조금 보여 약간 후회하는 심정이 들기도 했으나 이미 지난 일이라 좋은 일 한번 했다고 생각하고 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카풀하는 동료와 함께 차를 타고 퇴근하는 길에 아침의 사고를 이야기하며 아이 아버지 찾아서 수리비 달라고 하면 아이가 엄청 혼났을 것인데 좋은 사람 만나서 덕봤다고 하니 그 동료는 “변호사님은 선의로 그렇게 했겠지만 골치 아픈 사람 만나면 뺑소니로 몰려서 곤욕을 치르게 되는데 잘못한 것 같다”면서 그런 때는 뒷 사람이 뭐라고 하든지 차세워놓고 악착같이 쫓아가서 수리비를 받아내야 만사가 편해진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에이, 애가 넘어진 것도 아니고 내가 다친데 없냐고 물었을 때 다친데 없다고 대답하고 자기가 자전거 몰고 불나게 도망갔는데 그럴일이야 있겠어?”라고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틀후 경찰서 교통조사계에서 전화가 와서 그 아이 엄마가 나를 뺑소니사범으로 신고해서 조사를 해야 하니 출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출두하라는 날짜에 마침 구속된 의뢰인 접견예약이 되어 있어서 사정을 말하고 조사일자를 연기하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찾아가 정문앞 CCTV 녹화영상을 보았는데 공교롭게도 아파트에 들어오는 외부차량이 2대나 정문초소에서 임시주차증 수속을 하며 대기중이어서 사고장면이 대기차량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자전거가 빠른 속도로 보도를 질주해오는 장면과 사고후 내차뒤로 현장을 벗어나는 장면만 잠깐 보일 뿐이었습니다.
길건너편에 구청에서 관리하는 도로상황 CCTV가 있어서 정보공개청구를 답변은 마침 그날만 정전으로 녹화된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사를 받으러 가보니 아이의 팔목이 부러졌다는 폐쇄성골절로 4주간의 치료를 요한다는 진단서가 제출되어 있고 아이 엄마는 내가 교통사고를 내고 아이가 넘어져 울고 있는데 쳐다보지도 아니하고 도주했다고 신고를 해서 경찰관은 나를 완전히 뺑소니범으로 생각하고 엄한 조사를 하였습니다.
다행히 아이가 사고당시 내가 다친데 없냐고 물었던 사실을 인정하고 경찰이 확보한 방범용 CCTV에서 아이가 급히 자전거를 몰고 가다가 체인이 빠져 길가에 세우고 체인을 끼우려고 하다가 안되니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확인되어 뺑소니의 혐의는 벗었으나 도로교통법상의 구호조치의무위반 혐의는 인정된다면서 기소의견으로 송치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경찰의 요청으로 우선 보험에 접보하여 치료비등을 보상해주고 나중에 아이 어머니를 만나 사과하면서 물어보니 아이가 교통사고가 났다고 해서 데리고 병원에 가보니 팔목이 골절되었다고 하고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CCTV를 통하여 차번호는 확인했으나 개인정보라고 차주 연락처를 알려주지 아니하여 할 수 없이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아이를 닥달하여 사고경위를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한 것인데 뺑소니범으로 조사받게 해서 죄송하다고 하였습니다.
도로교통법상 구호조치의무 규정을 살펴보니 판례(대법원 2002. 5. 24. 선고 2000도1731 판결)가 아마도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중대사고를 염두에 두고 그 규정을 해석한 듯 교통사고의 귀책사유 여부에 불문하고 교통사고 피해자에게도 가해자를 구호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어서 실무에서는 교통사고 당사자중 먼저 신고한 사람만 빼고 신고를 하지 아니한 사람에게는 무차별로 입건하고 검찰과 법원에서도 귀책사유를 불문한다는 판례를 내걸고 거의 무조건 벌금형을 부과하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그러한 억울한 사건이 많았던 듯 헌법재판소에도 여러번 위헌소원이 제기되었으나 여러 가지 형식적 하자를 이유로 각하되고 정식으로 위헌여부의 심사를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법원에서는 “도로교통법 제50조 제1항의 취지는 도로에서 일어나는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방지·제거하여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함을 그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 피해자의 물적 피해를 회복시켜 주기 위한 규정은 아니며, 이 경우 운전자가 현장에서 취하여야 할 조치는 사고의 내용, 피해의 태양과 정도 등 사고 현장의 상황에 따라 적절히 강구되어야 할 것이고, 그 정도는 건전한 양식에 비추어 통상 요구되는 정도의 조치를 말한다”(대법원 2005. 9. 30. 선고 2005도4383 판결)는 판례에 따라 도로교통법상의 구호조치의무위반에 대해서도 무죄판결을 한 것이 있었습니다.
내 사건의 경우 외견상 상처가 없고 아이에게 아픈데 없느냐고 물었는데 아프지 않다고 하면서 급히 자리를 피하였고 당시 아파트 정문 앞에 출근하려는 다른 차들이 뒤에 죽 늘어서 있는 상태였으므로 사고의 위험과 원활한 교통의 확보를 위하여 구호조치를 해야할 상황이 아니고 그러한 상황임을 인식하지도 못했다는 점을 적극 주장하여 무혐의결정을 받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중대교통사고시 사상자들에 대한 구호와 원활한 교통의 확보를 위하여 마련된 도로교통법상의 구호조치의무규정이 가벼운 교통사고에도 무차별적으로 적용되어 피의자로 입건되는 사람들이 억울해하고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조속한 수정이 필요하고 그전에라도 해석시 억울한 사정을 참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교통경찰관은 자신들의 편의만을 생각하는 입장에서 아무리 작은 사고라도 무조건 신고하고 상대방을 알지 못하면 112에 신고해서 그런 교통사고 신고가 들어오면 연락달라고라도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교통경찰관들도 억울한 피의자로 차선변경시 뒤차가 운전이 서툴러 앞차를 피하다가 길가 난간을 부딪쳐 큰 사고가 나고 뒤차 블랙박스에서 앞차번호가 추적되어 조사를 받는데 앞차 운전사는 뒤차가 사고가 난줄도 모르고 있다가 사망사고가 아니어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은 면하였으나 도로교통법위반으로 기소되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적도 있었다고 하면서 그 규정의 남용에 따른 부작용이 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카풀동료의 말처럼 끝까지 쫓아가 수리비를 달라고 했으면 아무일도 없었을 것을 쓸데없이 좋은 일 한다고 봐주다가 뺑소니범의 누명을 쓰고 마음고생하고 보험접보하여 보험료 상승되는 손해를 초래하고 말았으니 참으로 착한 생각하지 말고 악착같이 살기를 강요하는 세상입니다.
동기여러분들도 차를 몰고 다니다보면 누구나 닥칠 수 있는 일이므로 내가 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안심하지 말고 교통사고가 나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일단 경찰에 신고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아~~~!!
착한 마음 먹었다가 되려 맘고생 심하게 하셨네요~
참... 세상 그냥 편하게 살긴 어려워요
모든 것이 세분화되고 일일이 법대로 처리하려하니
관계자들도 힘들 것이고
그나마 무혐의라니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여튼 동기들 아끼는 맘으로 긴-글 올려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