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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요구를 무시한 르호보암 12:12~15
12 삼 일 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이르기를 삼 일 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13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14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15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
북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12:16~20
16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17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르호보암이 그들의 왕이 되었더라
18 르호보암왕이 역군의 감독 아도람을 보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쳐 죽인지라 르호보암왕이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더라
19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20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이 돌아왔다 함을 듣고 사람을 보내 그를 공회로 청하여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으니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따르는 자가 없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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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르호보암은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에게 멍에를 더 무겁게 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을 이루시려 르호보암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백성은 르호보암이 보낸 아도람을 죽인 후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습니다. 이에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따르는 자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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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요구를 무시한 르호보암 12:12~15
거칠고 포학한 지도자는 환영받지 못합니다. 르호보암은 3일 만에 다시 나아온 백성을 거칠고 포학하게 대합니다. 그는 젊은 신하들의 조언대로 더 무거운 멍에와 심한 폭력으로 백성을 대하겠다고 말합니다(14절). 그렇게 하면 아버지 솔로몬보다 더 큰 위엄을 보여 백성이 자신에게 복종하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의 선택은 결국 나라의 분열을 촉발합니다. 성경은 르호보암의 선택이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며, 아히야를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시는 것이라고 기록합니다(15절). 이는 솔로몬의 배교와 불신앙에 대한 심판의 성취입니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잘못된 선택을 내버려 두시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르호보암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게 된 궁극적 원인은 무엇인가요?
내가 무시하지 않고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조언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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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12:16~20
백성은 자신들의 말을 무시하는 지도자를 따르지 않습니다. 르호보암이 자신들의 요구를 거절하자 백성은 다윗 왕가와의 관계를 끊겠다고 선언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16절)라는 말은 다윗 가문 사람을 더는 왕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르호보암은 그제야 백성과 다시 협상하기 위해 아도람을 보내지만,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고 아도람만 죽습니다. 결국 르호보암은 자신이 속한 지파인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만 다스리는 왕이 됩니다.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는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웁니다. 통일 왕국 시대는 막을 내리고, 여로보암이 다스리는 북 이스라엘과 르호보암이 다스리는 남 유다로 나뉘어 분열 왕국 시대가 시작됩니다.
● 더 깊은 묵상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결정은 어떤 결과를 초래했나요?
고집과 어리석은 선택 때문에 내가 받게 된 하나님의 징계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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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자존감의 조화
가해자를 용서하고 나와는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기 위해서는 겸손과 자존감(자신감)이 우리 안에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자신이 타인보다 낫다고 여기지 않으면서, 동시에 정서 불안이 없어야 한다. 정서가 불안하면 상대방을 흠잡으려 하고 자의식을 내세우게 되기 때문이다. 이 겸손의 원천은 공허하고 무가치한 자아가 아니라, 안정되고 확고한 자존감이다. 그것이 있어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일반적인 정체성 형성에서는 겸손과 자존감이 상호 배타적인 관계에 있다. 내가 성공해서 내 기준에 부합한다면 자존감과 안정감은 있겠지만, 내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이들을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반대로 내가 삶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타인의 그런 처지에 공감할 수는 있겠지만 자존감을 잃는다. 겸손과 자존감이 동시에 있기란 어렵다.
겸손과 자존감이 함께 자라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임재 안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의롭다고 여겨지지만, 본래 죽을 수밖에 없는 철저한 죄인이다. 그래서 안정과 겸손이 그 안에 깃든다. 구원을 위해 치러진 대가 앞에서 우리의 자아는 한없이 낮아지면서도 한없이 인정받는다. 사랑으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 앞에 설 때, 우리의 교만과 자기혐오가 일소되고 우리는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가 된다.
답이 되는 기독교 / 팀 켈러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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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열왕기상 12장 14, 16절
지도자의 경솔한 결정은 공동체 운명을 어둡게 합니다. 르호보암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하나님께 물었던 다윗과 달리(삼상 30:8), 먼저 신하들에게 의견을 묻습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고,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며, 사람 뜻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뜻입니다. 크고 작은 선택과 결정의 순간에 하나님 지혜를 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지도자가 서 있어야 할 곳은 명령과 군림의 자리가 아닌 기도의 자리입니다.
삶의 실패와 파멸은 우리 안에 사탄이 심는 자기중심성과 자기만족, 자아도취의 산물이다. - 더글러스 웹스터
오늘의 기도
하나님, 날마다 말씀 앞에 서서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받아 하나님 뜻을 떠나지 않게 하소서.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섭리를 늘 기억하게 하소서. 저와 가정,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 뜻을 온전히 따라 견실함과 연합을 이루도록 은혜를 부어 주소서.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결정은 어떤 결과를 초래했나요? 고집과 어리석은 선택 때문에 내가 받게 된 하나님의 징계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찬송(새 445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당신의 말씀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내 입장이나 주장이 먼저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배려하고, 일이 잘 진행될 수 있는 방향으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하
매일매일 주님의 말씀을 이루어 가기 위한 노력들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
나를 통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고, 그분의 도구로, 그분의 일꾼으로 쓰임 받도록 하자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어떻게 그런 위대한 임금이 되었는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했으며, 솔로몬은 일천번제 후 지혜를 받아서 그렇게 현군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살 길은 오직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입니다.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많이 부족합니다. 지혜가 약합니다. 넘어지기도 하고 실패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께 매달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 이상의 능력을 구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알듯이 한 달란트 받은 자는 한 달란트만 남기면 됩니다. 다섯 달란트 구해서 다섯 달란트 남겨야 하는 것이 아니지요. 자신의 재능 안에서 최선을 다 하면 됩니다. 곧 마음과 정성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 능력과 업적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르호보암도 그렇게 했더라면 후대에 길이길이 명예로운 이름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비록 다윗과 솔로몬처럼 능력과 지혜가 없었지만, 하나님께 영광된 삶의 모델을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가 나쁘다고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좋다고 우월감을 가질 이유도 없습니다. 본인이 원해서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얼마큼 값어치 있는 삶을 사느냐?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느냐? 그것이 과제라고 봅니다. 삶의 평가는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머리가 아니라 마음과 정성인 것 같습니다.
머리 나쁜 것 우리 책임이 아닙니다. 조물주 책임입니다. 마음과 정성 없는 것은 하나님 책임이 아닙니다. 그것은 순전히 우리 책임입니다. 머리 그렇게 탁월하지도 않아도 좋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능력 안에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열심을 내는 우리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삼 일 후, 르호보암은 원로의 자문을 버리고, 젊은 자들의 조언을 따라서, 멍에를 더 무겁게 하겠다고 포악한 말로 대답했습니다 이에 온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않는 것을 보고,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며 돌아섰고, 여로보암을 자기들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왕상12:15)
참으로 모든 역사는 주관자 되시는 주의 말씀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의 우둔함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정세 파악을 전혀 못하고 스스로 세겜으로 간 것 뿐만 아니라, 솔로몬의 제거대상 일순위였던 정적 여로보암이 두 번이나 자기 앞에 나왔는데, 그의 위험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아무 대처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분위기 파악을 전혀 못하고, 괜히 감역관 아도람을 보냈다가 죽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윗 때부터 일한 충실한 신하를 잃게 만든 것입니다 왜 이렇게 우둔하게 되었을까요?
주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로흐보암은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듣지 않았을까요?
그가 실로 출신이라 믿을 수 없었던 걸까요? 그러나 무슨 이유로도 핑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말 못하는 나귀를 통해서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벧후2:16)
그러나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듣지 않는다면 혼미한 심령 가운데 우둔해지고 말 것입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롬11:8)
우둔한 자는 반드시 완고하고, 완고한 자는 반드시 우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 우둔함과 완고함을 떨쳐버리고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기 원합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5)
그리하면 말씀의 빛이 비추어 우리의 우둔함을 깨우쳐 지혜롭게 될 줄 믿습니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시119:130)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2-15절 이스라엘을 둘로 나누십니다.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듯(출 4:21),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르호보암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않게 하십니다. 백성을 섬기라는 원로들의 조언을 거절하게 하시고, 포악한 말로 더 혹독한 통치를 예고하게 하심으로, 결국 이스라엘의 분열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저버리게 하십니다. 다윗의 길을 저버린 르호보암을 떠나 북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을 지키는 나라를 세워가길 바라신 것이고(11:38), 예루살렘에 남겨진 남유다에게는 성전의 등불이 되는 사명을 주셔서(11:36) 회복의 길을 여신 것입니다. 꺾이고 깨어진 내 뜻에도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흐르고 있습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6-20절 유다 지파의 왕이었던 다윗은 북쪽 이스라엘 지파들의 동의와 섬김을 통해(삼하 5:1-3)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애초부터 이스라엘의 왕은 전제주의적 군주일 수 없으므로, 르호보암이 한 협박조의 공언은 역사의식과 통치철학의 부재에서 비롯된 허언인 것입니다.
더 이상 유다 지파의 왕에게 협조할 이유가 없어진 북이스라엘 백성이 관계 단절을 선언하자, 아직도 분위기 파악을 못한 르호보암은 그들에게 강제노역 감독관 아도람을 파견합니다.
여전한 노예 취급에 분노한 북쪽 백성이 아도람을 돌로 쳐 죽이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하면서, 르호보암은 남쪽의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만의 왕으로 전락합니다.
이 땅의 정치, 종교지도자들이 르호보암과 같은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하늘과 백성의 소리를 듣는 귀와 겸손한 마음 그리고 선한 분별력을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21-24절 르호보암은 자신의 18만 병력으로 북이스라엘의 불평을 단숨에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스마야 선지자를 통해 그를 막으십니다. 그는 북쪽 지파뿐 아니라 하나님도 자신에게 등을 돌리셨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르호보암이 의지해야 하는 것은 18만 용사가 아니라 하나님이고, 꺾어야 할 것은 북이스라엘이 아니라 자기 오만이며, 되돌려야 할 것은 깨어진 나라가 아니라 우상숭배에 물든 나라입니다.
기도
공동체-제가 진정으로 돌이키고 회복해야 할 것을 깨닫게 하소서.
(왕상 12:12~24절)
❝말씀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는 삶❞
❚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의 선택을 통해서도 당신의 말씀을 이루어 가십니다.
✔ 말씀을 어떻게 대하는 삶이어야 합니까?
➲ 하나님의 말씀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12~15절).
교만은 다툼을 일으키고(잠 13:10), 패역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잠 16:28)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미리 말씀하시고 그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말씀대로 되어집니다. 즉,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그분의 방법대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듣고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절대적으로 앞서야 합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린 후에 하나님께 원했던 것은 부귀영화가 아니라 ‘듣는 마음’이었습니다. 즉, 듣고 분별하는 지혜(3:9~11절)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에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청을 들으려는 마음 곧 지혜가 없었던 것입니다. 내 인생에 전반에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숨겨져 있음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그 말씀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는 참된 제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분별하여야 합니다(16~20절).
르호보암이 젊은이들의 충고를 따라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자 북쪽의 열 지파는 이제 다윗과 관계없음을 선언하며 백성들에게 장막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16절).. 르호보암 왕에게는 오직 유다 지파만 남아 있었습니다. 르호보암이 역군의 감독 아도람을 보냈다는 것은 아직도 사태를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17절). 이는 무력으로 그들을 통제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에 백성들은 그를 돌로 쳐 죽이는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르호보암은 황급히 예루살렘으로 도망쳤습니다(18절). 북쪽 지파의 대표들은 여로보암을 그들의 왕으로 추대하고자 사람을 보내어 그를 공회로 청하고는 북쪽 열지파의 왕으로 삼았습니다(20절).
왕국의 분열은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실수와 북쪽 지파들의 배반으로 인하여 빚어진 비극적인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자 그들의 마음을 주장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로보암이 비록 열 지파의 왕이 되었으나 하나님의 지지를 받아 왕이 된 것은 아니었으며, 다윗 가문을 징계하는 도구로 세움 받은 것이었기 때문에 오래 지속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자신의 인생살이의 과거, 현재, 미래 중에 현재 모습에 가장 관심이 있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지금 내 자신이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지금 내 자신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언제라도 진리의 말씀에 반응하고 변화될 수 있도록 말씀을 온전하게 분별하여 그 말씀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는 참된 제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을 이루기 전, 북 이스라엘과 분열된 남유다의 왕으로 7년 6개월을 다스렸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실권자였던 아브넬이 남유다 요압에게 죽임을 당한 소식을 들은 이스보셋왕은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그의 신하 레갑과 바아나에게 죽임을 당하였고 그 뒤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히려 다윗에게 찾아와 자신들의 왕도 되어 달라고 간청하여(삼하 5:1) 이스라엘이 겨우 하나가 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손자 르호보암의 영적 무지와 교만으로 말미암아 2대가 지나지 못하여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또다시 나뉘는 아픔을 겪게 된 것입니다. 르호보암이 왕으로 세워진 그곳 세겜에서 결국 북 이스라엘의 반역이 일어났고 외부와 내부에서 그 나라를 직접 위협하는 세력이 일어남으로 잠시 허락된 평화는 하나님의 방어막이 거둬짐으로 혼란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솔로몬이 여호와의 율법과 명령을 어기고, 그분의 경고를 멸시함으로 나타난 당연한 결과였고, 씻어내지 못한 불순종과 불경건의 죄악에 대한 심판인 동시에, 다시 회개하고 돌이키도록 말미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드러내는 것이 었습니다. ‘정녕 죽으리라’ 명령하신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에덴동산에서 내쫓고 땀 흘리고 출산의 고통을 더하신 것은 징계인 동시에 사랑인 것과 같습니다.
어떠한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녀를 돌보는 부모의 사랑처럼, 우리를 그 구원으로 이끄시고 은혜의 날개 아래 덮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헤세드를 깊이 깨닫고 그에 합당한 삶으로 돌이키는 역사가 매 순간 기적같이 일어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진리와 공의 아래에서도 자비와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여호와를 찬양하며 그 앞에 엎드립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먼지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으나,
만물을 다스리시고 천지를 만드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그 강한 팔을 의지하여 오늘도 맡겨주신 작은 사명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가정과 사역위에 기름 부어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아버지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모든 자연재해로부터
고통 받고 시행 하는 주님의 백성들을 눈동자처럼 지켜 주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의 하나님을 경외 하고,
모든 분열과 다툼을 버리고 여호와 앞에 하나 되는
거룩한 역사를 하락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