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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야가 전한 하나님 말씀 12:21~24
21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다 온 족속과 베냐민 지파를 모으니 택한 용사가 십팔만 명이라 이스라엘 족속과 싸워 나라를 회복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돌리려 하더니
22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3 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 온 족속과 또 그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24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돌아갔더라
금송아지를 만든 여로보암 12:25~33
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26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31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32 여덟째 달 곧 그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33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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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르호보암이 북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유다와 베냐민 용사 18만 명을 모읍니다. 하지만 이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다는 스마야의 말을 듣고 용사들을 돌려보냅니다. 여로보암은 자기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돌아갈까 봐, 두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하게 하고 제사장과 절기를 마음대로 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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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야가 전한 하나님 말씀 12:21~24
나라가 남북으로 나뉘자 르호보암은 전쟁을 준비합니다.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운 북 이스라엘을 되찾고자 유다와 베냐민 지파 중에서 사람을 모읍니다. 베냐민 지파가 유다 지파 편에 선 것은 지리적으로 베냐민 지파 거주지가 유다 지파 바로 위에 있고, 베냐민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삿 1:21). 하나님은 스마야 선지자를 보내 전쟁을 막으십니다. 이스라엘 분열은 오만했던 솔로몬 왕조를 겸손하게 하시려 하나님이 친히 행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백성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 더 깊은 묵상
스마야가 전쟁을 준비하는 르호보암과 백성에게 전한 하나님 뜻은 무엇인가요?
상대방과 싸우기보다 내 허물을 돌아보며 회개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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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송아지를 만든 여로보암 12:25~33
여로보암은 큰 나라를 얻었지만, 왕권을 주시고 지키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온전히 믿지 못합니다. 그는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예배드리러 다니다가 자신을 죽이고 다윗 왕가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힙니다. 말씀을 잘 지키면 견고한 집을 세워 주리라 하신 하나님의 약속(11:38)을 믿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그래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단과 벧엘에 둡니다. ‘계획하고’(28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자문을 받고’라는 뜻이기에, 이 일은 그가 신하들의 자문을 받고 결정한 것으로 봅니다.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형상으로 예루살렘 성전과 언약궤를 대신하려 합니다. 또한 산당을 짓고 레위 사람이 아닌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우고, 하나님이 정하시지 않은 절기를 정합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 말씀을 어긴 것이며, 가짜 신앙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해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염려와 조급함을 버리고 말씀의 원칙을 따라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한절묵상:열왕기상 12장 28~29절
사람은 야망에 집착할 때 영적 분별력을 잃습니다. 북 이스라엘 백성이 유다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여로보암은 불신앙적인 정책을 시행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대신할 금송아지 성소를 벧엘과 단에 건축한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권력 유지를 위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그는 자기 눈앞에 있는 백성만 볼 뿐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백성의 필요에 부합하다고 해서 옳은 일은 아닙니다. 모든 일의 판단 기준은 오직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 일꾼이라면 일을 잘하려 하기 이전에 해야만 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먼저 분별해야 한다. - 찰스 험멜
오늘의 기도
하나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알면서도 노심초사하며 스스로 움켜잡으려 했던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변질되지 않도록 그럴듯한 가짜 신앙을 과감히 몰아내게 하소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오직 하나님 뜻에 순종하며 신실하게 살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93 예수는 나의 힘이요)
하나님은 자기 마음대로가 아닌라,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길 바라시는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주님만을 믿고 의지함은 물론이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는 삶이 될 수 있도록 하자
주님만을 찬양하고, 주님만을 예배하면서, 주님의 참 제자로서, 주님의 일꾼으로서의 맡겨진 사명들을 성실히 감당해 나가도록 하자
내게 주어진 사명은 내가 섬기는 이들이 주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일이며, 주님을 알고, 주님과 깊은 교제 안에 거하도록 하고, 주님을 예배하게 하도록 인도하는 것임을 잊지 말도록 하자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 여로보암이 제사장소를 두 군데에 두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백성들의 편리를 위해서입니다. 벧엘은 북 이스라엘의 남방 경계선에 있고, 단은 북방 경계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따라서 남쪽에 사는 백성들은 벧엘에, 북쪽에 사는 사람들은 단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 된다는 것으로 일종의 백성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그러나 속내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절기를 바꿉니다. 즉, 장막절(추수감사절)을 7/15일에서 8/15일로 바꾼 것입니다.
그 까닭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은 것으로, 멀리 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벧엘에나 단에서 제사를 드리면 된다는 것으로, 이는 명백히 율법에 위배되는 일입니다. 이는 그의 정권 유지를 위한 조치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산당들을 짓고, 자격이 없는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으며 그 밖에 여호와의 절기도 임의대로 지정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그가 하니 스스로 하나님이 된 것이지요. 그렇게 못된 짓만 골라서 한 것은 이미 그에게 교만한 마음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간사하기 짝이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지요.
솔로몬의 실정으로 말미암아 얼떨결에 왕이 된 그입니다. 순전히 하나님께 택함 받은 것으로, 따라서 그는 오르지 겸손하게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그럴수록 더워 낮아져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왕이 되고 나서 그렇게 태도가 돌변합니다. 자기 세를 넓히기에 급급하고, 권력 강화를 위해 못할 일이 없어, 교만이 하늘을 찌른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 겸손해야 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예수님처럼 낮은 자세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니 그거보다 더 낮아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보다 한참 부족한 존재들이라 그렇습니다.
신앙은 권세가 아닙니다. 섬김입니다. 받는 것이 아니고 주는 것입니다.
자기 세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쭉정이와 알곡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알곡은 머리를 숙이나 쭉정이는 숙이지 않습니다.
알곡은 속이 찾지만, 쭉정이는 속이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단한 믿음으로 속이 꽉 차, 날이 갈수록 더욱 더 머리를 숙이는 우리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신앙인의 참 모습은 겸손입니다. 하나서부터 열까지 겸손입니다.
르호보암은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 십팔만의 군사를 소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형제와 싸우지 말라고 하자 바로 그만 두었습니다 사실 북이스라엘은 아직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전이었기 때문에, 잘 조직된 군사력으로 어렵지 않게 반란을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의 권리를 포기한 것입니다
참 그리스도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늘의 권리를 포기하고 육신을 입으사 땅에까지 낮아지셨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오직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반면에 여로보암은 말씀을 업신여기고, 자기 마음대로 절기를 바꾸고, 제사장을 세우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어 벧엘과 단에 두고, 그 우상들을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큰 용사처럼 보였습니다
"여로보암은 큰 용사라"(왕상11:28)
그러나 실제로는 죽음의 공포에 잡힌 자에 불과합니다 그는 백성이 예루살렘에 절기를 지키러 가면, 후에는 자기를 죽이고 르호보암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공포에 잡혀 있었습니다 그의 아비 사탄의 내면의 본질이 공포인 것처럼, 그의 속은 공포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공포의 크기만큼 분노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크게 분내어"(계12:12) 결국, 믿음이 없으면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공포에 잡히게 되고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참 그리스도께서는 죽어도 다시 살 것을 믿으셨습니다
참으로 참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심으로 우리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어도 살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개의치 않으니,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고, 다만 우리 안에 계시는 주만 존귀하게 되시기를 바랄 뿐인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빌1:20)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21-24절 르호보암은 자신의 18만 병력으로 북이스라엘의 불평을 단숨에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스마야 선지자를 통해 그를 막으십니다. 그는 북쪽 지파뿐 아니라 하나님도 자신에게 등을 돌리셨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르호보암이 의지해야 하는 것은 18만 용사가 아니라 하나님이고, 꺾어야 할 것은 북이스라엘이 아니라 자기 오만이며, 되돌려야 할 것은 깨어진 나라가 아니라 우상숭배에 물든 나라입니다.
25절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마자 세겜을 거처로 삼고 요새화합니다. 또 동쪽에서 쳐들어오는 적들을 막기 위해 요단강 동편에 부느엘 성을 쌓습니다. 그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방비하는 만큼이나 하나님이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시도록 신앙을 견고히 해야 했습니다.
26,27절 여로보암은 북쪽 지파에 대한 지배권을 위임하신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11:38)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르호보암에 대한 백성의 분노로 자신이 얼떨결에 왕이 된 것일 뿐, 여전히 “그들의 주”는 르호보암이라고 불안해하면서 그들이 언제든 자신을 떠날지 모른다고 여깁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성전이 남유다의 예루살렘에 자리 잡고 있으므로, 절기마다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러 남쪽으로 왕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화해와 연합이 이루어져 자신을 버릴 거라고 단정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한 채 스스로 안정을 추구하려 발버둥치는 여로보암의 모습이 내게도 있지 않습니까?
28-33절 ‘모세’와 같던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을 우상숭배하게 만든 ‘아론’으로 전락합니다. 하나님이 여로보암에게 북쪽 지파를 맡기신 이유는 신앙의 회복이었지만, 그는 신앙을 정치적 통제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북쪽 백성이 굳이 남쪽까지 순례하여 예배할 필요가 없도록 예루살렘 성전을 대체할 ‘산당’을, 북이스라엘의 최남단 벧엘과 최북단 단에 세웁니다. 산당은 성전이 없던 시기에 잠시 허락된 임시 예배처소였을 뿐,
하나님이 택하신 성전이 생긴 이상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신 12:13,14). 하나님의 통제를 벗어난 장소에서 각자의 소견대로 예배를 변질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이를 부추기듯 산당에 금송아지를 설치하고(출 20:4,5). 레위 자손이 아닌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습니다(신 18:1-8). 또 7월 15일에 지켜야 할 초막절을 북쪽 지역의 기후에 맞춰 8월 15일로 제멋대로 변경합니다. 우리 욕심 때문에 자기 부정과 절대 순종의 신앙이 기복종교로 전락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기도
공동체-제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인격 없는 금송아지로 바꾸는 거짓 신앙을 물리치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여야 합니다(21~24절).
르호보암은 빼앗긴 열 지파를 되찾기 위해 군대를 소집하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지만, 왕국의 회복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으므로 계획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르호보암은 군사적인 힘으로 왕국을 회복하려고 애썼지만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고향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모세는 민족적인 위기에 처할 때마다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다윗도 환난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지도하심을 받고자 하는 믿음이 전혀 없었던 르호보암은 왕국의 분열이라는 징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영적 지도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며, 그 지혜를 얻기 위해 겸허하게 늘 기도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무지한 내 자신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돌진하고자 할 때, 여러 환경들과 하나님의 삶을 통해 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그 길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늘 민감하게 반응하여 그 말씀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는 참된 제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내 자신이 내리는 모든 선택과 결정 가운데 하나님이 친히 함께 하셔서 지혜로운 결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하게 쓰임받을 뿐 아니라 내 욕심과 이익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말씀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분별하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왕상 12:12~24절).
➲ 말씀과 반대되는 계획을 따라가서는 안됩니다(25~27절).
여로보암의 마음에 자칫 왕국이 다시 다윗 가문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불안해 하면서 혹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으로 제사를 드리려 갔다가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는 날이면, 그들이 자기를 죽이고,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왕의 자리에 앉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11:38)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줄 것이라는 믿음의 견고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름의 대책들을 열심히 간구했던 것입니다. 말씀과 반대되는 삶을 살아갈 때, 내 안에 찾아오는 것은 불안과 염려 그리고 초조합니다. 막상 내 힘과 내 방식대로 어떠한 일을 시작은 했지만, 불안과 염려로부터 자유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내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깊이 교제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잃어버린 채 세상의 방법을 통해 삶의 안정과 평안을 누리려고 발버둥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말씀과 반대되는 계획을 따라가면 안됩니다. 말씀을 듣고, 신뢰하고, 순종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말씀과 반대되는 계획을 추진해서는 안됩니다(28~30절).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제사하러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는 일을 도모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왕권이 출애굽의 하나님께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알리기 위하여 그 금송아지를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28~29절)이라고 선언합니다.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성소를 세우고 금송아지를 만들자 백성들이 그곳에 가서 금송아지를 숭배한 사건은 하나님 보시기에 죄가 되었습니다(30절).
여로보암 역시 르호보암처럼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인간적인 생각과 계획에 따라 일을 도모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내 눈앞에 보이는 풍요와 안전의 금송아지 우상을 제거하고, 우상숭배를 방관해서도 안됩니다. 그리고 금송아지와 같이 눈에 보이는 우상을 숭배하고자 하는 어두운 본성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맘몬과 성공, 기복주의와 성장주의를 따르는 것이 바로 현대판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눈에 보기에 좋아 보이고, 완벽해 보인다 할지라도 그리고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할지라도 그 계획과 방법이 하나님의 말씀과 정 반대되는 계획이라면 추진해 나아가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말씀을 듣고, 신뢰하고, 순종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서 모두가 행복을 누리를 삶으로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 말씀과 반대되는 계획을 고집해서는 안됩니다(31~33절).
여로보암의 죄악은 벧엘과 단에 단을 쌓고 금송하지를 세운 것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세웁니다(31절). 또한 ‘비슷하게’ 그리고 ‘자기 마음대로’ 절기를 정하여 벧엘에 쌓은 단에 올라가 분향하도록 합니다(32~33절). 하나님께서 산당을 싫어하시는 이유는 바로 산당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게 하고 우상을 섬기게 하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로보암은 정치적인 의도로 산당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고, 자기 마음대로 산당에 제사장을 세워 결국 가문이 멸절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여로보암은 그를 따르는 백성들을 르호보암에게 빼앗길까봐 두려운 나머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으로 가는 것을 막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무모하게 정책을 펼침으로 자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기간 동안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 숭배에 빠지게 하는 죄악을 범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자신의 독자적인 힘으로 이끌고 나아가고자 힘썼던 여로보암은 결국 우상을 숭배하는 배교적인 왕들의 악한 본보기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내 자신 역시도 사탄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현대판 금송아지 숭배를 정당화하여 내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내 삶에서 경험되어지기 위해서 세상을 향해 열린 창문을 닫고, 하나님의 음성에만 귀 기울여 순종하고, 순복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죄의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게 쓰임 받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반대되는 계획을 과감하게 버리고, 언제나 말씀을 듣고, 신뢰하고, 순종하는 삶을 통해 은혜 안에 살아가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께만 순복하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내 자신의 힘으로 하려 했던 모습을 버리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신뢰하며 순전히 따르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왕상 12:25~33절)...
예루살렘으로 피신한 르호보암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강한 군사들을 소집하여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하는 북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하였습니다. 세상적인 반란에 대해 세상적으로 대처하는 것 외에는 배운 적도 없고 고민한 적도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강권적으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를 통해 르호보암에게 가서 이 모든 일이 여호와로 인한 것임을 전하게 하시고 그 내전으로 인한 살육과 멸망을 막으십니다.
여로보암은 에브라임 산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지내면서, 온 국민이 솔로몬 왕의 지휘하에 세운 화려한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일이 반복되면 처음 자신을 따르던 백성들이 영적으로 취약한 자신을 거절할 것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과거 솔로몬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해 그곳에서 오랫동안 영향을 받고 살아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숭배하게 함으로 북 이스라엘 백성이 영적인 어둠으로 덮이게 합니다.
예배의 대상이 바뀌면, 다스림의 주체가 바뀌고 사망의 권세 아래 놓이게 됩니다. 아론이 모세의 부재중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예배하게 된 것처럼, 사탄의 영적 노예의 생활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가 어렵습니다. 실망을 넘어 우리들 자신에게 절망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부활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그 가난한 심령과 주님의 놀라운 동행을 매 순간 경험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겸손하게 깨어 기도하며, 그리스도와 그 말씀으로 십자가에게 못 박힌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를 기뻐하시고,
우리 안에 꿈틀거리는 죄악과 우상을 태우시기를 원하시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 놀라운 손길에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과거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온전히 못 박고,
만물을 새롭게 하고 아버지의 뜻을 드러내는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기로 결단하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 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부터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손길로 덮어주시옵소서.
저 북한 땅의 백성들에게도 아버지의 은혜의 빛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영광을 온전히 올려드리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