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원년 후반기 성적 5승 35패 승률 0.125라는 참담하기 그지 없는 성적을 올린 삼미는 이듬 해 장명부라는 재일동포를 영입하며 팀의 재건에 나선다.
장명부는 1억 2천만원이라는 거금을 받을 만큼 기대가 컸고 실제로도 30승을 올리며 시즌 내내 국내 타자들을 농락한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15승을 거두면서 이미 검증을 받은 장명부에게 사실 국내 타자들은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타격의 달인이라는 장효조까지 14연타석 무안타에 그칠 만큼 그는 한 수 위에서 경기를 풀어 나가고 있었다.
82년 삼미는 OB(현 두산)에게 상대 전적 16전 전패라는 수모를 당했지만 장명부가 83년 4월 12일 연패를 끊은 이후로 승승장구 오히려 OB에 12승 8패로 앞서게 된다. 14승 2패로 삼미를 압도하던 삼성 역시 그 해 삼미에 8연패를 당하는 등 최악의 한 시즌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장명부 한 명에 의해 강팀들이 줄줄이 떨어져 나간 셈이었다.
83년은 온통 장명부의 해였다. 김진영 감독의 구속, 이어진 백인천 선수 겸 코치의 구속으로 팀이 어수선해진 가운데 후반기 그의 괴력 역시 조금은 사그러 들었지만 국내 야구에서 그의 등장은 충격이나 다름이 없었다. 결국 장명부는 그 해 30승 16패 6세이브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긴다.
당시의 야구를 잘 모르는 팬이라면 의아해 할 수도 있다. 20승만 올려도 최정상급의 투수로 인정 받는 국내 야구계에서 30승이 어떻게 가능한건지. 그러나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무리한 일이다.
장명부가 활약하던 당시에는 프로야구의 초창기로서 선수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져 있었고 투수들의 경우 역할 구분도 없이 무차별 투입이 이루어지고는 했다. 따라서 특정 스타들에 의한 성적 우열이 쉽게 갈렸다. 박철순 외에는 마땅한 적수조차 찾지 못했던 백인천의 4할 타율(0.412)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30승의 대기록으로 멋지게 국내 야구에 선보인 장명부는 이후 부진의 늪에 빠지게 된다. 매년 연봉 파동으로 팀과의 잡음이 끊이지를 않았고 무리한 출장으로 이듬 해부터는 예전 구위를 찾을 수도 없었다.
86년에는 새롭게 창단한 빙그레(현 한화)로 이적하지만 그가 보여준 성적은 1승 18패. 작게나마 기대를 걸며 1억 5천만원(2년)을 그것도 일시불로 지급한 빙그레로서는 허탈감을 넘어서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 장명부는 삼성 인스트럭터, 롯데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겼지만 이마저도 착실히 수행해 내지는 못했다. 91년 5월 22일 장명부는 마약 사범으로 한국 야구계에서 영구 추방되며 안타까운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트윈스의 우승과 신인왕 집안싸움
LG 팬들에게 가장 신바람 나게 응원하던 시절은 94년이 아닌가 한다. 4월 26일 1위로 올라선 이후 LG는 시즌 내내 단 한 번도 그 자리를 내주지 않고 독주를 거듭한다. 2위 태평양과는 승차는 무려 11. 5게임차.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LG는 경기 감각이 무뎌졌다는 주위의 평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최종전에서도 태평양을 4연승으로 몰아부치며 두 번째 정상 등극에 성공한다. 적어도 94년 한 해만은 LG에게 두려울 것이 없었던 셈이다.
LG의 우승으로 자율야구, 신바람 야구를 강조하던 이광환 감독은 큰 주목을 받게 된다. 지휘봉을 잡은 이래 92년 7위, 93년 4위로 한 동안 주춤거리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임기 마지막 해에 자율 야구의 과실을 거둔 셈이었다.
여기에 이 감독이 꾸준히 실행해 온 스타 시스템이라는 것도 LG 우승의 큰 원동력이 됐다. 이는 마운드를 철저히 분업화 한 것으로 김태원, 정삼흠, 이상훈은 구원승 없이 순수 선발로만 15승 이상을 거둔다.
강봉수, 차동철, 차명석이 지키던 중간 계투, 김용수가 책임지던 마무리 역시 분업화로 시즌 내내 마운드의 안정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이 스타 시스템은 한국 야구의 획기적인 변화로 각 팀은 LG 우승 이후 마운드의 분업화를 서둘러 마련하게 된다.
LG는 성적뿐 아니라 관중 동원력에서도 다른 팀들을 압도한다. 2년 연속 100만 관중을 돌파하게 되는데 이는 신인 3인방이라 불리던 유지현, 김재현, 서용빈의 공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유지현은 공수에 걸친 맹활약으로 신인왕을 거머쥐었고 김재현은 신인 최초 20-20 클럽 가입, 서용빈은 신인 최초의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하며 LG 신바람 야구에 힘을 더했다.
특히 다른 팀에 마땅한 경쟁 상대가 없는 상황에서 이들의 신인왕 경쟁은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점입가경이었는데 구단에서는 자칫 불협화음이 될까 우려를 해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들의 상호간 경쟁은 LG 독주의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다.
2003/06/08 오후 11:08
ⓒ 2003 OhmyNews
유동훈 기자 의 다른기사 보기
좋은 기사! 나도 이 기사에 원고료를 주고 싶다
휴대폰,ARS 결제는 500원입니다. 결제되는 금액 중 200원은 기자 개인의 추가 원고료로 지급되고, 300원은 <이달의 기자상> 등 기자회원 지원비로 사용됩니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키운다
내 맘대로 내기 : 신한은행 274-05-009922
국민은행 009-25-0010-227
농협 003-01-196121 (예금주 : (주)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