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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귀검신 31장 : 사천풍운(四川風雲)-5
‘흠, 웬 관이지?’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만독문의 위세에도 아랑곳없이
당당하게 그들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던 소문은 갑자기
등장한 10여개의 관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힘겹
게 관을 운반한 이들은 조심스럽게 관 뚜껑을 열고 재
빨리 뒤로 물러섰다. 잠시 후 관에서 기이한 소리가
흘러나오며 다른 만독문의 문도들과 마찬가지로 새까
만 흑색 무복을 입은 이들이 걸어 나왔다. 이들은
옷뿐만 아니라 얼굴과 옷 사이로 삐져나온 팔의 색 또한
보기 흉할 정도의 묵빛을 띠고 있었다. 독마의 휘
파람 소리와 함께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이들은 약
간은 부자연스런 몸동작을 보이며 소문의 앞으로 걸어왔다.
“흥, 그래 보여 준다는 게 고작 이 따위 썩어 문드러
진 강시(疆屍)란 말이오. 아! 물론 당신들한테는 비장의
무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그저 시체 몇 구로
보일 뿐이구려.”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물들을 보며 단번에 강시라 판단
한 소문은 비릿한 냉소를 머금었다.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지만 강시에 대해선 제법 많이 주워들은
소문이기에 관속에서 나타 난데다가 그들의 피부 또한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빛을 하고 있기에
대번에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듣기로 강시는
온 몸이 쇠와 같아 보통의 힘으로 부술 수 없는 무
시무시한 괴물이라 하였건만 막상 자신의 눈앞에 나
타난 비리비리한 강시들을 보자 그런 말들은 뇌리 깊
숙한 곳에 숨어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저 손 한번
휘두르면 쓰러질 그저 그런 존재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강시라… 그렇군. 너에겐 강시로 보일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강시의 무서움도 익히 알겠군.”
말을 하는 독마의 목소리는 왠지 안타까움이 스며 있
었지만 그런 마음이 소문에게까지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당신들한테나 통하는 말이겠지.”
“건방진 놈! 그 말을 곧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독마는 말을 마치자 입을 모아 기묘한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가 신호인 듯 우두커니 서 있던 강시들이 일
제히 소문을 공격했다. 처음 관에서 움직였을 때의
부자연스러운 몸놀림은 어느새 사라지고 소문도 깜짝
놀란 만큼의 민첩한 움직임이었다.
“흥, 제법이다만 그 정도로 나를 잡기엔 한참 부족하
지….”
소문은 냉소를 지으며 가볍게 공격에서 벗어났다. 강
시들은 그런 소문의 움직임에 아랑곳없이 계속해서
공격을 시도했다.
“쯧쯧, 그리 느려서야….”
자신을 쫓아오는 강시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며 검을 들
은 소문은 가장 앞서 달려오며 공격하는 강시의 손을
슬쩍 비껴 피하며 옆구리를 향해 일검을 날렸다.
“한 놈!”
까깡!
“헐!”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며 소리를 지른 소문의 음성은 날
카롭게 들리는 쇳소리에 쏙 들어가고 말았다.
“그 따위 칼질로 흠짓 하나 낼 수 있을 줄 알았느냐?”
독마의 비웃음을 뒤로하며 소문은 연신 공격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기분 나쁜 소리만 들려올 뿐 그 어떤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흥, 강시의 몸이 제법 단단하다는 것을 내 잠시 간과
했구나. 어디 이것도 막아 보거라!”
여러 번의 공격에도 조금의 상처도 입히지 못해 자존
심이 상한 소문은 공격의 강도를 한층 강화했다. 조금
전 공격에 주입했던 내공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힘
이 검에 실리자 소문의 검 끝에서는 무시무시한 검기
가 솟아올랐다.
“받아랏!”
꽈과광!
검에서 발출된 검기는 벼락같이 쏘아져 나가 미처 대
응하지 못한 강시에게 정면으로 날아가더니 엄청난
충돌을 일으켰다. 얼떨결에 손을 모아 검기를 받은
강시는 거의 십여 장이나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크크크, 이번엔 어느 놈이냐?”
단 한번의 공격으로 강시 하나를 없앴다는 생각에 여
전히 자신을 포위하며 공격하고 있는 강시들을 바라
보며 빈정거렸다. 자신의 공격이 통한다는 자신감이
붙어서 인지 한결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아직 그런 여유를 보일 때가 아닐 텐데….”
독마는 소문을 보며 조용히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말
이 소문에게 전해지기도 전에 이미 소문의 눈은 한쪽
구석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비록 최선을 다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한 힘이 실린 공격이었는데….’
약간은 질렸다는 듯이 바라보는 시선의 끝에서 방금
소문의 공격에 날아간 강시가 서서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소문의 공격을 막은 두 팔은 보기 흉할 정도
로 처참하게 살이 찢기고 뼈가 부서졌지만 그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소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제길, 무슨 놈의 몸뚱이가 저리 강하단 말이냐?’
소문은 다가오는 강시를 보며 그제야 자신에게 처음으
로 강시에 대해 말을 해주던 형조문의 말을 기억 저
편에서 끄집어냈다.
소문이 선발대에 합류하여 남궁세가로 내려갈 때였다.
막 자신과 사귀기 시작한 소문에게 형조문은 지나간
자신의 무용담(武勇談)을 떠벌였는데…
“휴, 말도 말게. 그때 그 마을에서 일어날 참사를 막고
자 그 고생을 한 것을 생각하면….”
“아니 그 정도로 엄청나단 말이오? 겨우 시체일 뿐인
데….”
“어허, 시체라니? 말이 시체지 그 멍청한 영환술사(靈
還術士) 놈이 제대로 부적을 붙이지 않는 바람에 난
동을 부리는 강시를 잡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는가? 주먹으로 치면 내손만 아프고 검이나 도로 베
고 찔러도 상처하나 나지 않으니 환장할 일이었지.
그나마 있는 내공 없는 내공 쥐어짜서 발출한 검기에
박살이 났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자네도 못 보고
그대로 저세상으로 직행할 뻔 했다네.”
“강시가 그렇게 강한가요?”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기담(奇談)에 소문은 눈을 동그랗
게 뜬 소문이 반문을 했다.
“말도 말게 그땐 평범한 백성의 시체였기에 망정이지
무공이라도 익힌 강시였다면… 으휴, 생각하기도 싫
다네.”
“흠….”
“자네는 나중에 강시라는 것을 만나면 가능한 피하고
보게. 무림에서 강시를 만난다면 그건 틀림없이 생전에
무공을 익힌 무인들을 강시로 만들 것이 자명하고
그것을 상대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지. 일단
자리를 피하고 보게나. 혹시 그것이 여의치 않아 싸
우게 된다면 강시를 쓰러뜨릴 수 있는 무공은 오직
검기나 검강 따위가 있을 뿐이니 주의를 하게. 사지를
잘라도 살아나는 것이 강시라네. 강시를 쓰러뜨리는
것은 오로지 몸과 머리를 분리하는 것과 몸뚱아리를
아예 산산조각 내는 방법뿐이라는 것을…. 물론 그것
도 절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형조문은 거듭 강조를 하며 강시에 대한 장황한 설명
을 마쳤다.
‘그때는 그냥 건성으로 들었건만 정말로 장난이 아니
군.’
자신의 검기에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죽어도 수십 번을
더 죽었을 상처를 입고도 멀쩡하게 자신에게 덤비는
강시들을 보며 왜 형조문이 강시를 만나면 피하고 보라
는 말을 했는지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거의 한시진
이나 싸웠지만 자신이 쓰러뜨린 강시는 겨우 두구에
불과 했다. 독마의 조종을 받는 열구의 강시들은 무슨
수를 쓰던지 소문이 하나의 강시에 힘을 집중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방해를 하였다. 그런 방해와 거듭
되는 공격 속에서도 절대삼검의 무심지검으로 간신히
두구의 강시를 잠재울 수 있었다. 지금 소문은 실로
엄청난 내공을 사용하고 있었다. 중원 무림에 과연 몇
명이나 한시진이 넘도록 저토록 무시무시한 검기를
뿌리며 지친기색 하나 없이 버틸 수 있단 말인가?
꽈과광!
엄청난 파공음이 울리고 미처 검기를 막지 못한 강시
하나의 목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몸을 땅에 뉘고 있
었다. 세 번째의 강시가 쓰러지자 싸움은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보는 소문의 얼굴
은 밝지 못했다.
‘이런, 위험한데….’
막 한 구의 강시를 더 박살낸 소문은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이러날 조짐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강시의 몸뚱이가 강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많
은 내공이 소모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까짓
단단한 몸뚱이는 자신의 무공과 내공이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지니고 있었는데 언제부터
인가 힘의 원천이 되는 내공이 잘 연결되지 않고 있
다는데 큰 문제가 있었다. 몸에 특별한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니고 많은 내공을 소모해서 진기가 끊기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처음엔 느끼지 못했지만 차
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몸에 묘한 기운이 감지되고 있
었다. 그 기운이 종래에는 내공을 운기 할 때마다
가슴에 심한 압박을 주고 있었다.
‘독인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독뿐이었다.
‘저 묵빛 기운! 하지만 아까는 별 이상이 없었는데….’
소문은 강시의 움직임 속에서 함께 피어오르는 묵빛
기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시와 싸우기 전에도 이미
그런 기운은 만독문의 문도들과 우두머리와 싸우며
느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 아무런 이상이 없기
에 그다지 주의를 하지 않았는데 이번만은 다른 모양이었다.
‘틀림없이 독인데… 이를 어쩐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독과 약에는
약간의 조예(造詣)가 있었다. 그랬기에 자신의 몸속에
스며든 것이 비록 그 종류는 모르지만 독이라는 것
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독을 내공으로
억제시킨다는 말도 들었고, 그 기운을 한곳으로 모
아 분출시킨다는 말도 듣기는 했지만 눈앞에 시퍼런
독기를 쏟아내며 자신을 공격하는 강시들 앞에서 그런
여유란 있을 수가 없었다.
소문이 중독(中毒)된 몸의 변화에 걱정하고 있을 때
잠시 공격을 멈추게한 독마와 만독문에선 놀람을 넘어
경악에 휩싸이고 있었다.
지금 소문과 싸우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만독문에 비전(秘傳) 중의 비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수
법 중에 독혈인(毒血人)이라는 것이 있었다. 천여 종의
독초(毒草)로 만들어진 독즙(毒汁)에 만독문의 문도
중에서 그중 뛰어난 독공을 지닌 문도를 골라 독즙안
에서 연공을 시키는 것이었는데 이 과정을 무사히 통
과하고 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신체와
독공을 지닌 절대 고수가 탄생하는 것이었다. 지금
소문이 상대하고 있는 강시가 그 독혈인이었다.
헌데 전해 내려오는 독혈인은 지금과 같이 아무런 의
식도 생각도 없는 강시가 아니었다. 만독문이 가장
번성했을 때 딱 한번 나타났다는 독혈인의 모습은 오히
려 단아한 풍모에 유약한 모습이었다고 전해진다. 그
런데 어째서 당금에 나타난 독혈인은 이런 강시의 모
습으로 나타난 것인가?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 동안 당가에 밀리며 쇠퇴의 기운을 보이던 만독문
이 단번에 그 명성을 재건(再建) 하고자 선택한 방법이
비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독혈인이었다. 무려 이십여
년에 걸쳐 만독문이 지닌 자금과 인원이 총 동원되
고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끝에 독혈인을 만들기 위한
방법이 준비되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가 있었으니
다름 아님 독즙 속에서 연공해야할 독로연(毒路練)
이라는 내공법이 유실(遺失) 되어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까딱 잘못하다간 그 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을 염려한 독왕과 장로들은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혼신을 다해 찾아도 나
타나지 않는 내공법을 기다리다 지친 그들은 결국 독
로연을 대신하여 만독문 무공의 근간(根幹)이 되는
혼염묵공을 이용한 수련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 결과
로 열명의 독혈인이 탄생하는 쾌거를 맛보았는데, 그
기쁨도 잠시 그들은 곧 의식을 잃고 모두 주화입마에
빠지더니 다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죽지도
살지도 않은 이들을 바라보는 수뇌들과 만독문도들의
심정은 이루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착잡한 것이었다.
한달의 기다림에도 끝내 이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독왕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비록 제 정신을 지니고
있는 독혈인이 아닌지라 그 위력은 본래의 독혈인과
비교해 다소 손색이 있었지만 그 자체로도 막강 그
자체였다. 쇠락해 가는 만독문에게 천군만마(千軍萬馬)와
같은 이들을 그대로 포기한다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독왕의 그 힘든 결정의 결
과가 지금 소문과 대적하고 있는 강시로 나타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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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귀검신 31장 : 사천풍운(四川風雲)-6
“보고서도 믿을 수가 없소. 어찌 이런 일이….”
독왕은 멍한 눈을 하고 독마를 쳐다보았다. 독마 역시 지금의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실로 엄청난 무공입니다. 역시 둘째의 말이 옳았습니다. 한두
구도 아닌 열구의 독혈인과 싸우며 저리 오래 버틸 수 있는
인간이 있다니….”
“역시 어떤 수를 쓰더라도 완벽한 독혈인을 만들었어야 했나
봅니다. 의식이 없는 강시 같은 독혈인으론 그 한계가 있는 듯
싶습니다.”
갈태악이 안타까운 낯빛으로 말을 하자 고개를 가로 저은 독마
는 소문을 노려보며 말을 했다.
“아니네. 비록 완벽 하지는 않지만 누가 뭐라 해도 독혈인 일
세. 도검불침(刀劍不侵)에 늘 뿜어내는 절대의 독! 누가 있어
이들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자네라면 막을 수 있다 보는가?
독혈인이 약한 것이 아니라 저놈이 터무니없이 강한 것이네.
평범한 방법으론 흠짓 하나 내지 못하자 벌써 한시진이 넘도
록 강맹한 검기만 뿌리고 있는 인간일세. 독과 생사(生死)를
같이 한다는 우리 만독문의 문도들도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는
독연(毒煙)에 저리 노출되고도 멀쩡한 인간이 자네의 눈엔 어찌
보이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만독불침에 막강한 내공을 지닌
저놈이 괴물같이 강한 것이지 우리의 독혈인이 약한 것은 아니네.”
“끄응!”
독마의 말을 하나도 틀림이 없었다. 무공이라면 몰라도 저 독연
은 자신조차 감당할 수 없는 지독한 것이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갈태악은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소문이 만독불침의 경지에 이른 것은 아니었
다. 다만 온몸의 세맥과 혈도에 퍼져 있는 반야심경도해의 내
공력이 피부로 스며드는 독기를 철저하게 막아내었고, 호흡으
로 침투하는 독기는 거의 무한대의 내공력에 의해 소문이 의
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흔적도 없이 소멸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두 종류의 내공력은 최초 만독문의 문도들과 독마수 봉천과
의 싸움에 일어났던 독기까지는 막을 수 있었지만 천여 종의
독초를 배합해 만든 독즙에서 수련한 독혈인의 절대 독기까지
는 완벽하게 막아내지 못했다. 다만 그 위력을 다소 감소시키는
데 그칠 뿐이었다. 그 증거로 지금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소문은 자신의 몸에 침투한 독기에 대한 불안감에 몹시 당황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 사실을 알리 없는 이들은 소문
이 그저 만독이 불침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여기고 있을뿐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는 것인가? 이렇게 시간을 주는 것은 저
놈에게는 한 숨 돌릴 여유를 주는 것이 아닌가?”
독왕의 말에 독마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독혈인을 희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어쩌자는 말인가?”
“합공을 해야지요.”
“합공을요?”
옆에 있던 갈태악이 무슨 말이냐는 듯이 언성을 높였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는 하나 어쩔 수 없네. 독혈인은 우리
만독문의 마지막 보루인데 여기서 다 잃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독마는 더 이상 갈태악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고 독왕을 바라
보았다.
“자존심을 내세우실 때가 아닙니다. 저와 막내가 함께 공격에
나서겠습니다. 둘째가 나서기엔 부상을 당한 몸이라 다소 무리가
따르니 독혈인의 조종을 둘째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리하도록 하세….”
어차피 구겨진 자존심이었다. 독왕은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을
하며 성큼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문주님께선 나서시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아무리 사정
이 이리 되었다지만 문주님마저 나서신다면 제자들을 볼 낯이
없습니다. 저희 둘이면 충분할 것이니 맡겨 주십시오.”
“…….”
독왕은 쉽사리 결정을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했다. 나서자니 제
자들의 눈이 있었고, 지켜만 보자니 분통이 터졌다. 그렇지만
결국 한발 물러나 독마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하였다.
“아직도 모의(謀議) 할 것이 남은 것이오? 기다리다 지치겠소.”
내공으로 독기를 몰아내는 것을 포기한 소문은 마음이 급했다.
틈을 내어 준동하는 독을 간신히 억제하고 있었지만 언제 다시
꿈틀댈지 모르는 일이었다. 잠시의 시간도 허비할 수 없었다.
소문의 말에 들려온 대꾸는 없었지만 멈추었던 독혈인의 공
세가 다시 시작된 것으로 보아 그 대답을 대신했다.
[조심하게. 독혈인의 독은 피아(彼我)를 구분하지 않네.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어느 정도 버틸 수는 있겠지만 자네라도 저 독
기를 들여 마시면 그 즉시 중독 될 것인즉, 공격을 할 때는 반드
시 호흡을 멈추고 조심에 조심을 하게.]
[염려하지 마십시오. 독혈인의 독기가 무섭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자신을 염려하는 독마의 전음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갈태악
은 천천히 소문에게 다가갔다.
‘흥, 난 또 뭐라고? 시체덩어리로 안되니까 지원을 하시겠다?
맘대로 해보라지.’
거친 강시들의 공세를 막으며 자신의 사각(四角)을 파고드는 독
마와 갈태악의 기척을 느끼며 냉소를 지은 소문은 그러나 절
대로 그들을 경시(輕視)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지금
의 상황에서는 단순히 조종을 받고 본능적(本能的)으로 자신을
공격하는 강시 따위보다는 자신의 빈틈을 파고드는 이들이
더 위협적이 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다가오는 자들이 만독문
에서 내노라하는 지위에 있는 자들인 것을 감안하면 두 번 주
의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역시!’
막 검기를 날리던 소문은 자신의 몸 뒤에서 다가오는 싸늘한
기운에 흠칫 놀라 재빨리 몸을 틀어야 했다. 그리고 몸 앞에서
간신히 막아낸 것은 오장 밖에서 독마가 던진 암기였다. 막긴
막았으되 그 위력이 상당함에 등 뒤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주
체할 수 없었다. 보이는 손보다 보이지 않는 손이 무섭다고 언
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독마의 암기는 소문에겐 큰 위협이
되었다. 게다가 아직 손을 쓰지 않고 기회만 엿보고 있는 갈
태악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큭!”
결국 이런 저런 생각에 정신이 분산된 소문은 이번 싸움에서
처음으로 상처를 입게 되었다. 어깨 쪽에 약간의 긁힘이 있었
는데 온몸이 독으로 똘똘 뭉친 독혈인의 손톱에 상처를 입게 되
자 긁힌 상처사이로 순식간에 독기가 침투하여 주변의 피부가
빠르게 변색(變色)되었다. 소문은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상처
주변의 살을 도려냈다. 한 움큼이나 되는 살을 도려낸 소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이틈을 타 독혈인의 공격은 더욱
거세게 소문을 압박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정신을… 아까와 같은 혼란이 계속된다면
여기서 목숨을 잃을 수 밖에 없는 일!’
소문은 잠시 흐트러진 정신을 수습하기 위해 애를 썼다. 독마와
갈태악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기
운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막아내고 공격을 하였다. 싸움은 더욱
더 치열하게 불붙고 있었다.
소문은 거의 무아(無我)의 상태에서 싸움에 임하고 있었다. 얼
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얼마의 공격을 막아내고 했는지도 느끼지
못한 채 검 한 자루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있었다. 일련
의 동작들이 너무나 깨끗하고 절제되어 있기에 소문과 대적하
는 이들의 살기만 없다면 소문이 홀로 검무(劍舞)를 춘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름답고 자연스런 몸놀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검법이라곤 절대삼검과 구양풍이 가르쳐준 단순한 초
식 밖에 모르던 소문으로선 실로 경악할 정도로 뛰어난 경지였
다. 어쩌면 이번 싸움으로 소문의 무공이 한 단계 더 위로
상승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허! 대단하다. 천하를 오시(傲視)하며 거칠 것 없던 나이건만
저와 같은 무위를 지닌 자가 있다는 것은 보도 듣도 못했다.”
독왕은 만독문의 두 장로가 나서서 합공을 함에도 조금도 밀리
지 않는 소문을 보며 감탄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런 감탄 속에서 오늘 이 자리에서 반드시 소문을 죽여야만
작게는 만독문의 자존심을 지키고 크게는 자신들이 속한 흑
도의 커다란 우환(憂患)을 제거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제는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도 나서야 했다. 만약 소
문이 도주를 한다면 지금 보여준 신위(神威)를 감안한다면 붙
잡기에도 곤란했다. 결심을 한 독왕은 그 또한 싸움판에 끼어들
기 위해 공터로 걸어 나왔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곧 멈추고
말았다.
꽝!
“크윽!”
살가죽이 터지는 묘한 격타음(擊打音)이 들리며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소문이 마치 끊어진 실처럼 뒤로 날아갔다.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소문의 발목을 붙잡은 것은 예의 그
독기였다. 막강한 내공에 눌려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던 독기가
소문이 오랜 사투(死鬪)속에 약간의 무리를 하자 그 틈을 놓
치지 않고 준동을 하고 말았다. 결국 좌측에서 쏜살같이 파고
드는 갈태악을 바라보고도 이어지지 않는 진기를 원망하며 멍하
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소문은 무려 칠장이나 날아가 땅에
구르고 말았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의아해 하는 갈태악과 그런 그를 보며 환호성을 지르는 만독
문의 문도들의 고함을 들으며 땅에 처박혔던 소문은 들고 있는
검을 의지하여 힘겹게 일어섰다.
“후우! 후우!”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가슴에 적중한 갈태악의 손자국을
바라보는 소문의 눈동자는 이전의 그와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자신감에 반짝이던 눈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절체절명(絶體絶
命)의 위기에 빠진 사람의 눈동자도 아니었다. 그의 두 눈은
마치 먹이감을 눈앞에 둔 야수처럼 살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 살기가 어찌나 강렬했는지 주변에 위치하고 있던 만독문
의 문도들이 함성을 지르다 흠칫 놀라 한발씩 뒤로 물러설 정도였다.
“크크, 좋아 좋아! 멋진 공격이었어. 이 빌어먹을 연기 때문에
몸이 영 이상하다 했더니만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군….”
‘역시, 그런 이유로….’
이 한마디로 갈태악은 자신의 손이 자신의 가슴을 후려치는데
도 그저 멍하니 자신의 눈만 바라보고 있던 소문의 흔들린 눈
동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되었건 이제는
손쉽게 적을 제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뇌리에 떠오르자 적이
안심이 되었다. 지금까지 수 없이 많은 싸움을 한 그였지만
이토록 불안한 적이 없었다. 아까의 한수로 이제 모든 것이 끝
이 난 것이다.
“크크큭! 그 표정은 뭐지? 그까짓 가슴한번 맞은 공격에 내가
이대로 물러날 것으로 여기는가? 흐흐흐! 어림없는 소리!”
소문은 괴소를 터뜨리며 다시 검을 곧추세우고 천천히 움직였
다.
“네가 실로 뛰어난 고수라는 것은 이미 입증이 되었다. 하지만
중과부적(衆寡不敵)이라는 말이 있듯 수치스럽지만 다수의 힘
으로써 너를 제압할 수 있었다. 너에게 죽은 제자들을 생각하면
너를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만들어 그 몸뚱이를 매일 같이
오만가지 독물들에게 던져주고 싶지만 아무리 적이었지만 네 너
의 그 무공에 경의(敬意)를 표하는 바이다. 그러니 더 이상
저항하여 고통스럽게 죽지 말고 편안히 죽음을 맞으라. 그게 너에
게 해 줄 수 있는 나의 유일한 배려다.”
독왕은 다시 공격을 하려는 갈태악을 손짓으로 막고는 힘겹게
움직이고 있는 소문에게 담담하게 말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소문의 말을 차디찬 냉소일 뿐이었다.
“크크, 고양이 쥐 생각해 주시는군. 그게 승자의 아량이란 것인
가? 하지만 그 따위 말은 저기 있는 시체덩어리에게나 해주시는
게 나을 것이다.”
“…….”
독왕은 굳은 얼굴로 소문을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거두고 뒤로
물러섰다. 그걸로 소문의 생사는 결정되었다. 조금 전의 싸움
으로 한 구가 더 줄어 모두 여섯 구인 독혈인과 독마 그리고
갈태악이 우두커니 서 있는 소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명령을
받은 독혈인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가갔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독마와 갈태악은 약간은 뒤로 처져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다시 하늘을 보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네놈들을 박살내지 않
는다면 울화통이 터져 먼저 죽을 것 같으니 나를 원망하지 말
거라!!”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운명이었다. 그러나 혼자 죽기엔 지니
고 있는 무공이 너무 강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내 오늘 너희들에게 시공(時空)과 천하(天下)의 모든 조화(造
化)를 관장하는 대자연(大自然)의 도도함을 보여주리라!
천천히 말을 하는 소문은 검을 하늘위로 치켜 올렸다.
“천하만물(天下萬物)은 유에서 나오고, 유는 무에서 시작된다.
무의 끝을 무극(無極)이라 칭할지니 진정한 대자연의 힘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무극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네놈들에게 그 힘을 선물하지!”
검을 들고 서 있는 소문을 중심으로 하여 엄청난 강기의 소용
돌이가 주변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절대삼검(絶對三劍) 제3초 무극지검(無極之劍)!!
마침내 을지가문 최고의 무재(武才)였던 을지혁이 남긴 최강의
검법이 무려 400여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소문의 손에서 펼쳐
지고 있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겁게 보고갑니다!
즐감
감사해요~~~^~
ㅎㅎㅎ
즐감하고갑니다.
드디어 무극지검이~~
잼납니다
ㅈㄷㄱ~~~~~~~~~``````````````````
즐감 ~!
삼검
ㅈㄷㄳ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아좋아
즐독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감,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