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사람없소?
지록위마(指鹿爲馬)!
하도 많이 인용되는 고사 성어라 다 알고계시는 내용이지만 그 뜻을 확실케 하기 위해 백과사전 풀이를 옮깁니다.
<백과사전의 지록위마 해설>
(뜻)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다. 윗사람을 농락하고 함부로 권세를 부리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자신을 진(秦)나라의 처음 황제라는 뜻의 시황제(始皇帝)라 칭하고 후계자들을 이세 황제, 삼세 황제라는 식으로 호칭하도록 만들어 진나라가 영원히 번영하기를 기원했지만, 제5차 순행 도중에 중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천수가 다했음을 직감했던지 환관(宦官) 조고(趙高)에게 명하여 큰아들 부소(扶蘇)에게 주는 편지를 만들게 하였다. 편지에는 ‘군사를 몽념(蒙恬)에게 맡기고 함양(咸陽)에서 나의 관을 맞아 장사를 지내도록 하라.’고 쓰도록 했다. 큰아들 부소에게 자신의 장례를 주관케 하라는 유서였던 것이다. 편지가 봉함되어 사자의 손에 전해지기도 전에 시황이 승하하였다. 편지와 옥새는 모두 환관 조고가 지니고 있었다. 시황의 죽음을 아는 사람은 다만 호해(胡亥)와 승상 이사(李斯)와 조고, 그리고 심복 환관 오륙 명뿐이었다.
조고는 먼저 호해를 설득한 다음, 회유와 협박을 다 동원하여 승상 이사까지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세 사람은 비밀리에 담합하여 호해를 황위 계승자로 세우고, 부소와 몽념 장군에게 자결하라는 내용의 유서를 조작했다. 부소는 자살했고, 몽념은 자결을 거부하다가 반역죄로 잡혀 사형을 당했다. 이세 황제(二世皇帝)가 된 호해의 무능을 이용하여 조고는 모든 권력을 쥐었으며, 급기야는 모반죄를 뒤집어씌워 승상 이사까지 제거해 버리고 자신이 승상이 되었다.
「조고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황제의 자리를 노리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러 신하들이 따라 주지 않을 것이 두려웠다. 하여 조고는 신하들을 시험하기 위해 사슴을 이세 황제에게 바치면서 말했다. “이것은 말입니다.” 이세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승상이 잘못 본 것이오. 사슴을 일러 말이라 하는구려.” 조고가 대신들을 둘러보며 묻자 어떤 사람은 말이라고 하며 조고의 뜻에 영합했다. 어떤 사람은 사슴이라고 대답했는데,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자들을 암암리에 모두 처형했다. 모든 신하들은 조고를 두려워했다.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진이세본기(秦二世本紀)〉》에 나오는데, 조고가 신하들을 시험해 보기 위해 사슴을 말이라고 했다는 말에서 ‘지록위마’가 유래했다.(이상 백과사전의 지록위마 해설 전문)
사악하고 포악한 권력 앞에 인간이 얼마나 비굴하고 무기력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고사다.
하지만 더러운 권력 앞에 목숨을 걸고 저항한 사람다운 사람이 왜 없었으랴!
당장 목에 칼이 들어와도 사슴은 사슴이지 절대로 사슴이 말이 될 수는 없다.
O 이성계가 군사반란(요새 용어로는 쿠데타)을 일으켜 고려 500년(918~1392)사직의 막을 내리게 하고 조선을 세웠을 때, 이성계에게 충성을 하면 탄탄대로가 보장되었건만 포은 정몽주는 만수산드렁칙이 되기를 거부하고 선죽교 다리 밑의 돌을 검붉게 물들이며 이 세상을 떠나 충성이 어떤 것인지 사표를 남겼고 야은과 목은은 유리걸식으로 한 세상을 보냈으며, 고려충신 무려 72인은 광덕산 두문동 골짜기로 들어가 조선조정에 출사를 거부하다 끝내는 숯덩이가 되어 고려신하로 이승을 떠났다.
O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의 왕위를 강탈할 때 못 이기는 척 하고 세조에게 칭신(稱臣)을 했으면 부귀영화는 받아 놓은 밥상이건만, 자신은 물론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고 수양대군을 ‘전하’라 부르지 않고 온 몸을 시뻘겋게 달군 부젓가락으로 담금질을 당하면서도 끝내 수양대군을 ‘나리’로 부르면서 단종의 신하로 죽어간 사육신이 있고, 더러운 수양대군 밑에서 신하노릇을 하느니 삼천리방방곡곡을 유리걸식하며 여생을 보낸 생육신도 있다.
O. 왜놈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 박정희 같이 왜왕에게 혈서를 써 바치면서까지 충성맹세를 하지 않더라도, 속이야 어떻건 겉으로 왜놈행세만 했어도 일가의 안녕은 물론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았으련만 처자식도 버리고 압록강을 건너가 목숨을 버려 독립운동을 한 독립영웅들이 그 얼마이던가?
O 전두환이 피의 광란을 부릴 때 선배의 도피처만 불었어도 아무 탈이 없었으련만 박종철 열사는 선배의 안위를 지켜주느라 끝내 입을 다물어 자신의 목숨을 버렸으니!
지록위마에서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한 놈들이 있듯이, 후배의 죽음을 무릅쓴 함구로 자신의 목숨을 건진 그 선배가 뒤에 공화당-민정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정당에 입당을 하여 국회의원이 되려했으니 사슴보고 말이라고 한 놈보다 더 더러운 인간이다.
그리고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에 의하여 질식사 했다는 것을 세상에 밝힌 의사가 있어 박종철 열사의 사인이 들어나서 끝내는 6.10항쟁으로 이어지고 체육관에서 거수기들 모아놓고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국민직선에 의한 5년 단임인 현행헌법으로 바뀌었다.
그 용기 있는 의사가 아니었다면 박종철 열사는 끝내 수사관이 <책상을 ‘!’탁 하고 치니 ‘억’>하고 죽은 그렇고 그런 죽음이 되었을 것이다.
O 어찌 윗분들뿐이겠나!
1만년 역사 이어오자면 민족사의 굽이굽이 마다 자신을 초개같이 버려 나라와 민족을 구하고자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산화한 선열들이 그 얼마인가?
O 그런데, 그런데 이런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은 우리겨레가 지난 8년간 어찌했나?
천안함이 침몰하여 해군장병 46명이 수중고혼이 되었으련만 이명박이 용산전쟁기념관을 찾아 찌부러 붙은 눈에 억지로 눈물을 짜내며 “1번 어뢰”가 주범이라고 하자 수많은 의혹과 허점이 노출되었음에도 1번 어뢰가 빼도 박도 못하는 범인이 되었고, 세월호에서 어린학생을 비롯하여 무려 304명의 국민이 시시각각 죽어가고 있는 시간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기로 선서하고 청와대로 들어간 박근혜는 그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7시간 동안 달나라를 다녀왔는지 꿈속을 헤매었는지 용궁을 다녀왔는지 행적이 묘연했고 야당과 국민이 7시간 동안의 행적을 밝히라고 해도 입술 앙 다물고 흡사 레이저광선을 방불케 하는 살기서린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이 유가족과 국민과 야당과 언론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래 대한민국에 이렇게 사람이 없단 말인가?
천안함 사건도 그렇고, 세월호 사건도 그렇고, 사고현장에 수많은 목격자가 있었고 생존한 사람도 많고 해경이나 해군에서도 사고수습을 하느라 그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수도 없건만 양신선언은 고사하고 단 한 사람도 자신이 보고 들은 의문점을 세상에 밝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단 말인가?
어버이 연합이 일당 받고 관제대모를 하는 것이야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고, 이게 이제서 터져 나왔는데 권력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압력에 어버이 연합에 뒷돈을 댄 내막을 알고 있을 전경련 실무자나 어버이연합의 핵심에 있었던 사람들 중 단 한사람도 양심선언이나 자기고백을 하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을 수가 있나?
사람다운 사람의 씨가 마르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다.
기상천외하고 해괴망측한 독재 8년에 강산도 죽고, 민주주의도 죽고, 민생도 죽었지만 어떻게 단 한 사람, 사람다운 사람이 없단 말인가?
이명박이 <쥐새끼>를 가리키며 <담비>라고 하니 쥐새끼가 영락없는 담비가 되고, 박근혜가 <늙은 암탉>을 가리키며 <봉황>이라고 하니 가마솥에 넣어 삶아 먹기도 께름칙한 암탉이 <봉황>이 되고 거기다가 아첨하기 좋아하는 놈은 닭을 오동나무 가지에 붙들어 매 놓고 “오동나무에 봉황이 깃들었으니 나라의 길조이옵니다.” 하고 얼굴도 붉히지 않고 암탉 입 속의 혓바닥 같이 노는 놈이 수두룩하다.
이 나라, 이거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누구 사람 없소?
첫댓글 그 심정, 심히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