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관리비 비리와 남양유업 사태에서 보는 경제민주화의 참 의미
미래경영연구소
연구원 함용식
1. 경제민주화라 하면 대부분 재벌 개혁이라 생각한다. 물론이 말의 절반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사회 현상을 하나의 관점으로 표현할 수 없듯, 경제민주화란 말 역시 온갖 형태의 사회체제와 철학이 뒤범벅된 복합적이고 함축적인 개념으로, 그 진의에 다가가기 위해선 이 사회의 모든 방면에 대한 현실적이고 개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따라서 『경제민주화 = 좌파적 주장』이라는 말로 그 뜻을 왜곡하는 것은 하등의 의미없는 소모적 논쟁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경제민주화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고 급진부터 온건까지의 다양한 경제적 개혁 방안에 대한 추상적 스펙트럼을 담고있다.
그래서 우리 연구소도 그 동안 재벌과 지도층 부정부패 문제를 수 없이 지적해왔지만, 이에 못지 않게 일반 국민 저변의 민주의식과 도덕성 함양이 중요함을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를 느꼈다. 왜냐하면 최근 뉴스들을 보면 지도층 뿐 아니라 대중들의 정의감도 심각하게 훼손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2. 이와 관련 어제 신문에 나온 서울시의 아파트 관리비 감사 발표 기사를 우선 살펴보자.
서울시는 사상 처음으로 아파트 관리비 비리를 포함한 아파트관리 실태에 대해 전면적 감사를 벌이기로 했다. 서울시가 이런 조치를 취하려는 이유는 아파트 이권을 둘러싼 각종 비리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판단에서다.
아파트 관리비에 문제가 많다는 것에 대해선 아마 한국의 대다수 아파트 입주민들이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아파트 관리비는 월 수 만원에서 수 십만원에 이르므로, 아파트 단지에 따라 연 총 관리비 재정 규모는 많게는 수백억원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만약 여기에 2~3만원 정도만 각 세대별로 추가 부담 시킨다면, 각 가정은 관리비 상승을 크게 못 느끼고 그냥 넘어간다 하더라도, 아파트 전체 입주자대표회의 측에선 월 수천만원 정도의 공돈은 쉽게 만들 수도 있다. 좀 더 언급하자면, 『입주자대표, 동대표, 관리사무소, 아파트 관리용역 대행사』들 사이에 결탁구조가 형성되어 갖은 비리의 온상이 되는 것이다. 예전엔 기득권층 부패 커넥션에서나 볼 수 있었던 비리가 행태가 일반인들에게까지 전염된 듯 하다.
참고로 최근 아파트들이 경비, 보일러관리, 시설보수 등에 대한 일체의 아파트관리 업무를 외부 업체에 맡기면서 『아파트 관리용역대행사』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들 중 어떤 업체는 200개가 넘는 아파트 단지를 관리하며 점점 대기업화 되고 있는데, 이런 영리 구조 하에서 대행사들은 최대한 비용을 줄이려 하게 되고, 대행사에 고용된 경비원들은 낮은 급여 때문에 아파트 경비 업무에 소홀해 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 아파트 치안 수준이 매우 악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들리고 있다.
3.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폭언 사건도 이런 유형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소위 물량 밀어내기를 하는 과정에서 젊은 영업사원이 나이 많은 대리점주를 마치 부하 다루듯 폭언을 퍼붓는 녹취 파일이 인터넷에 뜨며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물론 오늘 기사를 보면 대리점주가 해당 녹취 파일을 수 년간 보관하고 있다 검찰 수사에 맞춰 의도적으로 터트린 의혹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영업사원도 억울한 측면이 없잖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갑의 위치에 있는 대기업과 을의 위치에 있는 대리점들 사이의 불공정 거래 행태가 만연해왔던 건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의 본질 역시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성과주의와 부패구조에 기인한 부패의 저변화이다. 맨 위에서부터 뇌물과 접대가 만연하여 공정 거래가 사라진 세계에선 말단 직원들도 『신뢰와 서비스』같은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게 된다. 이런 세계는 대게 내부 조직에서부터 불합리한 권위주의와 언어적 폭력이 난무한다. 그런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무형의 오염물은 반드시 넘쳐서 외부로까지 흘러가게 된다. 그리고 그런 오염물이란 과거엔 주로 건달들 세계에서 나타났던 행태라면, 이제는 일반 비즈니스 행태 전반에서도 금권을 이용한 『합법적 유사 폭력』으로 자주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남양유업 회장이 최근 녹취록 사태가 터지기 바로 직전에 6,500여 주를 주당1백만원~1백1십만원 사이에 처분하여 70억원 정도를 현금화 한 일로 증권가가 시끄러워지고 있다. 이 사건이 공개될 것을 미리 알고 주식을 처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우리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작년 5월 6십만원대로 하한가를 친 후 최근 1백만원대까지 주가가 오르게 하기 위하여 매출과 순익 같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물량 밀어내기로 영업사원들과 대리점들을 쥐어짰을까 하는 점이다. 아마 이런 위에서부터의 압력이 어떤 선을 넘어서자 결국 남양유업 대리점연합회가 폭발한 것이 아닐까?
4. 그러므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려면 첫째 사회 지도층과 기득권에서부터 부패 청산과 개혁이 시작돼야하고, 둘째, 이와 함께 일반 국민 역시 우리의 정의의 개념과 도덕성의 수준을 깊이 자각해야 한다.
최근 갑에 대한 을의 광범위한 저항이 사회적으로 노출되고문제가 되는 것은 인내의 한계에 왔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건 지도층이 부패하면 백성들도 부패하기 마련이고, 지도층 안에 몇몇 정의로운 자들이 생겨나면 온 나라의 도덕적, 경제적 큰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다. 만약 이게 불가능해지고 임계점을 넘어가면 그 사회는 곧 아노미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한 사회의 개혁은 지도층에서 시작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지도층 개혁은 다른 특별한 것이 아니라 빈부에 상관없는 공정한 법 집행을 의미한다. 지도층에 대한 법치가 확립되면 국민들 하부 구조는 자연히 바로 잡히게 된다.
이와 함께 대중의 올바른 민주의식과 정의감 함양이 수반되어야 한다. 저열한민주주의 사회를 비꼬는 말로, 『모두의책임은 아무의 책임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위의 아파트 관리비 비리 문제의 경우에, 이런 문제를 걸고 넘어지면 그 아파트 단지에서 이웃의 눈총을 받고 왕따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왠만해서 안 나서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부패 개선을 위해 앞장서는 사람들이나 양심선언, 공익적 제보를 한 사람들을 왕따로 모는 분위기가 만연해있다.
이런 유형은 입학사정관제도에 대한 국민적 불만 현상에서도 나타난다. 수험생부모들 십중팔구는 입학사정관제도가 잘못됐다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자기들도 그런 편법 가능 제도에 편승하여 자식들을 좋은 대학 보내려고 하지, 그 문제에 대항하여 일어나는 부모를 아직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또한 우리 연구소의 경우 특히 안랩 주식 문제에 대해서 이런 현상을 본다. 십여년간 2만원대였던 주가가 안철수의 정치 행위로 10만원이 넘게 뛰고, 그의 대선 사퇴로 3만원대로 떨어지다 노원병 출마로 다시 9만원대까지 오르는 비정상적 주가 등락이 벌어졌다. 이런 현상에 대해 대부분의 정치인들과 언론들이 아무 문제 제기도 하지 않는 기현상을 우리는 보고 있다.
5. 대중들은 어떤 사안이 아무리 잘못되었다 한들 자기에게 당장 이익이되지 않으면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아파트 관리비 비리, 입학사정관 편법 등의 문제는 최소한 국민 절반이 영향을 받고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여기에 대한 국민적 반대 목소리가 거의 없는 것은, 이런 일에 직접 팔을 걷고 나서는 자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거의 불투명하거나 대개 그런 사람들은 눈에 띄는 불이익을당하기 쉽고, 그로 인한 변화의 결과는 제 3자들이 취하게되기 때문이다. 즉 내가 나서기 싫지만 남이 총대를 메고 나서주면 좋겠다라는 free ride의식이 만연해 있고, 이러다 보니 이런 유형의 사회부조리에 있어 대부분이 기회주의적 속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경제민주화라는 것은, 우선 기득권의 부정부패로 국민들 사이에 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사회 지도층에서부터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당위성이 분명하지만, 이 경제민주화가 진정으로 균형을 이루고 성공하려면 일반 국민의 민주의식, 양심, 도덕성등 사회 전방위적인 의식 개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