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로(李仁老)-서새풍우(西塞風雨)(서새의 비바람)(창포로 돛을 매어)
秋深笠澤紫鱗肥(추심입택자린비) 가을 깊으니 못에는 살찐 물고기
雲盡西山片月輝(운진서산편월휘) 구름 걷힌 서산엔 빛나는 조각달
十幅蒲帆千頃玉(십폭포범천경옥) 창포로 돛을 매어 옥 물결에 배 띄우니
紅塵應不到蓑衣(홍진응불도사의) 세상의 번잡함 다 잊겠네
*위 시는 “생각이 맑아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한시 김용택의 한시산책1(김용택 엮음)(화니북스)”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김용택님은 “이 분이 요즘 세상에 사신다면 하루도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세상이 번잡해봐야 지금과 같잉 번잡했겠는가마는, 창포로 돛을 매어 배 띄우고 앉아 세 상 근심 잊었다는 글이, 강물 위에 떠 있는 한폭의 그림 같습니다. 나도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 쉬고 싶습니다.”라고 감상평을 하셨습니다.
*이인로[李仁老, 1152년(의종 6) ~ 1220년(고종 7), 본관은 경원(慶源). 자는 미수(眉叟), 호는 와도헌(臥陶軒).]-고려 후기의 문신. 누대에 걸친 왕가의 외척으로서 화려한 문벌을 형성해왔던 고려 전기 3대 가문의 하나인 경원이씨(慶源李氏)의 후손이지만,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었다. 화엄승통(華嚴僧統)인 요일(寥一)이 그를 거두어 양육하고 공부를 시켰는데, 총명하여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다. 1170년 그의 나이 19세 때에 정중부(鄭仲夫)가 무신란을 일으키자, 피신하여 불문(佛門)에 귀의하였다가 그 뒤에 환속하였다.
1180년(명종 10) 29세 때 진사과에 장원급제하였고, 31세 때인 1182년 금나라 하정사행(賀正使行)에 서장관(書狀官)으로 수행하였다. 다음해 귀국하여 계양군(桂陽郡) 서기로 임명되었다. 그 뒤에 문극겸(文克謙)의 천거로 한림원에 보직되어 사소(詞疏)를 담당하였다. 한림원에서 고원(誥院)에 이르기까지 14년간 그는 조칙(詔勅)을 짓는 여가에도 시사(詩詞)에 힘썼다. 임춘(林椿)·오세재(吳世才) 등과 어울려 세칭 ‘죽림고회(竹林高會)’를 이루어 활동하였으며,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郎)·비서감우간의대부(秘書監右諫議大夫)를 역임하였다.
≪고려사≫ 열전(列傳)에서 이인로에 대하여 “성미가 편벽하고 급하여 당시 사람들에게 거슬려서 크게 쓰이지 못하였다(性偏急 忤當世 不爲大用).”라고 평하였다. 시의 본질과 그 독자적 가치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어의구묘(語意俱妙 ; 말과 뜻이 함께 묘함을 갖추어야 한다)’를 강조한 작시론(作詩論)이 유명하며, 무부착지흔(無斧鑿之痕 ;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움)의 경지와 의묘(意妙 ; 뜻의 묘함)를 위한 신의(新意 ; 새로운 뜻)를 중시한 태도가 널리 알려졌다. 저술로는≪은대집 銀臺集≫·≪쌍명재집(雙明齋集)≫·≪파한집(破閑集)≫ 등이 있다고 하나 현재 ≪파한집≫만이 전하고 있다.
첫댓글 한 폭의 그림을 봅니다...
서산에 비친 달을 보며 모든 근심을 잊은 듯 한
시인의 모습을 보며 삶의 평안함을 느끼며 그 삶에 함께 하고 싶네요~~
지기님의 시정 넘치는 멋진 댓글에 감사드리고,
행복한 금요일과 연휴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