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15--02-16)
< 화로와 요강 >
- 文霞 鄭永仁 -
지금으로 말하면 화로는 휴대용 가스버너이고, 요강은 이동식 변소인 포터블 wc이다.
우리 민족이 발명한 난방기구 중에 으뜸가는 것이 온돌이고 버금가는 것이 화로일 것이다. 온돌은 고정식이만 화로는 이동식 난방 기구다.
또 고정식 뒷간은 밖에 있었기 때문에, 특히 겨울철의 요강은 잠자리의 필수불가결의 존재였다. 잠을 자는 방마다 하나씩은 다 있었다. 심지어는 여자가 타고 다니는 가마에도 자그만 가마요강이 있었을 정도로…. 그러니 오강은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애용하는 휴대용 변기였다.
그 바람에 화로와 요강의 여러 가지로 발전을 거듭하였다. 오지화로부터 청동화로까지, 사기요강에서 놋쇠요강까지 발전을 거듭하였다. 요람에서 무덤에까지 같이 갈 정도로….
사실 화로와 요강은 휘뚜루마뚜루 쓰였다. 화로는 난방용은 당연지사였지만, 불씨, 조리, 건조, 바느질, 재떨이, 담뱃불, 이잡기 등으로 다양하게 우리 생활 곁에서 동고동락을 하였다. 심지어는 웃어른들의 심사를 나타내고 측정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하였다.
특히 화로는 밑불 씨 보관용으로 가정에서는 아주 귀중한 존재였다. 집에 사용하는 모든 불씨의 원천(源泉)이 화로 속에 담겨져 있었다. 성냥이 없었거나 귀했던 시절, 365일 동안 밑불 씨는 오롯이 화로의 잿속에 다독여져 있었다. 그 집안의 며느리의 큰 소임 하나가 밑불 씨를 꺼뜨리지 않는 것이었다.
밑불 씨는 불같이 일어나야 한다는 예나 지금이나 부(富)의 상징이다. 그래서 옛날에 이사 간 집에 갈 적에는 불같이 집안이 일어나라고 성냥이나 양초를 사갔으나 지금은 비누나 가루비누를 사가기도 한다. 따라서 불을 꺼뜨리면 다시 살리기도 얻기도 어려웠다. 다른 집에 불을 주는 것은 나의 부를 나누어주는 것이라 하여 꺼리기도 하였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불인 태양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주어서 영원히 고통 속에 산 프로메테우스처럼…. 만약에 며느리가 불을 꺼뜨리면 자질이 거론되고 심한 집에서는 소박의 조건이 되기도 했다. 장독대의 씨 간장처럼 귀중한 존재였다. 그래서 이사를 갈 적에 우선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씨 담긴 화로와 요강이었다.
더구나 화로는 집안 어른들의 기분을 간접적으로 전하고 알아차리게 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였다. 시아버지 심사가 틀리면 담뱃대로 화로를 탕탕 치기도 하였다. 하기야 좋은 일 하고 가끔 두드려 맞는 것이 화로이기도 했다.
요강의은 수모는 남다르다. 허구한 날 남의 엉덩이에 눌려 지내며 온갖 오물을 다 지니고 사는 삶의 오강의 일생이다. 낮에는 오줌통 옆에서 벌벌 떨며 지내다가 밤에야 방에 들어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오줌은 물론 급한 경우에는 똥이나 토사물까지 받아야 하는 최하위 자리에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오강은 유기질 비료인 오줌의 모으는 중요한 도구로 역할까지 도맡아 했다. 요강의 오줌은 오줌통으로, 오줌통의 오줌은 다시 똥뚜간으로 이동하여 모아졌다. 물론 오강의 오줌은 텃밭의 푸성귀로 직행을 하기도 했지만 생오줌은 제대로 유기질을 뿌리가 제대로 흡수할 수 없기 때문에 오줌통에서, 뒷간에서 썩혀서 시비하는 슬기를 우리 조상들은 이미 유기농의 귀재였다.
지금도 그렇다. 금비(金肥)라는 비료로 키운 애호박과 유기질 비료인 똥오줌으로 키운 애호박의 맛은 천지차이가 난다. 그래서 어느 대학교수 똥오줌도 자원(資源)이라고 주장한다. 선진국인 독일에서는 똥오줌이 유기질 비료로 변신하기도 한다. 도시의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똥 퍼!” 하던 소리가 그리웁기까지 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즈음 시골에서는 도시아이들이 싸는 생똥을 반기지 않는다고 한다. 이즈음 아이들의 생똥은 잘 썩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방부제나 항생제가 들어간 음식을 많이 먹어 잘 썩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염(殮) 봉사는 하는 어른들에 의하면 이즈음 죽는 사람들의 시체도 잘 썩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부제, 항생제, 술, 담배 등으로 절여져 있어 여름에도 잘 썩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한 여름이면 시체가 썩어 추깃물이 줄줄 흘렀는데 그런 경향이 자꾸 줄어든다고 한다. 모든 유기체는 죽어서 썩어 자연으로 환원 돼야 제대로 된 생태환경인데…. 그래서 현대인이 유기농 식품을 선호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죽어서 잘 썩기 위해서일까? 우리들이 날마다 먹는 음식도 잘 썩어야 제대로 흡수할 수 있다. 인간의 삶도 잘 발효시켜야 되는데, 어찌 덜 발효된 인간들이 그리도 많은지…. 특히 잘 썩지 않은 썩은 말을 하는 인간들이 수두룩한지 모르겠다. 그들은 생똥 같은 말을 마구 해댄다. 특히 정치인들이…. 이는 말의 설사(泄瀉)다. 화투 고스톱의 설사처럼 말이다.
이젠 똥뚜간이 측간·뒷간·화장실로 이름 자체가 변하며 변소도 많은 변신을 거듭하고 진화하고 있다. 하기야 절간에서는 측간(廁間)을 해우소(解憂所)라고 점잖게 말하지만 그 본바탕의 기능은 변함이 없다. 화장실 문화라는 말이 버젓이 사용되고, 아름다운 화장실 콘테스트도 열리고 있다. 또 소변기 앞에는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라고 은근히 냄새나는 것을 줄이려고 하고 있다. 화장실 소변기만도 못하게 머문 자리가 더러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소위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이 뇌물 10억을 버젓이 달라고 하는 나라이긴 하다. 하기사 이젠 ‘처갓집과 변소는 멀수록 좋다’라는 속담을 바꿔야 하는 세상이 됐다. ‘처갓집과 화장실은 가까울수록 좋다.’ 돈도 권력도 먼 것보다는 가까운 것이 좋은 세상인가 보다. “에라, 소변기 표어만도 못한 인간들아, 똥칠을 하는 놈들, 국가와 국민의 얼굴에!”
화로와 오강은 도낀개낀이다. 기중에 화로가 좀 나은 것 같기는 하지만, 아마 인류를 위해서 제일 밑에서 받쳐 주며 온갖 수모를 다 겪던 것은 오강이 아닌가 한다. 자다가 오강이라도 차는 날이면 야단 그런 야단도 없었다.
이젠 뒷간이 집안으로 들어오고 새로운 난방기구가 날로 발전하는 이즈음에 화로와 용강의 예찬이 낭만에 초 쳐 먹는 객소린지 모르겠다.
화롯불에 새끼고구마, 감자 구워 먹던 시절, 고소하고 구수한 군밤 냄새가 화롯불 속에서 ‘포옥!’ 하고 재치기 하던 낭만이 사라진지 오래다. 급하면 요강을 타고 앉고, 잠결에 “쉬!”하면 어머니가 대주던 요강도 이젠 낭만고객인가 보다.
물론 존재하기 때문에 사라지고, 누군가가 사람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곤 하지만 ….
화롯가에 옹기종기 온 식구 둘러 앉아 이를 잡던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화로 위 겅그레 위에는 오지뚝배기에 담긴 된장찌개가 바글바글 끓고, 아랫목 밥보자기에 싸 놓은 놋주발은 따끈하고, 이제나 저제나 낭군을 기다리는 각시의 그리움 때문에 바특하게 졸고 있다. 모든 귀의 신경은 밖을 향해 하발 통처럼 열려 있다. 문풍지는 달려가는 각시의 마음처럼 밤바람 소리에 운다.
텔레비전 앞에서 대화 없는 몇 시간을 지내다가 각자가 또 뿔뿔이 헤어져 잠자리에 드는 사람들도 그리운 시절이다. 거기다가 송편을 만들면서도 뿔뿔이 스마트폰을 보는 그런 시절이다. 디지털 기기와 편리함에 매몰되어 그리움도 아파트 엘리베이터나 각방처럼 닫혀지는 세상이다. 그래서 현대인은 고독한지도 모른다. 사람 냄새나는 긴긴 겨울밤의 그리움이 화로와 오강의 묻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남자들은 복분자술을 먹으면 오강이 뚫어진다 라는 속설에 얽매어 그 비싸 복분자술을 들이키는 것도 아마 하초가 부실하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은 아닌지?
첫댓글 ^^ 썩지 않는 병이란 단편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