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코앞에 둔 작년 여름쯤일 것이다. 티타임에 젊은 직원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히죽거리기에 뭘 보고 웃느냐 했더니 좆좋소라는 웹드라마란다.
애마부인 나오는 에로 비디오도 아니고 참 제목 한번 천박하다고 혀를 찼더니 그 직원이 정색을 하며 좆좋소가 아니라 좋좋소라고 정정을 해줬다.
그러고 보니 개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우스개 소리처럼 내가 되레 오바를 한 셈이다.
그 드라마에 호기심이 발동해 자세히 물었다. 좋좋소는 <좋아요 좋아요 중소기업>의 줄임말이란다. 뜨는 드라마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화제를 모았다고 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유튜브에서 좋좋소를 검색해 올라 있는 그 드라마를 하나씩 찾아봤다. 웹드라마는 OTT 환경이 활성화되면서 모바일이나 유튜브로 방영하는 15분 남짓의 짧은 드라마다.
러닝타임이 짧으니 자투리 시간에 틈틈히 볼 수 있고 무엇보다 중소기업 이야기라 흥미진진했다. 내가 평생 중소기업에서 노가다에 가까운 빡센 일로 밥벌이를 했기에 더욱 공감이 갔다.
얼마전에 화제 속에 끝난 재벌집 막내 아들보다는 스케일이 작지만 현실적인 내용은 좋좋소가 훨씬 낫다. 정승 네트워크라는 작은 무역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바로 내 얘기였다.
신입 사원에게 아침에 출근하면 청소부터 하라고 빗자루를 내민다든지, 점심 때면 슬그머니 사라지던 사장이 점심을 한 턱 쏜다면서 대기업 구내식당에 데려가 밥을 사기도 한다.
입사한 지 며칠 안 된 직원이 일하다 말고 몰래 도망을 치는 장면은 웃기면서 슬프다. 직원 사기충전을 위해 야유회, 워크숍을 떠나는데 팬션을 빌려 마트에서 산 삼겹살과 3분카레로 회식을 한다.
자금 사정이 어렵자 급기야 월급이 밀리기도 하는데 아무도 사장 앞에서는 말하지 않고 뒤에서 불만을 터뜨린다. 월급도 쥐꼬리만큼 주면서 제 때 나오지 않는다고,,
심지어 연봉이 동결된 직원이 실망한 끝에 생활에 보탬이 되겠다며 탕비실에 있는 컵라면과 믹스커피를 슬쩍하다가 사장에게 들킨다. 거기서 파생한 신조어가 소확횡이다.
이 드라마를 본 MZ 세대는 그들의 놀이터인 SNS에 위트 있고 기발한 작명을 남긴다. 화제를 모은 콘텐츠일수록 신조어가 많이 나오는데 그것을 생산하는 사람들 또한 MZ 세대다.
줄이거나 비틀어 유통시키는 그들의 단어가 외계어처럼 들릴 때도 있지만 나는 MZ 세대의 신조어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노인일수록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든다.
공자님도 먄류했던 그놈의 엄숙주의, 유머를 즐길 줄도 알아야 하지만 나잇값에는 유머를 소화할 줄 아는 순발력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지혜와 포용력은 유머에서 출발한다.
MZ 세대가 즐겁고 유쾌하게 소비한 웹드라마 좋좋소에서 파생된 단어가 바로 좆소기업과 좋소기업이다. 이 얼마나 솔직하고 상쾌발랄한 신조어인가.
좆소기업은 월급 박하고 직원 복지가 엉망인 회사를 말하며 좋소기업은 회사는 작지만 직원 복지가 대기업 부럽지 않은 회사를 말한다. 당장 그만 둬야할 직장은 개좆소기업으로 부른다.
이 드라마가 뜨면서 출연한 배우들도 덩달아 떴다. 좋좋소에서 소심하고 어리버리한 캐릭터로 많은 공감을 산 이과장은 지금 유튜브에서 <중낳괴>라는 애칭으로 왕성하게 활동한다.
작년 가을 내 일상에 돌발 상황이 생겨 두어 달 일찍 퇴직을 했다. 당분간 쉬겠다는 계획으로 좋아하는 겨울산에 올라 눈 쌓인 태백산에서 허파에 바람을 넣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다시 출근하면 어떠냐는 사장의 간곡한 제안이다. 아마도 들어온 직원이 버티지 못하고 연달아 그만 둔 모양이다. 쉴 팔자도 못 되나 싶은 마음도 잠시뿐, 제안을 수락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퇴직 두 달 만에 출근을 했다. 사장이 악덕사장은 아닌데 젊은 직원들은 좆소기업이라 생각한다. 내가 봐도 좋소기업은 아니다.
그런 직장을 어떻게 다니냐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런 직장이라도 다닐 수 있는 게 어디냐로 생각한다. 아직 내가 쓸모가 있어서 행복하다.
비록 박봉이지만 며칠 후의 월급날이 기다려진다. 드디어(?) 첫 월급이다.
*뱀장수: 한동안 안 보이더니 오랜 만에 오셨구랴. 카페에 다시 오니 좋소?
*현덕: 좋소. 좋좋소(좋고 좋고 또 좋소).
첫댓글 어서오셔요 반갑습니다
나를 알아 준다는 건 광장히 기분 좋지요 요즘 젊은 사람들 일 오래 하는거 잘못해요 30년 40년 생각도 못하지요 어떻든 현덕씨 불러 주는 곳이라니 저도 마음이 좋습니다 카페에도 오시고 좋은 날입니다.
아고~
정말 오랬만에 오셨습니다.
바쁘셨군요.
글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습니다.
이제 부턴 가끔이라도 글 읽는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좋좋소"~
저도 찾아서 봐야 겠네요..
반갑습니다
예전의 유현덕 님 답습니다
좋좋소 ~~~^^
좋좋소~~~^^
언어도 살아움직이는 유기체 같은것이라
그 시대 문화에 따라
태어났다 사라지기도하고
자리잡고 사전에 등재되기도 하죠
오늘도 소확행과 닮은
소확횡 배운김에
그이 주머니 털어볼까요? ㅎ
저도 찾아 봐야겠습니다.^^
흐미나
뉘시라요
백수 두달째 다 되어가니
답답하고 갑갑해지긴 마찬 가지네요 ~
그래도 불러 주는 회사가 있어 참 좋좋소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