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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95년
보은 지기<코너5>
최근 질의문답 코너 목차
5-01) 경계에 실패하고, 박재일씨에게 밀리고,
5-02) 소방서와 공조하여 화재를 진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5-03) 95사태 초기 퇴출과 5.15지도 이후와는 입장이 다릅니다.
5-04) 한국 SGI문제는 스승과 SGI와 지도, 보고, 공조 모두 협력해야 합니다.
5-05) 묘법을 수지 한 자가 방법을 저질렀다 해도 가책으로 독고가 되는 것이 아니며
5-06) 중생구제를 도리어 거꾸로 행하여 자칫 부처를 적대하는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5-07) 누구에게는 선배, 누구에게는 스승이었을 겁니다.
5-08) 스승이 받아들인 점을 고려하면 사적대가 있다 해도 용서한 것으로
5-09) 스승 곁으로 가지 않고, 교류마저 끊고, 회원들도 연결도 안 시키면서,
스승을 회피하는 실태는 올바른 제자의 모습이라 말할 수도 없습니다.
5-10) 창가학회 한국담당 공격한 것을 개혁연대가 시켜서 하신 겁니까?
5-11) 이즈미지도장 때와, 다치카 담당 때는 다릅니다.
5-12) 본과묘가 아닌 본인묘의 입장에서 읽어야 합니다.
5-13) 교학도 형편없고 한국에 있을 때도 그렇게 평판 좋은 사람? 우정은 자신이 정하는 것,
5-14) 학회의 언론전은 어떤 경애로 임해야 될까요?
5-15) 차명호님 진상규명 될 때까지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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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5-01번에서 5-08번까지의 댓글은 "보은 지기<코너 4>"의 댓글에 실려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5-01) 경계에 실패했다는 것도 차명호님 말을 보고 안겁니다. 개인적으로도 박재일씨한테 밀렸다고 말한 것도 차명호님이고, 보고 없이 독자적으로 처리했다는 것도 차명호님 글에 나타나 있습니다. 회원들에게 널리 알리고도 차명호님 생각대로 되지 않고 박재일씨는 건재했다는 것도 사실이고요. 많은 이들이 해임, 제명된 것도 사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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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나고, 짓밟히고, 병든 사람들이라고 하여 모두 실패했다고 보는 견해는 "통상의 인과"입니다.
대성인께서는 “이 팔종은 진미래제동안 하나씩 나타날 것을 니치렌이 강하게 법화경의 적을 강하게 가책함으로써 일시에 모여 일어나게 했느니라”(어서 960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법화경의 적을 강하게 가책함으로써 가볍게 받는 “호법의 공덕력”(위의 책 같은 쪽)에 의한 과보도 있습니다.
“보고 없이 독자적으로”라고 말씀하셨는데, 경찰의 눈치를 살피는 것 보다, 교통법규를 지키는 것이 우선입니다. 마찬가지로, 선생님께 보고하는지를 살피는 것보다는 사제근본으로 실천하는지를 감시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귀하의 글을 읽으면, 추적자에 나오는 형사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서근본으로 방법을 가책하는 사람에게 이래도 되는 건지요? 우리는 같은 이케다선생님의 문하입니다.
“폭풍의 95년”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학회의 직원으로서 스승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다가 불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저에게는 어떤 말씀을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모두의 목표는 한국의 광선유포입니다.
독화살을 맞은 사람이, “내가 맞은 화살은 언제, 어디서 만들어 졌고, 무슨 나무로 만들었습니까? 이를 알지 못하면 치료를 받지 않겠습니다”라고 버틴다면, 그는 그런 사실을 알기도 전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불이 났으면 주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끄면 됩니다. 그런데 불은 끄지 않고, “선생님께 지도 받자, 지도 받지 않은 사람은 물러나라, 그런 사람은 불 끌 자격이 없다” 이런 식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집행부가 학회의 경리, 건설, 등을 강탈했고, 가장 주요한 인사권까지 강탈했습니다. 그리고는 “이케다 문하들을 무차별적이고 불명예스럽게 퇴출시킨 범죄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이런 현실을 보고도, 선생님 지도만을 생각하며 침묵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선생님께서는 “의지하지 않는다. 자신이 일어선다. 동정도 필요 없다. 감상도 필요 없다. 누가 격려해 주지 않아도 좋다. 자신이 결연히 그리고 명랑하게 일어서 자신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국토까지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법화경의 지혜/ 법련 2012. 7월호, 65쪽)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의 민주화도 쳐다만 보고 있었다면 오늘의 한국은 없었을 것입니다. 민주화를 향해 혼을 불사른 5.18광주민주항쟁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스승으로부터 의탁받은 진상규명과 한국광선유포를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5-02) 아직도 소방서에 연락하여 공조해서 화재를 진압하려 하지 않습니다. 공조를 해야 한다고 누군가 말합니다. <중략> 다음세대 사람들 눈에는 95사태 초기의 잘못된 대처방식이 지금 다시 반복해서 사용되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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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지적입니다. 누구나 “95사태”를 접하게 되면 누구나 귀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당시 사제의 연결을 방해한 인물이 이즈미 한국지도장이었다는 말도 있고, 이사장이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혹자는 사무총장 박재일씨와 한국 통역관 이또씨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것 역시 진상규명에 의해 밝혀져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음 세대 사람들 눈에는 95사태 초기의 잘못된 대처방식이 지금 다시 반복해서 사용되는 것”이라는 귀하의 의견은 저의 생각과 다릅니다. 지금은 95사태 초기와는 전혀 다른 양상입니다. 집행부는 엄청난 부정부패를 저지르며, SGI에 '내정간섭하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협박하고 있습니다.
SGI는 한국SGI 에 대해 신심지도 이외에, 내정간섭에 해당되는 어떠한 조언도 할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국제법을 악용하는 간부 중에는 집행부뿐만 아니라 SGI 간부도 있을 것입니다.
인터넷에 “95사태”를 올린 이유도, 회원님들께 이런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입니다. 95사태는 한국회원님들이 투쟁하여 승리해야 할 사명의 무대입니다.
전 세계 SGI회원국인 192개 국가에서도, 한국의 멤버들이 95사태를 어떻게 승리해 가는지 유심히 지켜 보고 있습니다. 이런 삼장사마는 자국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5-03) 이케다 문하들을 무차별적이고 불명예스럽게 퇴출시킨 범죄행위”를 저질렀습니다. -> 이것은 95사태 초기 퇴출과 5.15 지도 이후와는 입장이 다릅니다. |
“초기 해임의 사람과 5.15지도 이후 개혁연대가 같은 생각이 아니라면 묶어서는 안됩니다.”라는 귀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5.15이후 집행부의 횡포는 도를 넘어 노골적으로 스승까지 협박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진상규명에도 반대할 뿐만 아니라, 내정간섭이라는 책략으로 SGI간부를 바다 건너로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무차별 제명시킨 인사들의 복귀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집행부는 제 정신이 아닙니다.
5-04) 한국SGI 문제는 당연히 스승과 창가학회와 지도, 보고, 공조 모든 협력하에 풀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승은 이케다선생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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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당한 말씀입니다. “95사태”를 인터넷에 올린 것도 귀하와 같은 생각에서 였습니다. 집행부는 SGI의 지도를 받고 있는 것 같지만 형식에 불과 합니다. 그들은 지금도 진상규명에 반대하고 있으며 경리, 건설, 인사에 대해 오픈 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외형의 모습은 KSGI라는 모습이고, 안으로는 야차의 모습을 한 사조직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회원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5-05) '하종의 연'도 '독고의 연'도 묘호렌게쿄로 인한 것이지 다른 것으로 하종과 독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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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에 대해 깊이 사색하고 게십니다. “묘법을 수지 한 자가 방법을 저질렀다 해도 가책으로 독고가 되는 것이 아니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닛켄종도 같은 남묘호렌게쿄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방법을 가책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방법이 있어도 이를 지적하는 사람이 없으면 왕의 권세도 잠시 동안은 이어지고 나라도 평온한 것과 같다”(어서 313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불교회가 평온한 것 같지만, 이미 국토는 삼재칠난으로 소용돌이 치고 있습니다. 이 재난을 멈추게 하는 길은 오직 "방법을 지적하고 가책"하는 길 뿐입니다.
5-06) 가책해서 바로 잡아야 하는데 가책해서 무간지옥을 보내려는 일념에 의해 행동하면 자신도 혹은 그 말을 듣고 따르는 일념, 행동 그리고 자타 함께 어본존의 중생구제를 도리어 거꾸로 행하여 자칫 부처를 적대하는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 듯 합니다. |
신심을 하다 보면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이 문제로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방법자를 보고 가책하지 않는다면 여동죄로 방법자와 같이 무간지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방법자에게 자비를 갖고 절복에 임하라는 것은, 저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일 때,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 알고 싶었습니다.
아래는 법련에 있는 내용입니다. 저에게는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청년은 부모를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이 많은데 어찌 남을 사랑하겠는가? 그 무자비한 자신을 극복하고 부처의 자비로운 경지를 회득하는 인간혁명의 투쟁이다. (청년 훈)
무자비한 자신을 극복하는가, 못하는가? 숙명전환의 주도권은 자기자신에게 있다. 청년이여, 인간혁명의 투쟁에 일어서라! (법련 2012, 03, 30쪽)
2) 불법의 진수는 자비지만, 범부에게는 용기를 품고 불법을 실천하는 일이 자비에 통한다.
부처는 자비로 범부는 용기로 사람을 구한다. (법련 2012, 08, 91쪽)
5-07) 스승이란 인식이, 어느 세대를 기준으로 나누어 보아야 하는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는 선배였을 테고 누구에게는 스승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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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일을 보며 틈틈이 시간을 내다보니 충분한 답변을 못 드리는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월요일이라 조금 분주해서 질문에 빠진 부분이 있었습니다. 지금 말씀 드리겠습니다.
선배나 후배를 정하는 기준은 나이나 학력이 기준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면 모두 후배이고, 학력이 높으면 모두 선배라는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스승을 정할 때,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키야 회장님도 청년부 시절에는 선생님과 선후배 관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제관계로 바뀌게 됩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선택입니다. 위대함에 존경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위대한 경애라고 생각합니다.
회원님들 중에는 선생님을 선배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웃집 아저씨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아, 이분이야말로 주사친의 삼덕을 갖추신 나의 스승’임을 자각하게 되겠지요, ‘스승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라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은 인간으로서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에게는 그 때가 사제의 원점의 날이 될 것입니다.
개중에는 ‘우상화’니, ‘신격화’니, 불평만 하며 한 평생을 살아가는 회원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든 본인의 자유입니다. 사제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이익인지, 불평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이익인지, 선택의 자유는 본인의 몫이니까요.
좋은 생각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5-08) 사적대 했다던 이후에 스승이 받아들인 점을 고려하면 사적대가 있다 해도 용서한 것으로 불법의 가르침상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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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은 인과이법이고 도리입니다. 타당성과 보편성을 상실하게 되면 집착이 되고 아견(我見)이 됩니다. 그래서 어서 근본으로 말씀하셔야 합니다. 살인자에게 어머니가 용서해 준다고 용서가 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죄를 졌으면 그에 상응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아사세왕은 본인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고 뉘우쳤습니다. 그러나 집행부는 아직도 죄를 감추고 있습니다. 같은 악인이지만, 이것이 아사세왕과의 차이입니다.
대성인께서는 “소죄(小罪)일지라도 참회하지 않으면 악도를 면치 못하고”(어서 930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잘못을 스스로 깨닫고 뉘우치면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잘못을 뉘우치지 않은 자들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학회는 범죄의 소굴이 되고 말 것입니다.
불명예스럽게 퇴출 당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자신들을 학대하고 파 화합승자로 매도한 자들은 용서 받고, 자신들의 인권회복에는 관심도 없다면 그건 신심의 세계가 아닙니다.
이런 토대 위에서 왜 이사장과 간부들을 SGI연수회에 참석시켜 계속 지도하고 법화경을 들려주셨을까? 약초유품의 비유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이는 스승의 자비이며, 용서와는 다릅니다.
95사태 이후에 입신하신 분들은, "95사태 대담"을 충분히 읽고, 주위의 선배들과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대담에 임해야 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은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귀하의 질문에 성의를 다해 답변하고 있습니다. 귀하는 많은 회원님들을 대신하여 질문하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질문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5-09) 만일 사적대 했다고 해도 한국학회를 받아 들인 것을 보건대 스승이 용서하면 그 점을 가지고 용서하네 못한다 라고 제자들이 논할 내용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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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를 보고 짖는 개는 창자가 썩으며”(어서 1080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서로가 이와 같은 어성훈을 기억하며 성실한 마음으로 대화하고 싶습니다.
“스승이 용서하면 그 점을 가지고 용서하네 못한다 라고 제자들이 논할 내용이 아닙니다”라고 말씀하시는데, 귀하는 왕의 명령이 곧 법이었던, 사극 속에 나오는 이조 시대 사람 같습니다. 불법은 권위주의가 아니라 인간주의입니다.
“스승 곁으로 가지 않고, 교류마저 끊고” 이런 말은 당사자인 개혁연대에게 확인 한 후 사실을 토대로 말씀해야 합니다. 확인도 되지 않은 말을 하면, 상대를 모함하는 유언비어가 됩니다. 마치 점쟁이나 무당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아 읽기 민망합니다.
선생님께서는“괴롭힌 쪽이 100% 나쁘다. 1000%나쁘다. 당하는 쪽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괴롭히는 쪽에서 당하는 쪽도 원인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편리한 대로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희망의 대화, 3권, 20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귀하도 자기 편리한 대로 말하는건 아닌가요?
“옛날에도 일본은 이웃 나라 한반도와 중국을 침략하고 ‘일본이 강하고 상대가 약한 나라였기 때문이다’라고 마치 상대가 잘못한 것처럼 말했다. 그런 이상한 논리가 지금도 통용되고 있다. 사회 전체가 지금도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정의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귀하가 방법의 집단인 집행부를 두둔하는 것 같아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현재 방법을 진행하고 있는 집행부입니다. 가책하는 사람에게 발을 거는 것은 악을 돕는 행위가 됩니다. “일월을 삼키는 수라는 머리가 깨어진다 함은 이것이니라”(어서 1248쪽)
우리는 무고한 법화경의 행자를 학대한 헤이노 사에몬노조가, 권력에 미친 자식에게 고발당해 죽었다는 어서를 배하며, “머리가 깨진다 함은”이란 이런 것임을 알았습니다. 불법은 엄하고 무섭습니다. 우린 누가 일월이고, 누가 수라인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5-10) 창가학회 한국담당 공격한 것을 개혁연대가 시켜서 하신 겁니까? 개혁연대에 그것을 뒤집어 씌우려 한 것입니까? 아니면 차명호님 편리한대로 말 하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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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에 의하되 사람에 의하지 말라」고 있습니다. 학회는 ‘어서를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강합니다. 어떠한 시대가 될지라도 언제나 이 원점으로 돌아가면 결코 막히는 일은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시면, 아견이 되고 맙니다.
“유다원질, 황멸도후”(어서 501쪽)라는 이 길은 누가 시키거나, 명령해서 갈 수 있는 길은 아닙니다. 귀하도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사제라는 사명감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광포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부족하지만 ‘나는 창가학회다’라는 진심을 담아 과감하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사제에 대한 저의 확신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의 말을 소개합니다. “큰 인물과 함께 있으면 큰 인물이 되는 것은 대단히 쉬운 일이다” 비열한 사람과 함께 하면 인생은 비열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니치렌 대성인의 지남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일체는 간부로 결정됩니다” 중심자가 국가의 장래도, 민중의 행복도, 법의 정사도 안중에 없이 자신의 위덕이라는 허상을 지키기 위해 정의의 사람들을 탄압한다면 조직은 파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린 그런 어리석음을, 이즈미씨와 그를 동행했던 자로부터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그 결과 95사태라는 엄청난 폭풍을 몰고 왔고, 급기야 조직은 분열되어 그 싸움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지금의 한국담당인 다치카씨의 교만과 잘못을 간하고 있습니다.
민주화 시대에 집행부가 17년의 세월을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예전에 이즈미씨와 동행했던 SGI간부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아니면 자신의 위덕이라는 허상을 지키기 위해, 아직도 집행부에게 힘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방법자의 집단인 집행부를 중심으로 95사태를 해결하려는 다치카씨의 생각이, SGI의 어느 간부와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기우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인터넷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우리가 “95사태 대담”을 지켜보듯이, 집행부뿐만 아니라 SGI도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제가 편리한 대로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습니다. 이 대담은 혁명이라는 날개를 달고 한국과 미국을 넘어 SGI라는 세계를 향해 날고 있습니다.
5-11) 스승이 알지 못한 상황이라는 이즈미지도장 때와, 지금 스승이 지켜 보는 다치카 한국담당과는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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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치렌 대성인은 “그 지방의 불법은 귀하에게 맡기겠소”(어서 1467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나라, 그 지역을 담당하는 간부나,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지역광포의 주체자로서 책임을 짊어지는 것이 광선유포의 방정식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직원들에게 “그 중에 부장이 무책임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부서 전체가 공모자가 되어 버립니다. 인간은 절차탁마하지 않으면 결국 타락할 뿐입니다”(신 인간혁명 18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학회는 결코 특권 계급을 만들면 안 됩니다”(젊은 날의 일기, 3권, 247쪽) 한국을 담당하는 간부도 회원도 항상 서로 연마하고 서로 성장을 겨루는 관계여야 합니다.
귀하는 “스승이 알지 못한 상황이라는 이즈미지도장 때와, 지금 스승이 지켜보는 다치카 한국담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은 17년간 계속되는 95사태라는 삼장사마의 와중 속에서 두 사람의 한국담당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한 사람은 조직을 분열시킨 95사태의 중심자이고, 한 사람은 이케다 문하를 무차별 퇴출시킨 집행부와 손잡고 개혁연대에게 화합하라고 겁박하는 인물입니다.
두 사람은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민중을 희생 시킨다는, 위선의 성직자, 교활한 성직자라는 점에서 다를 바 없습니다. 그들은 신앙에서 가장 금기하고 있는 타협을 하고 있습니다.
다쓰노구치 법난사나, 마키구치 선생님의 순교의 역사를 볼 때, 타협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톨스토이는 “신앙인 이상, 그 본질에서 볼 때 권력에 복종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라고, 선생님께서는 “톨스토이의 ‘제2의 인생’은 거대한 권력과 투쟁하는 인생이었다”라고 술회하셨습니다.
한국은 그들 두 사람을 경험하며 많은 것을 생각해 왔습니다.
① SGI간부를 추종만 하려는 자세는 과연 올바른 신심인가?
② 95사태는 이즈미씨 단독 범행인가, 아니면 동행한 간부와 협잡하여 계획한 소행인가?
③ 통역관 ㅇㅇ씨는 95사태의 죄인이면서 어떻게 지금도 한국 통역관으로 근무하고 있는가?
④ SGI간부 중 한국의 95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인간적으로 사과한 사람은 있는가?
⑤ 민주화 시대에 집행부가 17년간 권력을 지속할 수 있게 도와준, 보이지 않는 사람은 누구인가?
⑥ 예전에 이즈미씨와 동행하여 95사태에 관여했던 SGI간부 중에 누군가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아니면 자신의 위덕이라는 허상을 지키기 위해, 아직도 집행부에 힘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⑦ 다치카씨의 망언이 SGI의 어느 간부와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95사태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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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치렌대성인께서는 “일(一)은 만(萬)의 어머니”(어서 498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족했지만, 지기님을 만(萬)의 어머니라고 생각하며 노력해 왔습니다.
'폭풍의 95년’을 인터넷에 올리게 된 동기는 많은 회원님에게 알리기 위해서 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불법은 승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법리(法理)에 따라서 끝까지 살고 끝까지 싸워 승리해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대성인에 대한 신심의 실상(實像)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법론을 지켜 보시는 모든 회원님들은, 귀하나 저와 같은 개인적인 생각은 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숙명전환과 광선유포를 위해, 정의(어서와 선생님 스피치)를 근본으로 한 ‘95사태의 대담’을 원하고 있습니다. 법론은 정의와 사실에 입각해야 합니다.
만약 교학이 부족하다면 공부한 후에 대화를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총명한 사람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학생입니다” 총명한 사람은 생애 계속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이는 우리들 자신이나 회원님들을 위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벌써 추석입니다. 가족과 함께 좋은 명절 맞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5-12) ① 95년 퇴출자 ② 창가르네상스 퇴출자 ③ 5.15 지도전의 전국의 무더기 퇴출자 ④ 5.15 지도이후 퇴출자/ 각각 퇴출의 사유가 다르듯 행동도 달랐지요. ①번 퇴출자는 일반세간의 투쟁에서도 취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세간에서도 다양한 투쟁이 있으나 그들의 과정은 모두 유사합니다. 왜냐하면 정당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 투쟁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나머지 부분은 댓글을 참고해 주세요> |
다른 분에게도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마무리까지 해 주신 것은 감사합니다만, 이 대담을 보시는 분들이, 본과묘가 아니라 본인묘의 입장에서 읽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시 필을 잡았습니다.
‘95사태 대담’은 어서 근본이 아니면 읽을 가치도 없습니다.
귀하께서 말씀 하셨듯이, 95년 퇴출시킨 그들의 행위는, 정당성을 잃고 있습니다. 전쟁 중에도 재판이라는 과정을 거쳐 죄의 경중을 판단하는데, 박재일과 그의 일당들은 사정위원회라는 형식만을 거쳐 무지막지하게 퇴출시켰습니다.
여기에서 지나치게 과거에만 집착하게 된다면, 본과묘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에 아래 내용을 첨부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모습이 된 까닭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방법의 죄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심의 눈으로 보면 “과거세의 정법비방의 죄에 의하여 악구매리를 당한 것”입니다.
“이제야 그 죄를 없애게 되어 감사합니다. 당신도 이제부터 분노의 마음을 버리시고 올바른 신심을 하세요”라는 마음이 불경보살의 마음입니다. “분노의 마음을 버리고 올바른 신심을 하세요”라는 불경보살의 마음을 어떻게 실천으로 옮겨야 할까요?
대성인께서는 “방법의 자를 향해서는 오로지 법화경을 설할지어다”(어서 438쪽) “그를 위해 악을 제거함은 즉 이는 그의 어버이니라”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방법을 가책하는 것이야말로 자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지만, 불법의 법리에는 본인묘와 본과묘가 있습니다. 대성인의 불법은 본인묘의 불법이며, 석존의 불법은 본과묘의 불법입니다.
석존의 불법은 성불했다는 결과를 중심으로 한 본과묘가 중심입니다. 이는 대집경의 “오오백세”라는 법문에 의해, 이미 오래 전에 “백법은몰”된 법입니다. 성공하면 기쁨에 안주하고, 실패하면 슬픔에 체념하려는, 결과에 집착하여 과거로만 눈을 돌리는 생활태도를 말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본인묘인 대성인의 불법은 현재를 출발점으로 미래를 향해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간다는 자세입니다. 슬픔이나 불행마저도 성장의 밑거름으로 하는 강력한 생활태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집행부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방법 행위는 ① 선생님께서 의탁하신 진상규명에 반대하는 죄, ② 경리, 건축, 인사의 모든 권한을 강탈해 부정부패를 일삼는 죄, ③ 무차별적으로 불명예스럽게 퇴출시킨 간부들의 복귀에 반대하는 죄, 등입니다.
그들은 이미 인과의 법칙에 의해 오는 지옥이라는 운명을 맞이 하고 있을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박재일씨가 병원에 입원한 것도, 그의 측근이 비참한 모습으로 운명을 달리한 것도, 자업자득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현당”이라는 현재와 미래입니다.
“분노의 마음을 버리고 올바른 신심을 하세요”라는 화타(化他)의 마음을 갖고, 우리는 집행부를 향해 어떠한 자세로 접근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사색하고 기원해야 할 것입니다.
5-13) 또한 그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교학도 형편없고 한국에 있을 때도 그렇게 평판 좋은 사람은 아니라며 막지 말고 놔두라고 하더군요. 물론 그 말이 진실과 진심을 표현한 것이 아닌 듯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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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글을 보니 왠지 제가 미안해 집니다. 이는 전적으로 제 문제입니다. 다음에 그 분을 만나면, 앞으로 더 잘 할 테니 지켜봐 달라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자신에게 지면 원질이 되고, 승리하면 지적해 주어 감사하다는 선지식이 되겠지요.
제가 교학을 익히게 된 것은 학회 교학부에 근무하면서 였습니다. 당시 연화지와 단행본을 교정하며 공부했던 것이 지금도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한국어 판 어서전집을 발행하기 위해 교정본을 들고 인쇄소로 분주하게 뛰어 다녔던 일은, 지금도 법화경을 위해 일할 수 있었다는 긍지가 되고 있습니다.
대성인께서는 「많은 사람을 만나 보았지만 훌륭하다고 할 만한 사람은 천인(千人)에 한 사람도 없더라.」(어서 1418쪽)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의 입장에서도 참으로 그대로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미완성의 인간입니다.
갖가지의 결점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일일이 지적한다든가, 서로의 흠만 찾고 있다면 법원(法院)도 아닌데, 도저히 견딜 재간이 없습니다. 더욱이 그러한 저 차원의 언쟁(言爭)으로 동지들 간에 감정적인 갈등이 생겨 가장 중요한 신심까지 파괴하게 되어서는 본말전도입니다.
그러나 동지라도 조직을 파괴하거나 정법을 비방할 때는 다릅니다. “방법의 자를 향해서는 오로지 법화경을 설할지어다”(어서 438쪽)라는 어서의 말씀대로 용기를 갖고 가책해야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우정이란 스스로가 정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태도가 아니라 내 자신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내가 상대방을 생각하기 때문에 우정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운한 말 한 마디에 우정을 부정해 버린다면, 이 세상에 친구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설령 상대방에게 배신 당했다 해도 자신이 배신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우정이라고 배웠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의 제자이며 같은 동지입니다. “거울을 보고 예배할 때 떠오르는 그림자 또한 나를 예배하느니라”(어서 769쪽) 누구나 존극한 생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가 성불하는 길은 오로지 타인을 위해, 사회를 위해 불을 밝히는 일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5-14) 또한 교학은 가능한 배제하고 대화 하겠다고 말하였는데, 왜냐하면 현시점에서는 죽도록 싸울 적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의사도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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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에는 “신심으로 시작해 신심으로 끝난다”는 지도가 있습니다. 신심으로 만났으면서 신행학 중에 가장 중요한 학을 배제하고 만난다면, 이는 신심 이용으로 됩니다.
우리는 95사태의 대담을 통해 언론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회의 언론전은 어떠한 경애와 마음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신 인간혁명 18권 83-87쪽의 내용을 같이 공부하고 싶습니다.
세이쿄신문사의 한 젊은 기자가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1) 선생님은 글을 경애로 써야 한다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지요?
①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가 쓰는 글의 근본은 절복정신입니다.
② 권력의 횡포 등 사회악이나,
③ 인간 생명에 깃든 마성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마음입니다.
④ 그리고 단호히 광선유포하여 사람의 행복과 평화의 길을 끝까지 열겠다는 일념입니다.
이것이 경애로 쓴다는 것입니다.
(2) 좋은 문장이란 어떤 문장입니까?
① 문장은 자신의 마음이 투영된 것인 만큼 자신의 사상을 확실하게 표현하고,
② 독자적인 반짝이는 예리한 포인트가 있어야 하며,
③ 필자의 생명과 혼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은 문장입니다.
④ 나아가 명문의 조건은 모든 사람이 ‘음’ ‘과연’이라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기자로 살아가는데 어떤 마음 가짐이 필요 한가요?
① 결사적으로 논진(論陣)을 펴야 합니다.
② 언론전은 목숨을 건 승부입니다. 장난이 아닙니다.
③ 학회를 파괴하고 광선유포의 전진을 방해하려는 온갖 세력의 모략을 언론의 힘으로 타파하고
④ 학회에 대한 이해와 칭찬을 쟁취하는 것이 우리의 싸움입니다.
⑤ 악을 끝까지 가책하고 기만의 가면을 벗겨, 학회의 진실과 정의를 끝까지 부르짖으면,
⑥ 성훈 그대로 증오와 분노의 표적이 됩니다. 목숨을 노리기도 합니다.
⑦ 그래도 민중 편에 서서 무관의 사자로서 정의의 펜을 끝까지 잡아야 합니다.
⑧ 목숨이 다할 때까지 쓰고 또 쓰고 계속 쓰다가 죽는다면 그것이 진정한 언론인이 아니겠습니까.
나도 그런 결심으로 날마다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니치렌대성인께서 “니치렌의 제자들은 겁쟁이로서는 할 수 없느니라”(어서 1282쪽)라고 말씀하셨듯이 겁쟁이라면 창가의 언론전을 떠 맡을 수 없습니다. 용기를 갖고 일어서야 합니다.
5-15) 차명호님 진상규명 될 때까지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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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귀하를 만나 밤 늦게까지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덕분에 많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광포의 좋은 지기를 만나 행복합니다.
보은님과의 대화를 잊지 않겠습니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