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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가 며칠째 떠날 생각을 않고 있다. 편도가 붓고 열이 나는 걸로 보아 수백억 마리의 바이러스가 내 몸을 공격하다가 방어군과 치열하게 교전 중인 모양이다. 어느 친구와 가진 술자리에서 감기 걸려본 지가 언제 적 일인지 모르겠다고 입찬소리를 했더니, 삼신할머니께서 들으시고 미깔적어서 벌을 내리신 게 틀림없다. 물을 많이 마시며 내 몸의 방어기전에 응원을 보낸다. 첫날부터 아내는 병원에 가서 주사 한 방 맞으면 깨끗이 나을걸 사서고생이라고 성화지만 그때마다 웃어넘긴다. 45년을 같이 살면서도 아내는 상굿도 내 방법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감기가 건강에 꼭 해롭지만은 않을 터, 가만히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열이 나서 종일 정신이 얼떨떨하고 목이 좀 아픈 게 그리 불편한 일도 아니니 말이다.
고작 감기 때문에 며칠 동안이나 술을 안 마셨다는 사실이 오랜만에 찾아온 감기보다 더 신기하다. 감기는 지 사정이고, 죽을병이 아니고서는 이 정도 일로 며칠씩 술을 거른 적이 없다. 이상하게 이번에는 첫날부터 그 좋은 술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동의보감』에는 건강에 도움이 되는 약제로 감초가 2300여 회 등장하는 데 비해 술은 무려 5000여 회나 등장한다. 술이 최고의 명약이라는 얘기다. 지금껏 건강 유지 비결을 순전히 술 덕분이라 믿어왔는데, 며칠 술 안 마셨다고 그 생각이 변하지는 말기를! 작년 겨울의 혹독한 추위 탓에 올해는 30년 만에 내복을 사 입었으니, 서서히 노화 징조가 나타나는 모양이다. 감기에 걸리고부터는 몇 년 만에 난방도 한다. 작년같이 추운 겨울에도 방안 공기가 후덥지근한 게 싫어서 겨우내 난방을 하지 않았었다. 내복을 입고 난방을 하는 모습도 크게 낯설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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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젯밤 우연히 KBS TV의 《가요무대》를 틀었다가 안다성 선생이 직접 노래하시는 모습을 봤다. 우리나이로 올해가 미수(米壽)신데, 상굿도 정정하게 노래를 부르신다는 게 무척 고맙고 반가웠다. 선생의 노래 가운데 <바닷가에서>와 <사랑이 메아리칠 때>는 국민애창곡이 되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안이 되었던가. 한참 후배 가수들의 히트곡도 대부분 내가 얼굴도 모르는 젊은 가수들이 나와서 불렀는데, 안다성 선생께서는 그 연세에 직접 출연을 결심한 것만도 여간 고맙지 않았다. 제발 생활이 어려워 아직도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은 아니시기를… 그리운 옛 노래가 한 곡씩 나올 때마다 작사가와 작곡가의 이름을 살펴보는 일도 큰 즐거움이었다. 내 척박한 젊음에 얼마나 큰 힘을 실어주셨던 분들인가.
탄생된 지 45억 년이 지난 태양계의 수많은 별들 가운데, 오늘날까지 화산활동을 하고 있는 행성이 지구뿐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경이롭다. 화산활동은 지구에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조건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태양계의 식구로는 8개의 행성, 지금까지 밝혀진 74개의 위성, 지금까지 밝혀진 1600여 개의 혜성, 지름 200㎞ 이상인 33개의 소행성(명왕성 포함), 화성과 목성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소행성대의 무수한 소행성(지름 200㎞ 이하), 명왕성 바깥에서 태양을 공전하고 있을 미지의 천체 등이 있다. 그런데 태양계에서 화산활동을 하는 천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목성의 위성 이오(Io. 그리스신화의 主神인 제우스의 연인)다. 이오는 지름 3642㎞로 목성에서 세 번째, 태양계에서 네 번째로 큰 위성이다. 이오에서는 지금까지 400여 개의 분화구가 확인되었다. 달(지름 3474㎞)보다 조금 큰 위성에서 화산활동이 일어나고 있다니 이 또한 신비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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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의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에 나오는 베짱이는 참 억울하다. 이솝은 베짱이를 맨날 숲속에서 노래나 부르는 게으른 곤충의 대명사로 묘사했다. 그러나 베짱이는 짧은 우화(羽化) 기간 동안 어떻게 해서든지 암컷을 유혹하여 교미를 함으로써 다음 세대에 유전자를 전해줘야 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해 눈물겨운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행여 포식자에게 들켜 잡아먹히지나 않을까 우려되어 노심초사 온 사방을 두루 살피면서. 베짱이는 겉면이 우둘투둘한 겉날개에 뒷다리를 비벼서 소리를 낸다.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이솝 우화』를 읽으면서, 나는 이솝이 이씨 성을 가진 우리나라 사람인 줄 알았다. 그래서 무슨 놈의 이름을 漢字도 없는 솝으로 지었을까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이솝은 BC 6세기경의 고대그리스 웅변가로서, 그리스에서는 ‘아이소포스’라고 부른다.
최근 청계천 헌책방을 오가던 중 식생활에 중대 변화를 가져올 사건이 발생했다. 동대문운동장역에서 지하상가를 따라 청계천으로 가다 보면 식당가가 있는데, 어느 식당 벽에 삼양식품에서 생산하는 김치찌개면 광고가 붙어 있었다. 하도 먹음직스럽게 생겼기에 귀가 길에 한 봉지 사 들고 와서 끓여 먹어봤더니, 시상에나, 한 박스 사다놓은 신라면을 다 먹는 대로 즉시 교체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적인 맛이었다. 지난 30년 동안 일편단심 신라면만 먹었는데, 김치찌개면은 신라면보다 열 배는 맛이 좋았다. 마침 김기춘이 우지파동을 조작하여 잘나가던 삼양라면을 죽이고 농심라면을 밀어주었다는 혐의도 있다지 않는가. 떡국 오곡밥 냉콩국수 등 아내가 별미를 해주겠다며 아침에 라면 먹지 말라고 일부러 당부하지 않으면 1년 내내 신라면으로 식사를 했는데, 그게 이제부터 김치찌개면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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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은숙의 발칙한 상상력과 현란한 대사가 어우러져, 8주 동안 본방을 사수하도록 만든 드라마 《도깨비》가 끝났다. 벌써 떠나버린 도깨비와 저승사자와 삼신할머니가 그립다. 원인불명으로 저승사자가 미처 데려가지 못한 생명을 ‘기타 누락자’로 표현하고, ‘기타 누락자’가 발생하면 저승사자가 시말서를 쓰거나 야근을 해야 한다는 발상은 얼마나 유쾌한가! 도깨비 공유, 저승사자 이동욱, 유덕화 역의 육성재, 김비서 역의 조우진, 왕비 역의 김소현, 지연희 역의 박희본 - 이들의 연기가 빛났다. 특히 지은탁의 아역으로 출연한 아홉살짜리 꼬마배우 한서진의 명연기는 눈물겹도록 찬란했다. 장차 큰 배우로 성장할 것이다. 판타지 드라마는 끝나면 대부분 흐뭇한 여운이 남는데, 《도깨비》는 정이 많이 들었는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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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到處 有 上手 - 삼신할머니가 세월을 통해 전해주시는 최고의 선물이다. 나이가 들어야 비로소 깨우칠 수 있는 진리고, 깨우치고 나면 여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 서문에서 ‘답사를 다니면서 사계(斯界)의 전문가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동안 도처에 나보다 나은 분들이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고 했다. 그 글을 읽으며 풍부한 학식과 다채로운 저서들, 교수와 문화재청장과 문화재 및 미술품 해설사의 화려한 경력, 그 위에 겸손한 인품까지 겸비했단 말인가 싶어 은근히 질투가 났었다. 그러나 역시 내가 본 대로였다. 서문은 그럴 듯하게 써놓았지만 본문에는 인간의 힘으로 다스릴 수 없는 지적 오만이 행간마다 배어 있었다. ‘인생도처 유 상수’, 그 깨우침은 삼신할머니께서 나 같은 ‘기타 누락자’에게나 주는 인생의 덤이다.
첫댓글 따지고보면
기타 누락자에 안 들어갈 사람 그 어디 있을까?
나도 큰며느리 맞기 전까지만 해도,
권위 앞에 조아리고
돈 앞에 수그리는
인생 조무래기였었는데 뭘...
감기나
얼릉 고치시게
진통제 주사도 한 방 맞고...
다리를 질뚝찔뚝 절민서
봄방학한 여식네와 외손녀까지
우리 식구 다ㅡㅡㅡㅡ,
진주 막내여식네로
정오 쯤에 도착했다네.
잘 얻어 먹고 오라가서 술 살팅께
감기나 나수게.ㅡㅡㅡ
기타누락자 부류에 내가 올랐다는 소문은 못들었는가...?
감기 조심 하시게
2년전에는 병원에 하루가고 3일치 약을 2일만 먹으면 쉬 떨어지던데
금년에는 3일에 한번씩 병원에 3번이나 가서
감기가 떨어젔으니 나이따라 감기가 길어지네
조심하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