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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히야를 찾아간 여로보암의 아내 14:1~9
1 그때에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든지라
2 여로보암이 자기 아내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일어나 변장하여 사람들이 그대가 여로보암의 아내임을 알지 못하게 하고 실로로 가라 거기 선지자 아히야가 있나니 그는 이전에 내가 이 백성의 왕이 될 것을 내게 말한 사람이니라
3 그대의 손에 떡 열 개와 과자와 꿀 한 병을 가지고 그에게로 가라 그가 그대에게 이 아이가 어떻게 될지를 알게 하리라
4 여로보암의 아내가 그대로 하여 일어나 실로로 가서 아히야의 집에 이르니 아히야는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더라
5 여호와께서 아히야에게 이르시되 여로보암의 아내가 자기 아들이 병들었으므로 네게 물으러 오나니 너는 이러이러하게 대답하라 그가 들어올 때에 다른 사람인 체함이니라
6 그가 문으로 들어올 때에 아히야가 그 발소리를 듣고 말하되 여로보암의 아내여 들어오라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 체하느냐 내가 명령을 받아 흉한 일을 네게 전하리니
7 가서 여로보암에게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너를 백성 중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고
8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내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따르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
9 네 이전 사람들보다도 더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 만들어 나를 노엽게 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
여로보암 집을 향한 심판 선언 14:10~20
10 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 더미를 쓸어버림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버릴지라
11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니라 하셨나니
12 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네 발이 성읍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
13 온 이스라엘이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장사하려니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는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에서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한 왕을 일으키신즉 그가 그날에 여로보암의 집을 끊어 버리리라 언제냐 하니 곧 이제라
1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쳐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같이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그의 조상들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뽑아 그들을 강 너머로 흩으시리니 그들이 아세라상을 만들어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음이니라
16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그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하였음이니라 하니라
17 여로보암의 아내가 일어나 디르사로 돌아가서 집 문지방에 이를 때에 그 아이가 죽은지라
18 온 이스라엘이 그를 장사하고 그를 위하여 슬퍼하니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 아히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19 여로보암의 그 남은 행적 곧 그가 어떻게 싸웠는지와 어떻게 다스렸는지는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20 여로보암이 왕이 된 지 이십이 년이라 그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들 나답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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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여로보암은 아들 아비야가 병들자 아내를 변장시켜 선물과 함께 아히야에게 보냅니다. 아히야는 하나님 명령대로 무서운 심판이 임할 것이며, 아이가 죽을 것이라고 전합니다. 여로보암의 아내가 집으로 돌아오자 아히야의 예언대로 아이가 죽습니다. 여로보암에 이어 그의 아들 나답이 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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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히야를 찾아간 여로보암의 아내 14:1~9
여로보암 집을 향한 심판이 시작됩니다. 아들 아비야가 심각한 병을 앓자, 여로보암은 아내에게 변장하고 아히야 선지자를 찾아가라고 합니다. 자신이 왕이 될 것을 알려 준 선지자이기에 아들의 병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여긴 것입니다. 나이 많은 아히야는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함에도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여로보암의 아내에게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여로보암을 북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다윗과 달리 하나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을 두려워해 하나님을 등 뒤로 버리고 우상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자신을 세워 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의 유익을 우선시하는 지도자에게는 징벌이 따릅니다.
● 더 깊은 묵상
하나님은 아히야를 통해 여로보암의 어떤 죄를 책망하셨나요?
하나님을 등 뒤에 버리고 나의 유익을 따라 행한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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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 집을 향한 심판 선언 14:10~20
하나님은 여로보암에게 두려운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첫째, 여로보암에게 속한 모든 남자를 ‘쓸어버린다’고 하십니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아르’는 ‘태운다’는 뜻입니다(10절). 더러운 것을 태우듯 그들을 완전히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 둘째, 그들은 죽어서도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저주를 받습니다. 다만 아비야는 평안히 죽어 묘실에 들어갑니다. 심판 중에도 하나님은 그분을 향해 선한 뜻을 품은 자를 구원하십니다. 셋째, 여로보암을 따라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도 그 땅에서 쫓겨나는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선언은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경고입니다. 심판 예고를 듣고도 돌이키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습니다.
● 더 깊은 묵상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을 듣고도 돌이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회개하고 돌이키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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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이 찾아올 때
믿음이란 내가 아니라 믿는 대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내가 지성을 다하면 반드시 보상해 준다는, 투입하면 산출되는 결과물로서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 뜻을 알지 못한 채 “제 병을 낫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만 한다면, 그것은 믿음의 행위가 아니라 주문을 외우는 것입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병이 낫는 것이 하나님 뜻이 아니라면 제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저를 변화시켜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이 바른 믿음입니다.
우리는 병이 낫는 것이 ‘선’이고, 낫지 않는 것은 ‘악’이라는 이분법에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어떤 병을 허락하셨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선’임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일으키시며 네 병이 나았다고 하지 않으시고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라고 하셨습니다. 중풍을 앓는 것보다 더 큰 불행, 더 근원적인 문제는 죄에 속박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병을 치유받기 위해서는 간절히 기도하면서도, 죄 사함을 받기 위해 회개하기는 싫어합니다. 일생 동안 병 한 번 걸리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영혼이 병에 사로잡혀 있느냐, 자유로우냐 하는 것입니다. 존 파이퍼는 “자기 병을 두려워해서 그 병을 하나님보다 더 생각하고 염려하면 그 병이 우상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어떤 질병을 만나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조정민의 답답답 2 / 조정민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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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열왕기상 14장 9절
은혜를 은혜로 알면 말씀의 길로 행합니다. 백성의 반란으로 왕족이 아닌 여로보암이 북 이스라엘 왕이 된 것은 하나님 은혜입니다. 여로보암은 혈통에 따라 왕이 된 유다 왕 르호보암보다 '더 큰 은혜의 수혜자'입니다. 이는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며 그들을 잘 다스려야 할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은혜를 잊은 마음에는 아집과 죄악이 뿌리내리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따르면 모든 좋은 것에서 멀어질 뿐이다. - 맥 브런슨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 삶을 보시는 하나님의 평가 기준이 부나 명예에 있지 않고 철저히 신앙에 근거함을 깨닫습니다. 헛된 욕심으로 사람을 두려워하다 하나님을 등 뒤로 밀어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소서. 제 죄가 가정과 공동체로 흘러가지 않도록 온전히 돌이키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384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하나님은 우리가 다윗처럼 주님의 명령을 지키고, 주님 보시기에 올바르게 행동하며, 마음을 다해 주님을 따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다윗처럼 주님의 명령을 지키고, 주님 보시기에 올바르게 행동하고, 마음을 다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도록 하자
주님께서 내게 맡겨 주신 가족들, 그리고 캄바의 사람들이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주님과 더 깊은 관계 안에 거할 수 있도록 잘 인도할 수 있도록 하자
주님의 분노를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삶이 되도록 하고, 주님을 더 영화롭게 하며, 주님께 온전히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온 이스라엘이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장사하려니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는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에서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 여로보암의 가문 가운데 오직 그 만이 온 백성이 애도하는 가운데 무덤에 묻힐 수 있는데,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선하게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아이’는 어린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국장을 치를만한 청년으로 곧 왕자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지지해주는 것이 바로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선하다’는 사람의 마음가짐의 방향을 가리키는 말로, 곧 그가 가진 자세는 여호와를 향해 선했다는 것입니다.
유대교 랍비 전승에 따르면 이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각종 절기를 지키려 갈 때, 여로보암 왕이 내려가지 못하도록 막은 바리게이트를 그가 치워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진심으로 애도했다는 것으로, 그것을 통하여 아비야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왕세자였다는 것입니다.
부왕의 명령을 어기고 백성들의 편을 들어줄만한 사람은 다름 아닌 왕세자 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본문의 의미하는 바가 있으니, 그것은 그의 죽음을 역설적으로 차라리 행운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로보암 집안의 모든 사람들은 시신마저 방치되어 짐승의 먹이가 되는데, 유독 그만이 묘실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거의 축복에 가까운 죽음이라는 말입니다.
일찍 죽었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고, 반드시 잘 못된 것도 아닙니다. 남의 불행에 대해서 함부로 평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고나 질병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계산하는 것이 다 옳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연현상이 그 좋은 예입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폭풍이 올라옵니다. 많은 피해를 가져 올 수도 있지만 또한 그것 때문에 자연 정화가 되는 유익도 있습니다. 만약 소나기로 인해 급류가 넘치지 않으면 사람들로 인해 더러워진 골짜기가 그렇게 순식간에 말끔해 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재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재해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하늘의 뜻을 사람이 결단코 가늠할 수 없지요. 우리는 한계 있는 존재들이라 그렇습니다. 죽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은 결코 불행이나 저주가 아닙니다. 만약 불행한 일이고, 저주 받은 일이라면 모든 인간은 저주받은 아주 불행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죽지 않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날을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잘 죽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도 만나야 되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비야의 죽음을 통해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볼 수 있고, 알지 못하는 부분을 더욱더 알기를 원합니다.
5/6일 청라호수공원 전도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7~11절 은혜를 저버리고 갖은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노엽게 하고 폐기하듯 하나님을 버린 여로보암과 그 가문에 재앙을 선고하십니다. 맨 먼저 죽은 아들 아비야의 죽음(13절)이 자비로 여겨질 정도로 그 심판은 혹독할 것입니다. 은혜를 떠난 자리에 죄가 들어오고, 죄가 쌓인 곳에 진노와 징벌이 임합니다. 여로보암의 고집(13장 33절)은 마지막 회개의 기회마저 최후의 심판으로 이끌어 버렸습니다.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영적인 오만과 아집은 무엇입니까?
12~16절 여로보암의 집에 대한 심판이 그 아들의 죽음을 통해 실현됩니다. 더 나아가 여로보암의 왕조가 몰락할 것이며, 결국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을 대적의 손에 버리실 것입니다. 흔들리는 갈대처럼 열강들 사이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다 노략의 대상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3절 아들이 병에 걸린 급박한 상황에 처하자, 여로보암은 그가 왕이 될 것을 예언한 선지자 아히야를 떠올립니다(11:29-39). 선지자가 전해준 ‘다윗이 행함같이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을 지키라’고 한 말씀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그는, 자신이 직접 가면 심판이 선언될 것이 분명하므로 아내를 변장시켜 음식과 함께 보냅니다. 심판이 선언된 벧엘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여 선지자를 회유(13:7)하려던 그는 여전히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합니다. 하지만 진실한 회개만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은 결코 거짓 회유책에 속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회개할 일이 있으면 회개하십시오. 그것이 가장 힘든 일이지만,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1~6절 여로보암의 죄악이 극에 달했을 때(13장 33,34절) 그의 아들 아비야가 병듭니다. 그는 자식의 고통 앞에서 회개하기보다, 자신이 왕이 될 것을 예언한 선지자 아히야에게 아내를 변장시켜 보냅니다. 하나님과의 불편한 관계가 변장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 앞에서 본래의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 반하는 거짓된 모습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가리고 감추고 있다면 가식의 가면을 벗으십시오. 회피가 아닌 회개로, 변장이 아닌 변화로 응답하십시오.
4-6절 하나님의 계획을 떡과 꿀로 변경할 수 있다고 자만하는 여로보암이 얼마나 무지하고 무능한지가 즉시 드러납니다. 변장은 헛수고였습니다. 이미 아히야는 시력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로보암과 무관한 인물인 척하는 것도 헛수고였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아히야에게 여로보암의 아내가 방문할 것을 일러주셨기 때문입니다. 발소리만으로도 여로보암의 모든 속임수는 간파당합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서 가면을 벗어버립시다.
7-13절 우상숭배에서 돌아선 나라를 세우라고 왕의 자리에 앉히셨는데, 도리어 더 지독한 우상숭배를 북이스라엘에 이식했으므로, 여로보암의 왕조는 끊길 것입니다. 집안의 모든 아들은 무덤에 묻히지 못하고 개와 새의 먹이가 될 것입니다. 가장 먼저 죽지만 그나마 묘실에 장사될 수 있는 아비야가 여로보암의 집안에서 가장 복된 사람일 정도로 모든 이들이 치욕스러운 죽음을 맞을 것입니다.
14~20절 여로보암의 불순종은 북이스라엘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여로보암과 함께 우상숭배에 참여한 북이스라엘은 흔들리는 갈대처럼 열강 사이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다가 유프라테스강 너머의 나라 앗수르에 멸망하여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죄로 국가 전체가 죄로 물들었습니다. 왕이 권력을 유지하려고 우상을 만들고 우상적 삶을 사니, 백성들도 우상숭배의 길을 따릅니다. 지도자 한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자(9절),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지도자가 공동체의 안녕이 아닌 사리사욕을 추구하면, 모두 나 하나 살자고, 나부터 살자고 하나님의 길을 떠날 것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죄를 짓습니까, 죄에서 돌아섭니까? 나는 남을 희생시킵니까,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합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삶을 말씀으로 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주님께 드릴지 묵상해 봅시다.
기도
공동체-하나님을 속이려 들지 말고 주께로 돌아갈 용기를 얻게 하소서.
이제 돌이키지 않고 자신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16절) 여로보암에게 자신의 아들을 치심으로 그 심판이 시작됩니다. 아들 아비야는 여로보암의 집안에서 여호와가 보시기에 선한 것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는데(13절) 그가 질병을 얻게 된 것입니다.
여러 보험은 아내를 변장시켜 자신을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열 지파를 다스릴 것이라고 알려 준 선지자 아이야가 있는 실로로 향하게 해서 그 아들의 미래에 대하여 묻게 합니다. 하지만 눈이 어두워 질지라도 어두워져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늘 소통했던 선지자 아히야는 그녀가 올 것을 듣고 그 집안에 임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요구 없이 그대로 전하게 됩니다.
여로보암의 아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들의 치유를 위해 간절히 구하거나 하나님의 뜻이 돌이켜지도록 회개 하기는커녕 그저 놀라고 당황하기만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는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사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눈과 귀를 닫고, 자신의 심령을 하나님의 뜻에 비춰 보고 회개하지 않는 모습이 전염된 것과 같이 보입니다.
그 무감각과 무심함의 죄악은 이스라엘 전체가, 그리고 지금 이시대의 인생에게까지 내려오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여기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 하게 하는 사탄의 노리개가 되게 하는 큰 범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늘 주님의 음성을 따라 겸손과 순종으로 나아가고 우리의 죄를 성령의 불로 날마다 거룩하게 태워 거룩한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는 주님의 군사로 살아가게 간절히 소망합니다.
(왕상 14:1~20절)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붙잡는 삶❞
❚ 세상의 권력을 가지고, 권세를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을 꼭 붙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 하나님을 붙잡는 자에게 어떤 복이 있습니까?
➲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때 문제는 해결됩니다(1~5절).
아비야의 질병은 여로보암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병들게 함으로써 여로보암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지 않고 인간적인 계략을 꾸며 죄를 은폐하고자 하였습니다.
변장하는 행위는 하나님 앞에 다른 사람인 체함으로 자신을 속이고 불순종하는 사탄의 행위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복을 받기 원한다면 거짓이 없는 정결한 마음으로 그분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나의 삶에 닥친 인생의 위기는 결국 내 자신의 죄 때문에 벌어진 상황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으로 돌이켜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때 내 인생의 문제는 해결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붙잡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 은혜를 기억할 때 축복은 지속됩니다(6~16절).
수차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죄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으므로 그의 완악한 만큼이나 완악한 형벌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지 않은 최악의 왕이며, 모든 배교적인 왕들의 본보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어떤 자격도 없는 내 자신을 당신의 자녀로 불러 주시고 거룩한 일꾼으로 세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첫사랑과 소명자로서의 첫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죄가 들어오게 되어 있고, 죄가 쌓인 곳에 하나님의 징벌이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패역한 여로보암처럼 나를 택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거나 하나님을 ‘...나의 등 뒤로...’(9절) 버려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고 살아가는 것이 내가 누리는 축복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붙잡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을 순종할 때 믿음은 영원합니다(17~20절).
여로보암의 아내가 일어나 디르사로 돌아가서 집 문지방에 이를 때에 아이가 죽습니다. 아이가 묘실에 장사됨으로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이 성취됩니다(17~18절). 여로보암은 이십이 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한 후에 죽었고, 그의 아들 나답이 왕위를 계승합니다.
내 자신의 신앙의 상태는 결국 내 자신뿐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로보암의 불신앙과 죄악된 모습 때문에 그의 모든 가족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결과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불순종한 결과입니다. 나의 믿음을 견고하게 지켜 나아가기 위해 하나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현재 냉랭한 상태에 있는 내 자신의 마음이 다시금 뜨거워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고, 그 말씀을 삶으로 살아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럴때에 나의 믿음을 영원히 지켜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붙잡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아무리 화려하고 번영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 모든 것이 헛됨을 깊이 깨달을 뿐만 아니라 인생의 처음과 끝이 되시는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섬기며, 순간순간 말씀으로 일상을 점검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왕상 14:1~20절)...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죄를 슬퍼하시고 돌이켜 여호와께로 돌아
오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 마음을 더 알고
매 순간 우리의 삶 가운데 주님을 모시는 인생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임한 고난과 시험의 원인을 우리의 외부에서 찾지 아니하고
우리의 불순종과 교만, 탐욕과 수많은 죄악 가운데
회개하지 않았음을 깨닫는 지혜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아버지께서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모든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아버지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아버지께서 치유 와 회복에 광선을 비춰 주시옵소서.
이 나라 백성의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과 성령으로 돌이켜
그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