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김치가 적당히 익어가는 시기다
푹 삭지도 어중간히 덜 삭지도 않은 아주 맞춤한
상태로 한 포기 꺼낼라치면 납작하니 착착 감겨있는
형태부터 군침이 돌게 한다.
오랜 경험으로 잘 익은 김치는 담겨있는 모양에서
표가 나는데 배추 윗부분이 수북이 들려있으면
숙성이 덜 된 것이고 납작하니 차분히 포개져 있으면
알맞게 숙성이 된 것이라 여긴다.
한 포기 두 포기 꺼내 양푼에 담아 놓고
쫑쫑썰어 김치볶음밥을 준비한다.
맑고 고운 붉은 물이 자박자박 흘러 나와
잘 익은 김치 향에 더하니 평생 이 맛, 이향에 빠져
도둑 같은 세월 원망할 새도 없었지 싶기도,
붉은 물 곱게 든 김치 잎은
따로 몇 개 잘라 내어
물에 살짝 헹군 후 고슬고슬 쌀밥 퍼다
양조간장 조금, 참기름 살짝 쳐
살살 비빈 후에 작은 쌈을 만든다.
손자 녀석이 김치 잎 쌈을 얼마나 잘 먹는지
김에 싸주는 거보다 좋아해서 새 김치 꺼내
썰기 전에 미리 큰 이파리는 따로 빼놓는다.
김치볶음밥
참치와 파를 식용유에 달달 볶는 중에
간장과 고추장 설탕 등등 마구 볶는다
달달 볶이는 중에 김치를 넣고 볶다가
밥을 넣어 펴가며 볶는데 약한 불로
뜸 들이듯 푹 놔두면 밑에서 자작자작 타는 소리
속삭이는 그 소리
참기름 깨소금 은총으로 마무리된 김치볶음밥
물김치와 드시면 좋으실 듯
김치볶음밥에 대한 기억하나
첫째를 낳고 돌도 안 지났는데 시어미 구박에
더해 시누이 참견질과 고자질
두 모녀 패악도 모자라 남편이라고 오입질과
술집 순례로 용안 뵙기도 어려워 기댈 곳 없는
처량한 신세
에라! 나가자! 어디든 가자! 억하심정 품고
젖먹이 업고 집을 나섰다
딱 요맘때
봄은 멀고 내 심정 또한 폭풍 한설 몰아치니
어디 가서 몸이고 마음을 녹일까나
갈 곳이라곤
동해 묵호 논골에 사는 이모네 집
이모부 돌아가시고 막내딸과 살고 계시는 이모
늘 엄마 대신으로 여기며 지냈던 이모
메밀묵처럼 몰캉하고 김치처럼 묵은 정 주던 이모
그런 이모가
처음 하루는 원래의 다정함으로 대해주더니
이틀째부터 말씨와 눈초리에 샛바람이 묻어있다.
성장기를 천대와 멸시 속에 보냈던 내가
그깟 눈치야 바로 느끼지만
어쩌나
떠나왔던 그 집구석엔 죽어도 가기 싫고
그렇다고 갈 데도 없다
그래서 하루 더 묵었다.
젖먹이도 어미의 헝크러진 속에서 나온
젓이 독했는가 잦은 설사에 입에서 단내가 폴폴
삼 일째 이모가 텃밭에 나간 새
점심으로 김치볶음밥을 해 놓고 기다리는데
밥상에 앉은 이모 얼굴색이 새침하게 변하면서
“볶으려면 제대로 오래 볶아야지 이게 뭐야?
”여태 밥하나 제대로 못 볶아서 어쩌냐‘
차갑게 내뱉는 말투엔 너 가 이러니
시집살이 당할 만하지라는 어감
그런 다음
볶음밥이 든 냄비를 거칠게 홱 들고 다시
부엌 연탄불 위에 얹어 놓고 나가는데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점심도 못 먹은 채
올 때와 같이 꽁꽁 얼어붙은 마음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던 그 날
돌아와서 두 배로 당했던 그 고초와 굴욕
병자호란의 삼전도 굴욕만큼? 은 아니지만 여튼
이모와 나는 참 친했는데
친구처럼 별별 이야기도 다 하고
그랬는데 그땐 왜 그랬을까?
상처 입은 짐승을
다시 상처입혀 내쫓다니
그깟 김치볶음밥 덜 볶은 것이
무에 큰일이라고
아니 볶음밥은 잘 볶았는데
절대 설렁설렁 볶지 않았는데
세월이 흘러 80 넘은 이모는 폐암으로
힘들어하며 우리 집에 오셨다.
가까운 곳에 막내딸이 있는데도
내가 편하다고 내 집에서 며칠 계시다가
내 딸이 일하는 종합병원 병동에서 운명하셨다.
당시 내 딸이 얼마나 살뜰히 잘 보살펴 주었던가는
정신이 맑을 땐 딸 손을 잡고 고맙다 고맙다 소리로
대신했다 덧붙여
니 엄마한테 말해라 딸 잘 키웠다고
요즘은 김치볶음밥 자주 해 먹지는 않는다
먹을 게 많은 세상에 김치볶음밥은 이제
가까이하기엔 먼 그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첫댓글 차분하게 펼쳐진글에 본인의 서러움은 과장도 없이 보는사람의 가슴을 흔들어놓으니 참으로 대단한 필력이십니다~~ 운선님의 삶을 응원하고 싶어 댓글남깁니다~~
운선님표
김치볶음밥 맛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김장김치 익으면
반찬이 마땅치
않을때 김치넣고
볶으면 꿀맛이래요
세월은 추억을 만들지요
김치볶음밥에도 그런 사연이 있으시군요.
험한 세상 이겨내신
운선작가님
대단하십니다.
글 읽다가 가슴이 먹먹합니다~~ 설움설움....ㅠㅠ~
손주가 좋아한다는
김치쌈. 저도 한번 실험한번 해보고 싶어요
김치볶음밥에 대한 이모님께 받은상처
꽤나 껐던것 같아 위로 보냅니다
운선선배님의 대단한글 엄지척입니다♡♡
거친 겨울바람 속에서
아이들 예쁘게 키우고 글도 잘 쓰는 여인...🦋
글을 읽는데,
처음에는
김치 볶음밥을
맛있는 밥으로 알았는데요..
후반에 와서는
서러운 김치볶음밥이 되어
입맛까지
깔깔하게
느껴집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 일과 마치고..
집으로로 턴을 했읍니다
어제 저녁에..
집사람이 김치냉장고 에서
꺼네 놓은 김치가..
약간 삭아 있는것이
맛이 괴안터라고요...
옛 시절에 ..
서러움이 많이 있었군요
현재는..
조치요..ㅎ
가장 중요한 것이
현실이 아닐까 싶어요
응원하겠읍니다
오늘 점심으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서 도시락으로 싸왔는데
반찬 따로 담기 귀찮아서 만들었던 김치볶음밥이
운선님 글을 읽자니...내가 다 서러운 느낌이..
잘 읽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요즘 테레비에 보면 허영만의 "백반기행"
이만기의 "동네 한바퀴"같은 프로가 있죠.
운선님의 "글따라 음식따라" 시리즈로 라디오
방송을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단슨히 맛난 음식을 내세우는 주제보다는
이렇게 삶의 애환이 담긴 시리즈...
대박 칠 것 같네요.
에구~
몹쓸 넘의 김치볶음밥..
애궂은 김치볶음밥에
푸념을 더 해봅니다..
나의 작은아들..
엄마 가고나면
기억할 것이 김치볶음밥
밖에 더 있을까 싶게
좋아라 합니다..
성님..
먹거리 많다해도
가끔씩
김치볶음밥 푸지게 만들어
큰수저에 고봉으로
푹푹 퍼먹어 봅시다..ㅎ
메밀묵 처럼 몰캉하고. 김치처럼 묵은정 주던 이모......
이 구절에 저는왜 눈물이 날까요 .......이모도 없는데.....
손녀가 좋아하는 김치볶음밥이에요
주말에 해서 먹어야겠어요
어메
엄마
우리 엄마
60년대
강원 홍천 북방 구만리
한복판
벼집지붕 엮은 초가집
마구깐엔 송아지가 엄메메
닭장엔 꼬꼬댁
꼬끼오
멍멍집엔 덕구가 새끼품고 쭉쭉쭉ᆢ ᆢ
화로불 위에 양은 냄비는
신김치 묵은김치
송송 썰어서 몇년 묵은지 모르는 된장
주걱바가지에 퍼 오셔서 지글 복을 얌얌얌 ㅡ 울엄마 너무
보고싶다
빙그레 웃으면서 엄지 척! 추천합니다.
저는 서해안 갯바다 근처의 산골태생인데도 갯것 비린내를 싫어했지요.
나이 든 지금에는 더욱 더 심하게 자극하대요.
전남 광양시 갯바다 근처 출신인 아내는 생선비린내가 하나도 안 난다면서 생선을 밥상 위에 올려놓으니....
정말로 마음이 안 드는 밥상이지요.
그런데 위 글. 운선작가님의 글에서는 맛있는 김치볶음밥...
저는 이런 류의 음식을 좋아하지요.
운선님의 음식솜씨를 한 번 슬쩍 눈여겨봤으면 싶네요.
토박이 우리말을 구수하게 되살려서 쓴 위 글이기에 저는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시골촌놈이 서울에 올라와서 살자니.. 답답해 미칠 지경입니다.
시골 텃밭에서 과일 농사, 야생화를 키우고 싶기에....
서울 아파트 안에 화분 110개를 올려놓고는 화분농사(?)를 짓고 있지요.
밤중에 베란다에 불 켜서 화분 속의 민달팽이를 잡아내는 게 일거리?
운선 작가님의 글 또 기다립니다.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이기에....
여자분들 예전에는 참 힘들게들 사셨어요.
남자들이 예전에는 거의 그렇듯이 부모님편이였어요.
저도 미안합니다.
운선님!
지난 이야기라서 다행입니다~~
그시절에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을까?
이젠 맛있는김치볶음밥도 아니 더 맛난것도 드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에효..
모진 세월 이였습니다.
마음이 짠~~합니다.
앞으로 김치 볶음 밥 먹을 때면 운선님이 생각이 나겠죠?
잘 이겨 내셨어요.
장하십니다.
오랜만에 들렀다 읽었습니다
그냥 지나가도 뭐라카는 사람도 없는데
헝크러진 내속의 젓에서 그만 멈추었습니다 ~
울운선님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간혹 모진 사람들이 있기도 합니다.
상처 받으며 자라서 그 상처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더러는 있습니다.
울울선님은 진정한 승리자 이십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아픔을 디딤돌 삼아 바르게 잘 성장 하셔서 멋진 삶을 일구고 계시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울운선님 삶을 큰 박수로 응원하며 추천하고 갑니다.
울운선님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
젊을적에는 김치 볶음밥 해주면 아내와 애들이 좋아 했었는데 늙어서 안하게 되네요.
다음주말 해서 아내에게 점수 따야겠습니다.
김치볶음밥은 정말 맛있어요
제가 김장을 많이 하는 이유중 하나 지요
갓난아기와 함께 어려운시절을 극복 하시고
지금은 유명 작가의길로 탄탄대로를 걷고 계시는 운선님
축복 합니다
늘 웃음가득한 날들 되셔요 ^^
김치볶음밥에 그런 사연이 있으시군요.
아니 이모란 분이 왜 그랬을까 도무지 이해가 안되네요.
그 험한 길을 이겨내신 운선작가님
앞으론 꽃길만 걸으시면서 쉬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