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성남권 고등부 담당입니다. 우리 '21세기 사명회'의 필독도서라 할 수 있는 신인간혁명[봉추]를 구하기 어려워 하시기에 제가 여러날 도전하여 타이핑을 했습니다.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봉추]#1~끝
1...........................
젊음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그 가슴에는 끝없는 희망의 날개가 펼쳐지고 뜨거운 정열이 맥박치는 향상의 마음이 샘처럼 넘치고 있다.
인류의 무한한 재보(財寶)-그것은 다음 세대를 담당하는 젊은 힘이다.
"이번에 청년부에 새롭게 '고등부','중등부'를 설치하겠습니다!"
청년부장 아키즈키 에이스케가 이렇게 발표하자 도쿄 다이토 체육관은 대박수로 흔들렸다.
1964년 6월1일에 거행된 6월달 남자부 간부회에서의 일이다.
고등부는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부서로 학생부에 소속되고, 또한 중등부는 중학생과 초등학교의 5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지부마다 남녀 청년부가 육성해 가기로 했다.
이 발표로 가슴을 두근거리며 크게 기뻐한 것은 고교생들이었다.
당시 고교생은 남녀 청년부원으로서 활동하며 제일선 조직의 리더로서 열 명 정도의 멤버를 책임지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야마모토 신이치의 주변에서 이 고등부, 중등부에 대해 처음으로 화제가 되었던 것은 2개월 정도 전이었다.
신이치는 청년부의 몇몇 수뇌 간부들과 협의했다.
그 때, 학생부장인 와타리 고로가 학생부를 강화하기 위해 재수생과 고교3학년생 등도 학생부가 격려해 가고 싶다는 제안을 했던 것이다.
신이치는 말했다.
"재수생은 그 방향으로 해 가는 건 좋지만 고교생에 대해서는 3학년생뿐만 아니라 전 고교생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가자. 이것은 앞으로 일본의 큰 문제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는 오래 전부터 학회뿐만 아니라 일본의 장래도 생각해 고교생을 육성하는 중요성을 통감하고 있었다.
고교생이 남녀 청년부로서 활동하는 것은 세대를 뛰어 넘는 교류를 도모함으로써 신심의 촉발을 가져온다는 점에서는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고교생에게는 학업에 면려하게 해 주는 조직의 모습이 중요하다고 신이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고교생만의 독자적인 조직을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강한 생각이 있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예를 들면 학생부가 있으니까 고등부를 만든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 전후의 베이비 붐 세대가 고교생이 되어 숫자도 상당히 많고 잠재적인 힘도 매우 크다. 하지만 그 에너지를 어떻게 끄집어 내면 좋을지 모르는 것이 지금의 사회현실이다."
2............................
남자부의 어느 간부가 발언했다.
"실은 중학생이나 초등학생 고학년 중에도 남자부,여자부로서 활동하고 싶다는 멤버가 늘고 있습니다. 고교생의 경우도 그렇습니다만 학회의 어린이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신심에 면려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자라고 있으므로 자신들도 학회 활동을 하고 싶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남녀 청년부의 경우, 평일 저녁의 회합도 많은데다가 회합은 오후9시 무렵이 되어야 종료됩니다. 그러한 시간에 중학생이나 초등학생이 활동에 참가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중학생의 경우도 독자적인 조직을 만드는 건 어떻겠습니까?"
남자부,여자부에게는 어린이들에게도 강하게 매료시키는 빛남이 있었다.
이 4월의 시점에서 남자부는 연간목표인 부원150만의 달성을 향해 돌진하는 중이었다. 한편, 여자부도 부원 100만을 목표로 환희에 불타 분투하고 있었다.
그 청년들의 힘은 각 지부와 지구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각부 멤버의 '희망의 별'이자 '학회의 얼굴'이라 해도 좋았다.
그 모습은 또한 어린이들이 동경하는 대상으로도 되고 있었던 것이다.
학회원의 자녀에게 장래 무엇이 되고 싶은가를 물으면 '남자부!','여자부!'라고 대답하는 어린이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남녀 청년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날을 굼꾸면서 학회의 음악대나 고적대에 들어가는 멤버도 많았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말했다.
"그렇군.중등부를 만드는 것도 검토해 보자.중요한 착안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번 발표된<<청소년백서>>에서도 청소년의 비행화가 유달리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 두드러졌습니다. 일본의 미래를 생각하면 앞으로 젊은 세대를 어떻게 육성해 가는가 하는 점이 극히 중요한 테마가 될 것이다. 그것을 진정으로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창가학회 밖에 없다."
이 해 3월에 발표된 <<청소년백서>>(1963년판)에 의하면 소년범죄는 해마다 증가일로를 걷고 있엇다.
더구나 범죄의 저연령화가 진행되어 특히 14세부터 15세에서는 전년도에 비해 35퍼센트 증가하고 있었다.
게다가 중류 가정의 자제들의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3..........................................
청년부 수뇌 간부는 진지한 얼굴로 야마모토 신이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청소년백서>>의 내용에서 '도시화'가 청소년의 비행에도 깊게 관여하고 있다고 논했던 점이 강하게 인상에 남아 있어요.
대도시의 '번화가'같은 곳으로 놀러가면 많은 사람이 있으므로 그 곳에 파묻혀 버린 듯한 감각이 된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감이 희박해져 무책임해지고 잘못된 행동을 일으키기 쉽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 요즘 소년의 범죄는 이전처럼 빈곤이 원인이 아니라 보통의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범죄로 빠지고 있다고 했는데 이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일본은 전후의 빈곤을 완전히 벗어났다. 경제적으로는 확실히 풍요로워졌다. 대학이나 고등학교로 올라가는 진학률도 상승하고 있다. 또한 거리의 경관도 변했다. 특히 이번 가을의 도쿄 올림픽을 목표로하여 도쿄 거리는 완전히 정비되어 양상은 일변했다. 하지만 소년범죄는 늘어나고 있다. 비행화 경향도 빨라지고 있다. 이것은 왜라고 생각하는가?"
여자부 간부가 대답했다.
"어린이들이 자신에게 거는 것이 없이 정신적인 공허감이 쌓여 있는 탓이라 봅니다. 시험에서 이기는 것밖에 의미가 없다는 말을 듣고 있으므로 달리 인생의 목표를 걸 만한 것을 전혀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고..."
계속해서 남자부 간부가 의견을 말했다.
"저도 백서에 있듯이 자기라는 존재감이 희박해지고 있는 경향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나 따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존재는 아닌가'하는 기분이 모두에게 있는 듯합니다. 그런 자신에 대한 불안과 초조가 비행을 하게끔 몰아붙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이치가 대답했다.
"즉, 자기라고 하는 근본적인 가치도 인생의 가치도 찾아 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무엇을 위한 인생인가를 알 수 없게 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도 '사람 만들기'라 하여 교육에 힘을 쏟아오기는 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사명을 가르치고 인생의 가치를 창조하는 교육과는 거리가 먼 상태다. 또 인간으로서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가르치는 적도 없었다. 결국 인간을 위한 철학이 없는 까닭에 지금도 진정한 인간을 만들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4....................................
야마모토 신이치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일본의 미래,세계의 미래를 생각할 때 고교생이나 중학생을 어떻게 육성해 가는가는 극히 중요하다. 그리고 그 모범을 보여 가는 것이 학회의 사명이고, 앞으로 해야 할 사회적인 역할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모두가 찬성한다면 고등부, 중등부를 결성하려고 생각한다."
"예, 부탁드립니다."
모두의 활기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후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아키즈키 청년부장을 중심으로 자주 서로 이야기해 주길 바란다. 결성은 먼저 고등부부터 하자. 5월3일의 본부 총회를 마친 다음이 좋겠다. 그렇다 해도 나는 계속해서 해외로 나갈 것이니 돌아온 시점에서 발표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기 바란다. 즉, 고등부는 '본문의 시대'로 들어서서 최초로 결성되는 부서가 된다. 바로 '본문의 시대'를 담당하기 위한 젊은 조직이다."
이후, 청년부장의 아키즈키 에이스케를 중심으로 청년부의 수뇌에서 몇 번인가 협의를 반복하여 고등부, 중등부 결성의 대강이 짜여져 갔다.
고등부에 대해서는 모델 케이스로서 우선 수도권, 간사이에서 조직화하기로 했다.
그 준비에는 학생부 출신인 멤버가 대응하기로 되었다.
OB부는 학생부원의 지도, 육성을 위해 지난 해 6월에 설치한 부문이고 남녀 청년부의 중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포진은 청년부의 최우수멤버로 고등부를 키우자는 의욕을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고등부의 경우, 고교생이 자주적으로 활동을 추진해 가는 것을 목표로 우선 각 본부마다 핵이 되는 멤버를 남녀 각 50명씩 만들어 간다는 방침이 결정되었다.
게다가 당면한 활동으로서는 도쿄에서 6월에 각 본부마다 결성회합을 열고, 이후 본부단위로 일요일에 교학연찬 등을 해 가기로 결정했다.
한편, 중등부는 각 지부마다 남녀 청년부 간부가 담당하고 일요일에 부원회를 개최해 가기로 되었다.
이리하여 6월 1일에 있을 남자부 간부회에서 고등부,중등부 설치에 관한 발표를 하기로 했다.
또한 그 다음 2일에 하는 여자부 간부회에서도 발표했던 것이다.
세이쿄 신문에서 이 발표를 알게 된 전국의 고교생과 중학생들의 기쁨은 컸다.
청년부 간부에게는 문의가 쇄도하였다.
5..........................................
6월1일의 남자부 간부회로부터 6일 후인 7일 오후, 도쿄 고토구의 도쿄 제2본부 회관에는 하얀 여름교복을 입은 남자 고교생이 잇달아 모여들었다.
활짝 개인 일요일이었다.
그 어느 얼굴에도 기쁨이 넘쳐 회장(會場)의 객실은 젊고 싱싱한 열기로 넘치고 있었다.
이 날, 도쿄에서는 각 본부별로 고등부 결성의 모임이 열려, 도쿄 제2본부에서는 오후 3시부터 남자 고등부 결성식이 개최되었던 것이다.
모두 원기왕성하게 학회가를 합창한 뒤, 학생부 OB부원 등의 선배 간부가 "나의 고교시절을 돌이켜보며"라는 제목으로 체험을 피로했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 선배들의 체험담에 참가자의 마음은 하나로 융화되어 갔다.
이윽고 담당 간부를 둘러싼 질문회 시간이 되었다.
학업과 특별활동의 양립문제나 대학 진학에 관한 관점 등 질문이 활발하게 쏟아져 나왔다.
답변하는 담당 간부도 진지했다.
고교생의 구도심과 선배의 진심어린 지도가 환희의 폭발을 가져오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은 지나갔다.
"그럼, 질문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담당자가 이렇게 말했을 때였다.
갑자기 회장(會場)의 왼쪽 입구 부근에 떠들썩한 소리가 났다.
"오,수고하십니다.!"
그 곳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회장인 야마모토 신이치였다.
환성과 함께 대박수가 터졌다.
고교생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담당 간부들은 놀라 당황하였다.
신이치의 뒤에는 청년부장인 아키즈키 에이스케와 한 사람 더 동행한 간부가 있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여러분의 미래를 향한 출발을 축하하여 오늘은 함께 근행을 합시다."
신이치는 빙그레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는 아키즈키로부터 이날 고등부가 결성식을 거행한다는 보고를 듣자, 고교생들을 한 번만이라도 만나서 한 마디라도 격려하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을 쥐어 짜듯 가까스로 만들어 내 이 도쿄 제2본부의 결성식에 들렸던 것이다.
모두 야마모토 회장과 바로 가까이 접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신이치의 독경에 맞추어 톡톡 튀는 듯한 기쁨의 목소리가 창화(唱和)했다.
근행이 끝나자 신이치는 참가자에게 따뜻한 눈빛을 보내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서들 무릎을 펴고 편한 자세로 있어 주세요.
사람의 일생은 10대,20대에서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 어떠한 전진을 했는가로 명확히 정해져 버리는 법입니다."
6.........................
모두 야마모토 회장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지도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쪼록, 여러분은 앞으로 10년간, 열심히 공부하고 배우고 배워서 견고한 인생의 토대를 만들어 가 주세요.
그리고 장래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인류의 평화를 위해 여러분이 학회의 토대가 되어 광선유포를 뒷받침해 주십시오.
세계의 지도자를 보면 대부분은 십대, 이십대에 인생의 철학, 사상, 신념을 갖고 그것을 관철하여 삼십대, 사십대에 위대한 일을 이룩해 내고 있습니다.
청춘시절에 앞으로 살아가는 자세의 골격을 만들고 나아가 그것을 완성시키는 데서 확실한 인생의 길이 있습니다.
그 의미에서 여러분도 신심에 면려하고 제목을 끝까지 올려서 최고의 생명철학인 불법을 인생의 근본사상으로 만들어 가 주십시오."
이어서 동행한 간부가 인사를 했다.
아키즈키는 이렇게 호소했다.
"오늘은 각지에서 고등부의 결성식이 거행되고 있습니다만, 야마모토 선생님이 출석하신 것은 오직 하나, 이 회장뿐입니다.
이 회합이야말로 광선유포의 역사에 남을 고등부의 결성식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고등부 부원의 모범이 되어 주십사고 염원하는 바입니다."
결성식을 마치고 별실로 이동한 신이치는 담당 간부들을 방으로 불렀다.
"아,수고가 많습니다!
고등부는 미래의 광포를 생각했을 때, 너무나도 중요한 부서가 될 것입니다. 본래는 내가 한 사람 한 사람의 멤버를 육성해 가고 싶지만 도저히 거기까지는 할 수 없다.
그러기에 여러분의 힘을 빌리고 싶은 것입니다. 나를 대신하여 멤버를 격려해 주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어떠한 것이든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질문해 주십시오."
그러자 한 사람의 담당 간부가 질문했다.
"고등부나 중등부를 지도하는 데 가장 강조해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신이치는 즉시 대답했다.
"어디까지나 면학제일이고 학문에 힘쓰도록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근본은 신심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공부하는가 하는 목적을 명확히 해 주면 공부에 임하는 자세도 자연히 적극적으로 되어 가는 법입니다.
또 많은 선배, 좋은 상담자가 주위에 있으면 안심하고 자신의 인생행로를 정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싹이 미래로 쑥쑥 자라도록 응원을 해 주는 것이 고등부, 중등부 결성의 취지입니다."
7.........................
다른 담당 간부가 질문했다.
"아이들에게 종교를 철저히 가르치는 것은 어떤가 하는 사람도 있는 듯합니다만."
야마모토 신이치는 말했다.
"풍부한 마음을 키워 주고 또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자세의 골격을 만들어 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기에 젊을 때부터 신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으로서 대성하기 위해 신앙의 '종자', 신념의 '종자', 철학의 '종자'를 심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래의 사회 지도자를, 학회의 지도자를 육성해 가는 일이 담당자인 여러분의 사명입니다."
질문은 더욱 계속되었다.
"고등부 활동으로서 포교 등은 행하지 않는 것입니까?"
신이치는 대답했다.
"포교를 고등부 활동으로서 내세울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고등부의 경우, 얼마만큼 학업에 힘을 쏟았는가 하는 것이 승부입니다.
그리고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풍요로운 마음의 소유자로 쑥쑥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해 가길 바랍니다.
또 고등부라 하면 이미 어른입니다. 옛날이면 벌써 성인식을 끝냈습니다. 따라서 담당자로서는 어디까지나 대등한 인격으로서, 젊은 동지로서 접해 가야 합니다.
같은 인간으로서 인격을 촉발해 나가는 것이 참된 지도입니다.
여러분들 청년부 선배의 격려가 어떤가에 따라 고등부 부원이 대수로 성장할 수 있는가 어떤가가 결정됩니다. 부탁합니다."
기념할 만할 결성식을 마친 고등부에서는 이후, 각 본부마다 한달에 1,2회 어서강의 등 교학연찬회를 열기 시작했다.
고등부 모임에는 활기가 있었다. 언제나 젊고 싱싱한 힘과 정열이 넘치고 있었다.
남자 고등부를 맡는 도쿄 담당 간부의 책임자는 학생부 출신인(OB부원이라 함)고모리 히로아키가 맡고 있었다.
이 고모리를 중심으로 담당 간부가 협의하여 여름방학이 끝나는 9월에는 도쿄를 중심으로 남녀 고등부 부원이 함께 한자리에 모여 첫 부원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담당자들은 고교생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런 가운데 고교생에 관련된 여러 가지 상담을 가지고 들어오게 되었다.
공부의 문제가 있는가 하면, 장래의 진로에 관한 상담도 있었다. 그 중에는 연애문제 등 부모님에게는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을 이야기하는 고교생도 있었다.
담당자는 남자부, 여자부의 간부로서의 활동이 있어 극도로 다망하였다. 하지만 고등부 육성을 최우선으로 하여 멤버의 격려를 위해서는 시간을 내 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8.......................................
9월20일 일요일, 제1회 고등부 부원회가 도쿄 세타가야 구민회관에서 개최되었다.
개회하기 1시간 전인 오전 9시에는 수도권에서 모여든 고교생 1,800명으로 장내는 이미 가득 찼다.
부원회는 학회가 '신세기의 노래'의 대합창으로 막을 열었다.
어느 얼굴도 환하게 빛나고 청신한 활기에 싸여 있었다.
석상에서 수도권의 17개 본부에 있는 고등부 부원 가운데 선발된 남녀부장이 임명되었다.
앞으로는 이 멤버가 중심이 되어 자주적인 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고등부는 본래, 고교생의 손으로 운영해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활동의 주체자는 어디까지나 고교생이고, 그 활동을 지원해 주는 것이 담당간부다.
그것은 회장 야마모토 신이치의 생각이기도 했다.
이어서 이 날, 임명된 남녀부장의 대표가 포부를 발표했다.
"광선유포의 사명을 자각하고 자기의 인생의 토대를 구축해 가면서 우정의 테두리를 넓혀 가겠습니다."
"10년 후, 20년 후의 대인재가 되기 위해 청춘시절에 실력을 쌓아 자신을 끝까지 연마해 가겠습니다."
시원스런 결의로 모인 멤버도 또한 멩서를 새롭게 했던 것이었다. 계속해서 간부의 지도로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이사장인 하라야마 고이치가 인사를 했다.
이 고등부 부원회를 보고 내심 가장 놀라고 있었던 것은 하라야마였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8월 초에 하라야마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내년부터는 고등부의 하계 강습회를 실시해도 좋지 않을까. 또 고등부 대표에게도 내가 어서강의를 해 가고 싶다.
아무튼 나는 고등부 육성에 전력을 기울이려고 한다."
그 말을 듣자 하라야마는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저는 야마모토 선생님이 고교생에게 직접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갑니다.
고교생의 경우, 아무리 결의를 굳혀도 정말로 생애에 신심을 관철해 간다는 보증은 없습니다. 물론, 미래를 위한 포석은 중요하지만 우선해야 할 일이 많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지부장이나 지부부인부장에 대한 지도도 부탁드리고 싶고 남녀 청년부 간부에 대한 지도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하라야마뿐만 아니라 당시 최고 간부의 솔직한 심정이기도 했다.
9.........................................
야마모토 신이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하라야마 고이치에게 말했다.
"그 우선순위를 생각한 상태에서 나는 지금 고등부 육성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눈앞의 일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30년후, 40년 후의 학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때, 학회의 중핵으로 되어 있는 것이 지금의 고교생입니다.
모종을 심지 않으면 나무는 자라지 않습니다. 대수가 필요한 때가 되어 모종을 심는다 해도 때는 이미 늦어 소용 없게 됩니다.
손을 써야 할 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가장 애쓰고 힘을 쏟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모종을 심을 때입니다. 시들지 않고 확실히 뿌리를 뻗어 자라날 수 있는가, 태양 빛이 닿는가, 물이나 비료는 충분하게 주고 있는가, 잘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3,4년은 고등부에게 지나칠 정도로 공을 들이지 않으면 광선유표의 미래는 실패합니다."
하라야마는 "아,예에..."라고 대답은 했으나 아직 이해할 수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신이치는 말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의미는 30년 후에 명확해질 것입니다."
또한 이 제1회 고등부 부원회의 전날, 신이치는 하라야마에게 이야기했다.
"내일 고등부 부원회는 하라야마 씨가 담당이지. 실은 내가 참석하고 싶지만 내일은 손님이 오십니다.
고등부 부원은 모두 학회의 미래를 담당하는 소중한 리더입니다. 그러니까 나 대신에 단단히 격려해 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고교생들의 기세, 얼굴색, 분위기를 잘 보고 내게 알려 주세요."
하라야마는 야마모토 회장의 말을 생각해 내면서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시선을 쏟고 있었다.
"....모두가 실로 좋은 표정을 하고 있다. 학회가의 지휘 하나를 보아도 당당하여 남녀 청년부 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 하지는 않다. 게다가 시원스럽다.
또 체험 발표와 포부에는 창가의 후계자로서 미래의 광선유포를 떠맡고자 하는 기개가 맥박치고 있다.
세간에서는 고교생의 비행화가 문제시되고 있지만 도저히 같은 고교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하다."
하라야마는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해 나갔다.
"야마모토 선생님은 여러분들에게 절대적인 기대를 걸고 계십니다.
광선유포는 기나긴 도정이지만, 연배자에게는 앞날이 짧습니다. 따라서 장래의 일은 여러분에게 의탁하는 이외에 없다는 것이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10.......................
하라야마 고이치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야마모토 선생님은 오늘은 참석할 수 없었지만, 어제 만나 뵈었을 때에 여러분을 상당히 염려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고등부 부원회에 다녀와서 여러분의 얼굴빛이 어떠한가, 분위기는 어떤가 등 모두 보고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의 모습을 보고, 참으로 건강하고 발랄한 여러분에게 저는 놀랐습니다. 이 정도라면 걱정 없다. 선생님의 기대에도 충분히 보답할 수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라고 저도 마음 든든하게 느끼고 있는 바입니다.
돌아가면 이 모습을 즉시 선생님께 전해서 기쁘게 해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라야마는, 고등부 부원은 '일본의 보물'이라 말하고 5년,10년 후를 목표로 하여 면학에 힘쓰며 성장해 가기 바란다고 이야기하며 말을 끝맺었다.
수도권에 이어서 9월23일의 '추분일'에는 간사이에서도 오사카의 스이타 시민회관에서 제1회 고등부 부원회가 열렸다.
6월 1일의 고등부 결성의 발표 이후, 간사이에서는 간사이 학생부장인 오야 요시히코가 중심이 되어 활동을 개시해 왔다.
이 간사이의 고등부 부원회에는 오사카를 비롯해 후쿠이, 교토, 효고 등의 지역에서도 구도심이 흘러 넘치는 고등부 부원이 부랴부랴 달려 왔다.
이 부원회에서 남녀 8명씩, 합께 16명의 부장이 간사이에 탄생했던 것이다.
수도권과 간사이에서의 고등부 부원회의 개최가 세이쿄 신문에 보도되자 전국 각지에 커다란 파동이 넓혀져 나갔다.
전국의 고교생이 "하루라도 빨리 우리들의 지역에도 고등부 결성을" 하고 기원하며 그 날을 기다렸다.
한편, 수도권에서는 더 나아가 10월에 제2회 고등부 부원회를 열어 그 석상에서 조직의 확충을 꾀하고 총지부단위로 그룹장제가 배치되었던 것이다.
포진은 착착 정비되어 갔다.
이 고등부 부원회에서 학생부장인 와타리 고로로부터 고등부도 노래를 만들면 어떤가 하는 제안이 있었다. 참가자는 환성을 지르고 대박수로써 찬성했던 것이다.
고등부가의 제작은 고등부 부원이 대망하고 있던 일이었다.
곧 남녀부장에 의한 고등부가 작성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유지에게 작사를 호소했다.
우리들이 하겠다며 많은 멤버가 작사에 도전하고 곧바로 50여개에 가까운 가사가 모였다.
작성위원회에서 검토가 행해졌다.
11...................................
고등부의 젊은 부장들은, 우리들의 고등부가를 다음 번 11월달의 부원회에서 꼭 발표하자고 굳게 마음먹고 있었다.
모아진 가사는 역작이기는 했으나 결정타가 없었다. 결국, 작성위원회의 멤버가 만들어 내기로 하였다.
세타가야 구내의 남자부장 집에 모여서는 모두 함께 가사를 짓기 시작했다. 가다가 막히면 열심히 창제했다.
그리고 드디어 가사가 만들어졌다. 가사는 담당 간부의 중심자인 고모리 히로아키가 봐 주기로 했다.
고모리는 고등부 부원으로부터 가사를 받자, 청년부장인 아키즈키 에이스케에게도 함께 검토해 주기를 부탁했다.
가사에는 고등부 부원이 필사적으로 몰두한 노고의 흔적이 배어 나와 있었다.
극히 일부가 첨삭되었지만 거의 원안 그대로 가사가 결정되었다.
아주 잘 만들어졌다는 것이 아키즈키 측의 감상이었다.
이리하여 완성한 고등부의 노래는 11월23일에 남녀별로 개최된 제3회 고등부 부원회의 석상에서 발표되었다.
전진하라 명랑하게
미래를 향하여
기초를 구축하는
형설의 때
큰 뜻 품고
모두 함께
구원의 이상
굳건히 세우니
희망 빛나는 고등부
경쾌한 템포로서 지금까지의 학회가에는 없는 청신한 숨결로 넘치고 있었다.
회합이 시작되기 전, 고등부가 연습이 거행되자 모두의 빰은 홍조를 띠었다.
바로 자신들의 마음이 실린, 심정에 딱 들어맞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들의 노래이니, 힘차게 부릅시다!"
하지만 시간 관계상 한두 번 부른 것만으로 연습시간은 끝나 버렸다.
회합이 시작되었다.
고등부가의 발표 순서로 모두 합창하기로 되었다. 그런데 충분한 연습시간이 없었던 까닭에 목소리는 맞지 않았다.
청년부장인 아키즈키가 일어서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모두 아직 외우지 않았으니까 처음은 일절씩 끊어서 노래하면 어떨까.
올바르게 외어서 우선 기초를 굳히는 것입니다. 이 가사 속에 '기초를 구축하는 형설의 때'라고 있지 않은가."
웃음이 번졌다.
일절씩 연습하니, 놀라울 정도로 잘 부르게 되어 이윽고 의기왕성한 대합창이 울려 퍼졌다.
12................................
야마모토 신이치는 고등부가 결성된 그 날 이후, 멤버의 건강과 면학의 증진을 계속해서 열심히 기원해 갔다.
그런 만큼 수도권과 간사이의 고등부 활동이 궤도를 타면서 대성공을 하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그는 드디어 제2단계를 맞이했다는 것을 느꼈다.
신이치는 청년부 간부와 협의 끝에, 이듬해 1월에는 고등부 조직을 전국으로 넓혀갈 것을 결의한다. 또 중등부도 1월에는 도쿄와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등의 주요 도시에서 결성하기로 결정했다.
새해가 되어 1965년 1월15일, '성인의 날'에 고등부는 수도권과 간사이를 제외한 전국의 27개 본부에서 발족의 모임을 개최했다. 한편, 중등부는 이 날, 전국의 24개 본부에서 결성을 보았던 것이다.
이 전 날, 신이치는 청년부장인 아키즈키 에이스케에게 말했다.
"내일은 전국 각지에서 고등부와 중등부가 출발하는 부원회가 있는데 아키즈키 군은 어디에 출석하기로 되어 있나?"
"예, 저는 중등부는 도쿄 제4본부의 결성식에 나가고, 고등부는 수도권의 부원회에 출석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내일은 미래를 향한 새로운 출발로, 지극히 중요한 날이네.
여기서 장래를 위해 고등부, 중등부의 핵을 단단히 굳혀 두고 싶다.
그것을 위해서 지금까지 고등부 부원으로 되었던 수도권과 간사이멤버, 거기다가 내일 모여드는 전국의 멤버를 고등부의 1기생으로 하는 건 어떨까.
또 중등부도 이 날의 결성식에 참가한 멤버를 1기생으로서 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모두의 자각이 깊어질 테니까 말이야."
"예.꼭,그렇게 해 주십시오."
신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부장이 찬성이라면 그렇게 하자.
그 다음엔 중등부에 대해서인데 지도를 해 가는데 지침이 필요하지 않을까?"
"예에, 확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녀 청년부의 담당자들도 중등부에게는 무엇을 호소하고 어떻게 지도해야 좋은가, 망설이고 있는 모양입니다."
신이치는 말했다.
"그렇겠군.
중등부가 목표로 하는 것이 지역에 따라 제각각이면 곤란하므로 지도의 지침을 제시해 두고자 한다.
미안한데, 메모를 해 주지 않겠는가?"
13..................................................
아키즈키가 수첩을 꺼내자 야마모토 신이치는 막힘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1.근행을 착실히 합시다.
2.공부를 열심히 합시다.
3.학교에 빠지지 말고 잘 다닙시다.
4.부모님께 걱정을 끼치지 않도록 합시다.
5.올바르고 강하며 명랑한 나날을 보냅시다.
이것으로 어떻겠나?"
아키즈키는 메모를 되풀이하여 읽으면서 말했다.
"예, 대단히 명확하여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중등부는 이 다섯 가지를 목표로 하여 나아가기로 하자."
1965년 1월15일, 전국 각지에서 고등부와 중등부 부원회가 실시되었다. 중등부는 이 날이 결성일로 되었던 것이다.
도쿄 제4본부의 회관에서 거행된 중등부 결성식에는 초등학교 5학년생이었던 야마모토 신이치의 장남, 마사히로도 참가했었다.
어린이는 학회의 조직 속에서 육성해 간다는 것이 신이치의 교육지침이었다.
아내인 미네코는 마사히로가 이 중등부의 결성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녀는 마사히로가 돌아오면 감상을 물어 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사히로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의기양양하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엄마, 나는 중등부 부원이 되었어요. 그것도 1기생이예요. 1기생. 이제부터 2기생, 3기생이 생겨서 장래는 30기라든가, 50기로도 된대요."
나는 그 최초의 1기생이라구요. 모두의 모범이 되도록 분발해야지."
어느 쪽인가 하면 평소에는 매우 조용한 편인 마사히로가 흥분한 기색으로 결의를 말하는가 싶더니 낭낭하게 근행을 시작했다.
창제는 좀처럼 끝나지않았다.
미네코는 그 모습을 보고 기쁘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했다.
마사히로뿐 아니라, 이 날 부원회에서 자신들이 제1기생이 된 것을 들은 전국의 고등부 부원, 중등부 부원의 기쁨은 컸다.
특히 고등부 부원으로부터는 그 기쁨과 맹서를 적은 편지가 몇통이고 회장 야마모토 신이치에게 왔다.
그러자 신이치는 이렇게 제안했다.
"우선, 고등부 1기생의 멤버가 결의서명을 하는 건 어떨까. 각자각자 지금의 결의를 영원히 남겨 두는 것이다."
14.............................................
아키즈키 에이스케는 야마모토 신이치의 제안을 듣고는 말이 막혔다. 펑펑 솟아는 샘물과도 같은 야마모토 회장의 제안에 경탄하여 말문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잠시 후, 아키즈키는 입을 열었다.
"결의를 써 두면 목표도 명확해집니다.
현재 남자부, 여자부, 학생부의 대표가 결의 서명을 하기로 되어 있으니 고등부도 꼭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나서 아키즈키는 신이치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계속적으로 손을 쓰는 데에는 새삼스럽게 놀라고 감복할 뿐 입니다. 그런 생각들이 어떻게 하면 나오는 것일까요?"
"일체는 진지함이다. 나는 21세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때에 누가 광선유포를, 세계평화를 담당해 갈 것인가. 누가 21세기에 진정한 학회 정신을 전해 갈 것인가.
그것은 지금의 고등부, 중등부의 멤버에게 부탁하는 외에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한 사람 한 사람 착실히 성장해 주는 외에는 없다.
대인재, 대지도자로 자라나 주는 외에는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좋은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사람은 육성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촉발이다. 그 촉발을 가져오게 하기 위해서는 나날이 생명을 깎는 심정으로 성장을 기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모두에게 격려가 될까''어떻게 하면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어떻게 하면 용기를 낼 수 있을까'를 순간 순간 열심히 계속해서 생각해 가는 것이다.
강한 기원의 일념이 지혜가 되고, 그것이 여러 가지 발상으로 된다.
책임감이란, 그 일념의 강함을 말한다."
아키즈키는 엄숙한 마음으로 신이치의 지도를 받아들였다.
이 서명에 관한 건은 2월의 고등부 부원회에서 발표되었다.
신이치는 그 서명부의 속표지에 이렇게 휘호하였다.
"5년 후를 목표로 하여 우리들의 희망을."
서명은 2월 하순부터 시작되었다.
어떤 사람은 대학 입학시험에 필승을 다짐하고, 어떤 사람은 교학부의 교수가 될 것을 결의로 하여 적었다.
또 어떤 사람은 난관이라 하는 자격시험의 합격을 목표로서 기록했다.
이윽고 이 서명부가 야마모토 신이치에게 도착되자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결의를 생명에 새겨 두려는 듯 정성을 들여 꼼꼼히 훑어보았다.
그리고 불전에 올리고 모두의 성장을 진지하게 기념한 뒤 회장실에 보관했다.
게다가 기원할 때마다 이 서명부를 펼치고 모두의 희망이 실현되도록 제목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15...............................................
졸업시즌을 맞이한 3월, 수도권의 고등부 부원회에서는 새롭게 2학년생을 중심으로 제2기의 부장과 그룹장이 임명되었다. 또 각 그룹에 반장을 세우기로 발표하였다.
이 인사는 3학년생의 졸업으로 인해 행하는 것으로 고등부의 핵이 완전히 굳혀진 데다가 부원의 확대를 도모해 가기 위한 포진이었다.
그리고 다음 달 4월에는 신입생을 맞이했던 것이다.
이 신입생과 2월 이후에 입부한 멤버는 고등부 2기생으로서 결의의 서명이 또다시 행해졌다.
7월 11일에는 도쿄 료고쿠의 니치다이 강당에서 제8회 학생부 총회가 개최되었는데 여기에는 다수의 고등부 대표도 참석했다.
그 석상에서 부이사장인 주조 기요시가 인사를 발표했다.
"이번에 새로 고등부장을 세운다.
고등부장, 우에노 마사야!"
"예"
굵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참석한 고등부 부원들은 놀라 단상을 바라보았다.
이 고등부장의 탄생으로 전국에 조직화된 고등부 부원을 통합하여 책임지고 육성해 갈 중심이 정해진 것이다.
우에노는 고등부 부원에게는 거의 낯이 익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는 스물 여섯 살 된 남자부 간부의 한 사람으로 야마모토 신이치가 학생부 대표에게 한 <어의구전>강의의 수강생이기도 했다.
우에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입회했다.
그의 친아버지는 우에노가 네 살 때에 폐결핵으로 타계하였다.
그 후 어머니는 재혼하지만, 그는 초등학교 6학년이던 해의 여름까지 야마나시의 조부모님 댁에서 자랐다.
그런 사정도 있어서인지 그는 요코스카에서 어머니와 양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후에도 양아버지와는 좀처럼 친숙해지지 못한 채 몹시 괴로운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 양아버지가 이웃 사람의 권유로 창가학회에 들어갔다.
우에노는 그것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었다. 학교가 미션 스쿨인 점도 있어 그는 기독교에 매료되어 있었다. 또 독경을 하는 것에 대한 창피함도 있었다.
양아버지를 절복한 이웃 사람들과 지역 남자부의 멤버가 집에와서는 고교생인 우에노에게도 신심 이야기를 하게끔 되었다.
처음엔 저항감을 느꼈으나, 나이도 어린 자신을 대등한 인격으로서 대하면서 신심의 훌륭함을 진지하게 이야기해 주는 모습에 그는 진심과 성실함을 느끼고 차츰 마음이 움직여 갔던 것이다.
16....................................
그 즈음, 우에노 마사야의 어머니도 또한 신심을 할 의사를 굳히고 있었는데 되도록이면 아들과 함께 입회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에노는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알고는, 그렇게 해서 어머니가 기뻐해 주신다면야 하고 입회했던 것이다.
그는 호탕하고 쾌활하면서도 마음 상냥한 소년이었다.
우에노는 입회할 당시에는 좀처럼 진지하게 신심에 면려할 마음이 나지 않았지만, 그런 가운데 불법에 대해 양아버지와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것을 통해 차츰 마음이 서로 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날, 양아버지가 그에게 털어 놓았다.
"지금, 나는 신심해서 정말 좋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입회한 것은 너와 친부모 자식 같이 사이 좋게 살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우에노는 양아버지의 다정함을 느꼈다. 뜨거운 것이 가슴에 복받쳤다.
이것을 계기로 양아버지와의 마음의 거리는 좁혀졌다.
이윽고 그에게 커다란 전환기가 닥쳐 왔다. 고교 3학년이 되어 본격적인 수험 공부에 막 들어가려고 했을 때 몸의 컨디션이 망가지고 만 것이다.
병원에 가니 의사는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폐에 그림자가 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같은 결핵이다. 순간, '숙명'이라는 말이 벼락이 떨어지듯 그의 머리를 거세게 뚫었다.
당시는 결핵이라 하면 아직도 불치병이라는 인상이 있었다.
우에노는 미래가 닫혀진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럴 때, 남자부의 선배가 격려하러 와 주었다.
"우에노 군, 지금이야말로 불법의 위대함을 알 때다. 진지하게 제목을 올려 봐요. 반드시 좋아진다! 나도 응원할 테니 열심히 하자."
우에노는 이 때부터 맹렬한 기세로 창제에 면려했다.
수 개월 후, 폐에서 그림자는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는 신심에 대한 견고한 확신의 빛남이 빛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병을 극복한 우에노는 게이오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 들어가자 그 전 해에 막 탄생한 학생부의 일원으로서 학회 활동에 뛰어다녔다. 학생부의 이론지인<<제3문명>>의 제2대 편집장으로서도 크나큰 수완을 발휘했다.
대학 졸업 후는 학회본부의 직원이 되어 세이쿄 신문사의 기자가 되었다.
그런데 일과 학회활동의 다망함에 휩쓸리어 불규칙한 생활이 게속되고 폐결핵이 재발하여 부득이 입원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러는 동안 양아버지가 사망하고 거액의 빚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17..........................................
우에노 마사야에게는 의기양양하게 사회인으로서 출발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닥친 시련이었다.
그의 충격은 컸다.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듯한 심정이었다.
그 때, 야마모토 회장한테 한 통의 편지가 왔다.
거기에는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 대신력(大信力)을 불러 일으켜 희망 넘치는 제2의 인생을"
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렇다. 져서야 되겠는가. 이 모든 것을 타고 넘어 야마모토 선생님께 보고 드리는 거다."
그 날부터 오직 외곬으로 창제가 시작되었다.
마침내 결핵은 낫고 직장에 복귀할 수 있었다.
양아버지의 빚도, 친척의 협력도 있고 하여 그의 수입의 범위 내에서 갚아 나갈 수 있는 전망이 보였다.
우에노는 이전보다 더욱 다부지고 의기 왕성하게 광포의 뜰을 뛰어다녔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신심을 시작하여 자신의 고뇌를 하나하나 극복해 온 우에노라면 고등부 부원의 좋은 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고등부장으로 임명했던 것이다.
학생부 총회의 식순은 신임 간부의 포부로 이어져 우에노가 단상에 올랐다.
"이런 영예로운 학생부 총회의 석상에서 초대 고등부장의 대임을 받았습니다. 야마모토 선생님의, 다음 세대를 담당할 고등부에 대한 끝없는 기대를 생각하니 긴장으로 가슴이 벅찹니다. 미래의 소중한 보배인 고등부 여러분의 성장을 위해 전력을 다해 열심히 해 가겠습니다. 그러니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모인 고등부 부원들은 몸을 내밀어 힘차게 박수를 보냈다.
우에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앞으로의 고등부 목표로서 말씀드리면 신심제일, 면학제일의 고등부 10만 명의 달성을 목표로 해가고자 합니다. 야마모토 선생님은 자주 '나는 영법구주(令法久住)를 위해, 일본의 장래를 위해 인재를 육성하고 있는 것이다'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그것은 구체적으로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저는 그 인재야말로 고등부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신심을 근본으로 확실한 목표를 갖고 면학에 힘쓰는 10만 명의 고등부 부원이 결집할 수 있다면 미래를 담당할 인재의 기반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학회의 모든 고교생에게 각자의 사명이 크다는 것을 호소하며 함께 고등부로서 결집해 가지 않겠습니까."
멤버는 대박수로 응답했다.
18..........................................
고등부 부원의 수는 이 1965년 7월의 시점에서 보았을 때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고는 해도 2만 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이 마침내 부원10만을 목표로 출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7월18일, 도쿄 제6본부의 회관에서 고등부장인 우에노 마사야를 중심으로 그룹장 모임이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여기서 부원 10만 달성을 향한 구체적인 활동을 토의하고 부원의 증가를 위한 싸움이 개시되었다.
고등부 부원들은 공부와 특별 활동을 하는 속에서 틈을 내어 자신의 지부와 지구의 고교생에게 고등부 부원으로서 함께 활동하자고 설득해 갔다.
지부와 지구라 해도 당시는 입회했을 때의 소개자의 지부, 지구에 소속하는, 이른바 '세로'이라 불리는 조직이어서 하나의 지구라도 멤버는 각지에 점재하고 있었다.
고등부 부원들은 고교생이 있다고 들으면, 전차를 갈아타고 목적지로 가거나 자전거로 1시간, 2시간이 걸려 가정을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난 고교생들의 대다수는 기뻐하며 고등부에 입부할 것을 희망했다.
세이쿄 신문 같은 출판물이나 영화 '세이쿄 뉴스'등을 보고 고등부의 활동을 알고는 멤버가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는 어렸을 때에 부모님과 함께 입회했을 뿐 신심을 할 마음은 없다고 하는 고교생도 있었다. 그럴 때에는, 멤버는 자신의 체험이나 실감을 통해 신심의 소중함을 힘껏 호소했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 우정이 싹트고 고등부 부원으로서 활동하게 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 해의 8월10일,11일에는 첫 시도로서 고등부, 중등부 등의 대표자 하계 강습회가 실시되었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모두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는 참가자와 기념 사진도 찍으며 멤버를 격려했다.
더욱이 10일 저녁의 전국 고등부 부원회에는 "신심제일, 면학제일의 봉추이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내년1월에도 재차 고등부, 중등부의 등산회를 실시할 것을 약속했던 것이다.
또 이 고등부 부원회의 석상에서 고등부가 학생부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조직으로서 출발하기로 발표되었다.
즉, 이제까지 학생부 내의 조직이었던 고등부를 남자부, 여자부, 학생부와 동등한 입장에서 보다 자주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19.........................................
고등부를 학생부로부터 독립시킨 데는 다음과 같은 경위가 있었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고등부 부원 가운데, 특히 남자에게는 가능하면 전원이 대학에 진학할 것을 강하게 바라고 있었다.
만약 취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라도 야학이나 통신교육으로 착실히 학문을 습득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 중에는 그것마저 어려운 사람도 있다.
고등부가 학생부에 소속하게 되면 진학 희망자에게는 이점이 많겠지만 취직하려는 사람에게는 위화감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신이치는 장래의 진로와 관계없이 같은 고등부 부원으로서 함께 절차탁마할 수 있는 독립된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의견을 청년부 간부에게 전하고 협의를 부탁하였으며 그로 인해 학생부로부터의 독립이 결정되었던 것이다.
하계 강습회 이틀째인 다음 날 11일에 신이치는 열 명 정도의 고등부 대표와 간담할 기회를 가졌다.
"나는 제군이 구애받지 않고 면학에 힘쓰며, 의욕을 갖고 성장해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 오늘은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그는 우선 다음 해 1966년을 '고등부의 해'로 하는 게 어떠한가 하는 의견을 물었다.
모두가 얼굴을 반짝였다.
야마모토 회장이 고등부를 소중히 하여 힘을 쏟아 주고 있는 것은 모두가 실감하고 있지만, 고등부에 관한 것이 학회의 새해 테마가 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더욱이 신이치는 고등부의 깃발 및 고등부의 배지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했다.
모두 대 찬성했다. 마지막으로 신이치는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나누면서 말했다.
"모두 함께 힘을 합쳐 가장 의의 있고 즐거운 조직을 만듭시다."
9월에 들어서자 고등부의 조직 확대와 충실을 기하는 시도가 행해졌다. 우선 방면의 고등부장, 부고등부장을 임명하여 지도 멤버의 포진을 굳혔다.
여기에는 각 방면의 남녀 청년부 최고 간부가 취임했다.
게다가 이제까지는 본부단위로 부가 있고 총지부단위로 그룹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그 조직 형태를 일보 전진시켜 총지부단위로 부를 , 지부단위로 그룹을 만들게 되었다.
획기적인 조직 확대와 충실이었다. 이에 의해 부원 10만 달성의 포진이 갖추어졌던 것이다.
20.....................................
고등부가 확대를 목표로 움직이기 시작한 9월23일, 소년부도 결성을 맞이했다.
초등학교 5,6학년생은 중등부에 소속하고 있어 소년부는 1학년생부터 4학년생까지의 소년 소녀를 대상으로 하기로 되었다.
이러한 구성은 1967년에 초등학교 1학년생부터 6학년생까지의 소년 소녀를 소년부로서 새롭게 편성할 때까지 계속된다.
여하튼, 이 소년부의 탄생으로 소년, 중등, 고등부라는 오늘날의 미래부 조직이 갖추어진 것이다.
10월1일 저녁 무렵, 하교하는 고교생들이 잇달아 학회본부에 모여들었다.
3층의 큰방에는 선명한 녹색 깃발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창 끝 모양을 한 장대 끝의 장식이 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고등부기다.
하계 강습회에서 야마모토 회장과 고등부 대표가 간담할 때 결정된 고등부기가 마침내 완성되어 이 날, 수도권의 부장에 대한 수여가 거행되었던 것이다.
고등부에서는 하계 강습회 직후에 열린 8월15일의 제11회 고등부 부원회에서 부기의 작성을 발표, 멤버로부터도 깃발의 도안을 모집하여 우에노 마사야 고등부장을 중심으로 검토를 거듭해 왔다.
그리고 청년부 간부와도 상담하여 최종안이 정해졌다.
깃발의 천은 녹색이고 도드라진 중앙 부분의 흰색에는 커다랗게 깃을 펼친 봉황의 어린 새가 그려지고 그 밑에 '창가학회 고등부'란 문자가 발염 되어 있었다.
이것은 야마모토 신이치가 기회 있을 때마다 고등부를 '봉추' 즉, '봉황의 새끼'라고 최대의 기대를 담아 부르고 있는 것에서 어린 봉황을 도안화했던 것이었다.
봉황이란, 중국에서 예부터 귀하게 여겨 온 상상 속의 길조로, 인정을 베푸는 천자가 출현하는 전조로서 세상에 나타나는 새라고 보고 있다. 니치렌 대성인은 제경의 왕인 법화경을 봉황에 비유하시고 있다.
신이치는 고등부 부원이 다음 세대의 지도자로 자라갈 것을 염원하고 '봉추'라 불러 왔던 것이다.
또 깃발의 색을 녹색으로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한 것도 신이치였다.
녹색에는 새잎의 상쾌함이 있어 평화를 떠오르게 하는 색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윽고 세계로 웅비하여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구축해 가는 고등부 깃발에 녹색은 가장 어울리는 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기의 수여식에는 수도권의 남녀부장 276명이 참가하여 약간 긴장한 얼굴로 개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21..............................
오후 5시가지나 야마모토 회장이 모습을 나타냈다.
"정말 수고가 많습니다."
신이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함께 근행을 합시다. 제군의 전도를 기원합니다. 봉추들의 영광스런 미래를 기념하겠습니다."
근행이 시작되었다.
신이치의 독경에 젊음의 약동감에 넘친 고등부 부원의 소리가 창화했다.
이윽고 부기의 수여로 이어졌다.
이름이 불려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부장에게 신이치로부터 부의 깃발이 건네져 갔다. 신이치는 깃발을 수여할 때마다 격려의 말을 전했다.
"단단히 분발해 가세요."
"예!"
"밝고 건강하게!"
"예!"
삼백 명에 가까운 멤버에 대한 수여다.
잠시 후, 깃발을 세워 둔 곳에서 부의 깃발을 가져와 신이치에게 건네고 있던 수뇌 간부들의 호흡은 거칠어지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다.
양복 차림을 한 신이치의 이마에도 땀이 배어 있었지만, 그는 의연했다. 혼백을 붙들어 두려는 듯 각자의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하고 격려의 말을 계속 해 주며 미래에 빛날 위대한 녹색의 부기를 수여해 갔다.
봉추들은 신이치의 말에 원기 있는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깃발을 강하게 꽉 쥐어 들었다.
그 눈에는 맹서의 빛남이 있었다.
신이치는 모두의 표정에서 광포의 인재로 자라가려는 맑고 깨끗한 결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에게는 그것이 기쁘기도 하고 믿음직스럽기도 하며 또한 고맙기도 했다.
그의 눈은 미래의 대공을 자유자재로 춤추며 날아 오르는 큰 새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전원에 대한 부기의 수여가 끝나자 신이치는 의자에 앉아, 조용하나 힘이 긷든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대단히 축하합니다.
저의 은사는 도다 조세이 선생님입니다. 그 선생님이 서거하신 지 만 7년이 지났습니다.
또 제가 회장이 된 것은 1960년 5월 3일이고 그 취임으로부터 만 5년이 지났습니다. 가장 기쁜 날은 오늘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고등부 부원을 제1진으로 하여 제군의 후배인 중등부 부원 및 소년부 부원이 제2진, 제3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세 개의 부서에서 장래의 회장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며, 나와 주기를 바랍니다. 또 나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이것이 나의 희망인 것입니다."
참가자의 가슴에 뜨거운 감동이 세차게 흘렀다.
22..................
야마모토 신이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도다 선생님은 자주 우리들과 '대남공'의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오래된 노래여서 여러분은 모를지도 모릅니다만, 그 노래 안에는 '빨리 성장하여 주군을 섬겨라 나라를 위해'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빨리 성장하여'-이 말에 의탁하신 선생님의 진정한 뜻은 무엇인가. 빨리 광포의 인재가 되어 창가학회의 중핵으로 되어 일본의 대지도자로 되어 가라는 것입니다.
또 '주군에게'란 이 가사에서 본다면 천황이 되겠지만, 선생님의 본래 뜻은 아닙니다.
불법에 진력하라, 대성인의 유명을 실천해 가라. 민중에게, 인류에게 진력하라. 그리고 세계를, 동양을 또한 당연히 일본을 구해 가라-는 심정이었습니다.
저도 제군에게 '빨리 성장하여'라는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제가 회장인 이상, 제군의 길을 열어 훌륭하게 광선유포의 총마무리를 하도록 해 주고 싶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모인 고등부의 제1진의 간부인 제군은 10년 앞, 30년 앞, 50년 앞까지도 결속을 다져가 주십시오.
그리고 창가학회를 지켜 주십시오. 학회원을 지켜 주십시오. 민중은 지켜 주십시오. 그와 더불어 '광선유포의 바통은 이어 받았다. 광포의 총마무리를 하는 거다!'라는 결의를 가져 주세요.
그것을 위해 현재는 제목을 착실히 부르고 어디까지나 면학제일로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또 부모님께 심려를 끼쳐 드리거나 한탄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인격도 훌륭하고 학교 성적도 누구보다도 우수하며 건강하다고 하는 것처럼 색심불이 하는 인간혁명의 기초를 확립해 주기를 바랍니다."
신이치의 말에는 고등부 부원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참가자는 놀람과 감격으로 그 말을 깊이 새겼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하고는 이야기를 끝맺었다.
"이제 고등부 부원에 대한 지침에 관해서는 11월호 <대백연화>의 권두언에 '봉추여 미래로 웅비하라'는 제목으로 써 두었으므로 그것을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생각지도 못한 환성이 일어나면서 대박수가 터졌다.
부기의 수여식은 감동 속에서 막을 내렸다. 아니, 그것은 봉추들이 비상하는 개막이었다.
23........................................
고등부의 부기 수여식이 있고 나서 2일 후인 10월3일에는 도쿄 다이토 체육관에서 제13회 고등부 부원회가 활발히 개최되었다.
단상에는 이제 막 수여된 녹색의 새 부기가 늘어서 있었다.
이 석상에서 회장 야마모토 신이치가 집필한 "봉추여 미래로 웅비하라"가 우에노 마사야 고등부장을 통해 소개되었던 것이다.
"미래를 목표로 하여 미래에 살아갈 젊은 고등부 제군이여.
제군이야말로 광포 달성의 봉추다."
즉, 제군의 성장이야말로 학회의 희망이고 일본의, 그리고 전 세계의 여명을 고하는 새벽종이다.
나의 고등부는 본문의 시대에 들어서 최초로 결성된 부였다. 그런데도 그 급속한 대발전에는 계곡의 물이 일거에 대하로 흘러 들어감과 같이 참으로 괄목할 만한 것이 있었다.
제군이 이윽고 다음 사회의, 다음 시대의 분류가 되어 갈 것은 역사의 필연이라니..."
고등부 부원은 모두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나의 학회에 젊고 강하며 청순한 생명의 약동이 넘치고 있는 한, 영원히 반석과 같고 반드시 입정안국의 위업을 실현할 수 있음에 틀림없다. 이것이 바로 학회의 영법구주의 실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야마모토 회장의 기대는 절대적이었다. 이어서 '종람이청'의 원리가 제시되어 고등부 부원이야말로 '진정한 봉추'이고 '다음의 학회를 담당하고 더더욱 발전시켜 갈 위대한 사명을 갖고 있다고 확신해 마지않는다.'는 심정을 말하고 있었다.
더욱이 청춘시절은 인간형성의 가장 중요한 시기고 십 대, 이십 대의 노력과 정진에 의해 그 장래는 크게 결정된다고 말하고 다음과 같이 호소하고 있다.
"더군다나 젊어서 세계 최고의 니치렌 대성인의 대불법을 수지한 제군은 청춘시절의 생활과 활동의 한 장면, 한 장면 그 자체가 귀중한 체험이자 동시에 장래를 향한 중요한 기초 만들기임을 강하게 자각했으면 한다."
신이치는 모두가 신심이란 무엇인지를 알고, 그 실천으로서 창제하기를 원했다. 그 속에 위대한 지혜가 연마되고 생명이 풍요로워지며 건강한 몸으로 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마음을 쓴 뒤, 지금은 "'면학제일'로 널리 지식을 구하여 장래 대성을 기약해 갈 것을 진심으로 원하고 바라는 바이다."라고 호소했다.
여기에는 고등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명확히 나타나고 있었다. 이것으로 '면학제일'은 영원한 지침이 되었던 것이다.
24..............
낭독은 계속되었다.
-현재, 진학하려고 공부에 여념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힘든 가운데 진지하게 공부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고교 졸업 후에 곧바로 사회에 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대학에 진학하여 형설지공을 거듭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문면에는 고등부 부원 한사람 한사람을 생각하여 격려를 보내는 야마모토 신이치의 뜨거운 마음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묘법을 근저로 생애 강한 신심에 살아간다면 진실한 행복, 진실한 인생의 승리, 진실한 광포의 사명에 주할 수 있음은 절대로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어서 동란을 되풀이하는 세계와, 일본 국내의 현상을 언급하여 사상하여 사상의 결여는 민중에게 신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게 하며, 특히 비행 청소년의 증가는 혼돈한 세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지적, 그리고 새로운 세기를 만들어 가기 위해 이렇게 호소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세계평화 즉 세계광포를 위해 전력을 경주하고 전진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인 것이다.
나는 오늘날까지 전 혼을 다하여 제군을 위해 길을 열고 닦아왔다.
또 앞으로도 개척해 갈 결심이다.
아무쪼록 제군은 그 순수한 신심을 어디까지나 언제까지나 계속 수지하여 진정한 학회 정신을 이어받아 모든 선배가 심혈을 쏟아 구축해낸 기반 위에 이윽고 마음껏 웅비하고 난무해 주기 바란다.
(중략) 사회를 위해 법을 위해 자기를 위해 싸우는 젊은 지용의 보살로서 훌륭히 성장해 가기를-"
우에노 마사야 고등부장이 <봉추여 미래로 웅비하라>의 낭독을 마치자 회장을 뒤흔들 것만 같은 크나큰 박수가 터져 나와 얼마간 멈추지 않았다.
지표를 얻는 일은 용기를 얻는 일이고 희망을 얻는 일이다.
<<대백연화>>의 11월호가 발간되자 전국의 고등부 부원은 이 권두언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탐독했다. 그리고 많은 부원회 등에서도 반드시 낭독하여 모두가 암송하게 되었다.
봉추들이 이를 통해 자신들의 너무나도 깊고 큰 사명을 자각해 갔던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신문배달을 시작한 멤버도 있었다.
모두의 창제에도 한층 더 힘이 들어갔다. 멤버는 마치 서로 경쟁하듯 잇달아 맹렬한 공부를 시작해 갔다.
25...........................
미래의 사명을 자각한 사람은 강하다.
그 때 재능의 싹은 급속히 자란다고 해도 좋다.
지침 <봉추여 미래로 웅비하라>는 청년부 간부나 부모님들의 고등부에 대한 인식을 한 걸음, 두 걸음 깊게 해 갔다.
"고등부 부원의 사명에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있다. 학회의 보배다. 소중하게 육성하지 않으면....."
그런 분위기가 학회 속에 넘쳐흘러 갔다.
감동을 더욱 몰아붙이려는 듯이 11월7일에 행해진 수도권의 고등부 부원회에서는 고등부의 배지 제작이 발표되었다.
고등부 부원을 위한 부기수여에 이어지는 야마모토 신이치의 선물이었다.
이 11월23일, 제14회 청년부 총회가 개최되어 석상에서 중등부, 소년부에도 각기 부장이 탄생했던 것이다.
중등부장이 된 것은 가토 다케히사라는 서른이 된 청년이었다.
그는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었다. 네 형제 가운데 장남으로 아버지의 내의 제조 판매의 일을 도와주면서 야간 고등학교에 다녔다. 그 즈음 부모님이 입회하고 그도 3개월 후인 1952년 11월, 신심을 시작했다.
1956년, 교학부의 임용시험에서는 높은 실력이 평가되어 조사, 강사를 뛰어 넘어 일거에 조교수가 되었던 것이다.
한편, 소년부장이 된 것은 모리나가 야스시였다.
그는 학생부장인 와타리 고로 등과 함께 도쿄 대학 법화경연구회에서 도다 조세이의 강의를 받아 온 멤버 중의 한 사람이다.
도쿄 대학 공학부의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무역회사를 거쳐 학회본부의 직원이 되어 해외국장을 역임한 청년이었다.
모리나가는 겉과 속이 조금도 다르지 않은 성격으로 그한테서는 생명의 깨끗함이 느껴졌다.
신이치는 그것이야말로 소년부 리더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소년부장으로 추대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중등부, 소년부의 차축이 만들어져 본격적인 회전이 시작된다.
26...........
사명에 눈을 떠라.
거기서 새로운 세기의 건설이 시작된다.
사명에 살아가라.
거기에 최고로 가치 있는 인생의 창조가 있다.
나의 사명을 다해 가는 가운데서 인간의 인간다운 깊은 맥동이 굽이친다.
사명 있는 봉추의 비상을 원하여 '고등부의 해'라고 내걸었던 1966년 '여명의 해'가 되었다.
1월3일, 고등부, 중등부, 소년부 대표의 등산회가 실시되었다.
2일에 등산한 야마모토 신이치는 고등부 부원들의 도착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고등부의 해'의 출발을 전국 고교생의 대표와 함께 장식하고 싶었던 것이다. 맑게 갠 하늘에 당당하게 우뚝 솟은 아름다운 후지산이 젊은 봉추들을 맞이했다. 신이치는 일행이 도착하자 대객전 앞에서 함께 기념촬영을 한 뒤, 멤버의 성장을 염원하며 히말라야 삼목을 식수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야마모토 회장이 출석하여 전국 고등부 부원회가 개최되었다. 여기에는 중등부, 소년부도 참가하여 젊디젊은 에너지가 발산되는 회합이 되었다 이 석상에서 이제 막 완성된 고등부 배지가 신이치로부터 멤버의 대표에게 수여되었던 것이다. 고등부의 배지는, 남자는 그을린 은, 여자는 청동으로 둘 다 표면에는 봉추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밑에 '高'라는 녹색의 글자가 조각되어 있었다.
이 후, 전국 고등부 부원의 학생복의 깃이나 가슴에 이 배지가 찬연히 빛나 가게 된다. 멤버는 그 배지를 단다는 것에서 다음 세대를 담당해 갈 젊은 리더의 긍지를 느끼고 있었다.
전국 고등부 부원회는 간부의 인사 뒤, 신이치의 지도로 이어졌다.
그는 입을 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음의 제일보로서 1971년1월3일, 즉 5년 후인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 전원과 다시 만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떻습니까?"
모두 크게 기뻐하며 대박수로 응답했다.
"앞으로 5년 간, 각자가 다양한 인생의 길을 나갈 거라고 생각하지만 한 사람도 퇴전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 신심 강성하게 훌륭히 성장해 주기 바란다.
나는 그 날을 즐겁게 기다리며 모든 활동의 지휘를 해 가겠습니다.
그 때에는 한 사라도 빠짐없이 다시 꼭 만납시다!"
27................................
젊은 동지의 성장에는 희망의 지표가 필요하다.
지향해야 할 목표가 정해지면 그 진행에는 큰 힘이 나온다.
청춘의 5년의 세월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황금의 나날이고 그 후의 인생의 10년,20년 분에 상당한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5년 간으로 모두가 얼마만큼 성장할 수 있는가, 가만히 지켜보고 싶었던 것이다.
-신이치는 5년 후인 1971년 1월3일, 약속을 지켜 멤버와 재회하였다. 그리고 모두의 성장을 칭찬하고 '5년회'라는 명칭을 보냄과 동시에 5년마다 서로 모일 것을 제안했던 것이다.
전국 고등부 부원회에서 신이치는 '정의','친절','용기'등 일체는 '신심'의 두 글자 안에 포함되며 신심 강성한 사람이야말로 최고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호소했다.
신이치의 지도가 끝나자 우에노 마사야 고등부장 등의 지휘로 '고등부가'등 몇 곡의 학회가를 합창했다.
부원회는 이것으로 끝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신이치는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방편품 자아게의 근행을 합시다. 제군의 대성장과 건강을 기원하겠습니다."
모두 자신들의 성장을 바라는 신이치의 진심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감개무량했다.
근행, 창제가 끝나고 신이치가 뒤를 돌아보자 장내에서 이런 말이 들렀다.
"선생님! 학회가 지휘를 해 주십시오."
그 말에 이어서 "부탁드립니다!"하는 소리가 회장 이쪽 저쪽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모두의 대박수가 메아리쳤다.
고교생답게 겁이 없는 '주문'이었다.
신이치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알았습니다. 합시다. 그 전에 부이사장님 등 최고 간부도 와 있으니 지휘를 부탁드립시다."
몇 사람의 최고 간부들이 차례로 학회가의 지휘를 했다.
그리고 신이치가 일어섰다.
"그럼, 무슨 노래로 할까요?"
"'다케다부시'를 부탁드립니다!"
장내로부터 목소리가 울렸다. 신이치는 모두의 노래 소리와 손뼉에 맞춰'다케다부시'의 지휘를 하였다. 용감하고 씩씩한 동작이었다.
그의 지후를 처음으로 보는 멤버도 적지 않았다.
지휘가 끝나자마자 "한 곡 더 부탁드립니다."하는 소리가 있었다.
"좋아요, 지휘하지요. 무엇이라도 하겠습니다!"
28................................
계속해서 야마모토 신이치는 지휘하기 시작했다.
봉추들은 마음껏 손뼉을 치며 있는 소리를 다 내어 노래했다.
두 곡이 끝나자 또 다시 "한 곡 더, 부탁드리겠습니다!"라는 소리가 커졌다.
신이치는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는 쉴 틈도 없이 세 곡 째의 지휘를 했다.
간부들은 끝없는 고등부 부원의 요망에 조마조마하기 시작했다.
고등부장인 우에노 마사야도 모두에게 '만일 야마모토 선생님이 힘들어 몸의 상태가 나빠지기라도 하면 어찌할 것인가!'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신이치가 그 요망에 응하여 "무엇이라도 하겠습니다!"라고 말한 이상, 못 하게 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일본 남자의 노래'의 지휘를 해 주십시오!"라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신이치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채를 높이 들고 바로 지휘하기 시작했다. '광선유포의 총마무리를 부탁한다!'고 마음 속에 외치면서.
그의 호흡의 흐트러짐은 없었다. 당당한 봉황을 연상시키는 지휘였다.
자신들의 요망을 어디까지라도 들어 주어 몇 곡이고 몇 곡이고 지휘를 해주는 신이치의 모습에 멤버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열창했다.
'선생님은 피로하신 것이 분명해.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 주시다니....'
이 부원회는 참가자에게 생애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신이치의 고등부에 대한 격려는 잇달아 계속되었다.
총본산에서의 전국 고등부 부원회의 감동이 채 가시지 않은 1월6일, 도쿄 다이토 체육관에서 수도권의 제16회 고등부 부원회가 거행되었는데 신이치는 여기에도 참석했던 것이다.
이 날, 그는 자신의 가슴에 복받쳐 오르는 심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해 갔다.
"올해는 '여명의 해'이자'고등부의 해'입니다만, '여명의 해'라 하면 본격적인 광선유포의 새벽을 고하는 고등부가 출현하여 전면으로 춤추며 나오는 해로 정해져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출현할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승과 제자라고 하는 것은 '바늘'과 '실'의 관계에 있습니다. 스승이 '바늘', 제자는 '실'입니다.
바늘은 옷을 꿰맬 때 선두에 서서 가지만 마지막에는 불필요해지고 나중에 남은 실에 가치가 있습니다.
나는 바늘입니다. 최후에 광선유포의 영광스런 무대에 서는 것은 여러분입니다.
제군을 위해 완벽한 포석을 해 가는 것이 나의 본문 중의 본문의 활동이라고 결의하고 있습니다.
29..............................................................
여기서 야마모토 신이치는 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우고 정부군에 체포되어 총살된 스무 살의 베트남 청년과, 1920년에 열 여섯 나이로 옥사한 '한국의 잔다르크'라 불리는 여학생 유관순에 대해 이야기해 갔다.
그녀는 일본의 가혹한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고, 한국의 독립을 위해 일어선 소녀다.
유관순은 1919년의 '3.1 독립운동'으로 체포되어 일본의 경찰로부터 심한 고문을 받지만, 최후까지 일보도 물러서지 않았던 것이다.
신이치가 베트남과 한국의 두 청년의 이야기를 한 것은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키려 했던 거의 같은 세대의 젊은이의 마음을 알아주기 바랐기 때문이다.
또 세계에는 전화로 괴로워하고 자유를 빼앗겨 빈곤에 허덕이는 많은 민중이 있다. 그 고뇌에 눈을 돌려 동고(同苦)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유관순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한일 우호를 위해서는 일본인이 한, 일의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전해(1965년)의 6월에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되고, 12월에 서울에서 비준서가 이제 막 교환되었을 때였다.
신이치는 양국민이 언제까지나 신뢰와 우정으로 맺어 가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에게 진실한 역사를 전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통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한국에 관해서도, 이전에 일본이 한국에서 무엇을 했는지도 너무나 지나칠 정도로 모른다.
교육의 장에서도 거의 배우는 일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신이치는 고교생들이 이웃나라인 한국을 아는 '깊은 촉발'이 되었으면 하고 굳이 유관순에 대해서 말했던 것이다.
그는 이 이야기를 한 뒤 이렇게 호소했다.
"물론 나는 여러분에게는 그런 고통스런 싸움은 절대로 시키지 않습니다.
일신을 던져 지키겠으며, 고생은 전부 내가 받아 갈 작정입니다.
단지 광선유포의 결의라는 면에서는 순난의 각오가 필요합니다. 어정쩡한 태도로는 존귀한 세계평화를 구축할 수도, 불멸의 민중시대를 열 수도 없습니다.
광선유포의 활동이라는 것은 권력의 마성과의 싸움이고, 인생을 건 결코 질 수 없는 진검승부의 싸움임을 말씀드려 두고 싶습니다."
신이치의 이야기는 봉추들의 가슴에 선명하고도 강렬하게 새겨져 갔던 것이다.
30.....................................................................
이 고등부 부원회가 있고 나서 이틀 후인 1월 8일, 야마모토 신이치는 남녀 고등부 부원의 대표에게 어서 강의를 시작하였다.
이것은 신이치가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일로서, 그는 지난 해 가을에 고등부장 우에노 마사야에게 대표를 대상하는 하는 어서 강의의 계획을 전했다.
고등부 부원의 대다수는 이른바 '학회2세'로, 부모님이 먼저 입회하고 어느 사인가 자신도 신심을 하게 되었다는 멤버들이었다.
따라서 신심으로 생활고와 병고를 타고 넘었다는 자기 자신의 체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지극히 적었다.
그러한 세대가 불법에 대한 확신을 깊게 해 가려면 교학을 익혀야 했다.
교학이라는 理는 信을 낳고, 확고해진 신은 불법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깊게 해 주기 때문이다.
신이치는 고등부 부원의 본격적인 성장을 도모하고자 새해부터 매월, 어서 강의를 실시할 것을 결의했던 것이었다.
우에노는 학생부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야마모토 회장으로부터 어의구전의 강의를 받아 왔다. 그것은 황금빛을 발하는 그의 인생의 재보로 되어 있었다.
그런 만큼 야마모토 회장이 고등부 부원에게 강의를 해 주실 것을 생각하니 그의 가슴은 뛰었다. 하지만 고교생이 회장의 강의에 따라갈 수 있을지 불안함도 느꼈다.
고등부에서는 즉시 수도권의 멤버를 대상으로 인원을 선발하여 최종적으로 남녀 각각50명 정도의 멤버를 뽑았다.
신이치는 연찬할 어서를 <제법실상초>로 했다. 이 어서는 대성인이 사도에 유죄 중이었던 1273년 5월. 사이렌보니치조에게 주신 글이다.
고교생에게는 좀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니치렌 불법의 본의를 간결하게 배우는 데는 가장 적합한 어서라고 신이치는 생각했다.
멤버는 예습에 주력했지만 통해를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서두의 [법화경의 제1방편품에 말하기를](어서 1358쪽)의 '제1'이라는 말에서 먼저 막혀 버렸다.
소박하다면 소박한 의문이었다.
멤버는 법화경이 제1권부터 제8권까지이고, 방편품은 그 중의 제1권에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제1방편품'이라 된 것조차 알지 못했던 것이다.
31.......................................
멤버가 예습을 하려고 해도 당시 <제법실상초>의 강의록은 발간되지 않았다.
참고가 되는 것으로는 , 전부는 아니지만 이 어서강의가 수록된 야마모토 회장의 <<권두언 강의집>>정도였다.
수강멤버가 된 어느 여자 고등부는 <제법실상초>를 공부하기 위해 이 책을 꼭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의 여자부 선배들 가운데는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에게 상담하자 예기치 않은 대답이 되돌아왔다.
"그 책이라면 우리 집에 있단다. 우리는 가난하지만 학회의 책만큼은 갖추도록 해 왔지. 자식에게는 아무것도 남겨 줄 수 없더라도 신심을 깊게 하는 서적만은 남기고자 생각해서 말이지
이제야 그게 도움이 돌 때가 왔구나. 엄마는 기쁘구나."
그녀는 어머니의 마음에 눈물을 흘리면서, 회장강의의 날을 목표로 연찬에 면려했다.
제1회 강의 날인 1월8일은 토요일이었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3학년의 개학식이 있는 날이다.
오전 중에 수업을 마친 멤버들이 감동과 기대와 긴장으로 가슴을 설레면서 책가방을 손에 들고 학회본부 3층에 있는 큰방에 모여들었다.
오후 1시 반이 지나 야마모토 회장이 會場에 얼굴을 보였다.
봉추들로부터 일제히 "안녕하십니까!"라고 젊음에 찬 목소리가 나왔다.
"수고 많습니다! 자, 함께 근행을 합시다."
근행 뒤는 드디어 강의다.
신이치는 말했다.
"이 어서강의는 내가 전부 행해도 좋지만, 제군에게 실력을 쌓게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군이 어문을 배독하고 그 통해를 한 뒤에 내가 강의하는 방식으로 하고 싶습니다."
고등부장인 우에노 마사야가 사회를 맡고 배독할 희망자가 손을 들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전원이 손을 들었다.
처음으로 지명된 자는 아사다 시게오라는, 명문 고등학교라 불리는 도리쓰 고등학교에 다니는 고등부 부원이었다. 건강하고 힘찬 목소리로 막힘 없이 배독해 갔다.
그는 사전에 130회나 배독하고 이 자리에 임했던 것이다.
계속해서 어서를 배독한 멤버도 실로 읽는 자세가 당당하였다.
학생부의 <어의구전>강의나 <백육개초>강의의 수강생보다 오히려 능숙할 정도였다.
신이치는 거기서 고등부 부원이 힘이 닿는 한 혼신으로 부딪치려는 한결같은 구도심을 실감했다. 확고한 보람을 느꼈다.
32...........................................................
야마모토 신이치는 멤버의 배독과 훌륭한 통해를 듣고 일부러 쉽게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남녀 청년부 간부나 학생부 대표에게 한 강의와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시작해 갔다.
하지만 관념적으로 이해하지 않도록 고교생의 생활에 입각하여 설명하도록 마음을 썼다.
예를 들면, '의정불이'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의'란 의보를 말하고 자신을 둘러싼 일체의 환경을 뜻합니다. '정'은 정보를 말하며 주체인 자기 자신을 뜻합니다. 이 '의보'와 '정보'는 不二의 관계고, 정보인 자기 자신이 바뀌면 환경도 바꾸어 갈 수 있습니다.
제군도 열심히 공부하여 성적이 좋아져 기뻐서 당당히 집에 돌아간 때에는 집안의 느낌도 다르지요.
또 실제로 아버지나 어머니가 달리 볼 것이고 용돈도 많아질지 모릅니다. 혹은 식사할 때의 즐거움도 달라집니다.
자신의 일념, 생명이 바뀌면 주위에서 느끼는 법도 바뀌어 가고 환경 그 자체가 변해 갑니다. 그 원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의정불이'입니다."
신이치의 말에는 열의가 깃들어 갔다.
"한 사람의 인간이 참으로 진지한 신심에 서서 강한 생명력으로 영지를 빛내어 가면 일가도, 일족도, 더 크게는 일국도 바꾸어 갈 수 있습니다.
전쟁이라 해도 진정한 요인은 인간의 마음에 있습니다. 인간의 지배욕, 정복욕, 증오, 원한 등등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화라 해도 인간혁명이 근본이 됩니다.
또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공해도 현대인의 욕망에 의한 산물입니다. 편리함, 풍족함만을 추구하여 자연과의 조화를 망각하여 살아간 인간의 자세에 그 커다란 원인이 있습니다.
의정불이라는 사고방식에 입각한다면 결국은 환경 파괴는 인간 자신의 고통에 관련되는 일임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올바른 철학을 확립하고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자세, 사고방식, 그런 것을 바꾸어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인간혁명입니다."
맑고 깨끗한 봉추들은 불법의 심원한 사상에 접하여 감동으로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한 시간 반에 걸친 강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신이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끝맺었다.
"교학의 연찬은 말할 필요도 없고 학업에도 열심히 몰두해 주십시오. 제군의 장래를 위해 나는 이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33.....................................................
야마모토 신이치는 강의를 마치고는 모두에게 붕어빵을 대접했다.
수강생이 배가 고플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사전에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자, 함께 붕어빵을 먹읍시다. 따뜻할 때 드세요.
이 붕어빵은 도다 선생님도 좋아하셨습니다. 꼬리까지 팥이 들어 있어 맛있어요."
거기에는 가족과 같은 따스함이 감돌고 있었다.
신이치는 이 날 저녁, 당시의 사토 에이사큐 首相을 가마쿠라에 있는 별저에 방문하여 회담하기로 되어 있었다.
웃는 얼굴로 붕어빵을 입에 가득 물고 먹고 있는 멤버를 보면서 그는 생각했다.
'나는 모두를 생애 계속해서 지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 고교생들이 자유자재로 활약할 수 있는 큰 무대를 열자.
그것을 위해 사토 수상과도 일본의 장래에 관해, 교육문제, 국제문제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 나누자.'
신이치는 이 때쯤부터 일본의, 그리고 미래를 위해 각계의 要人들과의 대화를 염두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회장강의는 2월에 <제법실상초>의 후반을 끝내자, 3월에 <생사일대사혈맥초>, 4,5월에 <사도어서>로 진행되었다.
신이치의 강의에는 늘 새로운 촉발이 있었다.
<생사일대사혈맥초>의 강의 때였다.
[총하여 니치렌의 제자 단나 등은 自他彼此라는 마음 없이 水魚라고 생각을 해서 이체동심이 되어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 하는 바를 생사일대사의 혈맥이라고 하느니라. 더구나 지금 니치렌이 홍통 하는 바의 究極은 이것이니라. 만약 그렇다면 광선유포의 대원도 이루어질 것이니라. ](어서 1337쪽)
이 일절에 들어가자, 신이치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제군은 이 어문을 가슴에 새기어 생애 잊지 말고 서로 훈계하며 이체동심의 단결로 광선유포의 총마무리를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광선유포는 불명의 흐름으로 만들어집니다. 대성인이 돌아가신 뒤, 왜 니치렌 교단은 분열해 갔는가.
그것은 닛코 상인을 중심으로 단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나이와 더불어 권력에 마음을 빼앗겨 자신의 지위, 입장 등에 강한 집착을 갖고 명문명리에 휩쓸려 갑니다. '자기 중심'으로 되어 가는 법입니다.
그러면 신심으로써 단결할 수 없게 된다. 그것으로는 어떠한 학회의 역직을 맡고 있다 해도 신심의 패배다.
신심이란 결국은 이 '자기 중심'의 마음과의 싸움입니다."
34...........................................
야마모토 신이치의 강의는 때때로 유언처럼 멤버의 가슴에 날카롭게 육박했다.
<사도어서>의 [악왕이 정법을 파하는데 사법의 승들이 한편이 되어 지자를 살해하려 할 때는 사자왕과 같은 마음을 가진 자 반드시 부처가 되느니라.....](어서 957쪽)의 단락에서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성인의 시대도, 앞으로도 악은 도당을 만들어 정법을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학회가 밉다는 일 점에서 정치 권력도 종교도 합동하여 공격의 엄니를 드러내 올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비록 혼자가 되어도 '사자왕'과 같은 마음을 갖고 광포의 사명을 다 해 가는 것이 '사자왕'입니다.
도다 선생님도 스승인 마키구치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오로지 홀로 광선유포에 섰습니다. 그것이 창가의 정신이고 학회의 아들, 딸로서 살아가는 자세입니다.
그 정신을 잃으면 烏合之衆이 돼 버립니다.
진실한 단결이란, 겁쟁이 같은 인간이 서로 기대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홀로 서는 獅子와 사자와의 共戰입니다."
그의 강의에는 측근의 최고 간부에게 지도하는 듯한 엄한 울림이 있었다.
[獅子身中의 蟲이 사자를 먹는다.](어서957쪽)의 강의에서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이 어서에도 [불제자 등이 반드시 불법을 破하느니라](어서957쪽)는 말씀처럼, 광선유포를 파괴해 가는 것은 외적이 아니고 '사자 몸 안의 벌레'입니다.
예를 들면, 최고 간부였던 자가 야심으로 혹은 질투로 인해 학회를 배반하고 모반하여 기를 쓰고 공격하려 합니다.
그것과 싸워 학회를 지켜 가는 것이 제군입니다.
또 절대로 '사자 몸 안의 벌레'가 되어서는 안 되며 제군들 사이에 '사자 몸 안의 벌레'를 끓게 해서도 안 됩니다.
'사자 몸 안의 벌레'라는 것은 반역자만이 아닙니다.
가령 입장은 간부여도 타락하고 나태, 무기력하게 되거나 허영을 부려 겉치레를 좋아하게 되는 즉 자기 중심주의에 빠져 일념이 광선유포에서 멀어져 간다면 '사자 몸 안의 벌레'입니다.
그러한 간부가 있으면 모두가 의욕을 일고 학회는 벌레에 좀먹혀갑니다. 무서운 것은 내부입니다. 두려운 것도 내부입니다.
아무쪼록 제군은, 창가학회의 정신은 광선유포에 통하는 깨끗한 정신임을 생애 잊지 않기 바랍니다. 또 그것을 후배에게 가르쳐 가 주기 바랍니다.
여하튼 광선유포는 제군에게 맡기겠습니다."
신이치의 혼신을 다한 강의는 젊고 맑은 고등부 부원의 생명에 흘러 들어갔다.
35.............................................................
야마모토 신이치는 이 강의 도중에 장남인 마사히로에게도 청강시켰다. 마사히로는 아직 중학생이었지만 강의를 이해할 교학력은 있었다. 신이치는 자신의 자녀도 또한 제자의 한 사람으로서 훈련을 개시했던 것이다.
회장 강의는, 5월로 <사도어서>가 끝나자 6월부터는 제2기가 새로운 멤버로서 출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6월11일에는 1기생의 수료식 및 2기생의 제1회 강의가 행해졌다.
이 석상에서 강의를 수료한 1기생에게 수료증서가 수여되었다.
신이치는 말했다.
"도다 선생님은 일찍이 남자부 대표들로 '수호회'를 또한 여자부 대표들로 '화양회'를 결성하셨습니다.
이제 그 멤버는 학회의 중핵이 되어 광선유포의 대발전의 추진력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위에 새시대를 구축해 가기 위해, 광포의 영원한 흐름을 열기 위해 나는 이 수강생으로 남자는 '봉추회'를, 여자는 '봉추그룹'을 결성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은 미래를 위한 확고한 포석입니다."
모두의 얼굴에 빛이 세차게 돌면서 박수가 터졌다.
신이치는 멤버에 대한 강의를 청년시절의 추억으로 그치게 하지 않고 광선유포를 위해 생애에 걸친 영속적인 궤도를 만들어 두고 싶었던 것이다.
이어서 제2기 멤버에 대한 강의가 행해졌다. 연찬할 어서는 <여설수행초>이었다.
강의에 임하는 1기생들의 자세를 봐 왔던 2기생도 또한 철저하게 예습을 거듭하여 배독도 통해도 실로 훌륭했다.
검호(劍豪)의 수행과 같은 연찬이 이미 전통으로 되어 갔던 것이다. 무슨 일도 중요한 것은 그 최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서 1개월 후인 7월16일, 가나가와 현 하코네에 있는 세이쿄 신문의 하코네 연수 소에서 최초의 봉추회, 봉추 그룹의 야외연수가 실시되었다.
멤버는 임대 버스로 오후에 연수소에 도착하고는 배구 등의 스포츠시합으로 땀을 흘렸다. 그 후, 불단이 있는 방에 모여 창제하면서 신이치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5시 반, 신이치는 연수소에 도착했다.
그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말했다.
"자, 모두의 성장을 염원하며 포플러 나무를 심읍시다."
36.....................................................
야마모토 신이치는 멤버의 대표와 함께 연수소의 뜰에 포플러 나무를 기념 식수했다.
"모두 이 포플러에 지지 않도록 크게 자라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생각하면 즐겁군요..."
신이치는 이렇게 말하며 웃음 지었다.
"모두, 배가 고플 것이니 오늘은 식사부터 먼저 합시다."
집회실에서 신이치를 둘러싼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식사 담당의 임원이 만든 '봉추 된장국'이라는 이름을 붙인 돼지된장국도 식탁을 푸짐하게 만들어 주었다.
"맛있군요. 이것은 여러분이 만들었나요?"
신이치가 묻자 식사 담당의 멤버가 활기찬 소리로 "예!"하고 대답했다.
"한 그릇 더 먹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모두는 기뻐 일이 벌어졌다.
신이치는 고등부 부원이 익숙지 않은 손놀림으로 감자껍질을 벗기고, 눈이 빨갛게 붓도록 양파를 썰어 요리한 그 지심에 최대한 부응하고 싶었던 것이다.
밖은 땅거미 속에 짙은 안개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 방 안은 사제의 따뜻한 인간애의 빛에 감싸여 있었다.
식사 후, 신이치는 모두와 함께 불단 앞에서 근행하고 지도회의 순서로 옮겨갔다.
그는 말했다.
"내 앞에서는 자유롭게 앉아도 좋아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좋습니다. 무릎도 펴서 편안한 자세로 하세요."
그는 형식으로 멤버를 속박하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진실한 마음을 솔직히 모두에게 이야기하고자 했다.
"오늘은 남학생 봉추회를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는데, [남녀를 가리지 말지니라](어서 1360쪽)이므로 여학생 봉추 그룹의 여러분도 같은 입장에서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도 잘 아는 바와 같이, 오늘 7월16일은 약 700년 전에 니치렌 대성인이 <입정안국론>으로 국주간효를 하신 의의 있는 날입니다.
이 <입정안국론>의 정신이야말로 대성인의 정신이시자 영원히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자세입니다.
우선, 이 의의 깊은 날을 봉추회의 제1회 야외연수의 날로 한 것을 여러분은 영구히 잊지 않기 바랍니다."
대성인이 <입정안국론>을 당시 막부의 최고 권력자인 호조 도키요리에게 제출하신 것은 1260년이고, 39세 때였다.
신이치는 이 때, 만 38세로 다시 말해 39세의 나이가 된다.
그는 광포를 향한 불타는 결의를 가슴에 안고, 모두의 얼굴에 시선을 쏟았다.
37................................
밖은 어느 사인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슬비다.
야마모토 신이치의 목소리가 한층 더 강한 울림으로 바뀌어 갔다.
"제군에게는 미래 20년, 30년 그리고 학회가 계속 이어지는 한, 불멸이며 찬연하게 빛나는 광선유포의 역사를 구축해 갈 사명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본래 佛緣이 깊고, 영광으로 빛나는 역사에 남을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내가 단언해 두겠습니다.
제군은 그러한 자각으로 오늘의 이 날을 상기하며 전진해 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매년, 7월16일에는 봉추회가 모두 모여 성장의 마디를 새기는 기념일로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서 신이치는 도다 조세이의 사업이 막혔을 때에 오직 홀로 일어서 스승을 끝까지 지킨 것을 말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늘 모인 제군을 의지하며 나가겠습니다. 제군이 성장해 주면 나도 해마다 안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 정도까지 기대하고 있는데도 만약 제군에게 학회의 총마무리를 해 가려는 마음이 없고 단결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제군이 나쁜 게 아니고 이미 내 쪽에 복운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앞으로도 제군에 관해서는 10년,20년,30년 이렇게 계속해서 보아 가겠습니다. 몇 명이 낙오하고, 몇 명이 남는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그 결과를 본 상태에서 광포를 총마무리 하는 바통 터치의 방법을 생각해 가고 싶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생애 어본존을 껴안고 가세요. 학회를 지키고 구축해 가세요-이 두 가지가 봉추회의 근본 정신입니다.
제군은 나와 사제의 끈으로 맺어진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게 믿어도 좋지요?"
"예!"하는 대답이 울려 퍼졌다. 강한 결의가 담긴 목소리였다.
모두, 볼에 홍조를 띠면서 신이치를 응시하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는 오늘, 제군에게 훈발의 인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대사명에 끝까지 살아가고자 하는 일념, 노력이 없으면 결과적으로 사명의 싹은 나오지 않습니다 .
자신의 입신출세나 명문명리가 아니라 광선유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를 악물고 노력을 거듭하여 사명을 다해 주기 바랍니다. 괜찮지요?"
"예!"
"오늘을 기념하여 7월3일에 발간된 나의 <<입정안국론강의>>에 이름을 적어 대표에게 증정하겠습니다."
그리고 남녀 한 사람씩 대표의 이름이 불려졌다
38..................................................................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야마모토 신이치로부터 <<입정안국론강의>>를 받은 두 사람의 얼굴은 기쁨으로 빛났다.
벗들이 보내는 큰 박수가 두 사람을 감쌌다.
신이치는 모두에게 말했다.
"대표는 전체에 통합니다. 대표가 받았다는 것은 자신이 받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여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언젠가 자신도 그렇게 되어 갑니다. 그것이 인과의 이법이고 신심의 세계입니다. 그러니까 질투를 하거나 하면 자신이 손해를 봅니다.
그리고 또한 제군은 지금 이 때에 많은 책을 읽어 두세요.
오늘은 내가 청춘시절에 읽었던 <<나폴레옹>>이라는 책을 가져 왔으니 모두가 돌려 가며 읽는 것은 어떨까요.
이 밖에도 뒤마의 <<삼총사>>,위고의 <<93년>>등 동서고금의 명작을 차례로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
이 때, 신이치가 멤버에게 건네 준 <<나폴레옹>>의 표지를 넘기면 신이치의 글씨로.
"나의 길을 가라 각자 각자가. 그렇지만 광포의 싸움에 양식으로 해야 할 책은 많다. 7월16일"
라고 적혀 있었다.
신이치는 해야 할 말을 끝내자 모두한테 질문을 받기로 했다.
취직문제에 대해 질문하는 멤버도 있는가 하면, 중국의 장래에 대한 전망을 질문한 사람도 있었다. 또 아프리카의 평화와 민중의 행복에 공헌하고 싶다는 포부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몇몇 질문에 이어서 구도 기미코라는,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가 부자유스런 멤버가 생각다 못해 지친 모습으로 물었다.
"저는 助産師로 일하는 어머니와 둘이서 살고 있는데, 장래에는 제가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교사가 되고 싶은데 몸이 자유롭지 못해 체조도 할 수 없고 대학 진학은 경제적으로도 어렵습니다.
교사가 안 된다면 서예로 생계를 세우고자 생각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 말하자 그녀의 말은 끊겼다. 안경 안쪽의 눈에 눈물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구도는 광선유포에 살아가는 사명의 크나큼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신이 처한 현실을 어떻게 열어야 할지 몰라 바동거리며 괴로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때, 신이치의 엄한 질타가 터졌다.
"신심은 감상이 아닙니다. 울어서는 그 무엇도 해결을 못 하는 게 아닌가!"
39....................................
긴장감이 돌았다. 실내는 정숙한 분위기에 감싸였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구도 기미코를 응시하며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당신에게는 어본존이 있지 않는가! 망설여서는 안 됩니다.
핸디캡을 한탄하여 무엇이 되겠는가. 아무리 한탄한들 사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또 모든 사람이 뭔가 고민을 갖고 있는 법입니다. 모든 상황에서 혜택을 받은 인간이란 없습니다.
학회의 자식이라면 어떠한 입장이나 상황에 처할지라도 과감히 도전하여 인생에 승리해 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될까가 아니고 자신이 어떻게 할까 입니다.
진정으로 교사가 되고 싶으면 반드시 되어 보이겠다고 정하세요.
마약 대학에 진학하는 일이 경제적으로 어렵다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벌면 됩니다. 야학에 다녀도 좋습니다.
사명에 살아가고자 하는 것은 이상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관념의 유희가 아닙니다. 발밑을 바라보고 현실을 타개해 가는 것이 신심입니다. 곤란을 타고 넘어 가는 자세 속에 신심의 빛남이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누구보다도 힘차게, 누구보다도 명랑하게, 누구보다도 맑고 깨끗하게 끝까지 살아가는 자신이 최고로 행복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인생을 보내는 것이 당신의 사명입니다."
구도는 입술을 깨물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치는 말했다.
"그래요. 져서는 안 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져서는 안 돼요. 강해져야 돼요. 분발해요. 분발하세요. 열심히 하는 겁니다."
그의 말에는 엄한 가운데도 상냥함이 넘치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모두에게 시선을 쏟으면서 말했다.
"모두는 서로 동지고 동료며 친구니까 혹시 학비를 낼 수 없는 사람이 있으면 전원이 다 함께 보태 주고 서로 도와 가는 정도의 마음을 가지기 바랍니다. 괜찮지요!"
"예!"
모두의 목소리가 울렸다.
신이치는 구도에게 미소지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동지가 있지 않은가. 감상을 떨쳐버리고 명랑하게 사는 겁니다."
이 날 모인 멤버 가운데는 구도뿐만이 아니라 부모님 중 어느 한족이 안 계시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다. 또 경제적으로 풍족한 가정 등은 전혀 없었다 해도 좋다. 그리고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구도와 같은 심정을 안고 있었다.
신이치는 그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를 위해서도 굳이 구도에게 엄하게 지도했던 것이다.
40..............................
참가자 중에 후지이 기요코라는 멤버가 있었다.
그녀도 여섯 살 때에 부모님이 이혼하여 언니와 함께 어머니 손에 자랐다. 헤어진 아버지는 심한 알코올 중독이었다.
모녀 세 사람이 큰어머니의 집에 신세를 지고 있었으나 생활은 밑바닥이었다.
그 생활 모습을 보고 일가집단자살이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한 이웃 사람이 그녀의 어머니에게 학회원을 소개해 주었다.
이 '이웃 사람'은 창가학회에 들어가면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모두 활기를 되찾는다고 실감하고 있는 듯했다.
기요코의 어머니는 그 학회원의 이야기를 듣고 신심을 시작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 빌딩 청소나 가정부로 일하는 등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언니도 중학교를 졸업하자, 낮에는 일하고 야간 고등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그래도 일가의 생활은 고통스러웠다.
기요코도 중학교를 나오면 언니와 마찬가지로 일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세 개의 장학금을 받게 되어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녀는 심지는 강했으나 표정이 어둡고 무슨 일에도 소극적이었다.
고교에 입학한 해에 고등부가 결성되어 이윽고 그녀는 부장이 되었다. 그 부기가 수요될 때, 야마모토 회장에게 들은 말이 "명랑하게 분발하세요."였다.
이후, 그녀는 이 말을 자신의 지표로 삼아 벗의 격려에 정성을 기울이며 면학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회장강의의 수강자로 선발되어 광선유포를 향한 자기 자신의 사명을 자각해 갔던 것이다.
하지만 광포의 리더라고 생각해도 눈앞에 있는 것은 지독한 현실생활이었다. 고교 졸업 후에는 취직하여 한시라도 빨리 집안을 돕고 싶었다.
'대학에 가는 것도 어렵고 특별한 자질도 없는 내가 과연 야마모토 선생님이 기대하시는 것 같은 인류의 행복을 책임질 리더가 될 수 있을까'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니 마치 구도 기미코처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또 니시나카 구니요라는 멤버는 2주쯤 전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 슬픔 속에서 자칫 감상에 빠질 자신과 한창 싸우고 있을 때였다.
그런 만큼, 구도에게 한 야마모토 회장의 지도를 듣고는 모두 눈이 번쩍 뜨이는 듯한 심정으로 '현실'에 맞설 결의를 굳혔던 것이었다.
41...........................
질문회가 끝나자 야마모토 신이치는 말했다.
"약간 더워졌으니 밖으로 나갑시다."
밖은 아직 이슬비로 흐려 있었다. 밤이슬을 머금은 잔디가 불빛을 받아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신이치의 제안으로 모두가 '동지의 노래'며 '대남공'의 노래를 합창했다.
젊은 벗의 맹서와 같은 노래 소리가 안개 가득한 밤하늘에 아름답게 울려 퍼졌다.
이후, 신이치는 준비해 두었던 수박과 단팥죽, 찐 감자 등을 모두에게 대접했다.
간담이 시작됐다.
"봉추회, 봉추그룹에게도 노래가 있으면 좋겠군요. 모두 함께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요."
"예!"
신이치의 제안에 모두 희희낙락하며 대답했다.
어느 사인가 안개가 걷히고 새까만 산등성이가 저편에서 보였다.
봉추들의 눈은 빛나며 맹서에 불타고 있었다.
신이치는 생각했다.
'지금은 순수한 마음으로 나와 함께 광포에 끝까지 살아갈 결의를 굳히고 있다.
하지만 신심의 길은 엄하다. 난도 있다. 온갖 유혹도 있다.
얼마만큼의 멤버가 평생 동지를 배반하지 않고 신심을 관철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참된 제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된다. 그 한 사람이 광포의 영원한 흐름을 열 것이다.
바라건대, 전원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세상에 있는 자신만의 사명을 끝까지 다해 주었으면 싶구나.'
마지막으로 다짐하듯 말했다.
"어디까지나 나와 함께 나아갑시다. 절대로 신심에서, 학회에서 멀어져서는 안 됩니다."
황금 같은 추억을 새기고 첫 야외연수는 끝났다.
멤버는 곧바로 노래 제작에 착수했다.
새해가 되어 1967년 1월 21일, 신이치를 둘러싸고 봉추회, 봉추그룹의 간담회가 실시되었다.
먼저 신이치와 함께 기념촬영을 한 뒤, 간담회로 이어지고 거기서 노래 발표가 있었다.
우선, 여학생 '봉추 그룹의 노래'가 피로(披露)되고, 다음으로 '봉추회의 노래'가 발표되었다.
이슬비 자욱한 센고쿠에
미래를 구축하는 젊은 무사가
스승께 맹서하는
이 기개는
하늘에 메아리치고 땅에 울려 퍼진다.
하늘에 메아리치고 땅에 울려 퍼진다.
모두 생애의 결의를 굳힌 저기 저 하코네에서의 저녁을 생각하면서 목청껏 불렀다.
그것은 멤버의 맹서를 표명하는 것이었다.
42.............................
'봉추 그룹의 노래'는 밝고 생기발랄했다.
한편, '봉추회의 노래'는 힘차고 당당했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합창이 끝나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양쪽 다 훌륭한 노래입니다. 특히 '봉추회의 노래'는 만점입니다. 1월 본부 간부회에서 '봉추회의 노래'를 발표하기로 합시다. 모두 다 함께 합창하는 겁니다."
환성이 터지고 박수가 울려 퍼졌다.
1월30일, 도쿄 지요다 구의 일본 무도관에서 거행된 본부 간부회 석상에서 봉추회 1,2기생이 마이크 앞에 섰다.
1.이슬비 자욱한 센고쿠에
원기 왕성한 노래 소리가 會場에 울려 퍼졌다.
2.세계 민중이 우리를 기다린다.
지금은 참고 기다리는 때라고
내일의 승리를 가슴에 간직하고
배우는 구원의 대철리
멤버들의 표정은 늠름하고, 소리는 힘찼다. 바로 광포의 젊은 무사를 연상시켰다.
야마모토 회장 슬하에서 창가후계인 봉추가 씩씩하게 자라나고 있다는 실감을 강하게 갖게 해 주는 광경이었다.
자녀의 성장을 염원하며 노고에 노고를 거듭하여 광포의 길을 개척해 온 장년부, 부인부 참가자들에게는 그것은 최대의 희망이자 기쁨이었다.
감격의 눈물을 억누를 수 없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사람들도 있었다.
신이치는 봉추회, 봉추 그룹의 멤버들과 그 후에도 시간이 나면 계속 만나갔다.
대학 입학시험이 끝나고 1기생 대부분의 진로가 결정된 이 해 4월 1일에도, 1,2기생의 멤버와 학회본부에서 간담하는 기회를 가졌다.
게다가 일류 호텔 등에서 하는 식사에 모두를 초대한 적도 있었다. 이윽고 세계의 큰 리더로 성장해 갈 멤버들에게 식사의 예절 등을 가르쳐 주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봉추회, 봉추그룹은 3기생,4기생으로 기를 거듭해 가면서 간사이를 비롯하여 북쪽으로는 훗카이도에서 남쪽으로는 오키나와까지 각 방면에서도 결성되어 갔다.
신이치가 직접 강의를 담당할 수 있었던 것은 2기생까지였다.
그러나 그 정신은 각 기, 각 방면의 멤버들에게 이어져 마침내 청년부의 그리고 학회의 중핵으로 성장해 갔던 것이다.
43.......................................................
봉추회, 봉추그룹이 결성된 지 30여 년이 지난 현재, 멤버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부회장이 몇 명이나 탄생했으며, 부인부장을 비롯한 부인부의 최고 간부도 다수 육성되고 있다.
고등부장을 했던 사람도 남자부장, 청년부장을 역임한 사람도 있다.
해외에서도 유럽의 중핵이 된 멤버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광포의 추진력이 되어 성장하고 있다.
또 대학교수나 초, 중, 고교의 교사, 그리고 의사, 변호사, 정치가, 회사경영자, 저널리스트 등등 많은 멤버가 사회 각계에서 제일인자가 되고 있었다. 그 중에는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로서 활약하는 봉추회 멤버도 있었다.
야마모토 신이치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씨를 뿌리고 키운 인재의 종자가 훌륭하게 성장하여 광포 후계의 대륜이 되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갔던 것이다.
신이치는 봉추회나 봉추 그룹뿐만 아니라 전 고등부 부원 그리고 중등, 소년부 부원을 육성하는 일에도 계속 힘써 갔다.
고등, 중등, 소년부의 신춘 등산회와 하계 강습회도 매해 실시하여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갔다.
1966년 하계 강습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신이치는 스포츠 대회에 참석하고 고등부의 대표와 소프트볼을 즐겼다. 청춘시절의 즐거운 추억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었다.
고교생 팀과 신이치를 중심으로 한 최고 간부 팀이 對戰하게 되었다.
그는 1루를 맡았다. 고등부 부원이 내야땅볼을 쳤다. 투수가 볼을 주워 1루에 송구했다. 신이치는 뛰어올라 공을 잡고자 했다.
그 때였다. 전속력으로 달려 온 주자가 신이치와 부딪친 것이다.
모두 숨을 죽였다.
신이치는 쓰러지고 그 바람에 왼쪽 팔을 강하게 부딪쳤다. 심한 통증이 스쳐갔다.
모두가 걱정하여 뛰어 왔다.
팔에 피가 나고 있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괜찮으십니까?"
충돌한 고교생은 죄송하기 그지없는 마음으로 물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괜찮으니까."
신이치는 상냥하게 말하고는 벤치로 되돌아가 응급처치를 받았다. 하지만 붕대 밑의 상처 부위가 계속해서 욱신욱신 쑤셨고 게다가 붓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다.
저녁에는 대객전에서 고등부, 중등부, 소년부의 합동 부원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44.....................
최고 간부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녁에 있을 합동 부원회에서는 미력하나마 저희들이 전력을 다해 참가자들을 격려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무리하시지 말고 후식을 취해 주십시오.
선생님께서 스포츠 대회에 참석해 주셨으므로 멤버도 충분히 만족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신이치는 대답했다.
"아니, 참석하겠습니다. 전국에서 참석하러 오 준 소중하고도 소중한 학회의 후계자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의 팔은 욱신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합동 부원회에 참석한 신이치는 상처에 대한 것은 잊어버린 듯이 50분간에 걸친 혼신의 지도를 다 했다.
그리고 시원스럽게 학회가의 지휘까지 한 것이다.
대부분의 멤버는 스포츠 대회에서 생긴 신이치의 상처를 목격했다. 그러기에 모든 멤버들의 감격은 컸다.
그의 이런 행동 자체가 동지를 위해 봉사하는 광선유포의 리더로서 살아가는 자세를 민중에게 가르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신이치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는 고등부 부원의 육성에도 힘써 왔다.
<<대백연화>>의 권두언 "봉추여 미래로 웅비하라"에서도 신이치는 야간 고교생에게 빛을 비우어 그 존귀한 청춘의 자세를 칭찬하고 있다.
신이치 자신도 전후 얼마 안 되어 도요 상업고교의 야간부에 편입했으며 인쇄회사 등에서 일하면서 근로학생으로서 청춘시절을 보냈다. 그런 만큼 야간 학교에 다니는 고등부 부원의 고생을 잘 알고 있었다.
멤버 가운데는 집단으로 취직하여 도쿄로 올라와 회사의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같은 방의 사람들이 신심을 이해하지 못해 회사의 옥상에서 매일 근행을 하고 있다는 고등부 부원도 있었다.
또 아버지가 타계하고 어머니가 병약한 까닭에 자신이 주로 생계를 맡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남보다 갑절의 고생을 하고 있는 이러한 벗을 어떻게든지 대성할 수 있게 해 주고 싶은 것이 신이치의 바람이었다.
이후, 학회의 회관을 사용하여 정기적으로 야간 고등부 부원회가 개최되어 왔지만, 1967년 8월 13일에는 도쿄 기타 구의 공회당에서 대대적으로 제5회 야간 고등부 부원회를 실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처음으로 일반 공회당을 사용한 회합이었다.
45..................................................................
기타 區 공회당에서의 야간 고등부 부원회가 실시되기 약1주일 전의 하계 강습회에서 어느 야간 고등부 부원이 야마모토 신이치를 만났다.
그 멤버는 결심을 하고 신이치에게 말했다.
"선생님! 저희들은 8월13일에 야간 고등부 부원회를 실시합니다. 선생님, 부디 참석해 주십시오."
필사적인 마음이 느껴졌다.
신이치는 답변했다.
"그 날은 지방 지도의 예정이 있어 나는 갈 수 없지만, 참석한 것 이상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부원회 당일을 맞이했다.
이 모임에서 우선 우에노 마사야 고등부장으로부터 야마모토 회장의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나는 구도심에 불타 사회의 거친 파도와 싸우면서 면학에 힘쓰는 제군이야말로 학회의 보배며 미래의 지도자라고 확신하고 오늘의 모임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바입니다."
모여든 2500명의 열기가 장내를 감쌌다.
"아무쪼록 묘법을 신수한 봉추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보다 백천만억 배 뛰어난 대철리를 수지하여 어떠한 역경이라도 그것과 싸우는 것이 모두 재산이 되고 복운이 된다는 것을 확신하고 긍지 드높은 청춘시절을 당당하게 보내 주십시오.
(중략) 십 년 앞을 바라보며 꾹 참고 언젠가 두고 봐"는 결의를 잊지 않고...."
메시지의 소개가 끝나자 폭발적인 박수가 터졌다.
게다가 이 날, 참가자 전원에게 신이치가 휘호한 색지의 복사본이 증정되었던 것이다.
"앞으로 생애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이 스승에게 배운 영예를 나는 최고 최대의 행복으로 만들겠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나와 같은 길을 가는 벗에게"라고 씌어져 있었다.
색지를 손에 든 참가자들의 감격은 절정에 달했다.
인생의 스승으로 우러러보는 신이치와 같은 길을 걷는다는 긍지가 환희로 들끓는 뜨거운 피로 되어 모든 고등부 부원의 전신에 소용돌이쳤다.
고난은 영예-누구나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야간 고등부 부원회는 그 후에도 횟수를 거듭하여 이듬해인 1968년 8월14일에는 도쿄의 히비야 공회당에서 제10회 부원회가 개최되었다.
이전부터 멤버들 사이에 야간 고등부의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는데, 이 제 10회 부원회라는 가절이 발표의 장으로 되었던 것이다.
노래의 이름은 '나의 청춘보'로, 작사도 작곡도 야간고등부 부원이 담당했다.
46......................................................................................
야마모토 신이치는 담당 간부로부터 애창가 '나의 청춘보'의 발표를 비롯하여 부원회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듣고 야간 고등부가 완전히 궤도에 올랐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더욱더 반석 같이 만들고자 고등부장인 우에노 마사야오 상담하여 야간 학생들도 봉추회를 결성하기로 했던 것이다.
야간 고등부 봉추회가 남녀 각각 27명으로 발족한 것은 이1968년 10월 27일이었다.
다음날 11월17일, 신이치는 이 야간 고등부 봉추회 멤버를 전골요릿집에 초대했다.
도쿄 아오야마에 있는 격식 높은 식당인 만큼 처음에는 모두들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배가 잔뜩 부를 만큼 많이 드세요."
신이치의 권유로 김이 올라오는 전골요리를 젓가락을 뒤적거리기 시작하더니 스스럼없이 웃음이 퍼져갔다.
이윽고 신이치를 둘러싼 지도회가 되었다.
"일을 하며 야학에 다니고 있으면 아무래도 피로가 쌓여 건강을 해치기 쉬우므로 특히 몸을 소중히 해 가 주세요.
현인이란 자기 스스로를 리드해 갈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건강관리는 자신의 지혜로 해 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건강이 가장 염려됩니다."
스승의 진심 어린 말에 모두 감격하며 들었다.
"지금은 아무리 힘든 상황에 놓여 있어도, 아무리 엄격한 직장일지라도 그것이 좋은 것입니다. 젊었을 때에 역경 속에서 살아간 사람 쪽이 장래에 오히려 인생의 총마무리를 훌륭하게 해 갈 수 있는 법입니다.
가장 고생하고 있는 제군이기 때문에 나는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야간 고등부 봉추회는 가장 크게 기대가 될 만한 사람들입니다. 이 정도의 멤버가 있으면 광선유포는 반드시 가능합니다.
나는 일 년을 마디로 또 십 년을 마디로 제군이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 보아 가겠습니다. 유사시에 나오 함께 광선유포를 위해 일어설 수 잇는 참된 야마모토 문하생이 되어 주세요."
"예!"
원기 왕성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신이치는 뜻밖에 엄한 어조로 말했다.
"대답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결의하는 것도 간단합니다. 말뿐인 사람을 나는 많이 보아 왔습니다.
신심은 실증입니다. 지속입니다. 중요할 때에 그리고 일생을 통해 무엇을 해냈는가 입니다.
제군은 진짜 용자였다는 찬탄을 받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엄부의 지도였다.
47...........................................
마지막으로 야마모토 신이치는 중얼거리듯 이야기했다.
"나는 기쁩니다. 오늘은 정말로 기쁩니다.
나도 야학, 도다 선생님도 야학이었습니다....."
야간 고등부 봉추회의 멤버는 자신들의 상상을 훨씬 초월한, 야마모토 회장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친밀함을 느꼈다. 또 너무나도 큰 기대에 몸이 세차게 조여오는 느낌이었다.
신이치는 모두에게 시선을 쏟으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
"뭔가 노래를 부릅시다."
멤버 한 사람이 대답했다.
"그럼 모두 다 같이 만든 야간 고등부의 노래를 불러도 되겠습니까?"
"듣고 싶군요."
"예!" 하며 전원이 일어섰다.
그리고 나의 청춘보'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1. 강한 동지의 연대를 이루고
향학에 불타 힘써 간다
지지 말라 벗이여 젊은이의
영지 흘러 넘친다 정열은
나의 황금의 청춘보
느린 템포의 힘찬 노래다.
2. 젊은 우리들의 정진은
스승이 걸으신 길이라면
우리들 무상의 긍지여라
광포의 위업 나의 사명
아아 이 감격스런 緣
3. 빛나는 영광 한결같이
젊은 평화의 전사 가노라
세계의 벗이여 분명히 보아라
내일의 희망의 태양을
노래하자 우리들의 청춘보
1절에는 '고투'를, 2절에서 '사제불이'를, 3절에서 '세계로의 웅비'의 결의를 노래하고 있었다. 생애에 스승과 함께 살아가려는 맹서를 담은 열창이었다.
그 노래 소리는 신이치의 마음에 강하게 울려 퍼졌다.
"좋은 노래다. 한 번 더."
신이치의 말에 또다시 힘찬 합창이 시작되었다.
"정말로 좋은 노래다. 이번에는 남학생이 1절을, 여학생이 2절을, 3절은 남녀 함께 노래합시다. 이 노래를 테이프에 녹음하여 듣겠습니다."
신이치의 요청으로 몇 번이나 합창을 반복했다.
노래가 끝나자 그는 말했다.
"모두 괜찮다면 이번 달 본부 간부회에서 노래하여 전국의 멤버들에게도 들려줍시다."
예기치 않은 제안에 멤버는 감격으로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예"하고 힘찬 소리로 대답했다.
"또 이 노래의 제 4절의 가사를 내가 여러분을 위해 만들어 드리지요."
모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어느 누구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날의 회합은 멤버에게 '생애의 보물'이 되었던 것이다.
48.....................................
야마모토 신이치는 돌아가는 차안에서 즉시 '나의 청춘보'의 4절 가사를 생각했다.
그의 생각은 그대로 가사가 되었다. 노래는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4. 후지산의 고령을 우러러보며 간다.
그대여 성장하여라 나는 기다린다.
사명은 깊고 생사 있으니
전진하는 그대들에게 빛 있으라
미래에 찬란한 청춘보
이 가사는 다음 날에는 이미 멤버에게 전해졌다.
약속을 허망하게 만들지 않는 야마모토 회장의 성실함에, 또한 그 신속함에 먼저 멤버들은 감동했다. 그리고 가사를 보자 그 감동은 충격으로 변했다.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신뢰, 어쩌면 이토록 깊은 자신의 사명인가-모두 한없이 친절한 스승의 팔에 감싸여 있는 기쁨에 가슴이 떨리는 것이었다.
11월25일, 도쿄 료코쿠의 니치다이 대강당에서 거행된 본부간부회에서는 야간 고등부 부원의 맹서가 담긴 노래 소리가 메아리쳤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단상에서 이 노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마음 속으로 계속 외쳐댔다.
'지금은 괴롭고 힘든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지 말라! 결코 지지 말라!'
'가장 엄한 환경 속에서 최고의 대지도자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군들이 증명하는 것이다
길을 열어라!21세기의 개척자들이여.'
이렇듯 야마모토 회장의 진두지휘라고도 해야 할 육성에 의해 고등부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갔다.
결성 2년 후인 1966년 6월에는 부원10만 명을 달성하고 게다가 68년에는 부원18만 명으로 비약적인 확대를 해 갔다.
또 이 1968년에 여자 고등부장이 탄생하는데, 본부의 해외총국에서 영어판 월간지 '세이쿄 타임즈'의 편집을 맡으며 부고등부장을 역임한 오코치 도모코가 초대 여자 고등부장으로 취임했다.
회장 야마모토 신이치가 본문의 시대의 출발에 즈음하여 고등부, 중등부, 소년부라는 미래의 인재의 샘을 팜으로써 창가 후계의 대하의 흐름이 한층 더 열리고 21세기를 향해 양양한 수평선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명의 모종을 심고 키우는 신이치의 인간교육은 청소년이 마음에 불굴의 정신력을 키워 갔다. 그것은 전후 일본의 황폐한 교육에 새로운 빛을 던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점을 깨달은 교육자나 학자는 아무도 없었다 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