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에 눈을 뜨자 마자 나는 갑자기 미쳤다.
민균이 얼굴이 보고싶은 것이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세수하고, 집안일을 해놓고 마을버스를 타고 대화역으로 갔다.
1000번 버스를 갈아타고 연세대 앞에서 내렸다. 신촌역으로 걸어가면서 놈이 좋아하던 초밥을 구했고, 얼른 사가지고 2호선 전철에 몸을 싣고 강변역으로 갔다.
그곳에서 차편이 너무 어긋났다. 합승택시를 만나 차삯을 흥정한 끝에 거금을 주고 강원도로 출발했다.
놈이 있다던 15사를 향해!!!
총알택시 기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2시간을 넘게 달려서 드디어 15초소에 도착!!!
나는 신분증을 맡기고 이모라고 말하고 면회소에서 기다렸다.
40분을 기다리며 나는 그곳에서 일하는 수많은 장병들을 바라보았다. 사람 구경하기 힘든 놈들이 삽자루로 눈을 치우다가 원숭이 보듯이 사람을 애타게 바라다 보고있더군...
기다리는 초소는 너무 더럽고 좁고 지저분하더라.
난로 근처를 마다하고 구석에 앉아 뻘줌히 있기가 뭣해진 나는 수첩을 꺼내어 조금 있으면 저 삐그덕 거리는 나무문을 박차고 들어올 놈을 향해 깨알같은 편지를 끄적였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 민균아, 내가 왔다. 이세상에서 너를 사랑하는 한 사람. 내가 왔다.
이렇게 시작되는 글귀는 총총 수첩조각의 앞뒤를 빼꼼히 메우고 있었다...
글을 다 쓰고 나자 그 놈이 땀을 뻘뻘 흘리고 들어와서 경례를 부친다.
눈을 치우다 왔다고. 좀 늦었다고 멋쩍은 눈웃음을 짓는다.
오오, 이뿐 우리 민균이!!! 가엾기가 가이없는 놈!!!
우리는 이산가족 처럼 한동안 끌어안고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좀처럼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것같아 오늘 왔다고 말하며 초밥을 꾸역꾸역 먹는 저 허기진 놈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거칠게 터진 얼굴, 옹이가 박힌 손마디... 책넘기던 손이 저렇게 변했군. 다리는 돌처럼 굵고 단단해지고, 어깨도 좋아졌군.
느끼한 눈웃음도 여전하고, 두런두런 이런말 저런말 서로의 삶에 대하여, 지나온 일들을 반성하고 앞으로의 일들을 계획하고, 현재의 일들을 점검하고... 이렇게 세시간을 이야기하는 동안 우리는 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나쁜 놈. 나는 그 놈을 미워할 수가 없다.
나쁜 짓은 골라가면서 했는데, 만나면 혼내주려고 간거였는데, 얼굴을 보니까 그럴 수가 없다.
아이고, 이놈아, 너는 아니? 내 너를 얼마나 사랑하고 염려하는지를... 제발 제대로 좀 살아라. 이제 속좀 그만 썩혀라.
예정된 시간이 지나고 나는 그 놈을 다시한번 끌어안고 울지 말아야지 이를 물고 다짐한다.
잘있어. 건강하고. 귀한 몸이다. 잘 건사해라.
잘 버티다 나와라. 이곳도 사람사는 곳이니 무언가 얻어지는게 있겠지. 헛된 시간으로 만들지 마라.
알았어요. 걱정 마세요.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그으래...흐흑...
경례를 부치는 그놈을 뒤로하고 때마침 그곳을 지나는 봉고차를 얻어타고 사방거리로 나와 상봉행 버스를 탔다. 상봉동에 세시간 반만에 도착. 그리고 205번 버스를 타고 신촌에 도착. 다시 1000번 버스를 타고 대화역에 도착. 다시 마을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 12시.
씻고 누우니 1시. 광현이가 생각나서 전화하니 없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밤을 세웠다.
1월에는 진규한테도 가봐야지.
대인이는 지오피에 들어가서 못본다.
은탁이도 지오피.
대우는 1월에 나온다니 다행이다.
그 놈들에게는 겨울철에 필요한 물품을 사서 소포를 부쳐주었다. 야무진 놈들이니 잘 해낼거라는 믿음이 간다.
용민이는 가까운데 있으니 언제라도 갈 수 있겠다. 통닭사가지고 가봐야지.
크리스마스인데, 군바리들은 얼마나 마음이 허할까.
나는 가족이 있고 집에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군바리 놈들때문에 내가 편히 있는건가, 아님 마음이 더 불편한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