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계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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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버드나무가 운치 있게 서있는 시냇가
사철탕집 마당에 비닐도 벗기지 않은 고급 승용차가
머리를 들여 민다
어렵다는 말에 선뜻 거금을 송금해준 마음이 혹시나 하고
길섶에서 초조하게 도망친 우정을 기다리고 있다.
친구의 마음이 먼저 와있다
계금을 축낸 친구의 그림자는 일일이 손을 잡고
부녀자들 까지 머리 숙여 용서를 빈다
그러나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차가오는 길만 쳐다본다
바람에 쓰러진 나무는 오늘을 위해
나무들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산에 올라 외쳤단다
마비된 오른손으로 밥숟갈을 드는 게 소원이라며
굉장히 느린 속도로 곁가지를 들어올린다
오지 못한 친구의 마음이 그곳에 있다.
속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수중보에서
손가락 길이만한 피라미들이 급한 물살을 견디고 있다
지느러미를 흔들지도 않는데 떠내려가지 않는 것은
물살보다 더 빠르게 시간이 흘러가기 때문이리라
강 건너로 골프공을 날리던 승용차는 마당을 빠져나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 것이다
사철탕을 앞에 놓고 고민하는 경차에게 고향 1톤 트럭은
이 나이에 몸보신하고 가라며 걸쭉한 국물을 밀어 놓는다.
고향 계모임에 걸치고 온 차들은
주변 나무 그늘에 따로 모여 살아가는 얘기를 한다.
오늘 내가 태우고 온 물건은 내일이면 다른 곳에 내려놓고
기름값 때문에 차고에서 외출을 금지 당할지 몰라
옛 친구의 얼굴대신
마당에 서있던 최고급 승용차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얼굴은 비치지 못한 친구의 마음만 늦게까지 남아
군서 끝 동네 상지리, 바르도 같은 버드나무 아래서
빈손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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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계모임
이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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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4
05.08.22 09:5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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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세월이 흐른다고 정마저 흐를 수가 있을까? 알벗회(불알친구 모임에서 불은 빼고) 정년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야지 전완하
님의 글 속엔 항상 고향,어머니,친구 그리고 진한 그리움이 담겨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