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공중 화장실에서 제 아이들과 손을 닦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한 아주머니(저보다는 좀 더 들어 보이는)가 오더니 제 아들에게
“얘 빨리 좀 씻어라, 아줌마 좀 닦게” 라고 하는 겁니다.
제가 딸 손을 거의 다 씻겨주었길래 울 아들을 그 자리로 데려와서 씻게
했습니다. 이런 일은 한국에서는 흔히 있는 일입니다.
저는 그러지 않지만요. 저는 아무리 아이여도 그 아이가 다 씻을 때까지
차례를 기다립니다. 그건 제가 좋은 어른이라서가 아니라, 어렸을 때
어른들에게 당했던(?) 부당한 대우가 싫어서일 겁니다.
한국에선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기 보다, 어른들은 대체로 자기들보다
낮은 사람, 자기들보다 모르는 사람, 자기들이 지시하고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종종 그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크면 알게 되”라는 말이었지요.
그런 종류의 대답은 어른들이 귀찮은 질문을 회피하기 위한 가장 좋은 변명임과
동시에 아이들의 끝없는 호기심을 닫아버리는 아주 나쁜 대답입니다.
뭐…간혹, 어른이 된 저로써도 대답하기 곤란하고…크면 알게 되는 것들이 정말
있긴 하지만요. 저는 우리 아이들이 무언가 물어보면 최대한 쉬운 말로 설명해
주려고 노력한답니다. (그렇다고 제가 좋은 엄마라고 말하기는 찔리는 게 많네요.)
한국의 학교는 여전히 말 안 듣는 아이는 때려도 된다는 생각들이 있고요,
교사에게 아이들을 체벌하지 못하게 하면 교권이 무너지네 하면서 한숨 쉬는
어른들도 있고요…
물론 저도 제 자식이지만, 제 아들 녀석 말 안들을 때는 한대 쥐어박아 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만, “너 그러다 맞는다.” 협박만 할 뿐, 때리는 적은 거의
없습니다. 것두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요즘 도를 닦으려 노력 중
이고, 공부 중입니다.
그렇다고 아이를 너무 떠받들 듯이 하거나, 아이의 요구가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아이들도 존중해 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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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에 제가 <나의 캐나다 경험담>을 몇 개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의 마무리로 쓰고 싶은 게 하나 더 있었는데, 이런저런 일로 미루다 보니
못 썼던 내용이지요. 사실, 제 이민병의 원인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캐나다에서 9개월 정도를 벤쿠버에서 지냈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한달 반 동안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한국에서 서로의 공통된 친구의 결혼식에서 딱 한번
만났던 (결혼했던 친구의) 친구를 캐나다에서 만나게 되었던 것이 제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여행과 추억을 남겨주었죠. 제가 처음 그 친구를 만났을 때, 그 친구는
이미 여행 중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캐나다에서 학교 같은 곳은 다니지 않았고
줄 곧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 친구는 처음부터 WWOOF(Willing Workers On
Ogarnic Farm) 라는 프로그램으로, 여행을 목적으로 캐나다에 온 것이었구요.
그 친구에게서 그 프로그램을 소개받고, 저도 용기를 내어 낯선 곳으로 혼자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난생 처음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지만, 친구의 여행
경험담을 들어서인지 걱정보다는 호기심이 더 많았고, 이 때가 아니면 내가 언제
혼자 여행을 해 볼 수 있으랴 싶어서 몇몇 농장에 동그라미를 쳐가며, 전화를
걸어 더듬거리는 영어로 이것저것 물어보고 날짜와 장소를 맞춰 떠나게 되었지요.
각자 다른 농장에서 있다가, 중간에 그 친구와 합류하여 록키투어도 했고요.
암튼 그 곳에서 광활한 캐나다의 자연과, 그 속에서 사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는 게, 크나 큰 인생의 경험이었습니다.
농가는 세 군데를 다녔는데, 그 중 한 농가에 있을 때, 농장주인이 저를 마을 축제에
데려 간 적이 있었습니다. 조그만 시골 마을이었는데, 그 날 축제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구요. 바로 그 곳에서 감명 깊고 부러운 장면을 보게 된 것이지요.
누구나 자유롭게 먹고 마시고 춤도 추고 했는데, 너무 인상 깊었던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한 데 모여 춤을 추며 노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어른은 어른대로 모여서 술 마시고 노래방 가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모여
나이트 클럽 다니고…하는 것만 보던 저로써는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거든요.
그들의 모습은 평상시에도 그렇게 지내기 때문에 가능한 자연스러움이 있었구요.
한국에서는 집안 어르신부터 아이들까지 모이는 명절조차도 어른 따로 아이 따로
노는 모습이 대부분이라서, 같이 있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고 거북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기껏해야 하는 질문이 공부 열심히 하냐, 잘 하냐…하거나
조금 큰 청년들에게는 취업은 어찌됐냐, 결혼은 언제 할거냐…따위의 부담스런
질문만 해대니 같이 있기가 싫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질문들이 대를 이어
반복된다는 게 좀 아이러니지요?) 또 어른들의 대화에 아이들이 끼어드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지요.
그러니 자연스럽고 즐거운 어른과 아이들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는 겁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요즘 무엇이 재미있는지, 왜 재미있는지 따위는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은 들어주지도 않고, 어른들이 자기들 설교만 줄줄이 해대니…
대화라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것 같구요. (그런데 사실 요즘은 애들이 무서우니
설교하는 어른들도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제 어느덧 제가, 비판해오던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 속 한편은 늘 어린 마음이
있어서…내 억울했던(?)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아이들도 존중 받는 환경에서 우리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지요.
어른과 아이는 위와 아래로 나뉘어진 따로 국밥이 아니라, 인생의 선후배로써 서로
존중하고, 서로 배우는 관계로 대한다면 더 행복해 질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봅니다.
요즘은 세상 변하는 속도도 빨라서 아이들에게 배워야 할 것들도 많거든요. ^ ^;
첫댓글 ^^ * 글 감사합니다.
우리도 나의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존중해줘야겠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은 점들을 일깨워 주는 글 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덕분에 제가 마무리하지 못했던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저도 고맙습니다. ^ ^
너무도 공감되는 글입니다 사실 전 아이들 학교 선생님이나 취미로 다니는 학원 선생님, 다른 학부모들과는 그리 친하게
지내지 못하는 편인데요 -바쁘다는 핑게로- 제 아이들은 오히려 저보다 선생님들이나 다른 아이들 부모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애들도 한 인격체로 인정하는 사회라서 그런지 한국에선 생각할 수도 없었던 상황을 만들고 있네요.
이미 캐나다에 살고 계신분이군요. 잘 뵙지 못한 닉네임이신데, 제 글에 공감하셔서 댓글을 남겨주시니 저도 기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는 청개구리같은 울 아들녀석에게 종종 lose my temper 입니다. 안 좋다 하는걸 한번 꼭 해보고 싶어하는
실험정신(?)때문에 제가 자주 시험에 든답니다. 아이를 억누르지 않고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려면 우선
제 자신을 잘 다스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거이...사실 쉽지 않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