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5 - 서영남
다 떨어진 신발을 끌고 온 손님께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했습니다. 손님이 대답합니다. ‘슬픈 크리스마스!’
밤새 얼마나 떨었을까. 잠들면 죽을 것 같아 밤새도록 걷는다는 손님입니다. 오전 아홉 시 반에 밥 먹으러 왔습니다. 열 시에 문을 여는 줄 잘 아는 단골 손님입니다. ‘열 시에 여는 줄 몰랐어요?’ ‘알아요. 그런데 배가 너무 고파요.’ 배 고프시다는데 어떻게 합니까. 들어오시라고 했습니다. 손님들이 줄줄이 국수집으로 들어섭니다.
어제는 새 민들레 식구가 들어왔습니다. 나이는 마흔 여덟입니다. 노숙을 시작한지 십여년이 되었답니다. 서울에서 노숙을 합니다. 며칠 만에 국수집에 나타났습니다. 방을 하나 구해놓았는데 성탄 선물로 받아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아주 좋다고 합니다. 이삿짐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등에 메고 있는 배낭이 자기의 짐 전부라고 합니다. 우선 이부자리를 마련해 주고 보일러에 기름을 넣어주었습니다.
얼마 전에 세 명의 민들레 식구가 들어왔습니다. 함께 영등포역에서 노숙하던 두 분은 같은 방을 쓰시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한 분이 심각한 얼굴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둘이서 한 방을 쓰기가 너무 어렵다고 합니다. 자기는 아침에 일찍 일하러 나가야 하기 때문에 일찍 잠을 자야하는데 같은 방 룸 메이트가 귀가 잘 안들리는지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놓고 본다는 것입니다. 참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급히 방을 새로 얻어드렸습니다. 그제야 기분이 풀렸습니다. 쌀 한 포와 전기밥솥을 드렸습니다.
이슬왕자에게 병문안을 다녀왔습니다. 매점에서 외상으로 간식을 가져다 먹었습니다. 외상 값 갚아주고 용돈을 넣어드렸습니다. 운동화와 옷이 없다고 합니다. 새 운동화와 잠바와 바지를 챙겨서 넣어드렸습니다. 공복 혈당이 300이 넘습니다. 방에서 과자를 먹거나 사탕을 먹으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절대 먹지 않았다고 우깁니다. 당뇨약을 잘 먹도록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손님들께 참기름 듬뿍 넣고 매운 청양고추 썰어넣은 양념장을 내어 놓았습니다. 한 손님이 양념장을 두 국자나 밥에 넣고 비비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양념장을 철수시켰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는 상에 소금과 간장 또는 후추를 내어놓지 않습니다. 곰국을 끓였을 때도 미리 국에 간을 해서 손님들께 드립니다. 처음에는 손님들께 일반 식당처럼 곰국을 낼 때는 소금과 후추 그리고 고춧가루 등을 상에 내어드렸습니다. 직접 간을 맞춰 취향에 따라 드시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간을 맞춰 드셔본 경험이 없습니다. 소금 한 숟가락, 후추 한 숟가락 듬뿍 넣고는 짜서 먹을 수 없다고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26일 월요일에는 인문학 강의 겸 민들레국수집 송년모임을 ‘서라벌’이라는 식당에서 엽니다. 인문학 강의에 참석하는 손님들의 기대가 대답합니다. 자기들끼리 소곤거립니다. 서라벌이 어디야? 무슨 음식이 나올까? 얼마나 맛있을까? 노숙을 시작하고부터는 꿈도 꾸지 않았던 식당에서의 송년모임입니다.
27일에는 민들레 식구들끼리만의 송년모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28일에는 민들레 꿈 공부방 송년모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민들레의 집 식구들을 위해 청국장을 끓였습니다. 참 맛있게 먹습니다. 남은 청국장도 손님들이 참 맛있게 드십니다. 오늘은 돼지불고기를 손님들께 대접합니다.
첫댓글 민들레 일기를 즐겨읽는 왕팬!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가난하고 힘든 이웃들을 위해 헌신하는 민들레 수사님의 모습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민들레 국수집 최고입니다!!
Bravo~!!!!!
희망과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민들레 국수집을 떠올리니 힘든 제 삶에 따뜻한 등불 하나가 켜졌습니다. 다시 일어서는 기적을 봅니다. 늘 수고하시는 수사님과 베로니카님께 감사드립니다.
절망이고 약한 이웃들이 힘을 얻고, 나는 또 그런 모습을 보며 에너지를 얻습니다. 이렇게 서로 힘이 되어주고 든든한 에너지가 되어주는 세상. 내가 꿈꾸는 세상입니다 ^^*
사랑이 꽃피는 민들레 국수집을 힘차게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