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안 하고 살면 좋겠다. 새하얀 거짓말은 그만 두고라도 새빨간 거짓말이라도 안하고 살면 정말 좋겠다. 정치도 교육도 거짓말만 안해도 길이 좀 보일 것 같은데 그게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큰일은 못해도 거짓말은 안하려고 말에 뜸을 들이며 더듬더듬 살아간다. 그런데 요즘 사린이가 가끔씩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
아직은 그게 거짓말인지도 모르고 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아버지로서 나는 주의 깊게 지켜본다. 예를 들면 나하고 다트 시합을 하는데 던진 화살이 표적에 어디라도 정확하게 들어가면 상관없는데 금에 맞는 수가 있다. 이렇게 경계에 맞은 화살은 자세히 봐야 점수를 매길 수 있다. 그런데 아들 사린이는 내가 자세히 보기도 전에 안쪽, 그러니까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공간에 맞았다고 말하고는 얼른 화살을 표적에서 떼어낸다. 그러니 정정당당하게 매긴 점수인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사린이 마음은 뻔하다. 아버지인 나를 이기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장기를 두면서도 마찬가지다. 늘 이기고 싶어 기를 쓴다. 경기를 하다보면 어떤 경기든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고 말해줘도 일단 장기판 앞에 앉으면 그게 쉽지 않은가 보다. 그래서 처음엔 일부러 가끔 내가 져주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조금씩 밀릴 때도 있다. 그만큼 일곱 살 아들이 차고 올라오는 것이다.
비단 장기시합 뿐이겠는가. 앞으로 거의 많은 분야에서 아들은 계속 성장할 것이고, 나는 기꺼이 그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사린이는 조급하게 벌써 아버지인 나를 능가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 이기고 싶은 사린이의 마음이 저도 몰래 거짓이 들어올 틈을 벌려주는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인 내 마음에 경계심이 생긴다. 그러다 가끔 그 도가 지나치다 싶을 때는 화도 낸다. 따끔하게 혼을 내도 화를 내진 말아야하는데 나도 부모로서 마음이 앞서는 것이다. 숨을 가다듬고 늘 깨어 있어야 할 것 같다.
며칠 전 텔레비전을 켜고 교육방송에서 하는 ‘칭찬의 역효과’라는 프로를 보았다. 그 프로그램에서 한 실험을 했는데, 거기서도 아이에게 지나친 칭찬을 해주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그 칭찬에 걸맞은 아이가 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대부분의 아이들이 칭찬에 자신을 맞추려고 자기 실력이 아닌 커닝을 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렇게 무분별한 칭찬은 정직이라는 귀한 가치를 쉽게 버리게 만든다. 나아가 남들이 세워놓은 칭찬이란 허상에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를 끌어다 맞추는 노력을 하게 될 수 있다. 끔찍한 일이다.
그것은 교육이 아니다. 사람이 하는 게 무엇이든 그 일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없다면 그게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그런 일은 사람을 결코 행복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교육도 배움 그 자체가 즐거워야지 억지로 다른 이유 때문에 한다면 그것은 오래가기도 어렵고 오래간다 해도 불행일 뿐이다.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아이가 무엇을 열심히 하는 마음도, 부모나 교사가 그 아이를 칭찬하는 마음도 지나치면 오히려 그것이 독이 된다. 열심히 하는 아이는 그것 자체가 목적이어야지 그렇게 열심히 해서 일등 해야지 하는 마음은 벌써 공부의 바른 자세가 아닌 것이다. 부모나 교사가 아이에게 하는 칭찬도 정확하게 그 아이가 정말 잘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헤아려서 그 잘한 것을 북돋아주되 내 자식 또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가 역시 훌륭하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무조건 칭찬하다보면 아이를 망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잘못된 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 돈을 안 내고 받아 보는 잡지가 있다. 나만 돈을 안 내는 게 아니라 그 잡지를 보는 모든 사람이 그렇다. 그런데 그 잡지의 일월 호, 그러니까 한해가 시작되는 때가 되면 잡지 속에 붓글씨 한 점이 들어있다. 재 작년인가보다. 그때도 일월 호 잡지에는 변함없이 붓글씨 한 점이 고이 접혀져 갈피에 끼워져 있었다. 펼쳐보니 ‘있는 그대로 참 아름다운 너’라고 쓰여 있었다. 쉽고 평범한 진리이지만 대부분 잊고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는 따뜻한 가르침이었다.
우리가 정직하려면 이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말뿐인 칭찬에서 벗어나려면 이 가르침을 품에 안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행복이 내 속에서 솟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부모도 교사도 아이도 이 진리를 마음에 담고 나아갈 때 교육은 참 멋진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나와 아들 사린이도 마음을 담아 서로를 이 말로 자주 불러준다면 어느덧 거짓말 하지 않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있는 그대로 참 아름다운 너!”
홍승표 /목사, 길벗교회, 청주에서 아내와 함께 천연비누 만드는 공방을 하면서 작은도서관 '지혜의 등대> 지킴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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