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pNdL4lJ-t_A
본문 히브리서 10:11-18 제목 : ‘이미’와 ‘아직’ 사이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15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16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실명을 언급하기는 좀 그렇고 트롯트 가요 오디션에 등장하면서 인기를 얻은 어느 가수가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냈으면서도 도주해 버렸고, 심지어 자기 매니저에게 그 죄를 덮어쓰게 하는 범죄로 인해 며칠 전 1심 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받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인기가 많았고 많은 팬들을 거느렸고, 또 예수를 믿는 자라면서 몇 군데 간증을 다니기까지 했던데 그만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고 만 거죠.
믿음의 길을 가면서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달리기 선수가 열심히 달려서 1등으로 들어왔을 때 그 순간 이미 1등은 한 것이지만 1등에게 주는 금메달은 좀 시간이 지난 후에 시상식을 하면서 공식적으로 주지요. 이미 1등은 했지만 아직 금메달을 목에 걸지는 않은 상황이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겁니다. 우리 나라가 잘하는 스케이트 쇼트트랙 같은 경기는 이미 1등으로 들어왔어도 아직 금메달을 목에 걸기 전에 심판진들이 실격 사유가 없는지를 비디오로 면밀히 살펴 보지요. 그래서 이미 1등으로 들어왔는데도 어떤 실격 사유가 발견되면 졸지에 1등에서 꼴찌로 전락해 버립니다. 그래서 ‘이미’와 ‘아직’의 사이는 때로 초조함과 불안함이 동반되기도 하는 거죠.
문제는 ‘이미’는 1등으로 들어오는 순간은 확실하게 인식될 수 있는데 때로 ‘아직’은 언제 끝날지 잘 모를 때가 많다는 겁니다. 스포츠에서는 ‘이미’와 ‘아직’ 사이가 불과 몇 분 정도이지만 우리 인생의 삶에서는 그 기간이 평생일 때가 대부분이지요. 아까 처음에 말씀드렸던 인기 가수를 생각해보면 많은 노력 끝에 인기 정상에 도달했습니다. 이미 인기를 얻은 거죠. 그러나 아직 그 인기가 완성된 건 아닙니다. 철없는 사람들이 이미 얻은 것 때문에 자신은 완성되었다고 착각하면서 자기를 교만하게 과시하거나 방자하게 행동하고, 아직 자기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을 우습게 여기는 바보짓을 하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이미 얻은 그 인기는 언제 완성이 될까요? 은퇴하는 날까지 성실하고 겸손하게 자기관리를 하고, 은퇴 이후에도 별다른 스캔들 없이 마지막까지 자기 인생을 성실히 살아갈 때 그 때에서야 이미 얻은 인기가 완성되는 겁니다.
이제 다음 주일에 항존직 임직식이 있지요. 임직식을 제가 주관하기는 하지만 설교나 권면을 할 기회는 없기 때문에 미리 권면의 말씀을 드린다면 임직식 후에는 이미 장로가 되고 안수집사가 되고 권사가 됩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된 직분자는 아니지요. 가장 보기 싫은 모습 중 하나가 직분자가 되면서 사람이 교만하게 변하는 겁니다. 겸손하게 섬겨야 할 직분을 권위와 권세의 직분으로 여기면서 자기주장이 더 강해지고 자기 영향력을 나타내려는 욕심을 자꾸 부리게 되는 거죠.
그러면 그 직분은 어디에서 완성될까요? 은퇴하실 때까지 나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는 겸손함을 가지고 끝까지 성실하게 섬기는 자로서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고, 은퇴 후에도 주도자가 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마음보다는 후배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섬김과 겸손의 자세로 따뜻한 후원자가 되어주는 삶을 주께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실 때까지 성실하게 살아갈 때 마지막으로 주님 앞에서 완성되는 겁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미’와 ‘아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지요. 먼저 오늘 본문 11절을 봅니다.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한마디로 구약 시대 때의 제사로는 아무리 반복해도 제사가 완성되지 못하고 죄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12절을 보면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리고 14절에서는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권능으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고, 그 한 번의 제사로 제사를 완성하시고 죄의 문제를 완성하셨다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사함과 구원의 역사는 이미 완성되었고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확실하게 인식해야 할 게 있지요. 예수님의 구원의 완성이 곧바로 우리 인간 구원의 완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님에게는 구원의 문제가 ‘이미’ 완성되었지만 우리 인간들에게와 이 세상에게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지요. 쉽게 생각해서 씨가 땅에 심겨지는 순간부터 그날로 싹이 나고 꽃이 피면서 열매 맺겠습니까? 대부분 봄에 씨를 뿌리면 가을이 돼서야 열매로 완성되지요.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이미 우리 안에 구원의 씨를 이미 뿌려놓으셨지만 그 구원의 씨에서 싹이 나고 잎과 꽃이 피고 열매 맺는 완성까지 가려면 우리의 진실한 믿음이라는 기나긴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우리의 믿음은 단번에 순식간에 완성되는 게 아니지요. 내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되는 수준까지 가려면 내 평생이 걸려도 부족합니다. 당연히 예수님과 일치되어가려는 경건의 노력과 훈련을 평생토록 이어가야 하는 거죠.
우리의 믿음을 완성시켜 가는 과정에 하나님은 두 가지를 행하고 계심을 본문은 말씀합니다. 하나는 13절 말씀이지요.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자기 원수들, 즉 모든 죄악과 어둠의 권세와 이것들을 주관하는 사탄의 세력들을 예수님 발등상에 완전히 엎드러지게 하신다는 겁니다. 이렇게 사탄의 모든 권세가 완전히 정복되고 소멸되어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될 때까지 주님은 기다리신다는 거죠. 이 말씀은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서 내게 있는 악한 죄악과 사탄의 길을 따르는 삶의 모습을 하나하나 버려나가는 경건의 노력이 있어야 함을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15-16절 말씀이지요.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이 말씀은 구약 예레미야 31장에 있는 말씀인데 모세 시대에 시내산에서 언약의 돌판에 율법을 기록하게 하셨던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후에 맺을 언약의 법은 더 이상 돌이나 책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과 생각에 기록하겠다고 하신 겁니다. 돌이나 책에 기록된 말씀은 내 안에 있지 않고 내 바깥에 있지요. 반면 마음과 생각에 기록된 말씀은 내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몸 바깥에 있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성령님께서 내 마음과 생각에 새겨지게 하신다는 거죠. 이렇게 성령께서 내 안에 생명과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시는 역사가 가능하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성령님께 내어 드려야 하는 겁니다. 즉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말씀에 마음과 생각을 집중해야 하고, 말씀대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과정들을 통해서 성령님께서 우리 내면에 이 귀한 생명과 진리의 말씀들을 새겨 가시는 거죠.
우리가 잘못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마치 컴퓨터에서 어떤 자료를 복사하는 것처럼 가만히 있으면 성령께서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저절로 복사해주시는 것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반 지식과 정보가 아니지요. 생명과 진리의 말씀이고, 생명은 지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삶을 통해서 인식되는 것이기 때문에 생명의 말씀은 지식으로가 아니라 삶을 통해서 깨닫게 되고 내 안에 새겨지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모든 말씀, 예수께서 살아가셨던 생명의 삶의 모든 내용을 내 마음과 내 생각에 새겨넣는 작업이 어디 하루 아침에 될 일이겠습니까? 감격적인 부흥회 한번 다녀왔다고 될 일일까요? 아무리 속성으로 한다 해도 내 평생에 완성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속된 표현으로 내가 죽을 때까지 내 마음과 생각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새겨넣는 이 경건의 노력을 멈출 수 없는 거죠.
여기에 사과가 하나 있다면 눈으로 한번 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것으로 사과가 뭔지 알게 될까요? 오직 입으로 먹는 과정이 있어야 제대로 알게 되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집니다. 성경책을 한번 훑어보고, 교회에 가서 설교 몇 번 들은 것으로 그 말씀이 내 안에 새겨질까요? 당연히 오랜 시간 깊이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고 실행하는 과정이 필요한 거죠. 우리가 예배 설교나 성경 공부를 통해 무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어도 변화되지 않고 성숙되지 못하는 이유는 깊은 묵상과 실천의 과정이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구원이 완성되지 는 않았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기까지 13절에서처럼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악한 권세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시는,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발로 밟아버리시는 역사를 행하고 계시고, 또한 16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우리 안에 새기시는 역사를 행해가고 계십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을 따라 죄악의 세력들을 극복해가는 과정과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내 안에 온전히 새겨가는 경건의 노력을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을 때 성실히 기울여 가야 하는 거죠.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17절 말씀에서처럼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모든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주님의 구원이 우리 안에 완성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완성을 향해 오늘도 나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시작하신 구원의 역사가 완성될 수 있도록 지금도 변함없이 일하고 계시지요. ‘이미’와 ‘아직’ 우리는 그 사이에 지금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1:6절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이 말씀을 오늘의 결론으로 삼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