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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은 비록 천하명산으로 소문난 삼신산(三神山·금강산·지리산·한라산)에 끼지는 못하였으나, 신라 때부터 전국 명산대천 중의 하나다.
사시사철 변화무쌍함은 물론 수많은 침봉군과 화려한 단풍, 맑은 계곡물,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국립공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등산객이 몰리는 산이다.
클라이밍과 겨울철 얼어붙은 폭포의 빙벽타기 등으로 전문 산악인들의 요람이기도 한 곳이다.
고려 말 문신인 근재(謹齋) 안축(安軸, 1282~1348)선생은 ‘금강산은 수려하나 웅장하지 못하고,지리산은 웅장하나 수려하지 못하며,설악산이야말로
수려하고 또한 웅장하다.‘고 하였다.
육당 최남선(崔南善·1890-1957)선생도 ‘탄탄이 짜인 상은 금강산이 승하다고 하겠지만, 너그러이 펴인 맛은 설악이 도리어 승하다.‘고 하였다.
울산바위(蔚山巖)는 국내 최대의 화강암 암벽으로(길이 2.8km에 둘레 4km, 높이 873m) 설악산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다.
이곳은 바위 중앙부에 정상까지 이어지는 철제 계단이 놓여 있는데, 암봉 사이에 걸쳐 있는 데다 경사가 매우 급해 ‘공포의 808계단’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 울산바위에서 집중호우로 인한 낙석이 쏟아져 대형 산사태가 발생했고,그후 좁고 가파른 계단을 헐고 안전한 탐방로를 다시 조성하게 되었다.
전설에는 조물주가 지금의 금강산 자리에 1만2천봉이 되는 천하의 명산을 만들려고 전국의 빼어난 산들은 다 모이라고 하였다.
이 때 경상도 울산(蔚山) 지역에 있던 한 바위산도 금강산으로 달려갔지만 워낙 육중한 몸이라 이곳에서 하루 쉬어 가게 되었다.
다음날 이미 1만2천 봉우리가 다 찼다는 소식이 들려와 금강산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이곳에 눌러 앉아버린 봉우리가 울산바위라 한다.
이는 호사가들이 지어낸 전설일 뿐, 울산의 본명은 울처럼 둘리어 있는 산이란 뜻의 이산(籬山)이었다.
기이한 봉우리가 꾸불꾸불하여 울타리(리 籬)를 친 것과 같으므로 지은 이름일 것이다.
세속에서는 울산(蔚山)이라 하기도 하는데, 이는 이산(籬山)의 뜻을 옮긴 표기일 것.
노산(蘆山) 이은상(李殷相, 1903~1982)의 설악행각(雪嶽行脚) 에도 ‘이 암자(내원암)를 지나, 다시 반 시간을 비(費)하면, 돌아보아 멀리 토왕성폭포가
떨어지고 바라보아 병풍 같은 리산(籬山바위가 둘렀음을 봅니다.
리산바위 밑 계조굴에 이르니, 어느덧 석양이 빗겼습니다’라 쓴 글을 보면 1940년대 후반까지도 오히려 울산 보다는 이산으로 불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설악산에 천둥이 치면 그 소리가 바위산에 부딪혀 마치 울부짖는 소리를 내므로 ‘울산’ 또는 ‘천후산(天吼山)’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속설도 있다.
일행들은 토왕성폭포를 다녀와서 케이블카를 이용 권금성을 다녀왔고,
나는 울산암을 내려와 신흥사를 탐방 입장료 값을 한 후 시간이 남아 토왕성폭포 방향 비룡화장실까지 가서 U턴을 하였다.
(보물 제443호인 '향성사지3층석탑'을 찾는다는 게 그만...)
산행궤적
버스가 진입하는 좌측으로 대형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매표소에서 제일 가까운 소공원주차장까지 버스가 올라왔다.
만약 버스 댈 데가 없으면 사람들을 일단 내려주고 아래 주차장에서 대기하다 다시 산행이 완료되면 데리러 오기로 잠정적 약속이 된 상태.
주중이라 그런지 소공원주차장에는 주차된 차량이 그리 많지 않아...
다행히 주차 요원의 안내에 따라 안전하게 주차를 할 수 있었다.
경로,국가유공자,장애인,속초시민은 무료입장이지만 거금 3,500원(단체 3,200원)의 입장료를 내야한다. 생일이 늦어 젊은 나는 혜택에서 제외.
신흥사부도군 안내판
매표소를 지나 길 우측으로 조금 들어가면 부도 19기와 비석 6기가 있는 부도군이 나온다.
이 석조물들은 봄볕을 따스히 받으며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제일 좌측에 보이는...
성곡당탑(聖谷堂塔) 탑신의 상단에는 판이 넓은 단엽 8판의 연화문이 덮혀있고,상면에는 원형의 돌대위에 연봉형의 보주가 있다. 높이 2.35m
벽담탑(碧潭塔)은 여러 부도재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기단은 하 중 상대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륜부는 원형돌대 위에 차례대로 구성하여 보주를 얹었다. 전체높이 1.78m
이 외에도 용암탑(龍巖塔)과 관허당탑(貫虛堂塔),동파탑(東坡塔),용ㅇ당대선사비 등 여러기의 부도와 비석이 배열되어 있다.
부도(浮屠), 부도(浮圖), 부두(浮頭), 불도(佛圖), 포도(蒲圖)라고도 하며 고승(高僧)의 사리(舍利)나 유골을 안치하는 묘탑(妙塔)이다.
원래 불타(佛陀) 또는 솔도파(率堵婆 Stupa)라는 음이 잘못 전해진 것으로 처음에는 불상·불교사원·불탑을 의미했지만 뒤에는 고승들의 사리를 담는
석조 소탑을 지칭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중국 당나라로부터 선종이 들어온 9세기 이후 각 구산선문(九山禪門)에서 사자상승(師資相承)으로 법맥이 이어지면서 불상 숭배보다는
조사(祖師)들의 사리와 유골을 담은 묘탑이 중요한 예배대상이 되어 많은 부도가 세워졌다.<자료 요약>
부도밭 뒤에서 바라보는 토왕성폭포 방향
반달곰상이 있는 이곳에서 좌측 매점이을 돌아 나가면 토왕성폭포 갈림길.
5층석탑은...
통일염원 사리탑.
토왕성폭포(비룡폭포) 갈림길 안내판.
설악산신흥사 일주문
'설악산신흥사' 일주문 현판의 낙관엔 '죽봉(竹峰)'
죽봉선생은 1980년대 일심서예원과 월간 서예를 발간하며 활발하게 활동하던 분으로 '태백산각화사' 일주문 현판도 썼다.
설다원(雪茶院) 찻집 앞마당을 가로 질러...
통일대불(統一大佛)을 만난다.
비선1교의...
이정표
비선1교를 건너지 않고 위에 있는 다리를 건넌다.
신흥사 담벼랑에 붙은 담쟁이넝쿨이 곱다.
신흥사는 내려오면서 탐방할 예정
1785년(정조 9년) 창건되었다는 신흥사 부속암자인 안양암(安養庵)을 지난다.
건물들은 모두 최근에 건축된 듯.
안양암 편액.
계류는 데크계단으로 건너고...
여기서 또 댓기의 부도를 만난다.
안내판
오래되어 풍화된 부도에는 'ㅇ봉당(ㅇ峰堂)'이라 새겨져 있지만...
내원암 입구의 돌다리.
내원암 표석.
비구니도량 내원암(內院庵)은 652년(진덕여왕6)에 자장율사가 향성사의 창건과 더불어 지금의 내원암터에 능인암을 지었다.
그러나 698년(효소왕7) 능인암은 향성사와 함께 불타 버렸고,701년 이곳으로 온 의상대사가 능인암 자리에 선정사(禪定寺)를 창건하고 아미타불.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상을 조성하였다.<자료 요약>
절이 산으로 들어간 이유?
내원암에서 울산암이 1.6km.
하얗게 드러나는 울산바위.
모처럼 맑은 하늘아래에서 펼쳐지는 울산바위 풍광.
계조암 흔들바위에 닿았다.
안내판
우선 흔들바위가 있는 너럭바위에 올랐다.
암반엔 온갖 글들이 새겨져 있는데,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자연훼손으로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
계조암은 천연석굴을 이용해 지어진 신흥사의 부속암자로 신라 진덕여왕 6년(652년)자장율사가 신흥사의 전신인 향성사와 함께 창건하였다.
동산, 지작, 봉정 세 조사가 정진 수도하던 처소이며, 원효, 의상을 비롯 많은 고승들이 수도하였고, 조사(祖師:학파를 세운 사람)라고 일컬을 만한
고승이 계속해서 났다고 하여 계조(繼祖)라고 이름을 지었다.
계조암이 들어앉은 바위가 목탁바위로, 목탁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다른 절에서 10년 걸릴 공부도 5년이면 끝낼 수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아미타불 이외에 독성나반존자가 모셔져 있어 성심으로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하여 사람들의 발길이 많은 곳이다.<자료 인용>
혼자 흔들어도 똑같이 흔들린다는 흔들바위에도 바위 표면에 글자가 빼곡하다.
맞은 편 바위에 새겨진 계조암(繼祖庵) 암각서는 명필 중의 명필로 보인다.
목탁바위라 불리는 거대한 바위 안엔 '신통제일나한석굴'이 뚫려 있다.
안내판
석굴 안 높다란 대좌위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
울산바위는 설악산을 대표하는 수직암릉암. 둘레가 4km로 6개의 거대한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울산바위를 오르다 울산바위 전망대에서...
하얀 모습을 드러내는 울산바위를 올려다 본다.
좌우 양 옆으로 길다랗게 울타리를 친 듯하다.
<파노라마> 클릭하면 큰 사진
뒤돌아보니 멀리 두루뭉실 대청봉이 높다랗게 솟아있고, 그 우측으로 중청과 소청이 가늠되고,그 앞으론 설악의 대표 암릉 공룡능선이 가로막고 섰다.
살짝 당겨 보았더니 대청봉과 대피소,그리고 중청 소청이 차례로 하늘금을 긋고 있다. 막아선 공룡능선 우측의 뾰족봉우리는 나한봉(1298m)인 듯.
다시 대청봉과 공룡능선.
우선 식사부터 하고 가자고 했다. 잘 생긴 금강송이 쭉쭉빵빵 뻗은 위로 하얀 자태를 드러낸 울산바위.
식사 보따리를 푸는 우리 옆으로 쪼르르 예쁜 다람쥐 한 마리가 나타났다.
빵 부스러기 하나를 주었더니 두 손으로 받아먹는 모습이 무척 앙증스러워 카메라를 갖다 댔다.
이 놈은 늘 그렇게 살아가나 보다.
다시 철계단을 밟고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오르고 또 올라...
시야가 트이는 곳에서 뒤돌아 보니 하늘과 맞닿아 있는 대청 하늘 끝이 보인다.
그 우측 톱니 능선 끄트머리에 하늘을 향하여 X침을 놓는 저 봉우리는 세존봉(1186m)이 맞을 터.
하늘에 맞닿은 대청봉을 당겨보니 우측으로 유순한 흐름을 하고있는 중청 소청도 보인다.
카메라의 각도를 더 우측으로 돌렸더니 세존봉은 더 위엄있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 오른쪽 앞 봉우리는 황철봉(1384)인 듯.
철계단은 지그재그로 꺾이며 이어져 있고...
그저 묵묵한 자세로 한 계단 한 계단 발 바꾸며 오른다.
또 다시 한 숨 고르며 뒤돌아본 모습.
당겨보니 대청봉 앞으로 톱니 모양의 공룡능선이 배알하고 섰다.
아직 지그재그 철계단은 끝나지 않았고...
화강암 덩어리는 자체로 氣를 발산하고 있다.
두 고문님의 사진 사랑.
하늘을 향하여 뻗어오른 바위와 그리고 파란 하늘 흰 구름.
화강암 견고한 바위 틈새에도 굳건한 생명체가 터를 잡았다.
오랫만에 이렇게 미세먼지 없는 화창한 날을 만났으니 그것도 축복이다.
철계단은 아직도 이어져 있고...
갈라진 틈바구니 틈새에 박혀있는 돌덩이.
다시 돌아보니 두 고문님은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고,녹색 산맥 중앙에 황철봉 맞제?
좌측으로 난 철계단으로 먼저 올라섰더니 암릉은 기차처럼 길게 들어누워 있었다.
먼저 도착해 있던 외국인 관광객에게 부질없는 말을 걸어 보았다.
나: Where are you from? <어디서 오셨습니까?>
외국인: France. <프랑스>
나: . . . ......
외국인: ☆※@§&#?
나: . . . ......
이런~ 이럴 줄 알았으면 가만히 있을 껄.ㅋㅋ
암반에 움푹움푹 파인 혈(穴)은...
성분이 다른 암질로 인하여 각기 다른 속도와 모습으로 풍화되면서 생긴 풍화혈이란다.
대청봉과 공룡능선
오른쪽에 황철봉.
동해바다와 속초시가지가 보인다.
울산암의 기암들.
더 위로 올라가......
바위 정점에 다다르면...
제법 공간이 확보되어 있고...
죽어 천년 고사목을 끌어다가 울산바위 정상이라는 푯말을 세워놓았다.
다시 내려다 보는 속초시가지와 동해바다.
다시 만난 또다른 다람쥐. 이놈도 여행객들이 건네주는 먹이로 살이 포동포동 쪄 있지만 물은 어디서 확보하지 궁금?
- 상 략 -
저 높은 곳을 바라보고
생의 끝 봉우리로 오른다
그러나
산 위에는 아무 것도 없다
생에 끝에는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것도 없는 곳으로 가기 위해
많은 짐을 지고 이 고생이다
(이성선님의 티벳에서)
하산을 서두른다.
흡사 물개를 닮은 바위를 지나...
계조암에 내려서...
흔들바위를 보았더니 온통 글자가 새겨져 있어 살펴 보았는데,관찰사,강릉부사,양양부사,ㅇㅇ군수들이 흔적을 새겼다.
백성들을 잘 다스려 어진 정치를 펼쳐야 할 위정자들이 음풍명월 이렇게 맨날 기생이나 껴차고 산수유람이나 다니니 조선이 그냥 온당할 리가 있었겠나?
우라질~예나 지금이나 정치꾼들의 대민봉사 마인드가 애시당초 걸렀다니까...
키스바위를 지나니...
단체여행을 온 학생들을 만났다. 조금만 늦었다면 학생들 때문에 시간이 지체될 뻔했다.
또다시 2기의 부도를 만나...
자세히 살펴 보았더니 우측의 부도는 연좌대(蓮座臺) 기단에 탑신을 올렸고,연꽃무늬 보주가 있다.
정면 열린 공간으로 권금성(權金城 700m)과 케이블카 터미널이 보여...
살짝 당겨 보았다.
신흥사에 닿으니 뒤로 권금성이 위엄스럽다.
신흥사(新興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이다.
652년(진덕여왕 6)에 자장(慈藏)이 창건하여 향성사(香城寺)라 하였으며, 당시 계조암(繼祖庵)과 능인암(能仁庵)도 함께 지었다.
향성사는 698년(효소왕 7)에 능인암과 함께 불타 버린 뒤 3년간 폐허로 남아 있었다.
701년에 의상(義湘)이 능인암터로 옮겨서 향성사를 중건하고 절이름을 선정사(禪定寺)라고 고쳤다.
선정사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구층탑이 파괴되었고, 1642년(인조 20)에는 화재로 완전히 타 버렸다.
선정사 옛터 아래쪽 약 10리 지점에 절을 지으면 3재(災)가 범하지 못할 것이라고 일러주는 꿈을 꾸고,다시 지은 후 신흥사라 하였다.<자료 요약>
극락보전 앞으로 당간지주와 석등이 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호인 신흥사 극락보전(神興寺 極樂寶殿)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건물.
기단은 자연석으로 쌓고, 주춧돌도 자연석 그대로 놓았으며 배흘림이 있는 둥근기둥을 세웠다.
정면 가운데 칸에는 4분합(分閤) 꽃살문을 달고 옆칸에는 3분합 꽃살문을 달았으며, 측면과 뒷면 등 3면에는 회벽을 쳤다. <자료 요약>
극락보전 들어가서 기도하려는 신자들은 옆문을 이용하여야...
극락보전으로 올라 합장...
극락보전 안에 모셔진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제1721호)로 지정되었다.
'속초 신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束草 神興寺 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은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을 통해 1651년이라는 정확한 조성시기와 제작자,
그리고 제작에 참여한 제작주체가 분명하여 17세기 중엽경 불교조각사 연구에 기준이 되는 자료라고 밝혔다.
또 이 불상을 조각한 무염은 17세기 전․중엽경을 대표하는 화사로 조각승 무염의 작품세계를 시기적으로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이 삼존불상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무릎, 당당한 어깨, 알맞은 허리 등 안정된 비례와 조화로운 형태미를 갖추고 있다.<자료 요약>
안내문
유형문화재인 명부전으로 올랐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66호인 '속초신흥사명부전'은 1737년(영조 13)에 창건되었으며 1797년(정조 21), 1975년에 중수되었다.
신흥사 경내의 지장보살을 봉안한 불전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18세기 사찰건축의 특징을 보여준다.
창호는 꽃살창호인데, 정면에만 설치되어 있으며 좌우 협칸이 가운데 어칸에 비해 작은 것이 특징이다.<자료 요약>
안내판
신흥사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지장보살삼존상(보물 제1749호)'은 중앙에 지장보살상이 앉아 있고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서 있는 구조이다.
신흥사 극락보전의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중 관음보살상 내부에서 명부전 불상 조성에 대해 밝힌 발원문이 발견되었다.
발원문에 따르면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은 1651년 8월 조각승 무염(無染)을 비롯한 도우(道祐) 등 모두 13명에 의해 조성되었다.
목조지장보살삼존상은 민머리형에 오른손을 가슴 위로 들고 왼손은 무릎에 놓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모습이다.<자료 요약>
안내문
극락보전 앞의 돌계단은 하나의 돌로 구성된 기단으로 소맷돌 하단 양쪽에 용두가 조각되어 있고 측면에는 귀면, 삼태극, 구름문양이 새겨져 있다.
적묵당(寂默堂)은 말없이 묵묵히 앉아서 수행하는 집이란 뜻.
스님들의 생활공간이자 부처님의 경전교리를 공부하는 수행의 장소이기도 하고, 이곳을 찾는 대중 스님들의 방이기도 하다.
신흥사 보제루(神興寺 普濟樓,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4호)는 영조 46년(1770)에 세워진 것으로, 2단 장대석으로 기단 위에 정면 7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
건물의 하부는 기둥으로만 구성된 열려 있는 공간으로 극락보전으로 가는 통로가 된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규모가 커진 모습을 보여주는 보제루 내에는 법고와 목어, 대종, 경판이 보관되어 있고 몇몇의 현판과 중수기가 걸려 있다.
이 중에는 이 사찰이 왕실의 원찰(願刹)이었음을 보여 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보제루 내부에는 불교의식 때 쓰이는 악기 사물(四物)이 세 가지 있다.
현판은 외설악루(外雪嶽樓)로 붙어 있다.
외설악루(外雪嶽樓) 현판의 낙관은 동해(東海).
신흥사 경판(神興寺 經板,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5호)은 불경을 찍어 내던 각판(刻板)이다.
.
보제루 안내판.
보제루 아래 통로에 있는 연꽃 문양의 석물.
신흥사 사천왕문을 벗어나며 돌아본 모습.
사천왕문 현판 글씨는 차우 김찬균(此愚 金瓚均) 선생의 글씨. 차우 선생은 해남 두륜산 대흥사의 현판도 썼다고 한다.
사천왕문에서 바라보는 보제루와 극락보전의 배열이 예사롭지 않다.
사천왕문 우측 상단 귀퉁이에 한반도 지도가 조그맣게 새겨져 있어 사진을 당겨보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쓰여져 있다.
일체유심조는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뜻.
설악산지구 전적비. 설악산 지역이 6·25전쟁 중 치열한 격전지였다.
우리 군의 주요 거점인 향로봉과 건봉산 등을 적에 빼앗기지 않고 확보하게 된 것이 설악산지구 전투에서의 승리였다.
6·25전쟁 당시 11사단과 수도사단이 북한군과 싸운 설악산 지구 전투를 기념하고 전투에서 산화한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설악산지구 전적비다.
안내판
지금부터 향성사지3층석탑을 찾아 간다는 게 비룡폭포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완죤 헛다리를 짚고 있다.
이름만 들은 비법정 화채능선 줄기가 우선 시야를 막아선다.
권금성이 우뚝하고...
당겨보니 케이블카가 분주히 왕래한다.
파란 하늘 공중에 매달린 케이블카.
보물 제443호인 '향성사지3층석탑'을 찾으러 '비룡화장실'까지 와서 돌아 나갔다.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나의 불찰.
'향성사지3층석탑'은 신라 진덕여왕 7년, 지장율사가 창건한 향성사에 서 있는 삼층석탑이다.
향성사는 그 이름만 전해질 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다시 언제쯤 설악산 지구에 들어와서 1,000년의 고탑을 살펴볼 수 있을까?
16:30까지인 산행마감 시간에 쫓기어 소공원주차장으로 이동하면서 바라본 울산바위.
해그름의 울산바위에 자체 발산하는 야룻한 광채가 빛나고 있다.
-산으로 간다는 것은-
산으로 간다는 것은
우리는 우리가 한때 나무였고
한때 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산으로 간다는 것은
우리는 우리가 풀과 바람과 돌과 함께
그곳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산으로 간다는 것은
우리는 우리가 그 곳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산으로 간다는 것은
우리는 우리가 훗날 그곳으로
돌아 갈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 성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