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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菩薩의 十種獅子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獅子吼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唱言호대 我當必定成正等覺이是菩提心大獅子吼요 我當令一切衆生의未度者로 度하며 未脫者로 脫하며 未安者로 安하며 未涅槃者로 令得涅槃이 是大悲大獅子吼요 我當令佛法僧種으로 無有斷絶이 是報如來恩大獅子吼요 我當嚴淨一切佛刹이 是究竟堅誓大獅子吼요 我當除滅一切惡道와 及諸難處가 是自持淨戒大獅子吼요 我當滿足一切諸佛의 身語及意와 相好莊嚴이 是求福無厭大獅子吼요 我當成滿一切諸佛所有智慧가 是求智無厭大獅子吼요 我當除滅一切衆魔와 及諸魔業이是修正行하야 斷諸煩惱大獅子吼요 我當了知一切諸法이 無我無衆生無壽命無補伽羅空無相無願하야 淨如虛空이 是無生法忍大獅子吼요 最後生菩薩이 震動一切諸佛國土하야 悉令嚴淨이어든 是時에 一切釋梵四王이 咸來讚請호대 唯願菩薩은 以無生法으로 而現受生하소서하면 菩薩이 則以無礙慧眼으로 普觀世間一切衆生이無如我者하고 卽於王宮에示現誕生하야 自行七步하고 大獅子吼호대 我於世間에最勝第一이니 我當永盡生死邊際가 是如說而作大獅子吼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大獅子吼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사자후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내가 마땅히 등정각을 이루리라.’라고 외치나니, 이것은 보리심의 큰 사자후이니라.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의 제도되지 못한 이를 제도하고, 해탈하지 못한 이를 해탈케 하고, 편안하지 못한 이를 편안케 하고, 열반하지 못한 이를 열반케 하리라.’라고 하나니, 이것은 크게 가엾이 여기는 큰 사자후이니라.
‘내가 마땅히 불법승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게 하리라.’라고 하나니, 이것은 여래의 은혜를 갚는 큰 사자후이니라.
‘내가 마땅히 모든 부처님 세계를 깨끗이 장엄하리라.’라고 하나니, 이것은 견고한 서원을 끝까지 이루는 큰 사자후이니라.
‘내가 마땅히 모든 나쁜 길과 어려운 곳을 소멸하리라.’라고 하나니, 이것은 스스로 청정한 계행을 지니는 큰 사자후이니라. ‘내가 마땅히 일체 모든 부처님의 몸과 말과 뜻과 잘생긴 모습의 장엄을 만족케 하리라.’라고 하나니, 이것은 복을 구하여 싫어함이 없는 큰 사자후이니라. ‘내가 마땅히 일체 모든 부처님이 가지신 지혜를 이루리라.’라고 하나니, 이것은 지혜를 구하여 싫어함이 없는 큰 사자후이니라. ‘내가 마땅히 일체 모든 마군과 마군들의 업을 소멸하리라.’라고 하나니, 이것은 바른 행을 닦고 모든 번뇌를 끊는 큰 사자후이니라.
‘내가 마땅히 일체 모든 법이 내가 없고, 중생이 없고, 수명이 없고, 보특가라가 없고, 공하고, 모양 없고, 원(願)이 없어서 깨끗하기가 허공과 같음을 알리라.’라고 하나니, 이것은 생사 없는 법을 아는[無生法忍] 큰 사자후이니라.
마지막 태어난 보살로서 일체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진동시켜 다 깨끗이 장엄하는데, 이때에 제석천왕과 범천왕과 사천왕들이 와서 찬탄하여 청하되, ‘오직 바라건대 보살께서 생사 없는 법으로 태어나소서.’라고 하느니라.
보살이 곧 걸림 없는 지혜의 눈으로 세간의 모든 중생 중에 나[我]와 같은 이가 없음을 널리 살펴보고, 즉시 왕궁에 탄생하되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크게 사자후하기를, ‘나는 세간에서 가장 수승하고 제일이니 내가 마땅히 생사의 언저리를 영원히 끝내리라.’라고 하나니, 이것은 말한 대로 실행하는 큰 사자후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사자후를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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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사자후(十種獅子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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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간품 57권의 마지막 단락이다. 이세간품은 59권이고 60권부터는 입법계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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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사자후(有十種獅子吼)하니:열 가지 사자후가 있으니
하등(何等)이 : 어떤 것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냐.
앞서 나온 사자분신에서도 안에 덕과 신심이 꽉 차야 바깥으로 우렁찬 목소리가 나온다고 했었다.
사자후 역시 그렇다. 용감하고 안에 두려움이 없어야 사자후를 낼 수 있다. 두려움이 있는 사람이 무슨 큰 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두려움이 없어야 확신을 가지고 결정적으로 의심없이 돌진해서 ‘공격 앞으로’ 고함을 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음성을 늘 사자후로 비유한다.
‘사자후를 한다는 것은 어떤 뜻이 있는가?’ 이런 것을 우리가 공부하면서 짚어 봐야 한다.
사자후는 왜 사자후라 하는가?
그냥 땡깡 지르고 싶어서 하는가?
사자후는 일단 큰 소리다. 일체중생을 도탈(度脫)하는 자비심이다. 흔히 중생들로 하여금 사성제(四聖諦)인 고(苦)집(集)멸(滅)도(道)의 고통과 악업 악도로부터 도탈시키는 것을 도고탈집(度苦脫集)이라고 한다.
도고탈집으로 해서 안도증멸(安道證滅)이라
한번 써 보시기 바란다.
도고탈집(度苦脫集) 안도증멸(安道證滅) 청량국사는 그렇게 해석하셨다.
쓰고 나니까 무엇인가?
고집멸도(苦集滅道) 안도증멸(安道證滅)
중생들을 고집멸도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그 고집멸도에서 벗어나게 하자고 다짐하는 것이 우리가 항상 법회 끝나고 하는 사홍서원이다. 사성제의 완성이다.
고집멸도를 해결하는 것, 사홍서원이 바로 사자후다.
부처님의 사자후를 사자후답게 하는 것이 사홍서원인 것이다. 근본적으로 생사윤회를 해탈하는 것이 사자후다,라고 보시면 된다.
그런 걸 꼭꼭 안 짚으면 ‘사자후는 뭐하려고 하나? 땡깡 지으려고 하나?’ 아니다. 사자후를 하는 것은 ‘다 들어라’ 이것이다. ‘다 들어라. 자타일시성불도다’
이런 사자후가 열 가지가 있는데 무엇이 열이냐
소위창언(所謂唱言)호대: 소위창언하되
아당필정성정등각(我當必定成正等覺)이: 내가 반드시 등정각을 이루리라고 외치나니, 내가 반드시 하겠다는 사람은 고함을 얼마나 지르겠는가. “우왕-”하잖는가.
“전방을 향하여 10초 발사.”
시보리심대사자후(是菩提心大獅子吼)요: 이것이 바로 보리심의 대사자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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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당영일체중생(我當令一切衆生)의: 내가 마땅히 일체중생의
미도자(未度者)로 : 미도자로
도(度)하며: 도하고
미탈자(未脫者)로:미탈자로
탈(脫)하며: 탈하고
미안자(未安者)로:미안자로
안(安)하며: 안하고
미열반자(未涅槃者)로: 미열반자로
영득열반(令得涅槃)이:영득열반이
시대비대사자후(是大悲大獅子吼)요: 시대비대사자후라. 자세히 나왔다. 도탈중생이 뭐냐? 도고탈집 안도열반을 멸이라 하지 않는가? 득멸(得滅), 고집멸도하는 것이 사홍서원이다.
중생무변서원도 번뇌무진서원단
중생무변서원도가 뭔가? 고다. 중생은 고다. 고를 갖다가 악도라 그런다. 삼악도. 중생을 악도라 그런다.
‘그 악도에 무변한 것을 맹세코 내가 다 건지겠습니다’
번뇌무진서원도. 번뇌가 뭔가? 집이다. 악도에 떨어지는 업이다. 악업.
‘악업을 내가 다 벗어나게 하겠습니다’ 탈집. 안(安) 편안하다. 안립시킨다. 정돈시킨다. 제대로 공부한다.
‘정법을 배우겠습니다. 팔정도를 닦겠습니다’ 도성제 안도. 팔정도를 닦는 것을 사홍서원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법문무량서원학이라고 한다.
불도무상서원성이 열반이지 않은가? 영득열반
화엄경에 사성제가 있는가? 확실히 있다.
화엄경에 사성제뿐만 아니라 사홍서원까지 꽉 물고 있다.
그러니까 초기불교 근본불교에서 소상하게 설명해 놓은 것을 더 광폭적으로 장엄하게 설명한 것이 화엄경이다.
서로 뜻이 다를 리가 없다.
소승불교에서 유식이 있는가? 있다.
원효스님이 바로 얘기 다 한다.
“여래장심(如來藏心)이라고 하는 건 소승의 미래장심을 이야기한다. 그게 바로 여래장심이고 상속식(相續識)이 이어지는 것이다.”
원효스님께서 기신론에서 다 설명하신다. 다를 리가 없다.
숫타니파타나 법구경을 보면 화엄경하고 너무나 똑같다. 딱 삼법인(三法印)을 벗어나지 않는다.
화엄경도 절대 삼법인을 못 벗어난다.
요지일체법 자성무소유 여시해법성 즉견노사나 라든지 금강경에서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범소유상 개시허망 있지 않은가.
삼법인 제법무아 제행무상 열반적정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 절대 벗어나지도 않고 다 그 범주에서 설명한다.
금강경에는 제법무아를 뭐라고 하는가?
대표적으로 무아상 무인상 무보특가라상 자세하게 열거를 해서 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놓았다.
옛날에는 정맥, 동맥만 설명했는데 나중에는 모세혈관, 뇌내 혈관, 실핏줄, 시신경까지 다 설명하는 것이다.
그것이 대승이라고 보시면 된다.
이들을 열반케 하는 이것은 크게 가엾이 여기는 사자후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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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당영불법승종(我當令佛法僧種)으로: 내가 마땅히 불법승의 종자를, 법의 종자, 수행의 종자를, 이때 승(僧)이라고 하는 것은 여실승(如實僧), 여실수행자를 말한다. 진실을 여실이라고 하는데, 진여, 진실, 여실, 그런 사람을 승이라고 한다. 그 승종자가, 더 정확히 말하면 화엄경에서는 보살수행자라고 할 수 있겠다.
무유단절(無有斷絶)이: 끊어지지 않게 하리니,
시보여래은대사자후(是報如來恩大獅子吼)요:이것은 여래의 은혜를 갚는 사자후다.
부처님의 은혜를 갚게 하는 것은 제자를 잘 기르고, 내가 불법을 열심히 공부하고, 부처님을 잘 시봉하는 것이다. 그것이 불법의 은혜를 갚는 길이다.
가만 보니까 다 내가 쓴 것 같다.
아주 이상한 책이다. 아마 입승스님께서는 또 당신이 쓰셨다고 ‘강주스님, 내 걸 왜 훔쳐 갑니까?’ 이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
본인이 썼다고 생각하는 건 뭔가?
내가 이 길로 가고 싶다는 뜻이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하면 사귀고 싶다는 이야기다. 땡긴다는 것이다.
아당엄정일체불찰(我當嚴淨一切佛刹)이: 내가 마땅히 부처님 세계를 엄정하겠다. 신심이 있어야 엄정한다.
시구경견서대사자후(是究竟堅誓大獅子吼)요: 이러한 까닭으로 맹서컨대 견고한 서원으로 끝까지 이르는 사자후라.
그래서 소초에서 이렇게 해놨다.
‘보현행원이라고 할 때 행원은 새의 양 날개와 같다. 원이 있는데 행이 없는 사람은 마치 강을 건너고자 하면서 배를 준비하지 않은 사람과 같다’ 이렇게 했다.
극락을 가고자 하면서 염불을 안 하는 사람과 같다.
아당제멸일체악도(我當除滅一切惡道)와: 내가 마땅히 모든 나쁜 길과
급제난처(及諸難處)가: 어려운 곳을 멸하리라 하나니
시자지정계대사자후(是自持淨戒大獅子吼)요: 이것이 스스로 청정한 계행을 지키는 사자후라. 삼악도를 피하는 길은 계행을 지키는 것이다.
아당만족일체제불(我當滿足一切諸佛)의: 아당만족일체제불의 신어급의(身語及意)와:신어급의와
상호장엄(相好莊嚴)이 : 상호장엄이
시구복무염대사자후(是求福無厭大獅子吼)요:구복무염대사자후로다.
내 삼업이 내 잘생긴 모습의 장엄을 만족케 하리라 한다.
세주묘엄품에 부처님의 신업과 구업과 의업이 잘 나온다.
“부처님의 몸이 뭡니까? 부처님의 말씀이 뭡니까? 부처님의 법신이 뭡니까? 부처님의 말씀이 뭡니까? 부처님의 뜻이 뭡니까?” 이것은 화엄경 전체의 질문이다.
그래서 여래현상품에서는 40가지로 질문한다.
“부처님의 눈코입귀가 뭡니까? 부처님의 속심정이 뭡니까? 부처님의 업이 뭡니까?” 이렇게 40가지로 질문을 해서 답하는 것이 1회차 설법이고 2회차는 어디에서 묻는가?
여래명호품에서 40가지 질문을 던진다.
어디까지 답하는가? 7회차 여래출현품까지 답한다.
‘부처님의 몸이 뭐고, 부처님의 생각이 뭐고, 부처님의 말씀이 뭐고’ 갖가지로 답한다.
8회차에 와서도 다시 똑같은 질문을 한다.
‘부처님의 눈코입귀가 뭡니까’부터 시작해서 ‘신업이 뭡니까?’ 줄이면 신구의 삼업을 묻는 것이다.
삼업을 늘리면 한도 끝도 없다.
‘부처님의 지혜가 뭡니까? 삼매가 뭡니까?’ 이런 것이 전부 다 신구의(身口意)에 해당한다.
지혜라고 하는 것은 의업에 속하고, 부처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구업에 해당하고, 부처님의 법신이라고 하는 것은 몸에 해당한다. 그게 다 거기에 나온다.
금강경에도 ‘부처님의 진정한 법신이 뭡니까?’라고 묻잖는가.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다. 색성향미촉법으로 부처님을 보는 것, 32상 80종호는 진짜 부처님이 아니다.
범소유상, 부처님이 가지신 바 모든 32상 80종호는 뻥이다.
거짓으로 중생을 꼬시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다. 개시허망이다. 허망, 기망, 중생을 속인 것이다.
약견제상비상이면 부처님이 그런 모습이 아니라는 걸 알면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是人)이 그렇게 하면 행사도(行邪道)라,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라.
“그럼 부처님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인 줄 알면 즉견여래할 것이다.
“그 부처가 뭔데요?”
육조스님이 얘기하셨다.
보리(菩提) 본무수(本無樹)요 명경(明鏡) 역비대(亦非臺)라
부처님은 몸도 몸이 아니요 마음도 마음이 아니요.
본래(本來) 무일물(無一物)이라.
유형도 무형도, 씻고 닦고 봐도 없네.
하처야진애(何處惹塵埃)냐, 어디에 번뇌가 일어났겠느냐.
파식망상필부득(叵息妄想必不得)이다. 번뇌를 없애고 싶어도 없앨 번뇌가 없다.
몸과 말과 뜻, 보현행원품에 정확하게 요걸 해 놓는다.
이것이 너무 중요하니까 보현행원품 참제업장편의 게송을 천수경에 딱 붙여 놨다.
뭐라고 해 놨는가?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癡)
종신어의지소생(從身語意之所生).
종신구의(從身口意)는 천수경이고, 보현행원품에는 종신어라고 나온다. 종신어의지소생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그게 화엄경의 너무 중요한 대목이니까 천수경에 옮겨놓은 것이다. 그걸 증폭시키면 무엇인가?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다.
‘아, 무자성이구나. 죄라든가 모든 일체제법이 일체유위법이 여몽환포영이구나’
우리가 지금 충분히 다 알고 있는 것을 이렇게 한 번 회통을 쳐 보는 것이다.
부처님의 몸과 말과 뜻과 잘생긴 모습의 장엄을 만족하게 하리라 하나니.
이거는 왜 또 장엄한다 했느냐? 제7지 이상이 되면 장엄할 것이 없는 줄 알지만 장엄한다. 무생인 줄 알면서도 다 중생을 위한다.
그런 것은 십회향품 제 1꼭지만 봐도 알 수 있다.
구호일체중생하되 이중생상회향이라.
일체중생을 구호하지만 중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아니한다. 그것을 바로 환희지라 한다.
십지보살에서는 견도분이라고 분별심을 내지만 무분별심인 줄 안다. 무상가득이라. 무심가득이라. 그래서 무명무상절일체라. 이것을 복을 구하여 만족함이 없는 사자후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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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당성만일체제불소유지혜(我當成滿一切諸佛所有智慧)가: 내가 마땅히 모든 부처님이 가지신 지혜를 이루리라 하나니 일체제불의 소유 지혜가, 아이고 간도 크다.
어떤 스님이 “나는 죽으면 그대로 열반에 들고 다시 오면 어떻게 하고” 그런 소리를 와서 하였다, 어른스님께서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와, 스님도 간도 크다. 진짜로? 진짜로?”하셨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그렇게 하는데, 자기 가고 싶을 때 가고 오고 싶을 때 올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대단하잖는가.
그런데 겁도 없이 거짓말을 한다.
“나는 이렇게 팍 죽어버릴 거야. 이렇게 확 갈 거야.”
“진짜로?”
전에는 예사로 들었는데 가만 보니까 거짓말이다.
‘그 사람 모습을 보면 아무리 봐도 그렇게 못 갈 것 같은데?’
“아이고 스님 간도 크네. 감히 그런 소리, 나는 꿈도 못 꿔. 그리 되면 근사하지?”
‘근사하지’ 오늘 두 번 써 먹었다. 두드려 맞아 죽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그래 하면 근사하긴 하다.
근데 ‘갔다’‘왔다’가 중처편추(重處偏墜)로다. 업에 묶인 데로 무거운 데로 떨어진다. 감히 지 마음에 들고 안 들고 그렇게 선지식을 함부로 농락하면 안된다.
자기 잣대로 어떻게 선지식을 잴 수 있는가, 건방스럽다.
시구지무염대사자후(是求智無厭大獅子吼)요: 이것은 지혜를 구하여 만족함이 없는 사자후이며
아당제멸일체중마(我當除滅一切衆魔)와: 내가 마땅히 모든 마와
급제마업(及諸魔業)이:업을 멸하리라 하나니
시수정행(是修正行)하야 : 이것은 바른 행을 닦고
단제번뇌대사자후(斷諸煩惱大獅子吼)요:번뇌를 꺾는 사자후이며
아당요지일체제법(我當了知一切諸法)이: 또 내가 마땅히 지일체제법의
무아무중생무수명무보가라공무상무원(無我無衆生無壽命無補伽羅空無相無願)하야:무아 무중생 무수명 무보특가라 공 무상 무원 불교를 총체적으로 다 얘기해 놨다. 요걸 제일 잘 설명해 놓은 경전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경전으로서는 금강경이다. 특히 다른 데는 잘 안 나오고 <현장법사 금강경>에 요 대목이 그대로 다 나온다.
무보특가라 있잖은가.
인상(人相)이라고 하는 걸 조금 더 증폭해서 보특가라상이라고 해놨는데, 자세하게 다 나온다.
여기는 보가라라고 해놨다.
그 과보와 상벌이 분명한 걸 말한다.
어떤 스님이 너무 깨끗하게 잘 사니까 임금이 ‘스님이 주지하세요’하고 좋은 절, 정사를 하나 지어줬다.
금장요집경(金藏要集經)에 불교 교훈으로 삼아서 나오는 유명한 말씀이다.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짧게 1분만 얘기하겠다. 이 스님이 주지를 살면서 아주 청렴하게 수행을 잘했다.
어느날 우리 같은 대중스님들이 모여서 목욕을 했는데 누군가 향유를 대중공양했다. 스님들이 몸에다가 향유를 바르는데 그 주지가 와서 말했다.
“중들이 뭐 하는 짓이야? 향나는 화장품 기름이나 바르고, 꼭 똥 바르는 것보다 냄새가 더하구만. 저리 안 가나?”
그러자 대중 중에 꾀죄죄해서 누구같이 생긴 스님이 있었던가 보다. 그 스님이 떡 나타나서는
“대중들이 다 받을 만한데 왜 그래?”
하고 한 방 보여주었다.
주지스님이 그 스님이 아라한인 걸 알아보고는 말했다.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스님.”
그런데 그 주지는 다음에 태어날 때 악취가 나는 엄마에게서 태어났다. 악취 때문에 아버지도 옆에 오지 않고, 그 스님도 태어나자마자 악취가 났다. 게다가 막 똥을 주워 먹었다.
그래서 집에서 쫓겨 났다.
어떤 외도가 그걸 보고 불쌍하게 생각해서 그 아이를 거둬서 데리고 갔는데 거기서도 똥을 먹고 지저분하게 옷에다가 똥을 발라대니까 결국 또 쫓겨났다.
똥을 칠갑하고 지저분하게 다니니까 여기서든 저기서든 쫓겨났다. 이리저리 돌다가 어쩌다 부처님을 만나서 정법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업장을 다 소멸했다.
그 스님이 잘 모르면서 ‘똥 발라놓은 것 같다’고 남을 욕하다가 자기가 똥을 바르는 과보를 받은 이야기다.
짧게 이야기하려다 보니 많이 줄였다.
‘남에게 똥 발라놓은 것 같다’고 말해서, 자기도 똥칠하고 살고, 계속 그 업장으로 남한테 밉보였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떻게 해서 또 깨끗하게 부처님 법을 들을 수 있었습니까?”
누군가 묻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남 욕할 줄도 알았지만 그래도 아라한을 선지식으로 알아보고 그 자리에서 ‘아이고 제가 잘못됐습니다. 제가 큰 말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참회를 했기 때문에 다시 정법을 들을 수 있었다.” 라고 하셨다.
있었던 이야기인지 꾸며낸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경전에 나오기 때문에 딱 뽑아서 금장요집경이라는 설화집에 넣은 것이다.
금장(金藏) 부처님 대장경에서 뽑아낸, 요집(要集) 가장 중요한 얘기라는 뜻이다. 상벌이 분명하다.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신심을 낸 공덕으로 좋은 것도 얻었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 될 지는 들어보면 알잖는가. 요런 것을 설해서 귀에 솔깃하면 제일 하수다.
법을 직접 설해서 알아들으면 대빵이고 비유를 해서 알아들으면 2등이다.
인연설을 이렇게 설명해 주면 법문하기가 좋다.
그런데 이런 인연과보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하게 해줘서 어딘가 가서 법문했으면 좋겠다 싶잖은가?
나중에 종이 한 장에 원문과 번역을 프린트해서 드리겠다.
재밌지 않은가? 사람이 태어났는데 똥을 먹다니, 그 똥 먹던 사람이 법문을 듣다니, 그런 얘기가 옛날 경전에 많이 나온다.
정여허공(淨如虛空)이: 어쨌든지 깨끗하게 허공과 같음을 알리라 하나니. 이런 것이 화엄경이 눈에 확확 들어온다고 하는 것은 참회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화엄경을 좋다고 한다.
“스님들, 시간 가는 줄 모르겠죠?”
“예.”
입만 떼면 거짓말을 한다.
시무생법인대사자후(是無生法忍大獅子吼)요: 이것은 생사없는 법을 아는 무생인의 사자후니라. 최고잖은가.
이 무생인의 사자후를 들었다는 것은 누가 듣겠는가?
*
최후생보살(最後生菩薩)이: 최후생보살이 듣는다. 마지막에 최후생 한 번이면 일생보처(一生補處)다. 이제 더이상 윤회가 없는 보살로서
진동일체제불국토(震動一切諸佛國土)하야: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진동시켜서
실령엄정(悉令嚴淨)이어든: 깨끗하게 실령엄정이라 하거든
시시(是時)에: 이때에
일체석범사왕(一切釋梵四王)이:일체 제석천 범천왕 사천왕들이
함래찬청(咸來讚請)호대: 다 함래찬정이라. 제석천, 범천, 사천왕이 와서 찬탄하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겠는가.
유원보살(唯願菩薩)은: 유원보살은
이무생법(以無生法)으로: 이무생법으로
이현수생(而現受生)하소서하면: 이현수생하소서. 생사없는 법으로서 태어나소서 하느니라.
*
보살(菩薩)이:그때 보살이
즉이무애혜안(則以無礙慧眼)으로: 걸림없는 지혜의 눈으로
보관세간일체중생(普觀世間一切衆生)이: 세간의 모든 중생에게
무여아자(無如我者)하고: 나와 같은 이가 없음을 살펴보고
즉어왕궁(卽於王宮)에: 왕궁에
시현탄생(示現誕生)하야: 시현탄생하되
자행칠보(自行七步)하고: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각성스님께서 부처님이 태어나서 일곱 걸음 걸었다는 말씀을 하시다가 농담삼아 말씀하셨다.
“사람은 일곱 걸음 잘 못 걷는데 송아지는 걸어?”
말이나 소나 태어나서 바로 걷는다 하셔서 갑자기 부처님이 송아지가 돼 버렸다.
어떻게 그런 말씀은 까먹어지지도 않는다.
다른 것은 ‘내 머릿 속의 지우개’ 싹 지워 버리고 없고 그런 거는 오래 간다.
운문 문언선사는 일곱 걸음 걸어갔다니까 ‘그게 내 앞에 오면 사지를 찢어버릴 것이다’라고 했다잖은가.
그러니까 선사들은 눈이 활발발한 것이다.
남 놀리는 소린지 진짜 있는 소린지 알아듣는다.
대사자후(大獅子吼)호대: 대사자후 하시기를
아어세간(我於世間)에: 나는 세간에서
최승제일(最勝第一)이니: 제일이며 ‘아어세간에 최승제일이고’ 우리가 너무 많이 들어본 말이다.
아당영진생사변제(我當永盡生死邊際)가 : 내가 생사의 변제를 영원히 다 하리라.
시여설이작대사자후(是如說而作大獅子吼)라: 이것은 말한 것과 같이 작대사자후라.
말한 대로 실행하는, 여설이작(如說而作) 말한 대로 짓는, 말한 대로 되는, 우리는 말 따로 행위 동작 따로 있지만, 보살은 여설이작이라. 말한 것과 같이 자기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대사자후라.
시위십(是爲十)이니: 이것이 열 가지니 마지막에 결론을 또 부처님으로 회통쳤다. 이것이 열 가지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만약에 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이 법에 안주하면
즉득여래무상대사자후(則得如來無上大獅子吼)니라 : 곧 여래의 위없는 큰 사자후를 얻나니라.
드디어 58권으로 넘어간다.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五十八
離世間品 第三十八之六
四. 普賢菩薩의 二千答
6.四十七門의 等覺位答
(5) 菩薩의 十種淸淨施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淸淨施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平等施니不揀衆生故며隨意施니滿其所願故며 不亂施니令得利益故며隨宜施니知上中下故며 不住施니不求果報故며 開捨施니心不戀着故며 一切施니究竟淸淨故며 廻向菩提施니遠離有爲無爲故며 敎化衆生施니乃至道場不捨故며 三輪淸淨施니於施者受者와及以施物에正念觀察하야 如虛空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淸淨廣大施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청정한 보시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평등한 보시니, 중생을 가리지 않는 연고며, 뜻을 따르는 보시니, 그들의 소원을 채우는 연고이니라.
어지럽지 않는 보시니, 이익을 얻게 하는 연고며, 마땅함을 따르는 보시니, 상중하를 아는 연고이니라.
머물지 않는 보시니, 과보를 구하지 않는 연고이니라.
펼치고 버리는 보시니, 마음에 연연하지 않는 연고이니라.
일체를 다하는 보시니, 끝까지 청정한 연고이니라.
보리에 회향하는 보시니, 함이 있고 함이 없음을 멀리 여읜 연고이니라. 중생을 교화하는 보시니, 도량에 이르도록 버리지 않는 연고이니라.
삼륜(三輪)이 청정한 보시니, 주는 이와 받는 이와 시주하는 물건을 바른 생각으로 허공과 같이 관찰하는 연고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청정하고 광대한 보시를 얻느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청정시(十種淸淨施)
*
이세간품이 총 일곱 권인데 그 중에 제 여섯 번째 권이다.
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청정시(有十種淸淨施)하니 :열 가지의 청정한 보시가 있으니
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의 청정한 보시냐.
청정이라고 하는 것은 땟구정물이 빠지고 앞에 가리고 장애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청정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약인욕식불경계(若人欲識佛境界) 당정기의여허공(當淨其意如虛空)이라’
‘약인욕요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하라.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하라’
일체 법계의 청정을 살펴봐라. 법계가 청정한 게 무엇인가.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눈법계 귀법계 코법계가 전부 청정하다.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다. 이것이 청정이다.
청정한 보시를 흔히 삼륜청정이라고 한다.
삼륜청정을 ‘주는 사람이 깨끗하고 받는 사람이 깨끗하고 주는 물건이 깨끗하다’ 라고 해석한다면 반도 해석하지 못한 것이다. 꿈속의 해석이다.
‘청정’을 ‘깨끗하다’라고 하는 해석을 어른스님께서 항상 경계하셨다. ‘청정’은 ‘없다’는 것이다.
꿈속에서 아무리 밥그릇 들고 밥을 배부르게 먹어봤자 한 숟가락도 못 먹은 것이다.
삼륜청정은 주는 사람도 없고 받는 사람도 없고 주는 물건도 없는 무차시회(無遮施會)라. 어떤 조건을 떠나서 이무소득고로 아무것도 얻을 바가 없는 까닭으로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모든 중생들을 제도한다.
아무것도 얻을 바가 없는 까닭으로 삼세제불이 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얻을 바 없는 것을 얻었다, 이렇게 한다. 이걸 청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불교의 청정은 허공청정이라.
보시부터 나왔으니까 이제 쭉 따라 나올 것이다.
소위평등시(所謂平等施)니 :소위평등시나 평등한 보시이니 평등한 보시는 내 편이든 나를 향하고 있든 나를 등지고 있든지 상관 안 한다. 나를 외면하는 사람까지도 다 도와준다. 근데 우리는 내 마음에 조금만 안 맞으면 안 찾아간다.
내 마음에 들면 오지 말라 해도 악착같이 스토커를 해서 달라 붙는다. 그렇지 않은가? 평등한 보시이니
불간중생고(不揀衆生故)며 : 중생을 가리지 않는 까닭이다.
선악을 가리지 않는 게 평등한 보시다. 무차법회다.
제일 대표적으로 신심명 첫 구절이 무엇인가?
‘지도(至道)는 무난(無難)이라. 유혐간택(唯嫌揀擇)이라’
간택심은 딱 요리저리 골라내는 마음들이다.
수의시(隨意施)니 : 수의시라. 뜻을 따르는 보시다. 뜻을 따른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구하는 걸 마침내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라도 ‘저 사람이 뭘 구했는데’하고 염두에 뒀다가 시간과 공간에 맞춰서 알맞게 ‘이거 저번에 찾았지요?’ 하고 갖다 주는 것이다.
근데 마음에 없고 아주 무자비하고 얍삽한 사람들은 몇 번을 말해도 말 안 든다.
“저번에 얘기했던 거 어때요?”
“아, 스님 까먹어 버렸는데요.”
그러면 한번에 알아보는 것이다.
성의가 있는 사람은 물었던 사람이 까먹었다 해도 기억하고 있다가 몇 년이 지나도 곰곰이 생각해서 또 살펴보고 ‘말씀을 안 하셔도 구하시는 게 이것이겠구나’하고 쓱 갖다 놔야 된다.
어른스님이 이렇게 계신다 싶으면 봄이 되면 냉전, 냉이가 있는 밭에 가서 냉이를 캐 가지고 ‘이때쯤은 안 잡수고 싶겠나?’ 이렇게 냉이를 캐야 되지 않겠는가.
저도 어릴 때 어른스님이 처음에 편찮으시고 이럴 때는 ‘아이고 우야노’ 싶어서 냉이도 막 캐서 갖다 드렸다.
요새는 ‘잘 자시는데 뭐, 냉이는 내가 왜 캐? 나도 힘들어 죽겠구만’ 막 이러고 만다.
처음에는 블루베리도 나오면 막 갖다 사드리고 ‘잡솨 보세요’ 했는데 요새는 ‘내가 안 사드려도 천지빼까리로 사 오실 건데, 내나 먹자, 항상 불상 앞에 부처님 앞에 불쌍하게 앉아있는 내나 먹자’ 이런다. 그 뜻을 따르는 보시라.
만기소원고(滿其所願故)며: 그들의 소원을 채워주는 연고이고
불란시(不亂施)니: 난잡하지 않는 보시이니, 난잡하다고 하는 건 세상의 즐거움들, 도박이나 하고, 세속의 그런 거 있잖은가. 아주 얍삽하게 난잡하지 않고도
영득이익고(令得利益故)며: 이익을 얻게 하는 연고이다.
그렇게 세속 이익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한 사람도 빠지지 않도록 똑똑 때에 맞춰서 중생들을 제도하고 어려움에서 구해 주는 것이다. 이런 대목도 치문에 자세히 나온다.
수의시(隨宜施)니: 마땅함을 따르는 보시이니
지상중하고(知上中下故)며: 상중하를 아는 연고이다. 어른한테 줘야 될 것, 아이한테 줘야 될 것을 안다.
세 살 먹은 아이한테 ‘너도 사람 아이가, 위스키 한잔 해라’ 이래 버리면 골치 아프다.
어른한테 젤리 같은 거, 사탕 같은 것을 갖다 주면 별로 안 좋잖은가. 줄 자리 안 줄 자리 딱 이렇게 포지션이 다르다.
그러면 여기 상중하를 따른다고 할 때는 정말 어떻게 되느냐? 누구한테 제일 먼저 밥을 줘야 되느냐? 제일 가난한 사람한테 먼저 밥을 줘야 된다. 제일 추운 사람한테 장갑을 먼저 줘야 된다. 안 그렇겠는가? ‘아, 저 사람은 아직 견딜만 하니까’ 제일 밑에 사람한테 더 많은 걸 줘야 될 것이다.
관포지교(管鮑之交)는 관중과 포숙아 두 친구의 우정을 이야기하지 않는가. 이 둘이 똑같이 장사를 하고 난 뒤 항상 몇 대 몇으로 나눴는가? 8대 2로 관중이 8 포숙아가 2를 가져갔다.
옆에서 아는 사람들이 볼 때는 50대 50, 쏘쏘윈윈으로 동등하게 가져가야 하는데 왜 친한 친구끼리 한 사람은 80을 가져가고 한 사람은 20을 가져가는가 싶어서 물었다.
“포숙아야 니 화 안나나?”
“안 나는데?”
“왜 안 나? 관중은 니를 이용해 먹고 아주 못된 놈이다. 친구간에 이럴 수 있나? 니 어리숙하다고 등쳐 먹네. 지가 80이나 가져가고 니한테 왜 20밖에 왜 안 주나? 이거 인간이야? 겉은 번르르하게 생겨 가지고 말 잘하고 법희(스님) 비슷하게 생겼는데 완전 사기꾼인데? 니 왜 불만 없어?”
“아니야. 관중이는 집에 애들하고 어머니하고 아버지하고 할아버지하고 할머니하고 식구가 얼마나 많아. 그 80도 부족해. 나는 홀어머니 모시고 둘이 사는데 20만 가져가도 관중이 보다 차고 넘쳐. 친구지간에 내 90이라도 더 줄 수 있어.”
그게 중도 아니겠는가. 근데 우리에겐 그게 지켜지는가?
꼭 인물 안 된 사람도 ‘수건 한 장 더 내놔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때는 거울을 드릴 때마다 신기하다. 거울을 하나 보기도 민망해서 못 보겠구만, 두 개 가져가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상중하를 따른다는 대목에서 우리가 그런 대목도 한 번씩 짚어본다.
포숙아가 불교인이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사는 모습이 불교구나. 그것이 중도구나. 궁좌실제중도상(窮坐實際中道床)이다.
부주시(不住施)니: 무주상보시이니
불구과보고(不求果報故)며:과보를 구하지 않는 연고이고
개사시(開捨施)니: 개사시니
심불연착고(心不戀着故)며: 마음에 연연하지 않는다. 심불연착이라.
전에 저에게 그 유명한 롤렉스 시계를 선물한 도반이 있었다.
‘중이 차기엔 뭐하고 부담가니까 강사하는 니가 차라’
그래서 끼고 있다가 저도 부담이 가니까, 이런 걸 좋아하는 친한 도반스님이 오셨길래 드렸다.
그 두 스님은 서로 앙숙지간인데 제게 시계를 줬던 스님이 눈이 벌게 가지고 “니가 왜 이걸 차고 있어?” 잡아 먹을 듯이 봤다.
“됐다, 됐다. 내가 줬다.”
제가 말했더니 저에게 말했다.
“그걸 왜 주냐?”
답이 안 나오는 것이다.
“가만 있어 봐봐. 가만 있어 봐봐.”
엔간하면 제가 잔머리를 잘 굴려서 금방금방 돌아가는데 너무 당황해서 답이 안 나왔다. 가만 있어 봐. 가만 있어 봐. 가만 있어 봐. 이러다 보니까 생각이 나서
“그거 시계 내한테 준거 맞나? 확실히 준 거 맞나?”
“응 줬지.”
“그럼 내 꺼냐, 니 꺼냐?”
제가 그렇게 물으니까 그 스님이
“어? 니, 니 꺼 같은데?”
“내 거 내 주는데 네가 왜 따지냐?”
그래도 그 도반이 분심이 나서는 이제 나한테 오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은 전에 마음에 안 든다고 냉장고를 떼어가 버린 사람도 있다. 여러분들 다 아시는 분들이다. 재밌다.
심불연착이라.
사람들 중에는 남녀지간에 사귀다가도 연애할 때 줬던 물건들 다 내놓으라고 한다는데 보통 일이 아니다.
여기 보라.
마음에 쫙 달라붙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터놓고 마음에 연연하지 않는 보시는 뭐냐? 내가 정말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애장품 있잖은가. 그것을 툭툭 준다. 누구라고 얘기하기 그렇지만 나에게 그런 도반이 있다.
내 상좌도 그렇다. 어떤 때는 옷을 주기도 하는데 내게도 좋은 기능성 속옷을 사서 준다.
“니는 왜 난닝구 쭉 늘어진 거 있고 내한테 이거 가져오느냐?” 그랬더니 “남한테 드리는 걸 좋은 거 해 드려야죠.”했다.
상좌인데도 난 따라갈 수가 없다. 배우는 게 너무 많다.
어디 음식점에 가서 우리가 일곱 여덟 명 짜장면을 먹고 나오다 돈을 내고 남는 잔돈이 있잖은가.
한 돈 십만원 주다가 오천 원이나 삼천 원 어떤 땐 오만 원 이렇게 남는데 그러면 다 주고 와 버린다.
“왜 다 주냐?”
“맛있게 먹었잖아요.”
그러면서 그 집에 거스름돈을 안 받고 다 줘 버린다.
“오늘 음식 고맙습니데이. 이거 부족하지만 다 하이소.”
그건 배울 수도 없고 미치겠다. 상좌한테 배울 수가 없다. 천심이다. 우리 어른스님께서도 “누구누구는 참 도심이 있어.” 이러신다. 어른스님도 딱 보고 계시는 것이다.
톡 털어서 다 줘 버린다.
우리는 줘 놓고 “내 저번에 니 밥 한 끼 산 거 알제? 그 만년필 잘 나오더나?” 몇 번이고 물어본다.
일체시(一切施)니: 일체시라.
주려면 통째로 줘라. 한 가지씩 뜯어 주지 말고.
구경청정고(究竟淸淨故)며: 구경청정이라. 끝까지 청정한 까닭이라. 내 안에 있는 거, 밖에 있는 거, 부처님께서 우리한테 주시는 걸 개구현담(開口見膽)이라, 안에 있는 속의 쓸개까지 빼 줘 버린다고 하잖는가. 화반탁출(和盤托出)이다.
회향보리시(廻向菩提施)니: 보리에 회향하는 보시니, 회향보리시니
원리유위무위고(遠離有爲無爲故)며: 함이 있고 함이 없음을 멀리한다. 잘됐다 못 됐다를 다 떠나 버린다는 것이다. 유위무위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유위, 무위를 일체법이라고 한다. 그걸 다 떠나 버린다,
교화중생시(敎化衆生施)니: 중생을 교화하는 보시니
내지도량불사고(乃至道場不捨故)며: 도량에 이르도록 버리지 않는다. 그 중생이 어쨌든지 인간이 될 때까지, 사람이 될 때까지 옆에서 지켜 주는 것이다.
저는 사람이 될 때까지 상좌를 지키는 것이 아니고, 상좌한테 배워야 될 판이다. 고맙고 고맙다.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운 것이다.
삼륜청정시(三輪淸淨施)니:삼륜이 청정한 보시니, 여기 나왔다.
어시제수자(於施者受者)와:주는 사람, 받는 사람
급이시물(及以施物)에:물건을
정념관찰(正念觀察)하야:바른 생각으로 관찰하여
여허공고(如虛空故)라: 허공과 같은 연고다. 주는 사람도 없고 받는 사람도 없고 주는 물건도 없고 관삼륜청정하여
시위십(是爲十)이니: 이것이 열 가지이니
고제보살(若諸菩薩)이: 만약에 보살들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득여래무상청정광대시(則得如來無上淸淨廣大施)니라 : 여래의 위없는 청정하고 광대한 보시를 얻느니라
일반 신도님들도 자기가 해 준 옷을 안 입고 있으면 인상이 팍 찌그러진다. 그래서 일부러 입어주는 수가 많다.
이 사람이 오면 이 사람 옷 입어주고, 오늘 저 사람이 오면 또 다시 옷 갈아입어 주고, 내가 한 달 돼도 옷 한번 안 갈아입는 사람인데 누구 만날 때마다 다른 옷을 갈아입는다. 이거 입고, 저거 입고 어떤 때는 둘이 같이 오면 하나는 조끼 입고 하나는 티 입고, 입은 거 딱 윗통 벗고 보여 주기도 하고, 난감하다.
이 얘기에 웃으시는 걸 보니 스님들이 다 같은 동병상련이라.
그런 게 아닌 줄은 우리도 알지만, 상대한테 맞춰 주는 것도 좋은 것 아니겠는가.
오늘도 몇 번 갈아 입어야 될 지 모른다.
자, 오늘 여기까지 해서 살짝 58권 열었다.
다음 시간에 하겠다.
근념하셨다.
(죽비소리)
하강례
화엄으로 살다, 2026년 새해 덕담
2025년 12월 18일에 현대신문 기자가 화엄전을 방문했다.
‘새해 덕담’이라는 주제로 인터뷰한 내용이 <다음카페 염화실>에 먼저 실려서 녹취한다.
인생난득(人生難得) 불법난봉(佛法難逢) 화엄난견(華嚴難見)
무비스님 : 사람은 누구나 수행자다. 대상은 누가 됐든지 간에 상관없이 똑같애. 최근에 내 화두가, 옛날부터 화두이기도 하지만 최근에 특별히 내가 강조하는 화두가 있어. 인생난득(人生難得)이요 불법난봉(佛法難逢)이라.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렵다. 거기다 또 더해서 화엄경 만나기가 더욱더 어렵다. 화엄난견(華嚴難見).
기자 : 화엄난견
무비스님 : 볼 견(見)자. 세월이 하루하루 갈수록 철이 더 들고 사람은 다 그렇거든? 누구할 것 없이 철이 들고. 철이 들어야 지혜가 나. 인생이 보여. 세상도 보이고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것도 보이게 돼.
그래서 하여튼 그게 최신식 화두야. 뭐가 됐든 간에 지금 내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게 그 점이라. 이 세상, 이 금정산만 하더라도 예를 들어서 생명체가 얼마나 많겠어? 그런데 지구상에 사람이라고 하는 생명체는 80억이라고 하거든, 우리가 그 많고 많은 생명체 중에서 사람으로 태어났어. 그거 아주 어려운 확률이라. 그래서 사람 몸 받기 어렵다, 이렇게 말하는 거야.
새삼스러운 말은 아닌데 아주 새삼스러운 말이야.
아주 새삼스러운 말이야.
사람 몸 받기 어렵다.
그 가운데 불법 만나기 어렵다. 이거 새삼스러운 말 아닌데 아주 새삼스러운 말이야. 아주 새삼스러운 말, 최(最) 가장 새삼스러운 말, 가장 중요한 말이야.
난 지금 그렇게 느끼고 있어.
근데 우리가 불자로서 모두 너도 나도 불법 이야기를 다 하는데 불법도 참 종류가 많잖아.
원효스님이 화쟁(和諍)을 이야기하는데, 너도 나도 아는 대로 자기 불법을 주장하니까 각자 소견대로 아는 불법을 융화시킨다는 뜻에서 화쟁을 이야기했거든. 화쟁사상을 들고 일어났다고.
가장 오래 묵은 이야기지만 가장 새로운 이야기고. 가장 흔한 소리지만 가장 가치 있는 이야기고, 사람 몸 받은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가치 있고. 불법 만난 게 그렇고. 또 화쟁이야기를 했지만, 많고 많은 주의주장 중에서도 화엄경의 사상이 정말 가치 있는 거야. 화엄경이.
원효 의상스님이 우리나라에 불법이 들어오고서 300여 년 이후에 태어났거든.
그런데 알 거 다 알았다고. 유교, 도교, 불법이고 간에 다 알았는데, 그 가운데 화엄사상이 가장 값지고 소중하다고 하는 것을 알고는 두 분이 중국에 가서 불법을 제대로 공부해야 되겠다 해서 간 게 당나라 유학길인데.
원효스님은 그렇게 해서 깨달아서 ‘갈 필요없다’고 하고, 의상스님은 8년간 유학을 했는데 길은 같아.
우리 불자들은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늘 내가 주장하고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생에 대해서 그 가치를 좀 더욱더 깊이 인식했으면 좋겠고, 그다음에 여러 가지 주장 중에서 불법을 만났다고 하는 것에 대한 불법에 대한 가치를 더욱더 깊이 있게 인식했으면 좋겠어.
인생 짧은데 나이가 얼마나 됐든 간에 인생은 누구 없이 짧거든, 급하다고.
그러니까 한 군데라도. 좀 깊이 있게 이해하는 그런 새로운 해[年]야 되고 또 지나간 해도 마찬가지고, 새로 오는 해도 역시 그 정신으로 살았으면 좋겠어.
그거예요, 한결같이 그것뿐이라.
그래서 요즘 사구게를, 원효스님 ‘장대교망(張大敎網) 녹인천지어(漉人天之魚)라’ 원효스님의 깃발이야. 평생 저거거든. ‘큰 가르침의 그물을 활짝 펴 가지고 인천의 고기를 다 건져 올리고 싶다.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을 다 교화하리라’ 그게 원효스님의 깃발이고 부처님의 깃발이고 내 깃발이야.
그래서 ‘약인욕요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지옥도 깨뜨리는 화엄경 사구게가 더 가치 있게 생각이 들어서 내가 60년에 전에도 그걸 알았고. 지금도 알고 있지만은 역시 오늘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고 무게가 또 달라.
‘평생 하는 소리 아니냐’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든 말하든 간에 나는 이 순간 이 불법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게 생각이 드니까 그래서 이걸 사경책으로 만들었어. 안에 한 페이지에 두 번씩. 그다음에.
*
제법종연생(諸法從緣生) 제법종연멸(諸法從緣滅) 아불대사문(我佛大沙門) 상작여시설(常作如是說) 이건 사리불이 불법을 처음 만나서 들은 이야기거든.
저걸 듣고 개종을 해버렸잖아. 목련존자하고 사리불하고 개종을 했어. 자기들 제자들이 많았는데 바로 개종을 해버렸네. 개종을 할 정도의 가치 있고 힘이 있고 뜻이 깊은 이치라. 기가 막힌 도리 아냐?
6조스님도 참 효자인데 금강경 한 말씀을 듣고는 어머니를 버리고 출가해버렸잖아, 그 효자가. 어머니를 버리고 출가했을 때는 가슴이 얼마나. 아팠겠어. 보통 사람도 그런데 그 효자가.
불법은 촌철살인이야.
한마디가 그렇게 사람을 죽이는 거야. 완전히 사람을 바꿔놓는 거야.
우리는 멍청이가 되어서 그런 소리 천 번 만 번 들어도 덤덤해. 나도 마찬가지야.
덤덤하게 그래 사는 거야.
근데 그런 사람들은 총명하니까 딱 들으면 ‘어머니를 내가 평생 모시고 사는 것 중요하다 말이야. 그렇지만 그거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사리불 목건련이 평생 신봉하던 스승, 사상, 주의주장 그거 좋단 말이야. 그렇지만 ‘그거보다 더 값진 것이 있는데’ 당장에 달려가잖아.
그만치 소중한 걸 재인식하는 게 중요한 거야.
제법종연생 제법종연멸
*
일체유위법( 一切有爲法)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저것도 금강경 사구게이긴 하지만 6조스님이 그 구절도 공부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어.
저런 걸 자나깨나 언제나 생각해도 불법이야 불법.
불법의 진수, 이론적으로 요즘은 AI한테 물으면 두 시간 세 시간을 조리정연하게 어떤 학자보다도 더 설명 잘하거든. 기가 막히게 한다고. 근데 그거 듣고 감동한 사람 있어?
요런 말 한마디 딱 듣고 감동하는 거야. 그래서 사람이 달라지는 거지. 사람이 달라질 때까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저걸 쓰고 읽고 쓰고 읽고 쓰고 그래야지.
그것밖에 없어. 지난해가 됐던 새해가 됐든. 그것밖에 없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달라면 그거 두 번 이야기하고, 녹음한 거 틀어줘.
천 번 만 번 나한테 물어도 난 그렇게 이야기할 거야.
‘이거다. 이거다. 이거다. 천 번 만 번 나한테 물어도 또 이거다’
난 그렇게 이야기할 거야.
그러니까 글자를 크게 써. 신문에다.
작게 쓰지 말고 크게 여러 번 반복해서 써.
‘무비스님은 이렇게 이 정신을 강조했다. 인생난득(人生難得) 불법난봉(佛法難逢) 그 가운데 화엄난견(華嚴難見) 화엄을 만나기가 더욱더 어렵다. 그걸 반복해서 주장하더라. 음성이 다 쉬어 가지고 오늘낼 오늘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렇게 주장하더라’
그렇게 하면 돼.
그거 듣고 사람 안 변하면 그건 이야기할 것 없지.
인생난득 불법난봉 화엄난견
화엄경을 보기 어렵다.
원효스님의 화쟁도 결국은 화엄사상이라야 화쟁이 가능한거야.
화쟁은 불법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가 있는데. 그것을 전부 융화시키자 하는 그 뜻이거든.
결국은 화엄경으로. 그게 가능하다. 이 뜻이라.
화엄난견(華嚴難見)
화엄을 만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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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
당정기의여허공(當淨基意如虛空) >> 其
쭉 늘어진 거 있고 >> 입고
인생난득(人生難得) 불법난봉(佛法難逢) 화엄난견(華嚴難見)
잘 고쳤습니다. 1회부터 3회까지 읽고 수정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行願은 새의 양 날개와 같다. 원이 있는데 행이 없는 사람은 마치 강을 건너고자 하면서 배를 준비하지 않은 사람과 같다’ ...삼륜청정은 주는 사람도 없고 받는 사람도 없고 주는 물건도 없는 무차시회無遮施會라.고맙습니다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공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고맙습니다._()()()_
근념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_()()()_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불화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