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군 단밀면 위중3동 ,산 아래 동네는, 군에서 녹색 체험마을로 지정되어 있고, 내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은 ~
용암못에 살던 이무기가 하늘로 승천하며 바위를 딛고 옆에 서 있던 느티나무를 타고 올라가, 나무는 죽고 큰 바위는 둘로 쪼개져 마을앞에 용바위가 되어 수호신처럼 서있다.
예전에는 사십여 가구가 오손도손 살았으나 지금은 불당골 여섯가구, 자박골 여섯집, 백구마 다섯집 합하여 열일곱 가구 세마을이 한동네로 어울어져있고 마을앞에는 실개천이 흐르며, 만경산 기슭에 가려 해가 한시간 늦게 뜨고 한시간 일찍 지는 내 고향 용암동- 이런 두메산골에도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은 사계절,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까지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던 그야말로 문명의 혜택이라고는 전혀 받아보지 못하고 어린시절을 쭉 산골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있어 마을 앞 에 있는 용암저수지 물결 따라 펼쳐져 있는 문전옥답 푸른 들녘과 산 계곡을 끼고 흐르는 실개천은 더 없이 좋은 벗이요, 친구가 돼 주곤 하였다.
봄을 재촉하는 뻐꾸기 소리와 함께 만경산 기슭에 붉은 진달래꽃이 피어날 때면, 이웃집 소녀와 함께 뒷동산에 올라 꽃을 따먹었다. 행여나 문둥이 병에 걸린 문둥이가 나타나 잡아갈지 모른다는 웃어른들의 옛 말을 되뇌이면서...... 마을 뒷동산에 올라 노란 감꽃을 실에 꿰매 소녀의 목에 걸어주고 하얀 토끼풀을 뜯어 꽃반지를 만들어 새끼손가락에 걸어주며 둘이는 마냥 즐거웠다.
온 누리에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이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책가방을 툇마루에 던져 버리고 소녀와 나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아랫마을에 있는 용암지에 나가 창피한 줄도 모르고 벌거벗고 멱을 감았다. 실개천에서 가제를 잡기도 하고 그물을 놓아 버들치와 피라미 떼를 몰기도 했다. 그다지 수심이 깊지 않아 손을 짚고 개헤엄을 치며 물장구를 치기도 하면서 해가 서산마루에 뉘엿뉘엿 거릴 때까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
나는 산비탈 들녘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가는 메뚜기와 여치를 그물망태기에 잡아 가지고는 쥐불에 구워먹기도 하고, 장독대 뒤뜰 봉숭아꽃을 따다가 돌로 짓이겨 곱고 예쁜 소녀의 손톱에 물을 들여 주었다. 그 후 사이가 아주 가까워진 우린 자작나무 밑에 나뭇가지를 모아 새끼줄로 이엉을 엮어서는 조그만 집을 짓고, 깨진 사금파리를 주어다 밥그릇과 반찬 그릇을 만들어 놓고 엄마 아빠 놀이를 하는 등 어른 흉내를 내기도 했다.
어느 듯 해가 질 무렵 만경산 천운사에서 둔탁한 목탁소리가 들려오면, 소녀와 난 뒷동산 솔밭에 나란히 앉아 캄캄한 밤하늘 별 하나를 정해놓고 손가락을 걸며 먼 훗날을 약속하고 ‘앙퐁스도테’의 별을 생각하며 어릴 적 순진무구한 꿈과 이상을 키워가면서 성장했다.
고추잠자리 떼 어지럽게 맴을 돌 무렵이면, 들녘의 누런 곡식과 풍성한 과일들이 농부들의 바쁜 일손을 기다렸다. 소녀는 노란 은행잎과 붉은 단풍잎을 하나 둘 주워 모아 책장에 넣어 말린 뒤 가을 엽서에 사랑의 열정을 소중히 담아 나에게 띄워 보내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우리들은 ‘앙퐁스도테’의 별 속의 주인공처럼 순수한 사랑과 소망을 키워나갔다.
먼 산 넘어 눈보라가 몰아치면, 아버지 몰래 송판대기를 잘라 썰매를 만들어 용암지에 나가 얼음을 지치는 사이 손이 꽁꽁 얼어붙어 동상에 걸리기도 했다. 사랑채 쇠죽을 끓이는 부엌에서 소녀와 나는 어머니 몰래 소쿠리에 담아둔 감자를 꺼내다 아궁이에 넣고 꺼져가는 불씨를 눈이 빨갛도록 불어대다 재채기도 하고, 아궁이에서 설익은 감자를 까먹으며 새까맣게 변한 얼굴을 서로 쳐다보곤 웃기도 했다.
몇 년 전인가, 나는 오랜만에 휴일을 맞아 집사람과 함께 가기 싫어하는 아들을 데리고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옆에 있는 쓰레기 매립지 난지도 하늘공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강바람에 한들한들 흔들리는 약 60만평에 걸쳐 키가 크면서도 조밀한 억새꽃이 무한의 자유가 절대인 것처럼 큰 숲을 이루었다. 이와 더불어 시골에서만 볼 수 있는 벼와 보리, 고추 같은 농작물과 천혜의 자연친화적인 풍정을 갖춘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수없이 피어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도회지에서만 살아온 아들에게 고향의 추억을 느껴주고 싶어서, 그날 나는 노을이 한강에 붉게 젖을 때까지 아들을 데리고 하늘공원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내 어릴 적 보았던 목화와 수세미, 호박, 율무 등을 가리키며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그야말로 이 하늘공원은 각종 농작물과 야생화가 심어져 있어 콘크리트로 뒤덮인 회색도시의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그 옛날의 아련한 농촌의 향취에 젖게 하고, 우리 농촌 풍경을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는 자연학습의 산교육장이라 할 수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농촌풍경과 같은 소박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느낌이다. 아니 순수한 그 자체를 모른 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는지 모른다. 잡으면 잡힐 듯이 아련한 기억들- 어느새 청년으로 자라버린 아들은 지금, 빵과 인스턴트 식품으로 끼니를 대신하고 하루 종일 밀폐된 공간에서 책과 컴퓨터를 벗 삼아 생활하다 가, 지금은 군에서 발톱이 빠질 만큼 고된 훈련을 받고 있을 아들이 떠올라 왠지 가슴에 아련한 그리움이 사무친다.
지금도 나는 만경산 기슭아래 밤마다 부엉이 울고, 용암저수지 물줄기 따라 넓고 푸른 자연이 펼쳐져 있는 안계들녘에서 내 고향의 노래를 부르며 살고 싶다. 하루에 열 두 번씩 마음은 몇 십 년을 곤두박질쳐 내 고향 용암동 으로 달려가지만,...... 나이가 먹어갈 수록 푸르고 건강했던 내 어린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나는 직장에서 퇴직하게 되면, 아마 내 고향에 내려가 만경산 기슭아래 토담집을 짓고 야생초와 농토를 가꾸면서 내 어릴 적 자연으로부터 배운 사랑과 겸손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도시생활에 찌들어 동심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나의 가슴에 순수를 심어 줄 작정이다.~~~~~~
2008,10,2, 만경산
첫댓글 같이 별을 세던 그 소녀는 지금 어디에 계실꼬....그 어릴적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지.
ㅎㅎㅎ 그 소녀는 지금 쯤 어디에서 열심히 살고있겠지 ㅋㅋㅋ
만경산님! 오랫만입니다.님이 느끼신 윗 글을 찬찬히 잘 읽어보았습니다.어쩜 저의 생각과 같으신지요.비록 옆 면,옆 동네에서 어릴적에는 비슷한 환경에서 커 오다가, 이제 3~40년이 지나 고향으로 향하는 마음은 연어와 함께 사람의 바램이 아니겠습니까?고향을 드를때마다 자주 나의 안식처를 찾아보곤합니다. 만경산님,건강하십시요.조만간에 만나겠지요.
처음님 관악산에 함께 등산한 기억은 있는디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구천하면 청화산 조성지 위수강 모두다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하는 살가운 이름들이지요~~ 기회가 된다면 함께 두루두루 둘러볼 기회가 있었슴 ㅎㅎㅎ 그래야 알콩달콩한 야그도 올릴 수 있고 말입니다 ~~~ 청산회 모임이 12월 18일 목요일날 있습니다 기억하세요 ^^^
나이들면 정말 용암동에 토담집 짓고 살건가?... .. 그때 우리 자주 만나세... 고향 옆 동네 좋은 친구한명 생기겠네....
그려 앞으로 10년 후에는 만경산 자락에 터를 잡을태니 그때 자주자주 얼굴보며 점잔게 늙어가세나 ~~~
그 옆집 소녀가 누군고 ㅋㅋ궁금타 ㅎㅎ흙에서 태어난 놈 흙으로 돌아 가야제...
ㅎㅎㅎ 글시 그 소녀 다리고 간 시월이 야속키만 허네 그려 ㅎㅎㅎ
용암지 낚시해서 참붕어 잡거든 연락해! 매운탕 먹으러 갈께~~
저번에 고향갔을 때 보니까 저수지 뚝방 새로 보수하느라 물을 다 뺏드구먼 지금 쯤 가면 고기 손으로 잡울수 있을지 모르겠네 이번 주말 고기잡으려 용암가야 겠구먼 ㅎㅎ
농촌에서 태어난 우리에겐 어려웠지만 평생을 추억할수 있기에....행복합니다.이 아침에 잘 보고갑니다.조은하루!
아이구 누님 어서 오시와요 ~~~ 언제나 화사한 미소를 머금은 모나리자 같으신 누님 건강하세요 ~~~
멀리 있어도~ 눈을 감고 있어도~ 훤히 보이는 것이 고향의 모습이 아닌가 싶구먼. 가슴깊이 와 닿는 고향의 글 감사하다네. ㅎ~~ 글을 읽는 동안 옛 생각이 절로 나게 하는 구먼. ^^ 날이 추워지면 작은논빼미에서 살금살금 내려 온 도둑고양이가 가뭇정지 부뜨막에서 몸을 녹여 갔었고, 부엉이가 무겁게 울어대면 오금이 절로 저려오기도 했었지. 부엉이가 울면 그 부근에 늑대가 있다고 했었거든ㅎ^^ 숙이랑 반드깨미를 살며~ 니는 엄마, 나는 아빠하며~ 깨진 사기조각에 흙을 퍼 담았고..... "여보 밥드세요" 하면 맛있게 "냠냠~~"하고 밥을 먹는 흉내를 내기도 했었지.ㅎ~ 그랬었다네 친구의 글에서 진한 고향의 흙냄새가 나는구먼^^ 감사^^
그려 부엉이가 우리집 안마당까지 날라 들어올 때도 있었지~~~ 금년에는 매주 목요일마다 외강이 있어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네 그려 다음달에 종강하면 아마 시간적 여유가 좀있을것 같네 에공 ~~~
깊어가는 초겨울 밤에 만경산 자네가 고향생각 절절하게 만드는구만 자네 글을 읽다보니 눈시울이 시큰둥해지는구려 좋은글 잘 읽고 가네
성모야 올만이다 지금도 분당에서 남의 인물 곱게 맹글고 있는감? 금년 모임에는 얼굴한번 볼 수 있겠지 기대함세 ^^^
고향이 있다는건 엄청난 부자이면서 마음의 여유를주는 어머니같은 존재가 아닐까? 나이들면 옛적이 더 간절해지는 우리내인생 고향내려오면 반가이 맞이해주는 고향산천 ....근데 마니 변해 아쉬움도있지만 문명이 인간을 짜꾸 게을음뱅이로 만드는 문맹시대에 이렇게 어린시절로 돌아가려는 가식없는 생각을 한번쯤은 떠올리면 생의 화력소가 되지 않을까 싶네 .잘 보고 갑니다.ㅡ 순만 ㅡ
권순만님 멀리있어 얼굴은 가물가물 하지만 이름은 또렸이 기억이 난다네 반가워 건강하시구 ~~~
고향의 정취 한없이 반갑구려 근데 만경산이 누구 이신가? 난 여기서 가끔 단밀 출장가는데... 용암지 구경도 가끔하지......
이보시게 칭구 난 자네의 얼굴을 또렸이 기억하고 있다네 단밀 용암동 촌놈일쎄그려
불당골이란 지명이 나오는 것을 보니 그 곳이 절터인가? 3번이나 읽고 또 읽었네, 한 참 동안 좋은 상상했네..
그려 지금은 절터만 남아있다네 그리고 그곳에 동생이 만경농장을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네 ㅎㅎㅎ
용암동 저수지 지나서 마을 지나서 산으로 한참을 올라가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산소가 있어 어릴적에 추석이면 어김없이 아부지 따라 성묘 가곤 했었는데......눈에 서언 하네요 처녀때는 동네 오빠따라 쪽대가지고 징기미 잡으러 함 가보고, 시집오고 나서는 성묘 안 가 봤는데 도 눈에 선 하네요 그동네에 고향분들 더러 사시나요? 글고 용암동에 내가 알던 소녀는 기억으로는 k k y 이가 있었는디........갑자기 그이름이 생각 나네요 ㅎㅎㅎ 나중 고향가서 사실때 놀러 가야겠네요
아 그렇군여 ~~ 선산이 만경산 자락에 모셔져 있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