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하라 하신대..."
나를 만지지 말라 - 본문은 금지를 나타내는 '메'와 함께 쓰인 현재 명령법 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행동을 중지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거의 행동화되기 직전의 상태에서 중지시키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대개는 본문의 금지령이 이미 행동화된 상태에서 이제 그만하라고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주님께서 자신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는 것을 허락한 마태의 기록(마 28:9)을 고려해서 이다.
그러나 불트만과 버나드는 이와 다른 건해를 제시한다. 불트만은 마리아의 행동이 있기 이전에 그녀의 행동을 멈추게 한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만약 마리아가 이미 주님의 발을 붙잡았다면 '만지지말라'는 표현 보다는 '나를 놓으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버나드는 본문얘서 여러가지 해석상의 문제가 생기는 것은 근본적으로 본문상의 훼손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즉 본문의 '메 아프트'('만지지 말라')는 '메 프토우'('두려워 말라')의 훼손된 형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구체적인 본문상의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추측에 불과하므로 앞의 두 견해가 진혀 타당하지 않다고 증명되는 경우에만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있다. 일단 마태의 기륵을 고려해 볼때 첫번째 견해가 가장 무난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본문의 금지령이 최동화된 이후이건 흑행동화 되기 이전이건 가장 중요하게 물어야 할 핵심적인 문제는 왜 주님께서 마리아의 행동을 제지하셨는가 하는 문제이다. 아버지께로...못하였노라 - 앞 절에 이어 여기서 생기는 물음은 어찌하여, 부활하신 예수께서 하늘예 올라가지 않은 것이 마리아가 예수를 만지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는가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1) 예수께서 아직 승천하지 아니하였고 또 즉시 승천할 것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만나보고 올라가려 하므로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그러니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본다.(2) 먼저 아버지에게 간 후에야 제자들과의 접촉을 허락한다는 의미로 본다. 여기에는 마 24:9와 조화될 수 없는 난점이 있다.(3) 예수께서 마리아의 행동을 제지한것은 그녀가 주님을 보았올 때 생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여기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예수께서는 자신이 생전의 삶으로 복귀하는 것으로 오해되는 것을 막아야 했다는것이다. 아무튼 이제 마리아는 생전의 랍비로서가 아니라 죽고 부활하신 주님으로서 예수와 관계틀 맺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위의 세 견해 중 세번째 것이 가장 무난하리라 본다. 내 형제들에게 - 이 문구의 의미가 예수의 직계 혈육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이것은 여기서 갑자기 나타나는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이미 예수께서는 생전에'누구든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라고 말한 비 있고,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를믿고 따르는 자들에 대하여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하기 않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본서에서 본문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예수와 제자들간의 관계가 친구사이에서 나아가 영원한 혈육의 관계로 발전된다는 의미까지 내포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뒤에 이어지는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라는 표현으로 볼 때 더욱 분명해 진다.
다시 말해서 당시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은 예수의 보혈로 말미암아 예수와 한 가족, 한 몸이되었다.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 여기서 주님과 제자들을 따로 분리하여 진술한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된 견해가 있다. 하나는 예수와 하나님의 관계가 제자들과 하나님의 관계와 다르다는 것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이다. 예수와 하나님의 관계는 영원 전부터 일체 상태에 있는 특별한 관계이지만 제자들과 하나님의 관계는 양자로 선택된 관계라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이 것을 '본성으로는 나의 하나님이며은혜로는 너희의 하나님이다'라는 문구로 표현한다. 다른 하나는 본문이,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보는 입장으로 룻 1:16을 인용하여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 그런데 전통적인 기독교의 교리상 전자의 견해가 우세하다고 본다. 올라간다 하라 - 혹자는 본절과 관련하여 예수께서 마리아의 행동을 제지하신 것은 '나를 만지지 말고 가서 내 형제들에게, 내가 아버지께로 올라가기 전에 이 사실을 전하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수께서 부활하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첫째, 수난으로 시작되는 구원사으 결정을 완성하는 의미가 있다. 둘째 올라감은 또한 다시옴을 뜻한다.이것은 곧 성령의 도래를 뜻한다.부활하신 주님이 승천한 후 성령께서 내려오면 예전보다 더 친밀한 영적 연합의 관계가 맺어지게 될 것이다.
[요 20:18]"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제자들에게...이르니라 - '이르니라'는 현재 능동태 분사로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달려가 거의 환호에 가까운 감정으로 외치는 장면을 생동감 있게 그려주고 있다. '내가 주를 보았다'는 외침은 어디서 소문을 들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목격한 사실임을 말하는 것으로 주님의 부활을 확정적으로 선포하는 의미가 있다. 이어서 미리아는 주께서 분부한 메시지를 충실하게 전달하였다.
요한은 여기서 이야기를 맺고 장면을 바꾸고 있으며 마리아의 메시지 전달에 대해 제자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한편 이에 대하여 마태는 직접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제자들이 분부더로 갈릴리의 산에 모여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함으로써 주님의 메시지가 전달되었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그리고 마가의 경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여인들이 빈 무덤과 천사의 임재를 경험한 후에는 두려움에 싸여 아무말도 하지 못하였고 두번째 예수께서 친히 막달라 마리아에게 현헌하셨을 때는 그녀가 가서 전하였으나 제자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누가는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는 생략한 채 여인들이 제자들에게 주의 부활을 고했으나 제자들은 믿으려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이런 사실들로 볼 때 제자들이 처음에는 여인들의 부활 보도를 선뜻 믿으려 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