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여름의 무더위가 산과 들을 짙푸르게 물들이는 7월의 초복, 경남 의령군 자굴산과 남강 줄기는 한여름의 강인한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 뜨거운 햇살 아래 더욱 단단해지는 대지와 푸르름을 더해가는 숲을 바라보며, 자연이 베푸는 생명의 질서가 얼마나 경이롭고 숭고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계절이 매번 뜨거운 열정으로 생명을 키워내듯, 우리 인간의 삶에서도 가장 귀하고 감사한 순간은 한 생명이 이 땅에 찾아와 귀한 연을 맺고 긴 세월을 건강하게 이어온 기적과 마주할 때이다.
지난 7월 소서(小暑) 3일 앞둔 토요일은 필자의 어머니(全仁守)께서 구순(九旬: 아흔 살) 생신 잔치가 있어 참으로 뜻깊고 경사스러운 날이었다. 열흘 순(旬) 자가 아홉 번 채워져 어느덧 아흔 해라는 기적 같은 세월을 걸어오신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았다. 5남 1녀의 자식들을 위해 온 삶을 헌신해 오신 어머니의 거친 손을 잡으며, 단순히 나이를 먹는 날을 넘어 한 인간의 존재 자체가 우리 가족에게 가장 큰 축복이자 선물임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되었다. 요즘도 어머니는 가끔 손자들에게 줄 용돈을 마련할 심상으로 기장시장에 좌판을 열어 수세미, 고무, 때수건 등 잡화를 판매하신다. 어머니 댁에서 2㎞나 되는 경사길을 소형 리어커를 끌고 오르내리신다. 멀리서 바라보자니 가슴이 찡해진다. 이에 어머니에 대한 효심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2026년 열세 꼭지째 칼럼으로 생신(生辰: 부모나 어른의 생일을 높여 이르는 말)을 이루고 있는 한자를 따뜻하게 풀어보고자 한다.
날 생(生)은 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푸른 싹의 생명력을 나타내는 한자로 풀이나 나무의 싹이 땅 위로 힘차게 돋아나는 모습을 본뜬 상형자이다. 갑골문(甲骨文)에 나타난 生자를 보면, 흙을 나타내는 가로선(一) 위에 세 갈래로 갈라진 푸른 싹(屮)이 대지를 뚫고 고개를 내민 형상이다. 겨우내 굳어 있던 단단한 땅을 뚫고 세상 밖으로 생명의 기운을 뻗쳐 올리는 여린 잎의 모습 속에는 눈부신 생명력과 위대한 경이로움이 깃들어 있다. 이 고귀한 생명력으로부터‘나다’, ‘살다’, ‘기르다’, ‘싱싱하다’ 등의 뜻이 비롯되었다. 우리가 늘 쓰는 생명(生命: 살아서 움직이는 힘)이나 일생(一生: 한평생)이라는 단어에서 보듯, 生자는 우주에서 가장 존엄하고 숭고한 가치인 ‘삶’ 그 자체를 대변하는 글자이다. 아흔 해 전, 어머니께서 이 땅에 생(生)의 첫발을 내디디셨던 그 날 역시 온 우주가 축복한 눈부신 생명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별 신 혹은 때 신(辰)은 하늘의 별자리가 알려주는 가장 상서로운 시간을 나타내어, 辰자는 고대 사회의 생활상과 깊은 우주의 질서를 담고 있는 글자이다. 갑골문과 금문(金文)에 등장하는 辰자는 농사에 쓰이던 커다란 조개껍데기 도구, 혹은 조개가 껍질 밖으로 부드럽게 몸을 내밀고 있는 모습을 본뜬 글자이다.
고대인들은 이 조개껍데기 농기구로 봄날의 단단한 흙을 일구어 농사를 시작했다. 농사의 시작은 하늘의 별자리 움직임과 계절의 때를 정확히 읽는 데서 출발했기에, 이 글자는 자연스레 하늘의‘별’이나 농사를 시작할‘상서로운 때(시간)’, 혹은‘희망찬 아침’을 뜻하게 되었다. 특히 辰자는 일월성신(日月星辰: 해와 달과 별)에서 알 수 있듯이, 우주의 거대한 천체와 질서를 의미하는 고결한 글자이다. 따라서 이 글자가 날짜나 시간을 나타낼 때는 단순한 달력상의 하루가 아니라, ‘하늘의 온화한 기운과 복이 닿는 귀하고, 상서로운 날’이라는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탄신(誕辰: 성인이나 임금이 태어난 날)이 그 대표적인 용례이다.
아흔 해의 세월 위에 피어난 우주에서 가장 눈부신 인연이 두 글자가 결합한 생신(生辰)의 의미를 마음으로 읽어내면 참으로 깊은 울림을 준다. 자녀가 부모님의 생일을 높여 부를 때 흔히‘생일(生日)’이 아닌‘생신(生辰)’이라 일컫는 까닭은 무엇일까? 단순히‘태어난 날(日)'을 기리는 것을 넘어 ‘한 생명(生)이 우주의 고결한 별자리와 하늘의 따스한 기운(辰)을 가득 품고 이 땅에 내려온 가장 상서로운 시간'으로 우러러보기 때문이다. 자식으로서 부모님의 삶을 온 마음으로 공경하고 축복하는 지극한 효심이, 날 일(日)자 대신 별 신(辰)자를 골라 쓴 조상들의 깊은 지혜 속에 고스란히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지난 어머니의 구순 생신 잔치는 우리 온 가족에게 하늘이 내려준 가장 상서롭고 귀한‘신(辰)’의 시간이었다. 초등학교 교문 앞에도 서보지 못한 분이 모진 비바람과 인생의 굴곡 속에서도 묵묵히 가정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시고, 당신의 청춘과 뼈마디를 다 녹여 자식이라는 푸른 안식처를 가꾸어 내신 어머니, 아흔 골짜기를 지혜와 사랑으로 넘어오신 어머니의 고귀한 삶 앞에 고개 숙여 깊은 감사를 올린다. 어머니의 구순 생신날, 케이크 위를 밝히는 촛불보다 더 환한 미소로 어머니께 마음의 고백을 전하고자 한다. ‘어머니, 우리 곁에 우주에서 가장 눈부신 별(辰)로 와 주셔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건강하게 저희 곁을 지켜주셔서 감사하고 또 사랑합니다.’
| 生 | = | 屮 | + | 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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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생 |
| 싹날 철(풀 초) |
| 한 일(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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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辰 | = | 厂 | + | 二 | + | 衤 |
| 별 신(때 신) |
| 굴바위 엄 |
| 조개 모양 (농기구) |
| 옷의변 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