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7일 대강절 셋째주간 토요일 - 음악묵상(3) 막스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 Op.47
가장 빛나는 참회의 기도
막스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 Op.47
독일 작곡가 막스 브루흐(M. Bruch, 1838~1920)의 음악에는 격한 감정보다도 완만하게 흐르는 강력한 에너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자유와 개성의 낭만정신입니다. 브루흐는 음악사적으로 볼 때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예사조의 향방을 제시한 혁신적 음악가는 아니었지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특별한 매력이 있습니다. 감정에 충실하면서 선율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 브루흐는 여러 지역의 민속 음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독실한 루터교 신자였던 만큼 오래된 종교음악에 특히 애정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옛 음악에서 인용된 주제들을 완전히 새로운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탁월한 재능을 주셨습니다.
어느 날 유대인 합창단원이 유대교의 옛 성가 악보 한 장을 건넸습니다. 그것을 유심히 살펴보던 브루흐의 눈이 빛났습니다. 첼로 연주자라면 누구나 도전해보고 싶어하는 <콜 니드라이>(Kol Nidrei)가 작곡되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콜 니드라이>는 유대교에서 ‘신의 날’이라 불리는 ‘욤 기푸르’(Yom Kippur) 때 부르는 기도 형식의 속죄 노래입니다. 낭송하듯이 느리게 읊조리는 형태가 우리가 잘 아는 그레고리안 성가와 흡사합니다. 가사는 지난 한 해 동안 지키지 못한 하나님과의 언약에 대해 참회하는 내용입니다. 브루흐는 이 선율을 주제로 삼아 환상곡풍의 변주곡을 만들었습니다.
원제는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히브리 선율을 토대로 한 아다지오>이지만, <콜 니드라이>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전반부에는 종교적 색채가 워낙 경건하게 스며 있어 듣는 이의 마음을 사뭇 숙연하게 만듭니다. 후반부에는 위엄과 승리의 환호가 우리를 천상으로 초대하는 듯한 기쁨을 선사하며 대반전을 이룹니다. 당시 이 곡을 직접 지휘하는 브루흐의 모습을 본 관객은 그가 음악을 통해 회개의 기도와 신앙을 고백하는 수도자 같았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죄악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속죄양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절기인 대강절입니다. 들뜨기 쉬운 연말의 분위기에 휩쓸리기보다 혼자 조용한 곳을 찾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한 어리석음을 자복하고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부끄러운 것들을 빛나게 드러낼 수 있는 때이자 참회의 기도를 들어주실 아기 예수님이 오신 계절이니까요. 또한 하늘나라의 거룩한 생명록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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