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속으로 비가 온다. 어느 쪽에선 무지개도 반짝 피겠다. 바람은 어느 편에서 부채를 펼칠까. 추분의 경계선까지 넘보는 폭염과 살랑거려 보는 가을 애교가 엎치락뒤치락 한다. 사람살이 하루하루를 비춰보라는 듯 숨겨둔 자연의 모습을 내 보인다. 제 마음도 보지 못하면서, 보지 않으면서, 먼 그림은 잘 본다는 우리들. 되돌릴 수 없는 길에 이르러서야 알게되는 내 마음. 그래서 후회는 늘 늦고 좋은 생각은 나중에 나는 법이 생겼나 보다. 나중에서야 무엇이든 간에 좋은 답을 찾았다면 그 답은 가려져 있었을 뿐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을 터. 누가 뭐래도 모두 내 덕분이라 믿는 태양이나, 해를 가려 보겠다는 구름이나, 힘으로 어찌어찌 밀어부쳐 보겠다는 바람이나 자연을 잘 못 읽는 사람들이다. 그틈에 대머리 잔머리 굴리며 나를 찾겠다는 사회적 사람들의 사회성은 변화무쌍하게 자란다. 은빛 고운 시인들을 만나면 자주 듣는 말이다. 순진무구한 아이들 같은 시를 쓰고 싶다고. 순수함, 순진무구함 그 또한 순진무구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리라. 많이 안다고 배운다고 많이 깨닫는 건 아니다. 많이 깨닫는다고 순수함이 자라나는 것도 아니다. 순수함은 천성이다. 누구나 가지고 태어나 잃고 닳아가는 존재다. 순수성의 유통기한도 천차만별이다. 순수함은 사회성을 얻는 대가로 대부분 쓰인다. 환불도 교환도 없다.
검은머리를 품고사는 검은머리물떼새 시인은 새처럼 순수하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깊은 동굴 속 푸른 물안개처럼. 시인의 싯자국을 따라 아이들 눈망울 같은 이슬이 구른다. 앞만 보며 걸으라 배웠겠지만 뒤돌아 보는 일이 더 익숙한 시인. 비가 멈춘다. 해도 숨었다. 이목구비 무딘 이슬이 영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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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인의 날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