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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조선일보 이태훈입니다.
스님 바쁘신 중에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처럼 큰스님을 뵙고 속이 뻥 뚫리는 말씀을 들을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인터뷰 기사 초고를 아래 붙이고 아래한글 파일로도 첨부했습니다. 검토해 보시고 바로잡을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늘 청안청락하시길 기원합니다. 서울 광화문에서, 이태훈 드림 무비 스님 인터뷰
“어떤 이유나 핑계를 대도 변명에 불과합니다. 출가해 머리를 깎고 평생 수행하겠다고 약속했으면 하루 24시간, 1년 365일, 100년 3만6500일을 늘 철저히 살아야 합니다.” 지난 한 해 한국 불교는 다사다난했다. 출가 수행자의 본분에 어긋나는 일탈이 세상에 폭로됐다. 많은 이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어떻게 실질적인 변화를 이뤄내고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 22일 부산 범어사로 한국불교의 손꼽히는 대강백(大講伯·경론의 큰 스승) 무비(無比·70) 스님을 찾아가 불교의 나아갈 길을 물었다. 스님의 ‘할(喝)’은 서릿발같았다. —일부 승려의 일탈로 출가 수행자 전체가 매도당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끊을 방법은 없나. “승려도 결국 세상에서 낳아온 사람들이다. 세속물 잔뜩 먹고 늦게 출가한 승려들을 자조적으로 ‘업둥이’라고 한다. 속세의 업(業)을 잔뜩 이고 절에 들어왔다는 뜻이다. 엄격한 규율을 통해 그 업을 꾸준히 통제해야 한다. 그게 안 되니 삐끗하면 밖으로 터져나올 수 밖에 없다. 시대 변화에 발맞춘 엄격한 청규(淸規·승려 생활규율)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규율이 엄격하다고 일탈을 막을 수 있나. “출가자 의식 개혁도 중요하지만, 신도들도 정신 차려야 한다. 대만에선 스님들이 멋모르고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면 ‘여기는 스님 오실 식당이 아닙니다’ 하고 돌려보낸다. 부처님 시대부터 있었던 ‘외호(外護)대중’이다. 승가(僧伽)는 외호대중 없이 바로 설 수 없다. 승려가 가선 안될 곳에 가려 하고, 해선 안 될 일 하려 들면 ‘안되는 것 모르십니까’하고 딱 잘라줘야 한다. 신도들이 감시 감찰 역할을 해줘야 한다.” —돈이나 지위와 관련된 승려 추문도 잊을만 하면 반복된다. “승려가 세상 사람과 똑같은 가치를 추구한다면 이미 세속화된 거다. 출가자가 고급 외제차 타고, 땅 사고 아파트 사고, 명예를 좇아서야 되겠나. 수행자는 꿈도 함부로 꾸지 말아야 한다. 예전 강원에선 학인들이 잠잘 때도 부처님처럼 오른쪽으로 누워 자도록 규율했다. 그런 작은 습관 하나하나, 한 순간 한 순간이 여법(如法)해야 한다.” —법랍이 쌓이면서 출가 초심을 잃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신라말 대학자 최치원이 말년에 출가하면서 ‘일입청산(一入淸山) 갱불환(更不還)’이라 했다. 이 말을 관세음보살 염불 만큼이나 많이 외웠다. 한 번 뜻을 세워 프로 수행자의 세계에 들어왔으면 물러설 수 없다. 매일 매일 새로 결심해야 한다. 출가하고 삭발할 땐 사실 80%는 부처 된 상태다. 갓 출가한 행자들이 가장 수행자답고 각오도 칼날같다. 세월 간다고 무뎌지고 세상과 타협해선 안되는 거다.” —신도 참여를 보장하는 사찰운영위 설치 등 종단 개혁이 더디게 진행되는 데 대한 우려가 크다. “마음 같아선 사찰 운영을 신도들에게 싹 줘버렸으면 좋겠다. ‘스님은 돈에서 손 떼라. 돈 만지고 싶으면 속인이 돼서 하라’고 하고 싶다. 당장은 어려워도, 큰 방향을 그렇게 잡자. 스님은 일체 행정이나 돈 문제에 관여 말고 법(法)만 책임지자. 그래야 숫자는 적더라도 진짜 스님이 나온다. 그런 스님이 진짜 승보(僧寶)인 거다.” —최근 펴낸 ‘강설 유마경(維摩經)’(민족사)의 부제가 ‘사람들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였다. “불교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세상과 그 안의 사람들이 아프다고 하면, 그걸 도와주고 아픈 데 싸매줘야 한다. 끊임없이 봉사하고 회향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불교다. 도통(道通)을 100번 해도 사람을 위하는 활동과 노력이 없으면 신도님들께 빚만 지는 것이다.” —늘 ‘사람이 곧 부처님이다’는 ‘인불(人佛)’을 강조해왔다. “‘마음이 부처다’ 하는 시대는 갔다. 지금 여기 있는 이 몸뚱아리가 부처다. 지금 이 순간 부처가 돼서 부처로 살지 않으면 어느 하세월에 부처 되겠나.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악하건 착하건 세상 그 어떤 가치보다도 고귀한 것이다. 자기가 그렇게 소중한 사람인 줄 알면 거짓말하고 나쁜 짓하고 다른 사람을 해할 수 없다. 나는 불교 혁신의 열쇠가 ‘인불(人佛)’을 깨닫고 실천하는데 있다고 본다.” 무비 스님은 통도사·범어사 강주(講主), 조계종 승가대학원장, 조계종 교육원장을 지냈고 동국역경원장으로 팔만대장경 한글 번역 사업을 주도했다. 척추 수술 뒤 하반신이 마비되고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를 겪으면서도, 경전 역저서 40여권과 숱한 교재를 펴냈다. 스님이 운영하는 불교공부 인터넷 카페 ‘염화실’ 회원이 1만9000명에 달한다. 올해는 범어사에서 승려들이 안거 한 철동안 한 경전이나 한 주제의 공부에 용맹정진하는 집중교육기관 ‘동산경원(東山經院)’도 맡았다. “어느 시대나 앞선 선각자가 있어야 합니다. 인재 없이는 미래도 없습니다. 높은 안목을 가진 인재를 끊임없이 길러내야 불교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