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응신(李應辰),〈유속을 징계한다[懲俗]〉,《소산문집초고(素山文集鈔稿)》
시대의 변화는 새로운 인간형의 변화를 낳는 것일까?
공자의 가르침을 토대로 형성된 전통적인 군자-소인의 인간형은 19세기 이후
양반 사대부 사회에서 더 이상 현실적인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서울 양반 사대부의 한 사람이었던 소산(素山) 이응신(李應辰)은
이제 서울에서는 군자와 소인이 합쳐져 모두 유속이 되었다고 진단하며 차라리 소인이라도 보고 싶다는 우울한 마음을 토로한다. 그는 무엇을 근심한 것일까.
천하 국가를 다스림에 없애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소인(小人)과 유속(流俗)이 그것이다.
임금과 굳게 결탁하고 패거리를 널리 심는다. 참혹하게 남을 해치고 교묘하게 자기를 살찌운다. 독사와 맹수 같이 마음 먹고 사귀(邪鬼)와 요부 같이 행동한다. 사이를 비집고 틈을 타서 국가에 해악을 끼친다. 음흉하고 사악하고 감추고 속이는 것이 비할 데가 없다. 이것이 소인의 환난이다.
나아가도 군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고 물러나도 소인이 될 수 없다. 옳고 그름의 중간에 몸을 두고 맑고 더러움의 중간에 발을 붙인다. 집 안에서는 구속이나 검속이 없고 집 밖에서는 모나게 굴지 않는다. 패션이나 취미는 남들을 따라하고 말과 행동은 시세와 부합해서 한다. 표나게 정직해서 명성을 취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행동해서 미움을 받지 않는다. 정성스런 태도로 친애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공손하며 환히 아는 듯 두루 통해서 비방하는 소리가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재물의 이득을 얻으려는 욕심과 진출해서 빼앗으려는 속셈으로 밤낮으로 일을 꾸며내는 버릇이 몸에 단단히 붙어 풀리지 않는다. 심술이 망가지고 풍속이 전염되어 혼탁하고 비루해 더불어 일할 수 없다. 이것이 유속의 환난이다.
그러므로, 국가를 다스리는 데 유속을 고치지 않는다면 정색하고 창언하는 신하가 조정에 없을 것이다. 영토를 방어하고 환난을 막아내는 관리가 변경에 없을 것이다. 독실히 공부하고 힘써 실천하는 선비가 학교에 없을 것이다. 윗사람을 친히 하고 장자(長者)를 위해 죽는 백성이 경향에 없을 것이다. 이 네 가지가 없다면 나라가 어찌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유속의 해로움은 물론 소인과 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소인보다 심한 점도 있다. 소인은 화(火)라서 박멸할 수 있다. 유속은 수(水)라서 빠져들지 않는 사람이 없다. 소인은 구부러지고 나쁜 나무라서 가끔 나타나는 것이다. 유속은 누런 띠풀이나 하얀 갈대라서 땅을 온통 뒤덮고 있는 것이 모두 이것이다. 그 재앙이 불어나고 그 무리가 번식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그러나, 인가의 부형은 자제가 소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옳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유속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다지 마음 상하지 않는다. 그 형세가 장차 온 천하가 유속이 될 것이다. 옛날에는 군자와 소인이 서로 번갈아 성쇠하였다. 음과 양은 양립해서 대응하는[對待] 법이라 군자가 있으니 소인이 있는 것이다. 후세에는 군자와 소인이 합쳐져 유속이 되었다. 그러니, 소인이라도 나오면 그래도 볼만한 세상이다.
〈원문〉 懲俗
爲天下國家。有不可不去者。小人與流俗是已。夫固結人主。廣樹朋黨。憯於傷人。工於封己。其設心如毒蛇猛獸。其行事如邪鬼艶婦。投間抵巇。禍家凶國。陰賊秘詭。不可方物者。小人之患也。進不欲爲君子。退不能爲小人。處身於可否之間。托迹於淸濁之中。居家則無拘檢。涉世則沒主稜。衣服玩好徇乎人。言語動止合乎時。不標直以取名。不直諒以見忤。款款若親愛。溫溫若恭謹。了了若周通。訾謗無所及。而貨利之欲。進取之計。晝夜營爲。膠固不解。心術壞敗 風氣漸染。汚下卑鄙。不可與有爲者。流俗之患也。故爲國家而不革流俗。則朝廷之臣。無昌言正色者矣。封疆之吏。無禦蓄捍患者矣。庠序之士。無篤學力行者矣。都邑之民。無親上死長者矣。無此四者。國其爲國乎。流俗之言。宜若不至如小人。而尤有甚焉。小人火也。猶可撲滅。流俗水也。鮮不陷溺。小人曲木惡樹也。往往有之。流俗黃茅白葦也。彌望皆是。其禍之滋蔓。其徒之寔繁。果如何哉。然人家父兄聞子弟爲小人。則不謂之可。而爲流俗則無傷也。其勢將率天下而俗也。古者君子與小人。相爲消長 蓋陰陽對待。有君子斯有小人之出。尙可以觀其世也。
글쓴이 / 노관범
*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박사
*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전문위원 [한국고전번역원 편지에서]
첫댓글 의미심장한 글입니다. 이 글을 청와대로...아니, 우선 당장에 서예세상 회원 국민여러분부터 새기고 또 새깁시다요.
아, 정말이지 공감 팍팍~글.
나부터 유속인이 되어감에 비애를 느낍니다.
차라리 소인이 그리운 시절이라...얼마나 배운것들이 몰지각한 짓거리를 많이 했으면...
우리네 부모들부터 자식 교육부터 올바로 해야겠어요. 그저 공부잘해서 출세하면 좋아서리...끌끌
19세기부터라니...ㅉㅉ우리나라도 정체성을 잃은지 꽤 오래군,음.,,공자왈 맹자왈 찾은 결과가 고작 이거였던가.역시 실천없는 탁상교육은 결국 쓸데없는거로군. 도덕100점맞은 것들이 밖에 나가선 0점짜리 행동들 하는...
군자인척하면서 속으론 더 큰 욕심으로 꽉 찬 사람 많습니다
자기 출세에 걸림돌이 되겠다 싶으면 가차없이 잘라버리는....ㅠㅠ
지그시 쥐도새도 모르게 밟아버리죠, 사극들 보고 못된 조상님들한테 못된것만 잘들 배웠어.
유속인의 비애.차라리 소인배가 낫지...소인배들은 어찌보면 의리라도 있지.
자식들한테 할 말이 없습니다 요즘., 바르지 않다는걸 알면서도 순간순간 물들어가면서 유속인이 되어가면서 막상 자식한테는 "너는 바르게 살라며 말하는데도 한계가 있더라구요, 우화에 나오는 '게'가 생각납니닿
귀한글 잘 읽고 갑니다. 당신은 진정 멋쟁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