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의 사고/靑石 전성훈
사고는 어떤 징조나 조짐이 있을 수도 있고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한순간에 일어나기도 한다. 쓰나미나 해일, 지진 또는 화산 폭발처럼 인간에게 끔찍한 재앙을 초래하는 사고나 사건은 현대과학의 도움으로 사전에 감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고는 비행기나 자동차 사고와 같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고는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기에, 늘 함께하는 길동무처럼 눈에 보이지 않게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에게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믿음과 착각 속에서 느긋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고향인 강북구 번동에서 바라다보이는 초안산은 우리 동네 야트막한 뒷산으로 정겹기 그지없다. 지난 몇십 년의 세월 동안 수백 번이나 오르내리던 산이다. 몸담아 사는 창동에서 바라보는 초안산 모습과 번동에서 쳐다보는 모양이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의 마음과 바라보는 시간과 계절과 그리고 위치에 따라서 그 모습이 다르게 보이는 법이리라. 오래전 어느 해 겨울, 제법 눈이 많이 쌓인 이곳을 오르다가 미끄러진 진 일이 있고 나서는 겨울에는 찾지 않는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기에 겨우내 가보지 못한 초안산을 찾는다. 늘 다녔던 코스를 따라서 천천히 올라가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아직은 봄이 제철이 아니라 겨울의 잔재가 무성하다.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누렇게 변한 나뭇잎이 매달려있고 산기슭 여기저기에는 쌓인 낙엽이 가득하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파릇파릇 생기 도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봄이 온다고 하지만 아직은 봄이 아니다.’라는 옛사람들의 말씀이 그대로 꼭 들어맞는 느낌이다. 등산로 이곳저곳에는 겨울에 얼었던 땅이 한낮의 따듯한 햇볕을 받아 조금씩 녹아 질퍽질퍽하다. 물기가 흥건히 배어있는 모습을 보면 봄이 오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 채 숨을 고르며 올라가니 어느덧 초안산 정상이다. 초안산은 해발 115.5m라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쉬엄쉬엄 올라갈 수 있다. 정상부근에는 노원구청에서 마련해 놓은 운동기구가 있다. 40~50명이 들어설 수 있는 넓은 공간에는 중년여성들이 노래를 틀어놓고 강사의 동작을 따라서 리듬체조를 한다. 몸의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몸을 앞뒤로, 좌우로 흔드는 기구, 하체 근육 단련을 위하여 앉아서 다리를 폈다 오므리며 움직이는 기구, 원반 위에 올라서 몸을 좌우로 흔들고, 둥근 기구를 붙잡고 좌우 양손으로 돌리거나, 철봉에 매달려 그대로 가만히 있는 동작을 취하는 게 하나의 즐거움이자 운동이다.
사고가 난 그날도, 초안산 정상에서 골짜기를 따라 월계고등학교 방향으로 내려갔다가 능선을 타고 올라와, 정상부근에 이르러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철봉에 매달린 직후이다. 갑자기 몸이 휘청거리듯 어지러움을 느껴서 눈을 감았는데 그다음에 땅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다. 어지러움 때문에 철봉을 잡고 있던 손을 순간적으로 놓쳐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철봉 밑에는 키 작은 사람을 위해 받침대로 가져다 놓은 음료수나 술병 상자로 사용하는 플라스틱 상자가 있다. 떨어지면서 공교롭게도 빈 상자와 부딪치며 땅으로 고꾸라진다. 밀려드는 통증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다. 누군가 다치지 않았냐고 말을 거는 소리에 정신이 든다. 바지는 흙이 잔뜩 묻었고 장갑도 흙투성이다. 힘들게 일어나 근처 의자에 앉아서 바지를 걷어붙이고 다리를 살펴보니, 오른쪽 무릎은 약간 쓸렸는데 왼쪽 무릎 아래는 멍이 들어 붓고 제법 많이 쓸린 부위에서는 피가 흐른다. 그 순간에도 이만한 정도로 다쳤기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신을 차리고 몸을 추슬러서 지팡이를 잡으며 천천히 걷는데 통증으로 걷기가 힘들다. 조심조심하면서 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돌아간다. 더러워진 옷을 벗고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로 간단히 씻고 나오니, 할 말을 잃고 쳐다보던 아내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친 부위에 후시딘 연고를 발라준다.
지나간 일에 얽매여 자신을 책망하거나 후회한들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미 엎질러진 일은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마음을 추슬러 벌어진 일을 수습하고 다가올 뒷일을 생각하는 게 훨씬 바람직하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봄은 어김없이 조금씩 조금씩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봄이 무르익을 즈음이면 다친 무릎 부위의 상처도 아물어 딱지가 떨어지고 자연스럽게 치유의 흔적만 남을 것이다. 나이 70을 넘어서니 ‘인생칠십고래희’라는 이야기도, 얼마 남지 않은 삶은 어떻게 될 것인지 하는 것도 ‘신의 영역’(Act of God)으로 넘어간다는 말이 오늘따라 가슴에 와닿는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 오늘 하루에 감사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살고 싶다. (2023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