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은 10년 전, 우리 부부처럼 초등학교 동창생과 결혼했다. 방송 작가 일을 하면서 인연이 있었던 김현욱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고, 당시 리틀싸이로 유명했던 황민우 군이 축하 공연을 해줬다.
귀여운 꼬마가 춤을 얼마나 잘 추는지 예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주례사 대신 양가 혼주들이 자식에게 잘 살라는 덕담을 하고, 이어지는 신랑의 댄스 무대.(우리 사위에게 저런 끼가 있었다니ㅎㅎ) 주인공들의 퍼포먼스는 관습을 벗어난 이색적인 결혼식이었다.
자식이 결혼해서 순조롭게 잘 살기를 바라는 게 부모 마음이다. 그런데 결혼해서 10년이 되도록 아기가 없어서 부모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우선 바깥사돈에게 죄송했다. 내색은 안해도 얼마나 손주를 기다리실까?
그러던 어느 날! 우리에게 전해진 막내딸의 임신 소식! 삶의 여백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주는 느낌이었다. 사람이 살면서 이런 감동적 순간들이 있으니 힘들어도 이기면서 사는가 보다. 막내딸 출산이 임박해 제왕절개 수술 날짜를 잡아야하는데 이왕이면 길일을 택해야지 하는 맘이 들었다. 명리학연구소를 운영하는 남자 동창 친구에게 제일 좋은날과 시간을 부탁했다. 5월16일 오후 1~3시가 좋은 때라고 한다.
새로운 가족이 될 아기의 탄생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 동안 말은 못했지만 남의 가문에 가서 대는 이어야지 하는 의무감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아들이든 딸이든 자식이 하나 있어야지 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없으면 없는데로 저희들만 알콩달콩 잘 살면 되지". 말은 항상 그렇게 했지만 늘 목에 생선가시가 걸린 것처럼 불편했다. 불혹의 나이가 넘어서 한 임신, 기쁨도 컸지만 열 달 동안 건강하게 생활하고 순산해야 할 터인데 하는 걱정도 컸다.
오늘 예쁜 손녀가 태어났다는 막내사위의 전화에 나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우리에게는 든든하고 천재적인 자질(우리의 착각인지는 모르지만)을 가진 손자가 셋이나 있다. 손녀도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우리가 원하는 대로 손녀라니 천하를 얻은 것처럼 기뻤다. 막내 사위가 보낸 사진을 들여다보니 방금 낳은 손녀는 눈을 감고 입을 다물었다. 천진한 표정에 한 달은 키운 아이 만큼이나 의젓하다.
볼수록 신기하다. 언제까지나 애기 같은 막내딸이 아이를 낳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내색을 안해서인가 입덧도 별로 하지 않고 막달에 힘들었던 나의 경험으로 “힘들지?” 하면 “괜찮아!” 하는 말만 계속했던 착한 막내딸이 엄마가 되다니 꿈만 같다. 남편도 나이가 많은 초산이다 보니 딸 걱정을 많이 했다. 이렇게 순산을 하니 기쁨의 표정이 역력하다.
큰언니와 캐나다에 사는 작은 언니도 애기 같은 동생이 아기를 낳았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단다. 엄마가 된 동생을 사진으로 보면서 울컥했다고는 표현을 한다. 큰언니도 엄마 대신 자주 가서 돌보아주어야 하는데 자기도 바쁘단다.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찾아가서 동생을 도와주고 질녀의 재롱을 봐야겠다고 신바람이 났다.
맏동서에게도 전화하고 사진을 보냈다. 시어머니와 맏동서가 기뻐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가족이란 울타리가 이렇게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요즘 하늘을 붕붕 떠오르는 것 같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처럼. 막내 사위는 10년 동안 한결같이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사랑해 주었다. 그동안 육아 예행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던 막내사위에게 미안하고 한없이 고맙다.
손녀는 2024년 5월16일 대한민국 국민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저출산이 심각한 시대에 애국자가 된 기분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녀의 꼬물꼬물 움직이는 것, 커서 재롱을 떠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즐겁다. 우리 부부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준 딸, 사위, 손녀. 고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