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격투기
이제 창과 도는 별 소용 所用이 없다.
창과 도가 열십자(十) 모양으로 엉켜 버렸으니 사용할 수가 없었다.
무기로서의 생명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 이제는 맨손으로 싸워야 한다.
이중부도 땅으로 뛰어내린다.
이제 육박전 肉薄戰이다.
불의의 선수로
한 방을 먼저 얻어맞은
한준은 머리가 얼떨떨하다.
입식타격 立式打擊 자세를 잡는다.
한준은 거리를 두고 승부를 보려 한다.
완력 腕力은 중부가 한 수 위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막북무쌍 한준이 본능적으로 선택한 묵황야차와의 격투기 방식이다.
주먹이 오가고 긴 다리가 올라간다.
한준이 허공으로 몸을 날려 이단 옆차기를 시도한다.
중부도 얼른 몸을 옆으로 돌려 피하며, 착지하는 한준의 허리를 발로 돌려 차버린다.
그러자 한준은 허리를 비틀어 피하며 오른 주먹으로 중부의 광대뼈를 가격한다.
중부는 상단 막기로 한준의 주먹을 막으며, 한 손은 한준의 허리춤을 낚아챈다.
‘아차’ 속으로 놀란 한준은 수도로 중부의 후두부를 가격하면서,
본능적으로 상대에게 잡혀있는 허리를 뒤로 뺀다.
그러자 중부는 목을 비틀어 한준의 수도를 피하면서 한준이 힘주는 쪽으로 오히려 밀어버린다.
중심을 잃고 휘청이며 뒷걸음치는 한준을 향해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오른 중부는 원앙각 鴛鴦脚을 시도한다.
예기치 않은 선제공격 先制攻擊을 당하여,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이한 한준은 불안한 자세에서 본능적으로
옆으로 몸을 비틀어 앞선 발길질은 겨우 피하였으나, 이미 몸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연이은 묵황야차의 뒷발길질에 우측 어깨의 견정혈을 정통으로 맞고는 쓰러진다.
이어 지면에 착지한 중부의 발길질이 넘어진 한준의 옆구리를 강타한다.
‘퍽’하는 소리가 다섯 장 丈 이상 떨어진 곳까지 들렸다.
아마 갈비뼈 서너 개는 부러진 것 같다.
갑옷을 착용한 덕에 그 정도다.
만약, 갑옷이나 별다른 보호장구 保護裝具 없이 위맹스러운 그 발길질에 당했다면,
갈비뼈는 물론, 오장육부 五臟六腑의 내장 기관 內臟 器官까지 크게 다쳤을 것이다.
그 순간, 남 흉노 진영에서 화살이 날아온다.
군사 軍師 동방 향기가 한준의 위급함을 보고 활을 쏜 것이다.
두 장수가 말에서 떨어져 지면에서 격투기가 벌어지자, 눈치 빠른 동방 향기는 그 상황이
묵황야차 이중부의 의도 意圖로 야기 惹起되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따라서, 한준에게 불리한 격투기가 될 것으로 짐작하고,
아암리에 미리 활시위에 오뉘를 걸어 놓고,
하시 何時라도 발사할 수 있게끔 준비하고 있었던 바이다.
쓰러진 한준을 재차 공격하려고 고개를 숙이던 이중부는, 화살의 파공음 波空音을 듣고는
자세 그대로 얼른 땅에 엎드려 피하자, 화살은 이중부의 왼 귀를 스치듯이 지나간다.
날카로운 화살촉이 귀를 스치자, 붉은 피가 서너 방울 떨어진다.
그러자, 서누리와 배중서 천부장이 급히 지원 나온다.
이를 본 남흉노 진영에선 질여 오두 소왕과 보육고 천부장이 장 창을 들고 마중나오고,
이에 질세라 다른 장수들도 결투장으로 난입한다. 그러자 일기토의 결투장이 어지러워진다.
그 틈을 타서 단씨 형제가 쓰러진 한준을 구출하여 급히 자기 진영으로 도주 한다.
이중부는 풀밭에 떨어진 묵황도를 찾아 묵황도 등에 꽉 끼인 막북무쌍의 양날 창을 땅에 두드려서 빼내자,
가까이 다가오고 있던 군사 탁발 규가 얼른 양날 창을 받아 챙겨 둔다.
묵황야차는 말에 올라타, 달려오는 질여오두를 향해 묵황도를 거칠게 휘두르니,
질여오두 소왕과 보육고가 연합하여 대항하였다.
그러나, 두 장수는 묵황도의 거센 기세를 버티지 못하고, 질여 오두가 칠 합만에 뒤로 물러서더니
말머리를 자기 진영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그러자 보육고도 전의 戰意를 상실하고 말고비를 당겨 달아난다.
장수들이 뒤를 쫓고자 말의 배에 뒷발로 박차 拍車를 가하니, 군사 탁발규가 얼른 징을 울려 장수들을 부른다.
승전 勝戰의 노획물을 가득 싣고 본대로 귀대 중인데, 굳이 힘들어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적을 추격하여 싸우는 것보다 전리품을 안전하게 운송하는 것이 실리적으로 유리하다는 의미다.
탁발규의 지시를 받은 정돌식 천부장이 병사들을 향해 우렁찬 소리로 크게 외친다.
“전원 본대로 복귀한다.”
"와~아~"
소왕 묵황 야차 휘하 병사들의 승리에 찬 함성이 초원에 길~게, 길~게 울려 퍼진다.
군사 탁발 규는 막북무쌍 한준의 양날 창을 전리품 戰利品처럼 소 수레에 고정시킨
긴 대나무 장대에 높이 매달아 행군한다.
수레바퀴가 구르며 한준이 싸우다 버린, 양날 창이 좌우로 흔들흔들 춤을 춘다.
남 흉노의 최고 무장, 막북 무쌍이 애지중지 愛之重之 여기는 무기, 양날 창이 주인을 잃어버린 채,
목적 없이 허공을 헤매고 있는 모습이다.
이제 우리 북 흉노의 적수는 없다는 뜻이다.
남 흉노는 북 흉노가 장성을 넘어가, 장성 이남에서 획득한 노획물을 중간에서 가로채려 하였다가
막북무쌍이 묵황야차와의 격투기 대결에서 패배하게 됨으로 인하여,
전리품 탈취 奪取에 실패하고 도리어 망신만 톡톡히 당하였다.
한편,
동방향기는 나름대로 마음이 착잡하기 이를때 없다.
자신의 첫사랑 대상 對象과 다정히 손을 잡고 정담 情談을 나누어도 시원찮을 판에 오히려,
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화살을 자신의 손으로 날려 보내다니...
인생이 묘하게 뒤틀러 흘러간다는 느낌이 든다.
삶이 이상스럽게 꼬여가는 기분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젊은 처녀가 군 軍의 요직 要職인 군사 軍師역을 맡아, 예리한 통찰력 洞察力과
뛰어난 지략 智略을 발휘하여, 헨티산맥 제1차 전투에서는 병사들을 지휘하여,
적절한 매복 작전으로 상대의 선우를 전장에서 전사 戰死시키고, 적군을 궤멸 潰滅시켰으며,
아군에게는 완벽한 승전의 기쁨을 주었다.
그런 공로 功勞를 인정받아 이천 부장의 고위 직책에 올라 있으니, 주위의 모든 사람이
대단한 인물로 여기고 있으나, 당사자의 속마음은 어지럽고 복잡다단 複雜多端하기 짝이 없다.
인생의 목표가 사라지고, 삶의 목적 目的이 흩어지는 느낌이다.
푸르름이 넘치고 생기발랄 生氣潑剌하여야 할, 젊음의 한 귀퉁이가 시든 병에 감염되어
생기를 잃고 일그러지고,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삶이 이리저리 마구 뒤틀리는 느낌이다.
인생의 목표가 방향을 잃고 어두운 미로 迷路를 헤매고있다.
돌아서는 향기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다.
이제 호도 선우 측은 모든 걸 다 갖추었다.
두 번의 남벌로 후한군 後漢軍 진영을 유린하고 풍족한 노획물을 획득하였으며,
최대 골칫거리인 남 흉노의 선봉대장인 막북무쌍 한준 소왕까지 꺾어버렸다.
그로 인하여 초원은 자연스럽게 북 흉노 호도 선우를 중심으로 하나로 뭉치게 되었다.
아직 예전의 묵돌선우 때만큼은 강성하지는 않지만, 흉노족으로서는 제2의 전성기 全盛期라고 불리만 하였다.
전성기를 맞은 이유는 여러 요인 要因이 중첩 重疊되겠지만, 산동성에서 조선하와 요하를 거쳐
초원으로 되돌아온 형제들의 힘이 가세한 것도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큰 세상을 보고 나름 느끼고 깨달은 점이 많았다.
견문 見聞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타지에서 생활하다 보니 애족 애향심은 더 고취 鼓吹되어 있었으며,
주적 主敵의 개념이 확실히 뇌리 腦裏에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자신들의 형제 일부는 요하에서 헤어져 바다 멀리 떨어진, 사로국에 있는 관계로
서로가 물리적 物理的인 지원은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연락단이 오가는 등
정보교환으로 상호 간에 위로가 되고, 정신적인 버팀목 역할은 하고 있었다.
초원이 통일되고 새로운 질서가 선다.
사흘간 초원에서 서로 간의 동료애 同僚愛를 확인하는 흥겨운 잔치를 마친, 병사들은 각자 各自 갖가지
다양한 전리품 戰利品을 서너 마리의 말 안장에 넘치도록 싣고, 모두 자신의 가족들 품으로 돌아간다.
이제 가족들과 초원의 게르 안에서 따뜻하게 겨울을 함께 보낼 것이다.
짝이 있는 처녀, 총각들은 서둘러 혼례식을 올리고 신방을 차릴 것이다.
유목민들의 관습이다.
초원의 겨울은 혹독하다. 보통 영하 40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진다.
그러니 외부의 외침 外侵은 있을 수가 없다.
혹한기 酷寒期의 이동 移動, 그 자체가 곧 죽음으로 연결된다.
간혹 늑대나 설표의 습격은 있으나, 목양견 牧羊犬이 지켜준다.
그러니 추운 겨울철에는 군대가 필요 없다.
겨울에는 가을철에 부지런히 모아둔 건초 乾草로 가축을 돌보며 봄을 기다린다.
새끼를 밴 암컷에게는 장성 이남에서 노획한 귀한 콩이나 다른 곡물 穀物을 특별식 特別食으로 나누어준다.
병사들은 눈이 녹고 언 땅이 풀리고, 푸른 새 싹이 돋아나 봄꽃이 피어날 때쯤,
여름 동안 가축을 기를 목초지로 동물과 게르를 이동시킨 후에 다시 병영으로 귀대 歸隊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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