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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중한 자 야베스
역대상 4:9-10
이야기 중에 가장 재미없는 것은 족보 이야기입니다. 가족들이 모처럼 모이면 웃어른께서 가끔 족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젊은 사람들은 뭐가 뭔지를 잘 알아 듣지 못하고 몸부림을 칩니다. 무슨 종파니 몇 대손이니 하는 말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합니다. 언젠가 족보를 펴놓고 우리의 조상들이 누구인가를 더듬어 찾아 본 일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는데 계속해서 찾으니까 재미가 있었습니다. 결국 저의 가문의 대를 이어 계속하여 추적하여 올라가니까 김수로왕의 왕후 허황이라는 것을 확인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내’라는 한 사람이 어떤 조상으로부터 누구 누구를 통해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족보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읽기 어렵고 지겨운 곳 역시 이스라엘 민족의 족보입니다. 족보가 몇 군데 있지만 역대상에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이 족보를 읽을 때는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역대상 1장에서 12장까지 아담에서부터 시작하여 다윗의 이야기를 하기까지 각 족속들의 계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 죽었다는 말씀을 읽을 때 지겹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 족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기록된 족보가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뜬 구름과도 같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족보가 있으므로 세계의 모든 민족들이 어떻게 존재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창조의 연대와 세계의 흐름을 알 수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가다가 어느 학생에게는 이름을 부르다가 ‘아무개는 이번에 어디에서 무엇을 했다’는 식으로 간단하게 그 학생의 이름만 부르고 넘어가지 않고 칭찬의 말을 한 마디 하고 다음 학생의 이름을 부를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아담에서부터 누가 누구를 낳고 죽었다는 것을 말씀하시다가 야베스에 대해 아주 짧은 두절의 말씀으로 소개를 하였습니다. 야베스를 소개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만큼 이스라엘의 조상들 가운데 귀중한 사람이였던 것입니다. 야베스에 대한 말씀은 다른 곳에는 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야베스가 어떤 사람이였든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먼저 이름이 ‘야베스’라고 하게 된 이유입니다. ‘야베스’는 ‘수고로이 낳았음이라’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9). 그의 어머니가 야베스를 낳을 때 수고를 했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수고를 했는지는 말씀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다른 아이를 낳을 때 보다 심한 고통을 겪었다든지, 아니면 그의 아버지가 죽고 없는 유복자로 낳았다든지, 아니며 야베스가 다른 아이들처럼 정상적이지 못했다든지 하여튼 그의 어머니가 야베스를 키우는 즐거움보다 슬픔과 눈물로 키워야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의 어머니가 야베스를 낳고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는 말입니다.
얼마전에 KBS TV 방송 아침마당에 ‘팔도 없고 다리도 없고 절망도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닉 부이치치’라는 사람이 방송된 것을 보았습니다. 팔도 다리도 없지만 세계 각국을 돌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유명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낳을 때부터 이미 두 팔도 없고 두 다리도 없는 아이였습니다. 그의 부모가 얼마나 마음 고생을 많이 하였을까 짐작을 합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건강한 사람들보다 더 귀중한 사람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초청 받아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야베스가 낳을 때 그 부모를 수고로이 했지만 ‘그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옛 성경에는 ‘존귀한 자라’고 하였지만 지금 성경에는 ‘귀중한 자라’고 했습니다. ‘존귀한 자라’는 것보다 ‘귀중한 자라’는 말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 부모의 마음을 무겁게 해 주는 존재로 출생하였지만 자라선 귀중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많은 사람들이 출생할 때는 부모에게 기쁨을 주었지만 자라서는 슬픔과 괴로움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베스는 출생했을 때는 그 어머니를 수고롭게 했지만 자라서 귀중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럼 야베스가 귀중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의 사람이였습니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귀중한 자가 된 것은 기도하는 사람이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배우고 학식이 풍부하여 높은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귀중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헌금을 해서 귀중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귀중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성도들 가운데도 기도하는 성도는 다른 성도들보다 귀중한 성도입니다.
교회들마다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성도는 다른 성도들보다 귀중한 자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교회의 어려운 문제를 안고 기도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거나 시험들면 밤바다 교회 바닥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는 그 성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에게 특권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군의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기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만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교회 밖에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된 나와 여러분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우리는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음에도 기도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야베스의 형제들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지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야베스는 기도하므로 해서 귀중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야곱의 특징 중에 하나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실수도 많이 하였지만 어려울 때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도와주시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이 다니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기도하는 사람이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남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기도하는 사람이였기에 바벨론 왕의 총애를 받을 뿐 아니라 총리대신으로 바벨론 제국에 귀중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에게 기도를 빼면 이름도 없는 존재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반대하고 죽이려고 하는 음모가 있었지만 그래도 기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을 뿐 아니라 바벨론 왕을 비롯한 온 백성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닫도록 하였습니다.
왕후 에스더가 위기에 몰린 이스라엘을 구원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에스더가 예쁘기 때문에 에스더가 아니라 자기 민족이 위기를 당했을 때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기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민족을 살렸기 때문에 에스더가 된 것입니다.
야베스가 귀중한 사람이 되어 질 수 있었던 것은 기도하는 것 말고 다른 것은 없습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기도하는 것을 귀중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므로 해서 귀중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 말고 다른 것으로는 귀중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야베스의 가정은 가난했으며 어려운 일들로 근심이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야베스가 기도하여 가난과 근심되는 모든 것에서 벗어 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럼 야베스가 어떤 기도를 하였습니까? 야베스의 기도는 지역을 넓혀달라는 것과,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야베스가 기도한 것을 보면 대단히 어려웠던 가정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형제들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모르긴 해도 어려움을 부모에게 탓하고 원망하고 불평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야베스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합니다. 하물며 부모를 원망하고 자기 자신을 저주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야베스는 하나님이 자신들의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분으로 믿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먼저 하나님은 자신의 어려움을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이 없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야베스는 하나님은 자신에게 복을 주시는 분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주께서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었기에 지역을 넓혀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가난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은 지혜입니다. 오늘의 많은 성도들이 가난을 벗어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를 부탁합니다. ‘주여, 나의 지역을 넓혀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업을 넓혀 주시고 농장을 넓혀 주시고 소득을 넘치도록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야베스는 지역을 넓혀만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기도한 것을 보면 야베스는 환난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마음을 무겁게 하는 근심이 많았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환난’이란 말은 근심과 재난을 의미하지만 원어는 ‘도리개질 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근심과 재난으로 마음을 도리개질 하듯 아프게 하는 것을 환난이라고 합니다.
도리개질은 왜 합니까?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기 위해 도리개로 내리칩니다. 그렇다면 잘못해서 도리개질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보리 타작할 때 마당에 보리를 쌓아놓고 농부들이 도리개로 힘껏 내리치면 쭉정이를 가려내고 알곡을 모아 곡간에 쌓았습니다. 야베스가 환난을 당하는 것은 신앙적인 시련이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 대문에 근심하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환난을 당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환난을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야베스 자신이 당하는 환난과 근심을 주의 도우심으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야베스의 믿음이요 신앙관이였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그의 형제들에게는 없었지만 야베스에게는 주의 손으로 도와주시기를 믿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귀중한 사람,(존귀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팔도 다리도 없는 닉 부이치치가 귀중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불구를 이기고 스스로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닉 부이치치는 초청을 많이 받아 강연을 하는데 다리가 없기 때문에 테이블을 강단에 올려놓고 테이블 위에서 강연을 합니다. 왼쪽에 붙어 있는 두 개의 발가락으로 연주를 합니다. 그러다 넘어집니다. 이렇게 넘어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소리쳐 저신을 일으켜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닉 부이치는 팔도 다리도 없는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누구든지 넘어져도 남의 도움을 받기를 원하지 말고 스스로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팔도 다리도 없지만 수영도 하고 파도타기도 하고 축구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팔과 다리를 가진 사람을 품어 주고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초청을 받아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희망 전도사로 누구보다도 바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쉽게 된 것이 아니였습니다. 몇 번이고 죽으려고 생각도 해 보고 하물며 자살도 하려고 했답니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고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목사가 목회를 하는 중에 가장 어렵고 힘든 것은 설교입니다. 그러나 설교보다 더 힘든 것은 새벽기도하는 것입니다. 새벽마다 일어나는 것이 지금도 힘드는 일이지만 그러나 힘든다고 해서 기도를 게으르거나 하지 않으면 목회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힘들어도 기도를 하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능력있는 목회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게 된 비결은 한국 교회의 새벽기도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 기독교가 들어갔지만 새벽기도를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입니다. 한국교회의 새벽기도를 통해서 폐허에서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야베스가 귀중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가난과 환난과 근심으로 고생하는 것을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의 조상들이나 그의 형제들은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께 기도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야베스는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분으로 믿었으며, 또 자신이 당하는 환난과 근심을 벗어나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으로 믿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기도한 야베스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다 허락해 주셨습니다. 야베스가 기도하므로 가난을 벗어 날 수 있었으며,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야베스가 기도하므로 어렵고 힘들었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야베스를 귀중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귀중한 자가 되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에 어려운 일을 벗어나게 하는 귀중한 사람이 되시기를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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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귀한 말씀 고맙읍니다
감사합니다.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힙니다.
감사합니다.
은혜받았습니다..귀중한사람이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