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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성도
출 24: 3-8
건강이 제일입니다. 몸이 건강해야 움직이면서 일들을 해낼 수 있습니다. 이번에 어머니를 만나러 온 북의 한 동포는 어머님이 몸이 건강하지 못하여 어머니를 만나지 못해 애를 태우다가 떠나는 날 새벽에 세브란스병원입원실에서 만났다지요. 새삼 건강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 최선을 다 합니다. 운동을 합니다. 건강식품을 사서 먹습니다. 몸에 좋다는 음식은 경제력이 허락하는 대로 다 사서 먹습니다. 제가 아는 모 장로(회장)가 전에 점심에 나를 초대해 놓고는 나에게는 다른 음식을 주문해 주고는 자기는 자기가 먹는 음식만을 드시더군요. 그의 설명에 의하면 일본에서 구입하여 온 음식이라는데 그것을 먹고 120세까지 살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그분의 나이가 90세 정도인데 앞으로 30년간 더 살려면 많이 투자해야 할것 같습니다.
오늘의 신약의 본문은 건강한 성도의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육신의 건강이 아니고 영적인 건강이 좋은 성도들이 만드는 교회를 다루고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두 말할 필요없이 교회의 모든 분야에서 제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성도들이 있는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대로 건강한 교회에는 사도들이 있어서 말씀이 선포되어야 하고, 교사가 있어서 교육이 수행되어야 하고, 전도자가 있어서 전도의 역사가 힘차게 이뤄져야 합니다. 이런 교회가 온전하고 건강한 교회입니다. 그 외에도 친교와 봉사와 섬김의 일꾼들이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가 건강하려면 그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성도 한분 한분이 모두 건강해야 합니다.
몸을 구성하고있는 많은 요소들 가운데서 지체의 작은 부분 하나라도 병나면 전신이 약해집니다.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2절 이하에서 사도 바울이 사람의 몸의 구조와 교회의 구조가 비슷함을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인것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바울이 열거한 지체들의 이름들 가운데는 발, 손, 귀, 눈, 코 등등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각각의 지체들이 각기 제 기능을 다 할 때, 몸 전체가 건강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작은 지체라도 상하면 다른 지체 전체에게 고통을 준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다른 지체들도 같이 그 영광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왠 병이 그렇게 많은지 이름도 매우 세분화되고 있습니다. 피부암이라는 것도 있어서 그것으로 생명을 앗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제 아는 어떤 분은 혀에 암이 생겨서 그것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아주 세미한 부분이 상하여 몸 전체의 기능이 정지된다는 말인데 이 말을 뒤집어서 말하면 우리 몸의 부분 모두가 건강해야 몸 전체가 건강하다는 말입니다.
이제 영적 공동체의 지체들 각각의 건강 유지에 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각 지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능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도들중에는 자기에게 주어진 기능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통계를 통하여 조사한 바로는 성도들중에는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 교인들이 상당 수였다고 합니다.
오늘 여기 예배하시는 우리 모두에게는 적고 큰 은사를 고루 주셨습니다. 교사로, 전도자로, 봉사자로 여러가지의 은사를 주었습니다. 크게 구분하여 예배, 선교, 교육, 친교, 봉사등 어느 한 부분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예컨데 예배에 한 부분인 헌금에 있어서 헌금위원으로서의 은사 역시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종종 이 기능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는 위원들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 건강한 성도일 수가 없습니다. 자기의 본분을 다 하지 못함에서 건강한 성도의 반열에 끼지 못합니다. 물론 월정헌금이나 십일조를 드림에서 자기의 사명을 다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정말 시간이 촉박하여 예배시간에 겨우 참석하는 것으로 사명을 다 했다고도 할 수도 있으나, 헌금위원으로서의 명단이 올라가면 위원으로서의 봉사를 해야 자신도 건강하고 교회 전체가 건강해집니다.
친교실에서의 친교생활 역시 중요한 교회의 은사중의 하나입니다. 함께 예배한 다른 교우들과 한 밥상에 앉아서 식사를 나누는 것은 친교입니다. 이 일을 웃읍게 알아서는 안됩니다.
어떤 분은 오후 성경반에도 못 들어가는 처지에 점심 한그릇 축내는 것이 미안하게 생각되어 그냥 가신다면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점심은 친교를 위해서 제공되는 것이지 오후 성경공부에 참석하는 분들을 위하여 시장할까바 제공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오후 늦게까지 계시는 분들이야 당연히 점심을 드셔야지요. 하지만 점심을 처음 시작한 정신은 가정적인 작은 공동체의 기능을 다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대 교회는 점심을 같이 하지 않습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교회와 같이 아담한 교회 공동체안에서 점심시간을 통한 친교의 의미는 매우 귀중합니다.
물론 종종 가족들 끼리 밖의 식당에 가서 오붓하게 친교를 갖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런 일이 필요하면 한달에 한번 정도면 안될까요? 가족끼리의 오붓한 시간도 교회 친교실에서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매 주일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가져보시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친교실을 위한 봉사 역시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 교회는 구역별로 돌아가면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매주일 두 구역씩 책임을 맡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하는 사람들만 봉사합니다. 주로 구역장과 권찰만이 수고를 하시는 것 같습니다.
바라기는 일년에 3, 4회 정도 차례가 오는 이 봉사에 구역의 식구들이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자만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묵은 생각도 청산하시기 바랍니다. 남자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그릇을 씻는 분들이 우리 교회에도 여러분이 계신데 참으로 보기가 좋습니다. 기회가 오면 저도 설거지하는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
우리 당회원들도 언젠가는 그런 기회를 가져볼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자신과 교회가 건강하게 되는 비결의 하나입니다. 그런 봉사의 모습에서 건강한 성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친교실은 봉사부원들이, 주방장격인 이권사님이나 김권사님이 주로 맡아하는 것이라고 잘못 아시고 부엌에 한번도 안 들어 오신분들은 앞으로 봉사에 참여 하시기 바랍니다.
언제까지 손님 노릇만 하실겁니까? 교회의 주인은 물론 하나님이시지만 구체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여러분들입니다. 친교실도 성도들의 것입니다.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에 나온지 몇달, 몇해 밖에 아니되었는데! 하면서 계속 주저 주저하고만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소매를 겉어 부치고 설거지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집이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봉사하게 됩니다.
각각의 은사가 다릅니다. 자기의 은사가 무엇인지 분명히 하여 교회 각 분야에서 자기의 위치와 사명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손은 손의 일을, 발은 발의 일을 하는 것 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에베소의 본문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16절: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사랑안에서"란 대목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각 지체간에 미움이 있고 질투가 있다면 지체들이 연합하고 상합하지 못합니다. 예컨데 귀가 입 더러 "너 저 좋은 찬양을 못듣지"라고 질타하면서 "더는 필요없으니 꺼져!"라고 말하면 어떻게 됩니까? 말도 아니되는 소리지요.
반대로 입이 귀 더러 너는 이 맛있는 음식을 못 먹으니 꺼져"라고 해서도 아니되지요. 눈이 바로 밑에 있는 코 보고 너 저 아름다운 바다를 보지 못하지? 바보 천치. 꺼져!" 라고 말하면 되는가요? 그리고 코가 눈을 보고 자기 바로 위에 있으면서 저 맛있는 냄새를 맡지 못한다고 핀잔을 줄 수 있습니까? 각각 제 기능과 역할이 따로 있는 데 말입니다. 각각의 다른 기능을 통하여 몸 전체를 건강하게 만들어 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안에서도 성도들 모두는 각기 자기의 역할이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지체들이 각기 제 기능을 잘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각 지체는 다른 지체에 대하여 관심은 가져야 하지만, 간섭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은 코를 돕고 코는 눈을 돕습니다. 귀는 입을 돕고 입은 귀를 돕습니다. 서로 협력함에서 온 몸이 건강하게 움직입니다. 우리들의 몸 전부가 서로 건강하여 협력함에서 우리 몸이 건강하게 활동하는 것과 같이 교회안에서도 소속된 성도 모두가 한 분 한분 건강한 기능을 발휘함에서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이 온전하게 됩니다.
바울은 특히 가장 작은 지체, 연약한 부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라고 권합니다.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고전12:22-23절).
바로 이 점에서 일반 사회 공동체와 교회 공동체의 차이점을 발견합니다. 일반 세속 사회에서는 강자는 우대를 받고 약자는 짓밟힙니다. 약한 부분들은 사정없이 도려내고 짤라버립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는 약한 부분을 감싸주고 추한 부분을 아름답게 보아 줍니다.
예수님 당대의 희랍사상(풀라톤)이나 유대교와 달리, 예수님이 이미 선교 초기에 유대인들이 상종하지 않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셔서 대화하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프셨습니다.
우리 수송교회안에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몇년전에는 약한 분들이 제법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전도하여 오신 분들이 고생들을 많이 했습니다. 어렵고 가난한 가정을 전도하고 돕는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이런 성도들이 소속한 구역의 구역장 권사님은 많이 힘이 듭니다.
그런데 종종 이런 교회 공동체의 분위기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을 다른 교회에서 보았습니다. 스스로의 약함을 이용하여 구역의 식구들이나 교회의 도움을 의도적으로 목적하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큰 액수의 돈을 믿고 빌려주었다가고스란히 뜨낀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완전한 신뢰속에서 한 몸이 되면 그때는 약해지고 상한 부분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누군가가 약해지고 상하면 몸 전체가 아프니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아니 할 수 없지요. 발이 아주 작은 가시에 찔렸을 때 온 신경은 그 찔린 발에 가는 것과 같이 교회의 공동체의 한 부분이 약해지면 거기에 온 신경이 써지는 것입니다. 누가 병이 들었어도 모른척, 교회 한 부분이 어려워졌는데도 전혀 감각이 없다면 한 몸이 아니란 증거입니다.
오늘도 우리 교회는 장학위원회가 혹은 각 전도회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전달합니다. 교회의 생활에도 충실하고 믿음도 좋은데 학비가 부족하여 고생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이 주어집니다. 약한 부분에 대한 관심의 한 표현입니다. 여러 성도님들이 한푼 두푼 모아서 저축했던 장학금이, 이 무더운 여름에 수박 하나라도 더 사서 먹을 수 있는 금액을 아껴서 모아 놓았던 쌈지돈을 합해서 오늘 우리몸의 약한 부분을 채워주려고 장학금을 장만하신 것입니다.
청년들의 중국선교여행을 위해서도 수십명이 자기 살림에 필요한 비용들을 절약하면서 모아주신 그 마음을 저는 압니다. 이런 일이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는 뜻에서 입니다. 인간적인 동정이나 체면을 넘어 서서 그리스도의 한몸을 이루기 위한 마음으로 이런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내가 참여 안해도 다른 사람이 다 잘 하겠지"하는 생각을 하는 성도가 계시다면 건강한 성도가 아닙니다. 건강한 교회를 세우려면 성도 모두가 함께 참여하고 함께 기뻐하는 일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6절에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보세요. 고통만 받습니까! 아닙니다. 영광도 함께 받습니다. 눈이 흐려서 다른 지체들이 그 눈이 잘 보이도록 함께 도왔더니 그 눈이 밝아졌습니다. 눈이 흐릴 때는 다른 지체들도 고통이었는데, 이제 밝은 눈을 가지게되니 온 몸이, 다른 모든 지체가 환해졌습니다. 그 영광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값이 떨어집니다. 이런 시대 일 수록 교회안에서는 약한 지체를 관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한몸으로 함께 아파하고 영광도 함께 나누는 교회가 되는 것에 진가를 둬야합니다. 외모나 숫자에 둬서는 안됩니다. "언약의 피"(구약 본문)로 연결된 하나님의 공동체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연결된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건강한 몸이 되도록 건강한 지체로 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