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3-15
네 신을 벗어라. / 김경호 목사
이스라엘 백성이 40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가나안에 입성을 합니다. 마치 홍해를 건너듯이 요단강 물이 갈라지는 기적을 거쳐서 가나안에 닿았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들어가는 첫 관문으로 아주 크고 강고한 성 여리고가 버티고 서 있습니다. 저 성을 넘어야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서 여리고 성 쪽으로 향하고 있을 때입니다. 큰 시름에 빠져있는 여호수아 앞에 손에 칼을 빼들고 서있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여호수아도 칼을 마주 빼들고 물었습니다.
“너는 우리 편이냐? 우리의 원수 편이냐?”
그가 대답했습니다.
“아니다. 나는 야훼의 군사령관으로 여기에 왔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얼굴을 땅에 대고 절을 한 다음 그에게 물었습니다.
“사령관님께서 이 부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렵니까?”
여호수아는 가장 군대가 필요한 때에 주님의 군 사령관을 만났습니다. 가장 절박한 때에 그를 만났으니 무슨 확실하고 구체적인 도움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그에게서 떨어진 말은 엉뚱한 것이었습니다.
“네가 서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너의 발에서 신을 벗어라”
그리고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구체적 도움을 바라는 여호수아에게 이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니면 어떤 확신을 주는 말이나 위로도 아니고 느닷없이 발을 벗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대로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은 “여호수아가 그대로 하였다.”라고 합니다.
인도 가서 보니 여러 신전들을 방문 하게 되는데 힌두교건 회교사원이건 공통점은 입구에서 신을 벗어 맡기고 맨 발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모세가 불붙는 가시덤불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도 “그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을 벗어라”라고 하셨습니다. 직립해 서있는 인간이 대지, 자연과 마주 접촉하는 것은 발입니다. 더욱이 유대 땅 거의다가 돌작밭입니다. 그 땅에서의 신발은 그를 보호하고 있는 마지막 외피일 것입니다. 그것마저 벗어 던지고 아무것도 인위적인 것을 거치지 않고 신과 만난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맨발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의 마음도 첫 전투를 치러야 하는 여호수아처럼 무겁습니다. 여러 가지 숙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모두가 만만치 않은 것들입니다. 확실한 보장이 우리 손에 쥐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훼 군대의 사령관처럼 우리에게 말씀 하십니다.
“네 신을 벗어라”
빨리 진도가 나가기를 바라 조급한 우리에게 먼저 네 신을 벗기를 요구하십니다.
왜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지 않느냐고 보채는 우리에게 먼저 빈손으로 하나님 앞에 서기를 요구하십니다.
이 사령관과의 이상한 만남의 이야기 바로 뒤에는 여리고성이 함락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전혀 비 군사적인 방법으로 거대한 성 여리고를 정복했습니다. 하루에 한바퀴 씩 나팔 불고 찬양하며 성을 돌았습니다. 제 7일에는 7바퀴 그리고는 마지막에 큰 함성! 그런데 성벽이 무너져 내렸고 그들은 성을 향해 진격해 올라갔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정복 방법의 전부입니다. 인간의 상식으로 전혀 가능하지 않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성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들이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후에 사사기에 나오는 기드온의 전투 이야기도 마찬 가지입니다.
상대의 숫자는 바닷가의 모래알 같이 많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잘 훈련받은 상비군입니다. 이스라엘은 고작해야 일하다가 나온 민병대입니다. 전 지파에 소집령을 내려 삼만 이천 가량이 모였습니다. 상대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 하십니다.
“네가 거느린 군대의 숫자가 너무 많다. 이대로는 내가 미디안 사람들을 네가 거느린 군대의 손에 넘겨주지 않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를 제쳐 놓고서 제 힘이 세어 이긴 줄 알고 스스로 자랑할까 염려된다”(삿 7,2)
결국은 다 돌려보내고 삼백명, 그것도 창과 칼로 이긴 것이 아니고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로 싸워서 이겼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조건이 안되는 곳에서 역사하십니다.
인간의 절망이 가장 마지막에 다달은 곳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자리입니다.
“하나님 전 안되요. 이제 더 이상 못 버티겠어요.”라고 소리지르는 그 시점이 바로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시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의 일을 시작하기 전에 철저히 하나님께 의존하고 맡겨야 합니다. 오늘 계획하되 그것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고 고집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계획은 하고 하나님께 그 결과를 맡기기 바랍니다.
그 성취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오늘 온전히 이루어 주시기를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접수하셔서 처리해 주실 것, 여러분에게 가장 유리한 방법을 찾아 처리해 주실 것입니다.
혹 우리의 생각과 어긋난다고 해서 속상해 하거나 조바심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상상치 못한 방법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면 우리 마음에 평안이 찾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뜻 안에 들어가니 평안해집니다. 한해를 시작하면서 먼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과 그로인한 평안의 선물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여호수아 하면 단짝처럼 떠올리는 인물이 있습니다. 갈렙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에 대한 보도는 많이 나오는데 갈렙에 대한 말은 별로 없습니다. 수 14장에 갈렙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해 가다가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가나안 남쪽에 자리 잡은 헤브론 성 앞에서 그들은 망설였습니다. 그 성에는 아낙 백성이라는 거인 족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40년 전에 갈렙이 정탐 했던 그 곳입니다.
40년 전 광야 가데스바네이아에서 가나안을 정탐할 때 다른 정탐꾼들은 소리 높여 통곡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 까지 불러서 가나안 사람들의 손에 죽게 하시는구나!”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아낙 사람들을 보고 한말입니다. 그 때 여호수아와 갈렙 만은 그 땅은 사람 뿐 아니라 포도도 크고, 모든 곡식이 크고 기름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땅을 주실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같은 것을 보았는데 그들의 관점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런 갈렙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갈렙에게 네가 정탐한 땅은 다 네 땅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그 땅 앞에 도달했습니다. 이제는 정탐꾼이 아닌 그들과 한판 벌려야 할 상대로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 겁에 질려합니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감히 그렇게 큰 사람들과 맞설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때 갈렙이 ‘이 산지(헤브론 성)을 나에게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미 내게 네가 정탐하며 밟은 땅을 모두 나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바 있습니다.’라며 나섰습니다. 산지를 달라는 것은 어디 마련 되 있는 땅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한바탕 전투를 벌려 점령할 일을 맡긴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의 나이 85세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갈렙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정탐 후 45년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살려두신 이유는 자신에게 주신 약속대로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모세가 나를 정탐꾼으로 보낼 때와 같이, 나는 오늘도 여전히 건강하며, 그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힘이 넘쳐서, 전쟁하러 나가는 데나 출입하는 데에 아무런 불편이 없습니다.....과연 거기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은 크고 견고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만 한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는 그들을 쫒아낼 수 있습니다.”(수 14, 11-12)
갈렙이 조건으로 삼은 것은 그의 나이나, 근력의 힘이 아닙니다. 그는 성의 견고함이나 군대의 크기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의 전제되는 조건은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만 한다면....”하는 조건이었습니다.
올 한해를 시작하며 여러분들은 무엇을 간구하십니까? ]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간구하며 새해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