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력이 떨어졌나?
송남석
필력이라 하면 글을 쓰는 창작능력이거나, 글씨 자체를 만들어내는 손힘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후자에서 느껴지는 현실에서 의문점이 들곤 한다. 내가 새 책을 펴내서 친지들에게 증정하게 될 때 표지 넘겨 첫 장에 자필 사인을 하고 낙관하여 보내게 되는데 가급적 붓 펜을 사용 한다. 상대방의 이름을 쓰고 날짜, 내 이름순으로 써 내려간다. 이때 상대의 모습을 떠올려 보며 최대한 잘 써 보려는 마음으로 쓰는데 이상하게도 글씨가 맘에 안들 때가 있다. 그러나 다시 지우고 고쳐 쓸 수가 없다. 잘 못 써 졌어도 그냥 보내는 수밖에 없다.
이때 상대방의 모습이 곱고 아름답게 떠오르면 글씨가 잘 되고 별로라면 잘 못 써지는데 내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했거나 순간 사심이 스쳐 빚어진 실수인데도 그 분의 평소 인상이 덜 좋아 그럴 거라고 남 탓 해석을 했을 것이다. 어떤 문인들은 별지에 써서 붙이기도 하고 인쇄로 미리 찍어서 이름 밑에 도장만 찍는 경우도 있으나 나는 항상 친필 사인을 했다. 이 일이 요즘 들어 왜 글씨가 잘 안 되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필체도 늙어지나 하고 자성을 해 보다가 결국 글로 남겨보게까지 되고 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글씨 잘 쓴다는 칭찬을 곧 잘 듣고 자랐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문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우게 되는 일이 내가 학문에 접하는 최초의 일이었는데 한지(韓紙)를 접어서 공책으로 된 책에 네 자씩 맞춰 8자 16자를 훈장님이 직접 써주시는데 어디서 보고 쓰시는 법이 없이 외워서 써 주셨다. 안보고 쓰시는 것도 신기했지만 붓 끝에서 예쁘게 빚어내는 그 필체에 감동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 느낌이 고스란히 머릿속에 저장되어 내가 글씨 잘 쓴다는 칭찬을 받고 살아왔을 거라고 상상해본다. 그래선지 교직생활 30여 년 동안 가는 학교마다 상장과 졸업대장을 내가 도맡아 썼는데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그만 두게 되었다.
흔히 말하기를 손재주가 좋아서 글씨나 그림을 잘 한다고 말하기 쉬우나 사실은 손은 머리가 시키는 대로 하는 법이라고 생각된다. 미리 뇌가 정밀한 모양, 즉 윤곽을 지시하는 것이다. 정밀하고 예쁜 글씨를 쓰려면 예쁜 모양의 글꼴들이 뇌 속에 이미 저장되어 있어야 한다. 글씨를 잘 못 쓰는 난필 인들은 잘 써야 겠다는 초기의 생각에 소홀한 나머지 뇌 속에 입력이 안 되어 그럴 거라고 생각된다. 이런 습관이 유치원이나 초등학생일 때 정착시켰어야지 어른이 된 뒤에는 어렵다. 그래서 옛날에는 여자가 현모양처라면 남자는 신언서필(身言書筆)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 사람의 기본인 것처럼 회자되었다.
어느 때부턴가 이런 말이 사라졌고 지금은 전혀 알 필요도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는데 컴퓨터가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키보드를 잘 찍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내가 20여 년 전 ‘필체실종’ 이란 제목의 수필을 한 편 썼던 기억이 있는데, 일류대학을 나온 윤리담당 젊은 선생 한 분이 글씨를 엉망으로 쓴걸 보고 한심하게 느껴졌던 일이었다. 그때 결론은 글씨를 잘 쓰면 못 쓰는 것 보다야 좋겠지만 세상이 발전하다보니 자판기만 잘 두드리면 된다고 했던 것 같다.
글씨 잘 쓴다는 칭찬 중에 공식적으로 뚜렷이 남은 추억이 하나 있다. 6번째 수필집을 내서 증정할 때였다. 봉투에 붓 펜글씨로 정성껏 써서 보내게 되면 열에 하나정도 칭찬이 오게 되는데 지금까지 유난히 오래남아 있는 이유는 그분의 진심과 사회적인 지위와 직접 써 보냈다는 것 때문이다. 유명 여류 시인이고 수준 높은 서예가에다가 글로 남겨주셨다는 일이 내게는 하나의 작품으로 영원히 남겨졌기 때문이다. 다음에 한 부분을 요약 해본다.
- 봉투에 적힌 고려청자상감문양 같은 필체에 나는 이미 한번 혼절했다가 이제 깨어나 그의 수필의 숲에 든다. 글씨는 그 사람의 마음의 창이라고 하지만 열일 다 제쳐놓고 나는 아직까지 그렇게 잘 쓴 글씨를 본적이 없다. - 중략 -
새 책이 나온들 10권 정도니까 사인하여 낙관 할 일도 별로 없지만 내 글씨가 예전 같지 못한 이유는 나이 탓도 있겠지만 이제는 손 글씨를 거의 안 쓰기 때문에 기능이 퇴화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안 쓸 수도 다시 쓸 수도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할까 하고 후회하는 마음에 빈 종이에 계속 그분의 이름을 다시 써보니 처음부터 잘 써야겠다는 생각 보다는 개성 있게 쓱쓱 써내려가는 편이 오히려 보기 좋고 통일감이 들어 다음부터는 그렇게 써야지 하는 다짐을 했다. 오늘도 두어 시간에 이런 반성문 한편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