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14일) 출입국 외국인 관리소에 볼일이 있어 들렀다가 황방산이 가까운고로 점심시간이 임박해 맨발 걷기를 조금 하고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곳 황방산은 장현 방향과 안시례 방향 두 코스가 있는데 평소엔 주로 안시례로 갔지만 그날 따라 장현방향을 걷고 싶어서 그 방향으로 걷다가 그날의 잊이 못할, 아니 웃지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사람이 걷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생리현상으로 방귀를 뀌는 거야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마는 내가 살다살다 그렇게 황당한 방귀 소리는 처음들어 보는 소리였다. 전망대가 있는 곳을 지나 내리막길로 가는데 반대편에서 키가 늘씬한 한 주부가 올라오고 있었다. 키도 제법 크고 선글라스를 쓴 제법 멋진 여성인데 올라 오다가 그만 방귀를 낀 것이다. 한 10m쯤 떨어진 나도 놀라고 방귀를 낀 자신도 놀라서 서로 눈이 동그래져서 얼굴을 쳐다보고 만 것이다.
잠시 어색한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그 어색함으로 풀어볼 요량으로 씨익 웃었다. 그랬더니 그 여성도 얼굴이 빨개지면서 웃는 것이었다. 나는 괜찮다는 듯 한 손을 들어 보이며 사람이 살다보면 방귀도 뀌고 사는거지 뭐 라는 싸인을 주고 지나가려는데 그분이 두 손바닥을 보이며 다가오지 말라는 표정으로 “아, 잠감만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왜요?”
나는 이상해서 무엇이 문제냐는 듯 물었다. 그리고 돌아 온 대답에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아직 화생방 경보는 해제 안됐잖아요”
제법 세련된 여인의 입에서 나올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한 재치있는 대답에 맨발로 걷는 내내 히죽히죽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자칫 어색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한마디의 재치있는 한마디 말이 얼굴은 기억이 안나지만 두고두고 한번씩 꺼내서 웃게하는 웃음 보따리로, 쓸만한 경험으로 기억의 골방에 저장되고 말았다. 나는 그날 만난 그 여인의 이름도 모르고 모습도 기억이 안난다. 하지만 누구와 사는지 모르지만 그 주변 사람들은 참 재미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진지한 사람도 좋지만 나는 유머러스한 사람이 더 좋다. 매사에 심각한 사람을 만나고 나면 피곤해지고 힘이든다. 하지만 유머러스 한 사람을 만나면 그날 그 여인처럼 인생 양념을 넣은 것처럼 삶이 달고 고소해진다. 예수님은 어땠을까? 그분이 유머러스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언제나 근엄하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다니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랬다면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잘 접근할 수 있었겠는가? 성경에 예수님이 우셨다는 기록이 세 번나오지만 웃었다는 기록은 한 번도 안 나온다. 왜 그럴까? 어떤 분의 주장처럼 힘들고 고단한 삶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늘 해맑게 웃고 다니셨기에 웃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 잠깐만요. 아직 화생방 경보는 해제 안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