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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학교 장년교과 보충교재(예언의 신 인용구들/Ellen G. White Notes)
(1) 이 자료는 대총회 안교부가 매기마다 안교 장년교과와 함께 매일의 공부 내용과 연결하여 새로운 통찰력과 신선한 관점을 얻도록 돕기 위해 출판하는 보충교재 [Ellen G. White Notes for the Sabbath School Lessons]-예언의 신 인용구들을 한글판으로 바꾼 것입니다. (아직 한글번역본이 없는 예언의 신 인용구는 게시자가 번역함)
(2) [활용방법] 매일의 교과를 공부한 후, 그날에 해당하는 부분을 연결하여 묵상하면 큰 유익이 됩니다.
<2024년 4기 – 주제로 살펴보는 요한복음>
제2과 신성의 증거들(Signs of Divinity)
<10월 5일/안, 서론> 예언의 신 보충자료
◎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인성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성으로 바뀌었는가? 아니다. 신성과 인성이 한 개체 곧 인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비스럽게 잘 조화 융합되어 있었다. 그분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죽으신 것은 그분의 인성이었다. 신성이 함몰되거나 죽지 않았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담의 아들과 딸들이 그들에게 부여된 구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승락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실 것이다. 구주께서 그분의 피로 타락한 인류를 사셨다.
그것은 하나의 신비로 구속받은 자들이 변화함을 입을 때까지 그 모든 크기를 완전하게 또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다. 그때에는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 선물의 크기와 그 능력과 효력을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원수는 이 선물을 극도로 신비화시켜서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도록 해야겠다고 굳게 결심한다. (화잇주석, 막 16:6)
◎ 그리스도의 품성과 사명을 이해한 사람들은 그분을 바라보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끼면서 경건과 경외심으로 가득 찼다. 관리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데려가기 위해 파견되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모셔져 있는 성전을 파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이 가까이 다가가 그분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거룩한 지혜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들은 매료되었고 그분의 가르침의 능력과 탁월함이 그들의 마음과 정신을 채워 그들이 파견된 목적을 잊어버렸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영혼에 그분 자신을 나타내셨다. 신성이 인간을 통해 번쩍였고, 그들은 이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서 그분이 제시한 사상에 매료되어 돌아왔고,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왜 그를 데려오지 않았는가?"라고 묻자, "이 사람처럼 말한 사람은 없었다"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제사장들과 통치자들이 보지 못하는 것, 즉 신성의 빛과 영광으로 가득 찬 인간을 본 것이다. (영문 시조, 1890년 1월 20일)
◎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셨을 때, 그분을 거절한 사람들에게 "너희가 생명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지 아니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이끄시는 사랑에 응답하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수께서 부르시지만, 많은 사람이 초청에 응답하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개인적인 구주로 모시는 특권을 누리지 못한다. 그들은 겸손과 믿음으로 오지 않으며,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이 예수님께 어떤 존재인지,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어떤 분인지 알기 위해 오지 않는다. 그러나 약속은 "그는 자기 영혼의 수고를 보고 만족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완전한 기쁨과 영광의 영역으로 인도할 때까지 쉬지 않으실 것이다. (영문 시조, 1893년 2월 27일)
<10월 6일/일, 오천 명을 먹이심>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유월절이 가까웠으므로 원근 각처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의 무리가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모여들었다. 수는 점점 증가하여 여자와 아이들 외에 남자가 오천 명이나 모이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해변에 도착하시기 전에 한 무리가 그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의 눈에 띄지 않게 도착하여 제자들과 따로 잠시 시간을 보내셨다.
산기슭에서 그분께서는 움직이는 무리를 보셨다. 그때 그분의 마음에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방해를 받아 휴식을 빼앗겼지만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으셨다. 사람들이 계속하여 몰려오는 것을 주목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그분의 돌보심이 더욱 크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다. 예수께서는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셨다. … 그들은 제사장들과 관원들에게서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군중에게 구원의 도를 가르치실 때는 치유하는 생명수가 그분에게서 흘러나왔다. (소망, 364-365)
◎ 나는 주님께서 모세를 바로 앞에 보내셨을 때 그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보도록 지시를 받았다. 사탄은 모세의 사업을 이해하였으므로 싸울 태세가 되어 있었다. 그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속박의 멍에를 깨뜨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는 것과, 그의 사업을 통하여 인간 가족을 지배하는 사탄의 능력을 깨뜨리고 그 능력에 사로잡힌 자들을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초림이 표상된 것도 잘 알았다. 사탄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그분을 통하여 큰일과 이적이 이루어질 것과, 세상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분을 보내신 것을 알게 될 것도 알았다. 그는 자신의 권세를 잃게 될까 봐 떨었다. 그는 그의 사자들과 다음의 두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일을 어떻게 성취시킬 것인지 의논했다. 첫째, 그의 사자들을 활동시켜 하나님의 참 업적의 모조품을 만들어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종 모세를 통하여 이루신 업적의 영향력을 소멸시킨다. 둘째, 그가 요술사들을 통하여 이룬 업적이 각 시대의 많은 사람의 마음에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실 큰 이적과 업적을 믿는 믿음을 소멸시켜 버리는 영향을 미치게 한다. 사탄은 인류를 사로잡고 있는 자신의능력이 그리스도께 굴복될 것이므로 자신의 나라가 어려움을 당할 것을 알았다. 바로 앞에서 이루어진 이적들이 나타난 것은 모세가 소유한 인간적 영향력이나 힘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그 표적과 기사들은, 위대하신 자존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어 하나님을 섬기도록 명령하기 위하여 모세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영적선물 4권, 81)
◎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의 죄를 위하여 배상하셨으며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오는 모든 자는 그리스도의 의를 받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벧전 2:24)게 되었다. 우리의 죄는 속죄 되었고 제거되었으며 바다 깊이 던져진 바 되었다. 우리는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죄를 벗어나게 되었으며 우리의 의가 되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고난을 당하시고 의로운 분께서 불의한 자를 위하여 희생하셨다. (1기별, 392-393)
<10월 7일/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예언의 신 보충자료
◎ 봄날 저녁 황혼에 초원 위에 앉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마련해 주신 음식을 먹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보리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의 굶주린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양식을 만들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요 6:14). … 그분은 열방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에게 오랫동안 바라던 통치권을 주실 수 있다.
백성들은 열광적으로 그분을 당장 왕으로 추대하려고 한다. 그들은 그분께서 자신에게로 주의를 끌거나 존경을 얻고자 조금도 노력하지 않으시는 것을 본다. … 그들은 그분께서 결코 다윗의 보좌를 자신의 것으로 주장하지 않으실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그들은 함께 의논하여 그분을 강제로 모셔다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언하자는 데 동의한다. … 예수께서는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아시며 또 그들은 알 수 없었지만 이런 운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를 아신다. …
예수께서는 이제 무리에게 해산하라고 명령하셨는데, 그분의 태도는 너무나 단호하여 감히 불순종할 수 없었다. … 예수님의 왕 같은 모습과 그분의 몇 마디 조용한 명령이 소란을 잠재우고 그들의 계획을 좌절시켰다. 그들은 그분에게서 지상의 모든 권위를 뛰어넘는 권능을 인정하고 의심없이 복종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46)
◎ 예수께서 구약 성경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라고 하였은즉 신약 성경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 만일 그대가 구주를 잘 알려고 하면 성경을 연구하라. 온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라.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들의 목이 타는 갈증을 없이하여 주는 생수이다. 그것은 또 하늘로부터 내린 생명의 떡이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물질계에서 그러한 것과 같이 영적 세계에서도 그러하다. 우리의 영적 활기와 능력을 주는 것은 우리의 묵상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다.
신령한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통함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말씀을 깊이 생각해야 하며 마음 가운데 말씀으로 가득 차야 한다. 마음 가운데 쌓아놓으며 신령하게 품은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 은혜의 능력으로 순종할 때 그 말씀은 사람을 바르게 하고 바른 길로 나가게 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228)
◎ 예수께서는 그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라고 슬픈 듯이 말씀하셨다. 그들은 무슨 가치 있는 동기에서 그분을 찾은 것이 아니라 떡을 얻어먹고 배가 부르기 때문에 그분께 붙음으로 현세의 이익을 좀 더 얻기를 바랐던 것이다. 구주께서는 그들에게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라고 분부하셨다. 단지 물질적인 유익만을 구하지 말라. 금생을 위하여 준비하는 것을 주된 노력으로 삼지 말고 영적 양식, 곧 영생하도록 있는 그 지혜 얻기를 힘쓰라. 하나님의 아들만이 이것을 주실 수 있으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이기 때문이다. (소망, 384-385)
<10월 8일/화, 눈먼 자를 치유하심(1)>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욥은 쓰라린 고통을 당하였고, 그의 친구들은 그의 고통이 그의 죄의 결과라는 것을 시인하게 하려 하였고, 그가 하나님의 정죄 아래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그를 큰 죄인의 입장이라고 하였지만 주께서는 그의 신실한 종에 대한 그들의 판단을 책망하셨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죄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고통이 다 잘못된 삶의 길을 걸어온 결과는 아니다. 욥은 주께서 사탄에게 고통을 주어보라고 허락하신 사람으로 분명하게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다. 원수는 욥이 가졌던 모든 것을 다 빼앗았고 그의 가족 관계는 산산조각이 났으며 그의 자녀들은 다 잃어버린 바 되었다. 잠깐이지만 그의 몸은 견디기 어려운 종기로 뒤덮여 있었고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기 위해 왔지만 그들은 그의 행동에 죄가 많기 때문에 그가 고통당한다는 것을 인식시키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변호하였고, 그런 판단을 부정하였으며, “너희는 다 번뇌케 하는 안위자들”이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욥을 하나님께 죄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하나님의 심판을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람으로 나타냄으로 욥에게 큰 시험을 주었고 하나님을 잘못 나타내었다. 하지만 욥은 충성의 길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신실한 종에게 상을 주셨다. (화잇주석, 욥 4:7~9)
◎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지식을 계시하기 위해 오셨다. … 하나님의 진리는 수많은 전통과 오류 아래 숨겨져 있었다. 그리스도의 대속을 가르치고 피를 흘리지 않고는 죄 사함이 없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제정된 제사 제도는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었다. 영적이고 거룩한 모든 것이 그들의 어두워진 이해력으로 왜곡되었다. 그들은 교만과 편견에 눈이 멀어서 폐지된 것의 끝을 보지 못했다. 예수께서는 당시 존재하던 사물의 질서를 바꾸고 그들에게 아버지의 성품을 계시하려고 오셨다. (리뷰 앤 헤럴드, 1892년 11월 1일)
◎ 종종 하나님의 종들조차도 전통과 거짓 가르침에 눈이 멀어서 그분의 말씀에 계시된 것을 일부만 이해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구주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을 때도 메시아를 이스라엘을 보편적 제국으로 높일 현세적인 왕자라는 대중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그분의 고난과 죽음을 예언하는 그분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엠마오로 가는 길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다. 그분의 목적은 그들의 믿음을 “확실한 예언의 말씀”(눅 24:27; 벧후 1:19)에 굳게 고정시키는 것이었다. 단지 그분의 개인적인 증언만이 아니라 구약의 예언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이 지식을 전하는 첫 번째 단계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구약 성경의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을 가리키셨다. (*From Here to Forever, 215, 217.) *대쟁투 축약본
<10월 9일/수, 눈먼 자를 치유하심(2)>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예수께서 안식일에 행하신 이적들은 모두가 고통당하는 사람을 구원하려고 하신 일이었으나 바리새인들은 그분을 안식일 범하는 자로 정죄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헤롯 당원들로 그분을 반대하여 분기하도록 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그분께서 경쟁할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려 한다고 설명하고 어떻게 예수님을 죽일 것인가를 그들과 의논하였다. 그들은 로마인들을 흥분시켜 그분을 대적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분께서 저들의 권위를 뒤집어엎으시려 하는 것처럼 말하였다. 그들은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그분께서 백성을 감화시키지 못하도록 애썼다. 그러나 이제껏 저들의 기도(企圖)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분의 자비로운 사업을 목격하고 순결하고 거룩한 가르침을 들은 군중은 이것이 안식일을 범하는 사람이나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의 말이나 행실이 아님을 알았다. 바리새인들이 보낸 관원들까지도 그분의 말씀에 감화를 받아 그분을 잡을 수 없었다. 마침내 자포자기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공언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출교시키는 포고령을 통과시켰다. (소망, 538)
◎ 인간의 교만과 야심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가장 소박하고 겸손한 도구를 쓰셔서 그분의 힘 있는 사업을 하기로 하셨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은 세상이 위대하다, 재능이 있다, 훌륭하다고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지도자와 힘의 근원으로 인정하고 단순하고 겸손하게 일할 사람을 택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생활의 모든 임무와 의무 가운데서 그분을 우리의 보호자와 안내자로 삼기를 바라신다. …
사도 바울은 웅변은 웅변으로, 논리는 논리로 접근할 수 있었다. 그는 모든 논쟁을 아주 총명하게 대처할 수 있었지만, 이 세상 지식을 가지고 그가 만족을 얻었던가?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화잇주석, 고전 1:25~2:3)
◎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 곧 세상이 학식이 없고 무지하다고 선언한 자들을 택하셔서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을 당황하게 하셨다. 제자들은 랍비들의 전통에 대해 무식했지만, 그리스도를 본보기이자 스승으로 모시고 가장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 앞에는 거룩한 본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가장 높은 성격의 진리를 제시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위해 봉사하도록 사용하시는 자들은 그 봉사에 적합한 그분의 방식에 적합하게 하셨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자들은 그분이 위해 죽으신 영혼들을 구원하고 섬기는 신비를 이해하기 위해 매일 그리스도께 배워야 한다. … 그들은 모든 일에서 그분의 부드러운 연민과 모든 악한 일에 대한 그분의 엄격함을 본받아야 한다. (This Day with God, 41).
<10월 10일/목, 나사로의 부활> 예언의 신 보충자료
◎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의 권세 아래 죽은 각 사람이 구원받지 못함을 아시고 나사로의 무덤에서 우셨다. 그분은 많은 사람, 곧 하나님께 돌아와 충성하기로 서약하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그분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리셨다. … 그분이 나사로를 죽음에서 일으키셨을 때 그분은 그 생명을 위하여 그분이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속죄의 값을 지불하셔야 할 것을 아셨다. 모든 구조는 그분께 가장 깊은 굴욕을 안겨드리는 일이었다. 그분은 모든 인간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셔야 하였다. …
그분은 그들이 빠진 웅덩이에서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분은 당신뿐임을 알고 계셨다. 그분만이 그들의 발을 옳은 길로 놓을 수 있었다. 그분의 완전하심만이 그들의 불완전함의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아셨다. 그분만이 그들의 벌거벗은 것을 그분 자신의 흠 없는 의의 옷으로 덮으실 수 있었다. … 그분은 구원하시기에 강하시다. 도움은 전능자에게서 온다. 그분은 인성의 긴 팔로는 인간을 감싸안고 신성의 팔은 전능하신 분을 붙잡으신다. (아들과 딸, 25)
◎ 예수께서 우신 것은 다만 마리아와 마르다를 동정하는 인간적인 동정심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분의 눈물에는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처럼 인간적인 슬픔보다 더 높은 슬픔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사로를 위하여 울지 않으셨다. 그 까닭은 그를 무덤에서 곧 불러일으키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지금 나사로를 위하여 슬피 울고 있는 자들 중의 여러 사람이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분을 죽일 계획을 곧 세우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셨다. 그러나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눈물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는 없었다! 그분의 슬픔의 원인에 대하여 그분 앞에 드러난 장면의 외부적인 사정밖에 알지 못하는 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여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불신의 씨를 떨어뜨릴 기회를 엿보면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라고 비웃었다. 만일 나사로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그리스도에게 있었다면 왜 그분은 그때 나사로를 죽게 내버려 두셨을까?
예언적 안목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증오심을 보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그분을 죽이기 위하여 계획하고 있는 것을 아셨다. 그분은 지금 겉으로 매우 동정하는 듯이 보이는 자들이 얼마 안 있어 희망의 문과 하나님 도성의 문을 스스로 닫으리라는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 욕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상황이 발생하려고 하였는데, 그 결과로 예루살렘은 멸망하게 될 것이요 그때는 아무도 죽은 자를 위하여 슬퍼하지 않을 것이었다. 예루살렘에 다가올 징벌이 그분 앞에 분명하게 그려졌다. 그분께서는 예루살렘이 로마의 군대에 의하여 포위당하는 것을 보셨다. 그분은 지금 나사로를 위하여 울고 있는 많은 사람이 그 도성이 포위될 때 죽게 될 것이며, 저희의 죽음에는 희망이 없을 것을 아셨다. (소망, 533-534)
◎ 축복받은 성경은 우리에게 위대한 구원의 계획에 대한 지식을 주고, 모든 개인이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는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분은 참된 증인이시며, 그분에게 속한 자들에게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그들은 결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한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께로 가는 길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이 계시 된다. (그리스도인 교육의 기초, 308)
<10월 11일/금, 더 깊은 연구> 예언의 신 보충자료
◎ “다섯 덩이의 적은 보리떡으로 무리를 먹임” (치료, 45~50)
그리스도께서 바닷가에서 가르치실 때 사람들은 하루 종일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을 따라 모여들었다. 그들은 그분의 은혜로운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은 너무도 단순하고 쉬웠기 때문에 그들의 심령에 마치 길르앗의 유향과 같았다. 그분의 거룩한 손의 치유력은 앓는 자들에게 건강을, 죽어가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날은 마치 하늘이 땅으로 내려온 것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식사 후에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돌아가지 않고 머뭇거렸다. 마침내 제자들이 그리스도께 와서 군중들을 위해서라도 돌려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많은 사람은 먼 곳에서 왔으며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주변 마을과 촌락에서 그들은 음식물을 구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마 14:16)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빌립을 돌아보시며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요 6:5)라고 물어보셨다.
빌립은 눈을 들어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는 그 많은 무리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200데나리온 어치가 되는 떡을 구하더라도 충분치 못하고 조금씩밖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무리 가운데서 어느 정도의 음식을 찾을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안드레가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요 6:9)라고 말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을 풀밭에 앉히라고 명령하셨다. 말씀대로 다 되자 그분은 그 음식을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마 14:19~20)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무리를 먹이신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하신 이적이었다. 그러나 공급된 음식은 참으로 보잘것없는 것으로 갈릴리 사람들, 어부들이 매일 먹는 물고기와 보리떡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에게 기름진 음식을 공급하실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단순히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준비된 음식물은 그들에게 유익한 교훈이 되지 못할 것이었다. 이 이적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단순성의 교훈을 가르치고자 하셨다. 만일 오늘날 사람들이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생활했던 것처럼 천연계 법칙에 조화되게 생활함으로 그들의 습관이 단순했다면, 인류의 필요는 풍성하게 채워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기심과 식욕의 방종이 죄악과 불행을 초래하여 한편에서는 폭음과 폭식을 하는데, 다른 편에선 굶주리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사치를 추구하는 욕망을 만족시켜 주시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려고 하지 않으셨다. 흥분에 들뜬 긴 하루가 지나면서 지치고 허기진 그 큰 무리에게 주어진 그 단순한 식사는 하나의 보증이었다. 일상적인 필요를 능력과 사랑으로 채워 주신다는 보증인 것이다. 구주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호화로운 것을 주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그들의 운명은 빈곤으로 둘러싸여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은 그들의 필요가 채워질 것이라고 보증한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세상의 물질보다 더 좋은 것, 곧 그분의 임재로 인한 위로를 약속하신다.
무리가 먹고 난 후에도 음식이 풍성하게 남았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요 6:12)라고 명령하셨다. 이 말씀은 음식물을 광주리에 담으라는 말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 교훈은 이중적이었다. 낭비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일시적인 유익이라도 그냥 지나쳐버려서는 안 된다. 인류의 유익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 주린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는 것은 모두 거두어 들이라. 이와 같은 신중한 태도로 영혼의 필요를 채워주고자 하늘에서 온 떡을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의 영원한 구원과 관련된 말씀은 하나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한 말씀도 헛되이 땅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
보리떡의 이적은 하나님을 의지할 것을 가르친다. 그리스도께서 5,000명을 먹이실 때 그분 가까이에 음식이 없었다. 그분의 명령대로 음식이 공급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그곳 광야에 남자 5천 명, 그 외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이 그분과 함께 있었다. 그분께서 무리에게 그곳까지 오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그분과 함께 있고 싶은 열성 때문에 초청이나 명령을 받지 않고 왔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이 하루 종일 그분의 교훈을 들었으므로 배가 고프고 지쳐 있다는 것을 아셨다. 그들은 집에서 멀리 떠나 있었고 밤이 가까웠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음식을 살 돈이 없었다. 그들을 위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셨던 분께서 그들을 주린 채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으실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으므로 그분께서는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의지하셨다.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 하나님께 의존해야 한다. 위급한 경우마다 명령에 맞춰 무한한 자원을 갖고 계신 분께 도움을 구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적을 아버지께로부터 받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고,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서로 나누었다. 이처럼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모든 사람은 그분에게 생명의 떡을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다. 그분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사람들 사이에 임명된 교통 수단이다.
제자들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는 구주의 명령을 들었을 때, 그들의 마음속에는 온갖 어려움이 생겼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게 하겠느냐”라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던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을 다 가지고 예수님께 왔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먹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들에게 사람들을 섬기라고 명령하셨다. 음식이 그분의 손에서 불어났다. 그리고 그리스도께 내민 제자들의 손이 한 번도 채워지지 않은 적이 없었다. 조금 밖에 안되는 그 음식은 모든 사람에게 충분하였다. 무리가 먹고 나자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늘로부터 공급된 귀한 음식을 먹었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 무지한 사람들,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깨달을 때, 우리 마음은 얼마나 자주 위축되는가?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의문을 품는다. “우리의 연약한 힘과 빈약한 자원이 이 큰 필요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그 사업을 지도하기 위해 더욱 큰 재능을 가진 어떤 사람이나 그 일을 맡아 줄 어떤 기관이 나타나기를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대가 가진 재산과 시간과 재능을 사용하라. 그대의 보리떡을 예수님께 가지고 가라.
비록 그대의 자원이 수천 명을 먹이기에 충분하지 못할지라도 한 사람을 먹이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손에 들어가면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을 것이다. 제자들처럼 그대가 가지고 있는 것을 주라. 그리스도께서는 그 선물을 증가시켜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그분을 정직하고 단순하게 의지할 때 갚아 주실 것이다. 보잘것없는 공급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 것이 풍성한 잔치가 되었음이 입증될 것이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고후 9:6-11) 지리라.
◎ “제사장들의 음모” (소망, 537–542).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나사로가 살아난 소식은 곧 그 도시에 퍼졌다. 이적을 목격한 스파이를 통하여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곧 그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를 결정하기 위하여 곧 산헤드린 회의가 소집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죽음과 무덤을 지배하실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나타내셨다. 그 능력 있는 이적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분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는 최고의 증거였다. 이것은 이성과 밝은 양심의 지배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확신을 주기에 충분한 신적인 능력의 증거가 되었다. 나사로의 부활을 목격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러나 그분에 대한 제사장들의 증오심은 더욱 격렬하게 되었다. 제사장들은 일찍이 그분의 신성에 대한 보다 작은 증거들을 모두 거절해 왔다. 그들은 이 새로운 이적에 격노할 뿐이었다. 죽은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군중 앞에서 백주에 살아났던 것이다. 이와 같은 증거를 교묘히 설명하여 넘길만한 재간은 없었다. 이런 이유로 제사장들의 적개심은 더욱더 필사적이었다. 그들은 전보다 한층 더 그리스도의 사업을 중지시키려고 결심하였다.
사두개인들은 비록 그리스도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바리새인들처럼 그렇게 심한 악의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들의 증오심은 그처럼 격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도 철두철미하게 경계하게 되었다. 사두개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소위 과학이란 것을 만들어 사두개인들은 죽은 자의 몸에 생명을 넣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라는 이론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하신 몇 말씀에 의하여 그들의 이론은 무너지고 말았다.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 이 두 면에서 사두개인들의 무지함이 드러났다. 그들은 이적을 통하여 백성이 받은 인상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무덤에서 죽은 사람을 탈취해 내는 데 성공한 그분으로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돌이킬 수 있을까? 거짓 소문들이 유포되었으나 이적을 부인할 수 없었으며 그들은 어떻게 그 영향을 제거시킬지를 알지 못하였다. 지금까지는 사두개인들이 그리스도를 잡아 죽일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나사로의 부활 후에 그들은 그분의 죽음만이 그들에 대한 그분의 담대한 탄핵을 중지시킬 수 있으리라고 결정하였다.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었으며 이 이적은 메시아가 저희 가운데 계시다는 증거라고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사업을 반대해 왔다. 처음부터 바리새인들은 그분께서 저희의 위선적인 허식을 폭로시키셨기 때문에 그분을 미워하였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도덕적 결함을 감추어 둔 엄격한 의식의 가면을 벗기셨다. 그분께서 가르치신 순결한 종교는 그들의 거짓된 경건의 공언을 정죄하였다. 그들은 그분의 날카로운 비난에 복수하기를 갈망하였다. 그들은 그분을 정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올 말이나 행동을 하도록 그분을 자극하려고 애썼다. 그들이 여러 번 그분을 돌로 치려고 했지만 그분은 조용히 물러가셨으므로 그들은 그분을 찾을 수 없었다.
그분께서 안식일에 행하신 이적들은 모두가 고통당하는 사람을 구원하려고 하신 일이었으나 바리새인들은 그분을 안식일을 범하는 자로 정죄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헤롯 당원들로 그분을 반대하여 분기하게 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그분께서 경쟁할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려 한다고 설명하고 어떻게 그분을 죽일 것인가를 그들과 의논하였다. 그들은 로마인들을 흥분시켜 그분을 대적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분께서 저들의 권위를 뒤집어엎으려고 하시는 것처럼 말하였다. 그들은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그분께서 백성을 감화시키지 못하도록 애썼다. 그러나 이제껏 저들의 기도(企圖)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분의 자비로운 사업을 목격하고 순결하고 거룩한 가르침을 들은 군중은 이것이 안식일을 범하는 사람이나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의 말이나 행실이 아님을 알았다. 바리새인들이 보낸 관원들까지도 그분의 말씀에 감화받아 그분을 잡을 수 없었다. 마침내 자포자기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공언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출교시키는 포고령을 통과시켰다.
그러므로 제사장들과 관원들과 장로들이 의논하기 위하여 모였을 때 모든 사람을 경탄하게 하는 그런 기이한 일을 행하신 그분을 침묵시키자는 것이 그들의 확고한 결심이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거의 연합할 만큼 가까워졌다. 지금까지는 서로 분열되어 있었으나 그리스도를 반대하기 위하여 그들은 하나가 되었다. 니고데모와 요셉은 전번의 공회에서 예수님을 정죄하는 일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이번 공회에는 소집되지 않았다. 예수님을 믿는 다른 유력 인사도 공회에 참석했으나 그들의 감화는 악한 바리새인들의 영향을 누르지 못했다.
그러나 공회 의원들 모두가 합의한 것이 아니었다. 이 시간에 산헤드린은 법적으로 회집할 시기가 아니었다. 그러한 일은 묵인에 의해서만 가능하였다. 어떤 의원들은 그리스도를 죽음에 처하게 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인지에 관하여 질문하였다. 그들은 이 일로 백성 사이에서 반란이 일어나도록 하여 로마인들이 모든 성직자가 가진 큰 특권을 박탈하고 저들이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세력을 빼앗을 것을 염려하였다. 사두개인들도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일에 저들과 연합하였으나 로마인들이 저희의 높은 지위를 빼앗을 것을 염려하여 신중히 행동하였다.
그리스도를 죽일 계획을 세우기 위하여 소집된 이 회의에는 느부갓네살의 자랑하는 말을 듣고, 벨사살의 우상 숭배적인 잔치를 목격하고, 나사렛에서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을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선언하셨을 때 참석했던 증인(성령)께서 참석하셨다. 이 증인께서 이제 지배자들에게 그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마음에 감동을 주고 계셨다.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서 일어난 사건들이 그들 앞에 분명하게 떠올라서 그들에게 경고하였다. 그들은 예수께서 열두 살 난 아이였을 때 성전에서 학식 있는 율법 박사들 앞에 서서 질문함으로 박사들을 놀라게 했던 장면을 회상하였다. 예수께서 방금 행하신 이적은 그분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였다. 그리스도에 관한 구약 성경의 참된 의미가 저희 마음에 번개처럼 떠올랐다. 괴로움과 번민에 싸인 관원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랴”라고 부르짖었다. 공회에 분열이 생겼다. 성령님의 감화 아래서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다는 확신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회의가 극도로 어려움에 빠졌을 때 대제사장 가야바가 일어섰다. 가야바는 거만하고 잔인한 사람이었으며 오만하고 마음이 좁은 사람이었다. 사두개파에 속한 가야바의 가족은 거만하고 대담하고 무모하고 야망과 잔인함이 가득 찬 죄악들을 거짓된 의의 가면 아래 감추고 있었다. 가야바는 예언을 연구하였으며 비록 그 예언의 참뜻을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큰 권위와 확신을 가지고 말하였다. “너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이 비록 무죄하다 할지라도 그분을 처치해야 한다고 대제사장은 주장하였다. 그분은 백성을 그분에게로 이끌며 지배자들의 권위를 멸시하는 성가신 존재였다. 그런 존재는 예수님밖에 없었다. 지배자들의 권위가 약화되는 것보다 그분이 죽는 편이 나았다. 만일 지배자들이 백성의 신임을 잃게 되면 국가의 세력이 훼손될 것이다. 가야바는 이 이적 후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기 쉬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때에는 로마인들이 와서 성전 문을 폐쇄하고 율법을 폐지하고 우리 민족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 갈릴리 사람의 생명은 민족의 생명과 비교할 때 얼마의 가치가 있는가? 그가 이스라엘의 복리를 방해한다면 그를 제거하는 것이 하나님께 봉사하는 일이 아닌가? 온 민족의 망함보다 한 사람의 죽음이 더 낫다.
민족을 위하여 한 사람이 죽어야 한다고 선언함으로 가야바는 비록 매우 제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예언에 관한 다소의 지식이 있음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요한은 이 장면을 설명하면서 예언을 들어 그 말의 넓고 깊은 뜻을 나타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더라.” 얼마나 맹목적으로 이 거만한 가야바는 구주의 사명을 인정하였던가!
이 가장 귀중한 진리는 가야바의 입술에서 거짓말로 변하였다. 그가 옹호한 정책은 이교에서 빌려온 정책에 근거하고 있었다. 이방들 가운데서는 한 사람이 인류를 위하여 죽게 되어 있다는 어렴풋한 의식이 마침내 사람을 희생 제물로 바치도록 이끌었다. 그래서 가야바는 예수님을 희생 제물로 드려 그들이 죄를 계속해서 범할 수 있도록 죄 많은 민족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자고 제의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런 논법으로 예수님에게서 아직 죽일 만한 죄를 찾지 못하였다고 담대히 말할지도 모를 사람들의 항의를 침묵시키려고 생각하였다.
이 회의에서 그리스도의 원수들은 깊은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명시키셨다. 그러나 사탄도 그들을 지배하려고 노력하였다. 사탄은 그들이 그리스도 때문에 고생당한 불평스러운 일을 주목하도록 충동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의를 얼마나 적게 존경하셨던가. 그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소유해야 하는 훨씬 더 큰 의를 제시하셨다. 그분은 그들의 형식과 예식을 전혀 돌아보지 않고 죄인들에게 인자하신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서 저희 소원을 아뢰도록 격려하셨다. 그들의 견해로는 예수께서 그렇게 하심으로 제사장 제도를 제거하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예수께서는 랍비 학교의 학문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제사장들의 악한 행동을 폭로하셨으며, 그들의 감화를 다시는 회복할 수 없도록 손상시키셨다. 그분은 그들이 의문의 율법을 엄격히 시행했지만 하나님의 율법을 헛되게 하였다고 선언함으로 그들의 금언과 유전의 효과를 해하셨다. 사탄은 이제 이 모든 것을 그들의 마음속에 상기시켰다.
사탄은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죽여야 한다고 그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이 권고를 따랐다. 그들이 그 당시 행사하고 있던 권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어떤 결정을 내릴 충분한 이유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감히 저희 마음의 생각을 말하지 않은 몇 사람을 빼놓고 산헤드린 회원들은 가야바의 말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공회는 어려움에서 벗어났고 불화는 끝났다. 그들은 가장 유리한 기회에 그리스도를 죽이기로 결정하였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예수님의 신성의 증거를 거절하고 꿰뚫을 수 없는 어두움 속에 저희 자신들을 가두었다. 그들은 전적으로 사탄의 지배하에 들어가서 영원한 멸망의 낭떠러지 끝으로 나아가도록 사탄의 재촉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얼마나 기만당했던지 스스로 기뻐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민족의 구원을 도모하고 있는 애국자처럼 생각하였다.
그러나 산헤드린은 백성이 매우 분노하여 그분에게 행하려던 난폭한 행위가 저희 자신들에게 돌아오지 않도록 예수님에 대하여 조급한 조치를 취하기를 두려워하였다. 이런 이유로 공회는 그들이 언도한 형벌의 집행을 미뤘다. 구주께서는 제사장들의 음모를 아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갈망하고 있으며 이 목적이 곧 성취될 것을 아셨다. 그러나 위기를 재촉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제자들을 데리고 그 지방을 떠나셨다. 이와 같이 모본을 보이심으로 예수께서는 또다시 제자들에게 주신 교훈을 실행하셨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마 10:23).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일할 넓은 분야가 있으므로 그분께 대한 충성이 그것을 요구하지 않으면 주의 종들은 저희 생명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제 세상을 위하여 삼 년 동안 공중 봉사를 하셨다. 극기와 사심 없는 자비의 모본이 그들 앞에 있었다. 그분의 순결, 고통, 헌신의 생애는 만민에게 알려졌다. 그러나 이 삼 년이란 짧은 기간이 바로 세상이 구속자의 임재를 견딜 수 있었던 전 기간이었다.
그분의 생애는 핍박과 모욕의 일생이었다. 베들레헴에서는 질투심이 강한 왕에게 쫓기고, 나사렛에서는 그분의 친백성에게 거절당하였으며, 예루살렘에서 까닭 없이 죽음의 선고를 받은 예수님께서는 소수의 추종자와 함께 낯선 도시에서 임시 피난처를 발견하셨다. 인간의 재난에 동정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눈먼 자를 보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벙어리를 말할 수 있게 하고 배고픈 자를 먹이고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신 그분은 그분이 구원하려고 힘쓰신 그 백성에게 내쫓기셨다. 물결치는 바다 위를 걷고 한마디 말씀으로 노도를 잔잔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어 떠날 때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게 했으며 죽은 자를 살리고 수많은 사람에게 지혜의 말씀을 듣게 하신 그분도 편견으로 눈이 멀고 완고하게 빛을 거절하는 자들의 마음은 움직이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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