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 이성환 가끔 재래시장에 들른다. 딱히 무엇을 사겠다는 생각보다 그저 시장터의 생동감이 좋아서다. 입구부터 상인과 손님들로 부산스럽다. 농산물이나 해산물을 벌여 놓고 고객을 부르는 사람,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과일이나 잡화용품을 파는 행상, 군침 도는 음식을 만드는 먹거리 좌판도 있다. 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볼 수 없는 정과 인심을 느낄 수 있다.
시장 중간쯤에 있는 정육점과 반찬 가게를 지나면 주방용 그릇 도매점이 나타난다. 그곳에는 솥과 냄비를 비롯한 온갖 식기류가 층층이 쌓여 있다. 부엌살림 도구로 쓰이는 각종 용기容器가 가게 밖까지 진열되어 있다. 물건은 사지 않고 눈요기를 하느라고 바쁘다.
시장길 따라 들어선 노점 진열대에는 갖가지 상품들이 즐비하게 깔려 있다. 판매용 농수산물이나 일용품, 먹거리들이 하나같이 제 몫을 다 하려는 그릇들에 담겨 있다. 광주리나 소쿠리, 채반이나 쟁반은 물론, 나무 상자나 종이 박스, 플라스틱 상자도 여기서는 당당한 그릇이 된다. 개장 시간에 따라 채움과 비움을 반복하는 게 시장판 그릇의 숙명이다.
그릇의 쓰임새는 무언가를 담는 데 있다. 의복에 비어있는 부분이 있어야 몸이 들어갈 수 있듯, 그릇은 공백을 통해 사물로 하여금 자기 모습을 드러내게 한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하는 것이 그릇의 제 역할이자 소임일 것이다.
박물관에서 고대의 토기를 보면 저절로 눈길이 머문다. 흙으로 빚은 투박한 모습이 자연 그대로를 닮았다. 그 시대 옛사람들의 손길이 표면 곳곳에 남아 있다. 빈자리에는 그들의 숨결과 대화도 숨어 있을 것이다. 출토된 토기는 천 년 전의 햇빛과 바람까지도 머금고 있는 듯하다. 투박하고 거칠어도 플라스틱이나 유리로 만든 것보다 훨씬 친근감이 든다.
비어있는 부분이 백미다. 큰 그릇이 넉넉하여 많이 담기듯, 사람의 인격이나 재능의 크기도 제각각 다르다. 눈에 보이는 겉모습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이 더 중요하듯이, 마음과 마음이 먼저 소통되어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인품을 갖춘 사람이 도량이 넓고 두루 신망을 얻는 것처럼.
그릇끼리는 일정한 간격이 필요하다. 사이를 잘 유지해야 그릇이 무탈하듯, 사람 사이에도 일정한 간격을 가져야 할 듯싶다. 마냥 친해졌다고 선을 넘으면 금방 소원해지고, 심지어 다툼이 있으면 법정까지 간다. 그릇처럼 사람도 분수에 맞게 적정한 거리를 두면 타인과 다툴 일이 없지 않을까.
한 손님이 그릇 가게를 나온다. 여러 벌을 구입한 모양인지 겹겹의 비닐봉지를 든 그의 손에 묵직함이 느껴진다. 어쩌면 사람도 저 그릇처럼 누군가 선택하여 어디에 있게 되는 처지가 아닐까. 존귀하고 부유한 집에 인연을 맺는 팔자도 있고, 궁색하고 번잡한 곳에서 뼈 빠지게 일하는 운명이 되기도 한다. 용도에 알맞지 않으면 뒷전으로 밀려나 먼지만 쌓이다가 방치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쓸모없는 사람이 없듯 쓸모없는 그릇은 없다.
일상에서 수많은 사람 그릇을 본다. 다양한 생김새처럼 사람의 품격도 제각각이다. 제 욕심만 챙기는 데 급급한 그릇, 다른 사람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제 소득인 양 담아버리는 그릇, 받을 줄만 알았지 주는 데는 인색한 구두쇠형 그릇도 있다. 덩치는 커 보여도 심약해 부실한 것도 있고, 겉보기에 예쁘고 맵시가 있지만 되바라진 성미로 잘 깨어지는 사기그릇 같은 사람도 있다.
가끔은 호감이 가는 그릇을 만난다. 몸집이 작아도 야무져 못하는 게 없는 재주꾼도 있고, 남의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해결사, 말이 없고 무뚝뚝하지만 의리에 죽고 사는 의리파도 있다. 이웃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자신의 안위를 내려놓고 재난 현장으로 달려가는 정의로운 그릇, 타인을 위해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희생과 봉사를 실천하는 그릇. 이런 사람들이 있어 그래도 살만하고 염치가 살아있는 사회인 것을.
큰 그릇과 작은 것의 쓰임은 엄연히 다르다. 작은 사발이 제 분수도 모르고 우두머리가 되면 사달이 난다.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완장까지 찬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속이 꽉 차 있거나 깊으면 조용하고 묵직한 반면, 텅 비어 있거나 아량이 없는 자는 빈 깡통처럼 시끄럽고 실속이 없다. 가끔 능력과 인품이 높은 사람이 저평가되어 작은 일에 쓰이고 있음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릇의 미덕은 적절함에 있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았을 때보다 적당량으로 채워지면 더 자연스럽다. 어떤 사람들은 그 빈 곳을 참지 못해 더 많이 담으려고 안달이다. 혹자는 자기 분수를 모르고 욕심으로만 채우려 드니 흘러넘친다. 가득 차면 급기야 엎질러지는 것은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기 도량의 크기는 얼마만큼 겸손하게 절제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시장 끝자락에 오니 나물 파는 할머니가 보인다. 팔순 언저리 노인의 이마에 패인 주름살이 옆에 놓인 커다란 광주리의 댓살 같다. 동반한 광주리는 할머니의 생계용 평생 운반 도구였을 것이다. 볼품없는 광주리는 그녀의 삶을 지탱한 큰 그릇이 아니었을까. 광주리는 가족을 먹여 살리는 그릇이요, 그녀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었을 게다.
내 그릇은 어떠한가. 늘 욕심이 꽉 차 있어 여유라고는 전혀 없다.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살아왔으니 나도 모르게 오만과 과욕으로 철철 넘치는 데도 깨닫지 못하는 게 아닐까. 기존의 틀과 고루한 사고방식에 갇혀 있어 유연하게 사고할 줄도 모른다. 내가 옳거나 바람직하다고 믿고 있는 기준을 바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기적이고 옹졸한 마음 그릇이다.
지금 와서 내 그릇을 깨부수고 새것으로 마련하기는 쉽지 않은 일. 내 투박하고 못난 막사발일지언정 가득 채우는 것을 늘 경계한다면 주위 사람들을 넉넉하게 포용할 만큼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부산수필문예》 2022-가을. 제48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