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
윤미선 문우님,
대구문인협회 주최 '2022 달구벌백일장 공모전' 에서
윤미선 문우가 '나의 손 이력서' 라는 제목으로 차하를 수상했습니다.
윤미선 문우는 현재 아카데미 19기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여 글 공부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큰 수확을 거두리라 기대합니다.
여기 수상작을 공개합니다. 윤미선 문우의 손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나의 손 이력서 / 윤미선
설거지를 마치고 손을 닦고 핸드로션을 바른다. 가을이 되니 물에 자주 들어가는 손부터 건조해져서 핸드로션을 듬뿍 바르고 깊이 스며들도록 자꾸 손을 매만진다.
오른손 다섯 손가락은 끝이 벗겨지고 속살이 드러나 있다.
'언제 또 손이 이렇게 되었지?'
주부가 하는 일들은 쉴 틈 없이 손을 움직여야 한다. 이 일 저 일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손에 상처가 나고 가시가 박힐 때가 있다. 손을 앞뒤로 뒤집어 본다. 하얀 피부에 길고 날씬하던 섬섬옥수의 손에 검버섯이 피어나고 마디는 뭉툭하게 굵어져 있다.
아이들이 갓난쟁이일 때는 하루 몇 번의 손빨래에 습진도 있었다. 집안일 뿐 아니라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정 경제를 위해 애쓰다 보니 손은 젊으나 늙으나 고달프기 그지없다.
한때 취미로 바느질에 빠진 적이 있었다. 바늘과 실만으로 천을 잇고 가방을 만들고 나면 손가락은 바늘에 찔리고 혹사당해서 죽은 살이 터실터실 상처투성이다. 흔히 하는 말로 ‘손락락에 구멍이 났다’, 바느질은 여자의 숙명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게 아픈 손을 이겨내고 또 바늘을 손에 들고 있다. 결혼 전 아가씨의 손은 멋 내고 치장하는 일만 바빴다.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나 약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지는 때가 되면 곱던 손은 서서히 아줌마 손이 된다.
신혼시절, 첫 아이를 가지고 유산의 위험이 있어서 저층아파트 4층에서 바깥출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음식물 쓰레기도 신랑이 비워주었다. 하루 종일 두 달여를 갇혀 지내려니 우울증이 왔다. 결혼 예물로 받은 장신구들을 손가락 가득 반지를 끼고 손목은 팔찌를 채우고 목에는 목걸이 등 주렁주렁 끼고 하루를 보냈다. 그러고 나니 우울증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아 스스로 유치함에 웃었다.
그렇게 나의 손은 온갖 일을 겪으며 하루하루 나의 역사를 기록하고 나와 늙어간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깨끗이 씻은 손으로 식구들의 아침을 준비한다. 아침을 준비하는 엄마의 손길은 오늘 하루 가족을 위한 기도와 함께 정성을 모으며 가족을 사랑하는 애정을 깊이 감싸 안는다.
직장에 출근한 여자는 바쁘게 하루를 보내며 나의 일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헌신도 힘들다 생각해 본적도 없이 최선을 다한다. 붐비는 퇴근시간, 버스 안에서 손아귀가 아프도록 손잡이에 매달려 지친 몸을 지탱하고 귀가를 서두른다.
학교를 마치고 먼저 돌아온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낮 동안 엄마가 그리웠을 아이들의 마음을 위로해 준다.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주고 오늘 하루 찌든 피곤을 씻고 맛있는 저녁 밥상을 차려 가족들의 하루를 마무리 한다.
신랑이 정년이 가까워 오는 요즘은 퇴직 후 시골 생활을 계획하며 시골에 작은 집을 준비하고 있다. 올봄 오백 평이 조금 넘는 밭에 흰콩을 가득 심고 깨 땅콩 등을 심었다. 요즘은 이상기온으로 절기에 맞춰 제때 비가 잘 오지 않고 겨울부터 가뭄이 심해서 농사일에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
나 역시도 5월에 콩을 심고 겨울부터 이어지던 가뭄에 콩 싹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봄 햇살에 물 조리개를 이용해 한 고랑 한 고랑 씩 물을 주었다. 3고랑을 채 넘기지 못하고 지쳐 쓰러질 것 같았다. 햇살은 뜨겁고 오백 평 밭고랑은 바짝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이런 나를 보고 뒷집 아저씨가 지하수를 연결하고 우리 밭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시원하게 물을 줄 수 있었다. 농사 일이 물만 준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물을 주고 며칠 기다려 싹이 나지 않는 곳은 다시 모종을 심어 채워 주었다. 호미를 들고 구멍을 파고 모종을 심고 다시 흙을 덮어 주는 일을 며칠에 걸쳐서 밭에 매달려 애를 썼다. 그렇게 밭고랑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며칠을 고생한 보람이 있어서 파릇파릇 새 순이 나고 가지를 펼치는 콩들을 보니 그 기쁨은 앞으로 어떤 일도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으로 넘쳤다.
예부터 ‘농사는 농부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자란다.’라는 말이 있다. 새벽에 새소리에 눈이 떠지면 어제 심었던 콩들이 제대로 자라는지 걱정이 되어 밭고랑부터 돌아보고 나서 하루를 시작 할 수 있었다. 아침밥을 먹고 나면 고랑 사이에 잡초를 뽑는 김매기를 한다. 한손에 호미를 들고 잡초를 뽑고 해가 머리 꼭대기 오르는 한낮이 되면 집으로 들어왔다.
하루 종일 풀과 시름하며 흙을 만지고 나면 손톱이 부러지고 손가락 지문 사이사이까지 흙이 끼어서 손은 흙손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봄 보내고 나니 나의 손은 시골할머니 손을 닮아 가고 있었다. 그렇게 콩들이 꽃피기 전까지 노심초사 밭고랑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콩 포기에 꽃이 필 정도로 키가 자라면 웃순을 쳐줘야 한다. 이 과정은 콩 포기가 위로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콩꼬투리가 많이 달려 수확을 많이 거두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남편과 나는 직접 전지가위를 들고 웃순을 치면서 하루 종일 밭고랑을 걸었다. 도시에서 직장생활하며 수도꼭지만 틀면 깨끗하게 정수된 물이 나오고 주머니 속에서 포시랍게 살던 나의 손이 어느새 흙과 햇볕이 일상이 되었다. 눈만 뜨면 햇볕 아래 밭고랑에 앉아 풀을 뽑고 잠들기 전 세수하며 손에 묻은 흙먼지를 박박 문질러 씻었다. 사람의 신체중 손이 제일 먼저 늙는다고 하던가. 인간이 마음먹고 겪어야 하는 모든 일들은 손을 거쳐야만 실행이 되고 결과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손은 나의 인생 이력과 함께 태어나고 함께 늙어간다. 내가 생해 첫 울음을 울던 날부터 엄마 젖을 찾아 버둥거렸고 엄마 젖을 꼭 잡고 생명의 젖을 먹었다. 엄마 젖을 떠날 때가 되어서는 나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쉼 없이 손을 움직여 입으로 음식을 날라 주었다. 세상으로 나가는 사회생활을 준비하면서 열심히 손에 책을 쥐고 지식을 익혔다. 바로 학교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다.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다. 공부도 하고 친구도 만나면서 손에 책을 쥐고 있었던 시간이 많았던 만큼의 결과가 나의 인생 기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로 나의 손에 무엇을 들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 나의 인생여정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결정되어지는 나의 인생은 새로운 동반자를 만나고 나의 2세를 손잡고 이끌어 간다. 내 손에 동반자의 손과 2세의 손이 함께 할 때 내 마음의 손에는 부모님의 늙어버린 손이 소중하게 자리잡고 있다.
나를 태어나게 해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의 손은 어느새 말라버린 뿌리처럼 앙상한 모습으로 내 심장 가장 깊숙이 가장 소중하고 크게 자리하고 있다. 마음속 깊이 간직한 부모님의 손은 내가 눈 감을 때까지 놓칠 수 없는 가장 소중하고 감사한 손이 된다.
‘신체발부 수지 부모 身體髮膚受之父母'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다.’ 공자의 <효경>에 이르는 문장이다. ‘몸과 머리털, 피부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다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 이라는 내용이다.
우리 신체 중 머리카락 한 올 까지도 가벼이 여기지 않는 효의 가르침을 살펴보면 우리 몸 어디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손은 효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 몸을 소중하게 간수하고 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해서도 쉼없이 노력한다. 엄마 집을 종종 간다. 젊어서는 부족한 나의 살림 솜씨를 걱정하며 이것저것 많이도 가르쳐 주셨다.
그런 엄마가 이제는 귀찮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싱크대 여기저기 때가 끼어 있었다. 이제는 엄마를 대신해 내가 반짝반짝 광이 나도록 부엌을 청소하고 엄마 집을 청소해 주고 집으로 온다. 그렇게 돌아오는 발걸음은 눈물이 나도록 아프다. 어느 새 기운이 빠져 버린 엄마의 모습이 소중하기만 하다. 나이 들어가는 엄마를 위해 별것 아닌 청소라도 해 줄 수 있다는 모든 것에 감사드린다.
이렇게 나의 손은 엄마를 위해서도 바쁘고 우리 가족을 위해서도 아낌없이 애쓰고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피가 나는 아픔도 이겨낸다.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손은 바쁘게 움직이고 저녁 잠자리에 들어야 손은 쉴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제일 바쁘고 힘겨운 손이 내 생의 이력과 함께 하면서 희로애락의 여정을 함께 한다. 즐거운 일이 생기면 박장대소를 하며 제일 먼저 축하해주고 슬픈 일이 생기면 주체 할 수 없는 눈물을 닦아주며 눈물 자욱 고스란히 간직하며 위로가 되어준다. 어려서는 넘어져도, 울고 맛있는 과자를 못 먹어도 울고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한 뒤에는 신랑이 크고 어려운 일은 나도 모르게 해결해 주어서 눈물 흘릴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작은 아들이 힘든 일을 겪으면서 아무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는 무능한 부모의 자리가 너무 아파서 대성통곡을 한 일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부모 노릇을 못해 주어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 한번 터져 버리자 점점 더 눈물이 쏟아졌다. 그때 세상 가장 아팠던 나의 눈물도 나의 손은 고스란히 담아 주었다.
나의 손은 말이 없어도 기쁨이 되어주고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가만히 얼굴을 감싸고 있기만 해도 세상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되는 것이 나의 손이다. 생전 처음으로 도전 하던 농사일이 힘들어 ‘포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말없이 먼저 나서서 땅을 파고 흙을 묻히고 새싹을 심고 풀을 뽑으면서 나를 이끌어 주었다. 흙을 만지고 호미를 쥐면서 하루가 다르게 상처가 늘어도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앞서 일하던 나의 손이었다.
나의 손은 애기였고 아가씨가 되고 엄마가 되어 우리 아이들을 잡아주고 서서히 늙어간다. 이제는 힘주어 무거운 일을 하고 나면 손에 쥐가 나기도 한다. 돌덩이도 무겁다 해보지 않고 나를 따라 주던 손이 이제는 아프다는 신호를 한다. 오십이 넘어가는 나이가 되도록 공부하고 일하고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면서 어찌 지치지 않겠나.
내 머릿속 기억보다 더 많이 두 손 가득 나의 이력을 기억하고 있다. 이제는 손잡아줄 갓난쟁이도 없고, 힘들어 울 일도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내가 눈감고 하늘로 가기 전 까지는 함께 해야 할 소중한 손이다. 내 신체의 한 부분이면서 힘들고 아플 때도 아프다는 투정 한마디 없이 나의 의지를 따라 움직여 주는 내 몸의 소중한 한 부분이다.
그런 나의 손에게 수고한다는 소중함을 제대로 가져 본적이 없다. 손끝이 터져 피라도 나면 작은 상처지만 예민하게 아프다. 그렇게 연약하고 예민한 나의 손을 너무 무심하게 일만 시키고 혹사 시켰다. 그 동안 너무 내 마음먹은 대로만 혹사 시킨 손에게 쉬엄쉬엄 휴식도 주고 소중하게 간수하며 가끔은 가락지도 끼워주며 치장해주고 아프지 않게 돌봐야겠다. 끝.
첫댓글 총무님 졸착에 넘치는 칭찬 감사드립니다..♡♡
응원에 힘입어 다시 용기를 냅니다..^^
윤미선 문우님,
일찌감치 축포를 터트리네요!
축하드리구요,
앞으로도 문운이 번창하길 바래요.
따뜻한 축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