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로만 배우는 문학은 얼마나 괴롭고 병든 것인가. 눈으로 품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 때 우린 시인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한 사람의 독자가 될 수 있을 거다.
초임시절 나의 문학 수업은 늘 한편의 시와 함께 시작했다. 함께 아름다운 시 한 편을 낭송하는 일부터 우리들의 만남을 열어갔다. 잔잔한 이별의 음악이 깔리는 교실에서 우린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배우면서 사랑하는 님을 떠나보내는 이의 그 마음을, ‘만날 때 떠날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만날 것을 믿노라’며 애틋한 고백을 흘리는 목소리에 뭉클했고, 김춘수의 ‘꽃’을 배우며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어했다.
늘 먼저 취하고 먼저 눈물 흘리는 나를 보면서 학생들은 무명의 배우가 밤새도록 준비한 시나리오를 마음껏 쏟아낼 수 있도록 함께 울고 함께 웃어주는 가장 멋진 관객들이 되어주었다.
수업시간에 나는 늘 단 한사람의 관객만 있어도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농담처럼 흘리곤 했지만, 이미 학생들은 부족한 나를 채우고도 남는 훌륭한 관객들이었다. 그렇게 애틋한 나눔의 수업시간, 많은 추억의 이야기들이 흰눈처럼 가슴에 소복소복 쌓여갔다.
가슴과 가슴이 만나 나눈 문학 이야기들은 늘 그 향기가 깊어서 오래도록 여운이 남곤 했다. 교문을 나서고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에서조차 그 향기는 가슴 한 구석을 맴돌며 한참 동안을 웃음짓게 했다. 바보처럼……
어느 날부터였을까. 더 오래 두고 간직하고 싶어서, 너무 귀한 감동이어서 ‘날아가버릴까, 잊혀질까’하는 생각에 그 시간 교감했던 따뜻한 살아 있는 문학 이야기들을 글로 습관처럼 남겨두었다. 그러다 보니 그 내용이 한권의 책을 쓸만한 분량이 되었다.
드디어 교사가 되고 10년이 되던 어느 해 눈부신 5월의 어떤 날, 수업 시간 일구어낸 꽃밭, 우리들이 나눈 문학 이야기가 한권의 책으로 내 앞에 놓여졌다. 『0교시 문학시간』 내 생애 첫 번째 책이다.
출처: 이낭희의 문학산책여행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