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과 힐링.
갈수록 사는 게 힘들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 시원한 처방은 없을까? 근간에 주목받는 처방이 '힐링'(healing, 치유)이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고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이건 힐링이 붙으면, 거기에 쉽게 마음을 연다.
힐링 음악, 힐링 여행, 힐링 카페... 아픔을 공감해 주고 등을 토닥여 주는 힐링 멘토를 찾아가기도 한다.
그 많은 힐링 이야기의 끝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정말 힐링되었는가?
그토록 주목받던 힐링은 패션처럼 어느 새 지나가 버렸다.
힐링받은 사람들이 그 힐링을 지켜 내지 못한 까닭일까? 아니면 힐링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하기 때문일까?
세상에 고통이 있고 눈물이 있는 한, 힐링은 계속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힐링의 대상과 목적, 힐링의 과정과 방법이다.
'우리는 왜 힐링되어야 하는가? 무엇이 힐링되어야 하는가?
힐링되는 과정에서 어떤 것을 피해서는 안 되는가?
힐링의 방법은 진정 건강한 회복을 가져오는가?'를 분명히 묻고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힐링은 잠시 고통을 잊게 하는 진통제나 마약과 별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이 말하는 힐링을 약속하지 않으셨다.
새로운 창조가 그분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가장 경계하시는 것은 새 술을 헌 가죽 부대에 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것, 새사람이 되기 전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을 경고하셨다.
십자가는 죄인의 힐링이 아니라 죄의 킬링(killing, 죽임)을 위해 세워진 것이다.
바울은 이를 깨닫고, 신앙의 목표가 킬링임을 선언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죄인의 힐링은 답이 아니다.
죄인이 힐링되어 다시 힘 있게 맥이 뛰면 이전보다 더 나쁜 상태를 초래한다.
세상의 힐링은 자칫 죄인을 더 깊은 죄의 덫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나 죄의 킬링을 경험한 사람은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으로 살아간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기 위해
자아가 죽는 '킬링'이야말로 유일한 힐링이자 진정한 힐링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뛰는 새로운 맥박이야말로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맥박이다.
조정민 / 베이직교회 목사
첫댓글 내가 십자가 앞에 죽어야 진정한 힐링.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킬링은 훗날 영광스러운 천국의 힐링으로 보상되어진다는점을 명심해야한다
자아를 킬링한 후에야
죄의 킬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