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트위스트”는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소설가중 하나인 찰스 디킨스의 장편소설로써 1837∼1838년 잡지에 연재했다가 38년 3권으로 출판되었고 영화, 뮤지컬 등으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디킨스의 초기 작품으로서 1843년도에 시행한 신빈민구제법에 항의하고 런던 뒷거리의 도둑의 세계를 주제로한 19세기의 산업사회 초기 사회복지에 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디킨스가 12세 되던 해 아버지가 파산하여 채무자감옥에 가게 되면서 가족은 흩어지고 구두약공장 직공으로 일하게 되면서 어릴 때 경험한 가난의 모욕과 슬픔이 정신적 상처가 되어 일생을 따라다녔던 배경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주인공 올리버 트위스트는 아버지를 모르며 어머니도 구빈원(고아원)에서 난산 끝에 그를 낳고 영양실조, 난산 등으로 극도로 허약해져 사망한다. 천애의 고아가 된 올리버는 고아원에서 심한 학대를 받고 자라나게 되며 교구로부터 양육비를 받아 고아를 키우는 구빈원 직원들과 이를 감독하는 교구관리인 빔블은 구빈원에 수용되어있는 극빈자와 고아들을 착취하고 학대한다.
올리버와 구빈원 아이들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굶주리다 죽기도 하고, 옆의 아이를 잡아먹을 것 같다고 말한다. 드디어 참다못한 아이들은 폭동직전의 분위기로 제비를 뽑아 죽을 조금 더 달라고 말할 사람을 정하는데 올리버가 뽑혔고 식당에서 죽 한 그릇을 다 비운 아이들은 일제히 올리버를 지켜본다. 올리버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가서 선생님!, 죽 좀 더 주세요(Please, sir, I want some more..) 라고 말한다.
이런 일은 이전에 없던 일이었고, 깜짝 놀란 범블 등 구빈원 관계자들은 올리버를 때리고 이사회를 소집하여 밖으로 내보내기로 결정하고 교구장의사 도제로 팔려간다. 구빈원에서 죽어나오는 시신이 많아 장의사는 번창하고 있었으나 인색한 주인은 올리버에게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아 실망스런 상황에서 선임도제가 죽은 어머니에 대해 모욕적인 말을 하자 격분하여 싸움을 벌이고 무작정 런던으로 향하여 7일을 걸어간다.
런던근처에 도착해 지치고 배고픈 올리버에게 소매치기 소년 잭 도킨스가 접근하여 먹을 것을 훔쳐주고 잠 잘 곳을 마련해 준다며 소매치기 소굴로 데리고 간다.
거기서 올리버는 빈민굴의 아이들에게 소매치기를 시키는 유대인 악당 페긴 일파를 만나게 되고,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두 아이를 따라가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부자노인의 주머니를 소매치기를 하려다가 달아난 두 아이를 따라가다가 동료의 죄를 뒤집어쓰고 체포되나, 다행히도 친절한 부자의 도움으로 악당들의 유혹과 협박을 물리친다. 뒤에 그 부자가 그의 아버지의 친구라는 것이 밝혀져 그의 양자가 되어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줄거리다.
이 작품은 1830년대 영국빈민들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달하면서도 인간사회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버리지 않는 작가 디킨스의 긍정적 인간관이 배어있는 유명한 초기 작품으로 자신에게 위험이 닥쳐도 도움을 준 사람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올리버의 순수한 마음, 비록 악당이라도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사람을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감옥에 직접 찾아가 같이 기도해 주는 올리버의 모습, 올리버의 선한 내면을 읽고 보살펴주는 노신사 부라운로우와 메이라이 부인의 긍정적인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또한 이 작품은 당시의 영국 사회의 이면을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회악에 대한 작자의 강력한 분노가 서린 작품이다. 디킨즈는 1834년에 시행된 신빈민구제법에 대한 항의와 런던 뒷골목의 세계를 소재로 한 구성으로 그 당시 사회적 모습을 통렬히 비판했다. 이른바 `신빈민구제법`의 요지는 종래의 빈민구제법(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만든)이 빈민들을 게으르게 만든다는 발상에 기초하여, 빈민구제 비용을 줄이고 빈민들 스스로가 열심히 일하도록 독려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 법은 빈민들을 돕기 위한 세금을 적게 내려는 중.상류층의 요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실질적인 빈민 구제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수용소 같은 환경에서 여전히 힘든 생활을 강요하며 산업의 발전으로 인해 어린아이들이 공장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구빈법은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힘있는 자들을 위한 법이었고 이는 영국사회를 가진 자들과 가지지 못해 빈곤에 허덕이는 빈민으로 양분하여 빈곤을 악순환 시키는 고리로 밖에 작용하지 못하였다.
정작 관리자 자신은 맛있고 깨끗한 음식을 마음껏 먹으면서 아이들에게는 더러워 보이는 죽으로 끼니를 제공하는데 그때 아이들이 얼마나 인간답지 못한 대우를 받고 살았을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어른이 도둑질과 미행 등을 시키는 것을 보고 그 당시는 귀족출신 아이들이 아닌 아이들에게는 인권보호가 제대로 안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고, 19세기의 산업사회 초기 사회복지에 관한 이런 비판적 시각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복지사회가 이루어지는 밑거름이 되어 지속적으로 완성되어지고 발전되었다고 이해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