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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믿음의 사람 바락
히 11: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제가 어렸을 때 주위에 당시 상황에서는 흔하지 않은 ‘리라’라는 이름과 ‘진아’라는 이름을 지닌 예쁜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름이 특색있고 외모도 걸맞게 귀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리라의 이름을 지닌 아이의 성이 고 씨라고 하면 진아의 이름에 성이 지 씨가 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리라’, 그리고 ‘지진아’로 부르게 되지 않았을까를 생각하며 웃음을 지은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다룰 바락의 이름도 그렇습니다. 한국에서 바락이란 이름을 사용하였다고 하면 어감이 ‘발악을 치며 달려드는 고집쟁이’의 모습이 연상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사기 시대의 사람 바락은 히브리어로 ‘번개(lightning)’란 뜻을 지닌 인물입니다. 그의 이름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속도와 힘, 하나님의 급격한 개입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종종 이해되기도 하고 여선지자 드보라와 함께 시스라의 군대를 물리칠 정도로 “번개처럼 빠르고 강한”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바락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이 사람은 그가 살던 시대에도 주인공이 아니라 늘 조연으로 살던 사람입니다. 동시대에 살던 사람 중에는 그보다 더 뛰어난 믿음의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히브리서 11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성경은 바락을 기드온, 삼손, 입다와 함께 그의 이름을 믿음의 반열에 소개합니다. 이것이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바락을 귀하게 보아야 하고, 그의 믿음을 찾아야 하며, 그의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바락의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바락의 이야기는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사시대는 한마디로 전쟁의 역사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당시 가나안 왕이었던 야빈은 20년 가까이 이스라엘을 위협하며 압제하던 사람입니다. 야빈 왕이 이렇게 강한 이유는 그에게는 ‘시스라’라는 장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당시 900대의 철병거를 지휘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지금으로 하면 전차부대 지휘관입니다. 철병거는 당시 신무기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무적함대였습니다. 게다가 시스라는 전술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상대방의 허점을 파악하고 전차로 밀고 들어가 순식간에 전쟁을 끝내버리는 전략에 탁월한 장군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로서는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20년이 흘러가면서 이스라엘은 기가 죽어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여선지자인 랍비돗의 아내인 드보라를 사사로 세우셔서 시스라를 물리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녀의 이름 드보라는 "꿀벌" 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으로 그 이름처럼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유대의 율법 학자들에 의하면 그녀는 성전의 등의 심지를 만드는 일에 종사하였다고 하며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 쓰임 받아 그 백성들을 밝혀주는 조명의 여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사사의 직분을 수행하는 데 여자의 위치를 알았습니다. 여자는 하나님의 정하심에서 남자의 권위 아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절에서 바울은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12절은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다만 종용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여자의 위치가 있는데 이 질서를 순종하는 겸손의 미덕을 가지고 있습니다. 드보라는 여자였기 때문에 직접 군대를 소집하거나 지휘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음으로 당시 백성들로부터 명성을 얻고 있었던 바락을 지명하였습니다.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 납달리와 스불론 자손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자신이 명한다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고 했습니다.
당시는 남성우월주의가 팽배한 시절에 여성의 명령을 따른다는 것은 대단한 겸손이 아니면 안 되었습니다. 겸손한 사람에게서 겸손한 사람의 순종이 나옵니다. 드보라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 자신을 낮추고 그 명령에 순종하니 바락이 여기에 동조하여 겸손한 믿음을 갖고 드보라의 명하심을 따릅니다. 믿음의 아름다움은 겸손이요 이 겸손의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룹니다.
성경에서 모세와 그의 종 여호수아 나옵니다. 여호수아는 “청년 시절부터” 모세가 죽기까지 약 40년 동안 모세의 개인 수종, 즉 “봉사자”가 되는 겸손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모세는 여호수아보다 35살이나 손위였는데 모세는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었지만 여호수아는 종으로 있을 때는 직접 하나님과 대면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하나님이 자기에게 하신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직접 계시를 받고 음성을 듣지 않았다 하더라도 지도자의 목소리에 순종하는 것 이것이 바로 겸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겸손의 믿음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오랫동안 겸손의 자리를 지켰던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그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입성합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훈련하는 과정에서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여호수아는 오직 모세의 말을 듣게 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백성을 통솔하는 지도력을 보이기 위함입니다. 모세의 통솔력에 순종하는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하는 자리에 섰을 때 그 입에서 나오는 명령에 백성들이 순종하였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완벽한 100% 믿음은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부족한 믿음이기에 실수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 실수를 딛고 다음 단계의 믿음으로 나갈 수 있지 처음부터 완전한 믿음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바락 역시 믿음이 있는 것 같은데 바락은 구약 성경을 읽을 때 남자 망신을 다 시키고 싶을 정도로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은 인물이며, 당대의 여선지자였던 드보라를 절대적으로 의존했습니다. 그는 모든 일에서 드보라의 명에 따라 움직였고, 드보라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사사기 4:8에 “바락이 드보라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가지 아니하겠노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지만, 그에게는 혼자서 순종할 만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전해주었던 드보라와 함께 가기를 원했습니다. 드보라가 가지 않으면 혼자는 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바락은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믿음의 동역자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입니다. 믿고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담대함’이 없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동역자입니다. 바락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드보라’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드보라의 입을 통해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바락을 고민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군사 만 명을 가지고 다볼산으로 가는 것은 승리에 대한 한 가닥 희망보다는 자살 특공대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야빈 왕에게는 철 병거만 900 대가 있었습니다. 야빈 왕에게는 ‘시스라’라는 뛰어난 장수가 있었습니다. 당시로는 철 병거로 무장한 최신 철갑 기병들이었는데 일종의 전차 군단과 같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시스라는 철 병거를 앞세워 20년간이나 이스라엘을 지배하며 괴롭혔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단 한 대도 없는 철 병거입니다. 이스라엘은 20년 동안 내적으로 군대를 양성하고 경제를 안정화시키고, 조용히 힘을 기른 것이 아닙니다. 가진 것은 있는 대로 다 약탈당했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 중에 이스라엘 전역에서 남자란 남자는 다 모아서 일어난 것도 아니고 ‘납달리 지파와 스불론 자손’ 중에서 만 명을 차출해서 전쟁을 벌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락의 군사적 지휘력이나 용맹함, 이스라엘 장졸들의 힘을 믿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야빈의 군대 대장 시스라와 그의 철병거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아십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까? 주님께서 친히 야빈의 군대 대장 시스라의 그의 병거와 그의 무리를 끌어내 ‘바락’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권위에 대한 질서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락이 드보라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합니다. 그 순종이 흘러 납달리 지파와 스불론 자손에서 모아든 병졸들의 다스릴 수 있는 권세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오랫동안 훈련받은 사람도 아닙니다. 짧은 시간에 모여들었습니다. 그것도 죽음의 고비에 맞서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전시상황에서 명령에 따르는 것은 더욱 위험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점검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내 아내가 내 말에 순종하지 않는가 자녀들이 부모가 말하면 튕겨나가는가 직장에서 아랫사람에 무시를 당하고 있지는 않은가를 점검해 보십시오. 내가 권위에 대하여 무시하면 할수록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바락은 2%부족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듯 드보라 함께 전쟁터에 가지 않으면 자기도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독립적이지 못한 믿음입니다. 만일 독립적이라고 하면 자기 혼자 군대장관이 되어 싸워서 이기면 자기의 공로로 돌아오고 자기 자랑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2%부족한 믿음 때문에 두려움이라는 것이 잠재되어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갖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부분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폭적으로 믿고 전진해 나가는 것 보다 2%부족한 믿음으로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을 의지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여호수아에게도 오랫동안 모세를 통하여 훈련을 받았어도 여전히 그에게는 두려움이라는 부족한 믿음을 지녔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수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여호수아 1장에서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이 다섯 번 나오는데 3번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이고 하나는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또 한 번은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한 말입니다. 그만큼 여호수아는 마음이 강하지도 담대하지도 못하였음을 알려 주는 대목입니다. 그런 부족한 믿음을 하나님이 격려하십니다. 그 격려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였더니 백성들이 그에게 순종할 것을 고백하며 강하고 담대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힘을 얻은 여호수아가 드디어 담대하게 백성들을 향하여 강하고 담대하라고 외칩니다. 부족한 믿음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 부족을 통하여 연합을 이룰 수 있고 부족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하여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닐 수 있습니다. 나는 내 믿음이 부족함을 느끼고 언제나 협조자의 도움을 구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내 믿음에 의존해서 일을 벌이는 신앙입니까?
드보라를 믿음 장에 기록한 것이 아니라 바락을 기록한 이유는 드보라보다 바락의 믿음이 출중해서라기보다는 그의 믿음이 드보라에 비하여 정련(精練)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좋은 금속을 만들기 위하여 불속에 넣어 불순물을 걸러내는 것처럼 드보라가 가진 믿음을 보고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란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다른 산에 있는 돌이라 해도 나의 옥을 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사소한 언행이나 실수라도 나에게는 커다란 교훈이나 도움이 될 수 있음을 표현할 때 쓰는 것입니다. 당대(當代)의 신앙보다 몇 대를 거쳐 이어온 신앙의 사람들이 때로는 믿음이 적은 것처럼 보이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실수는 확실히 덜 합니다.
바락은 객관적으로 보면 하나님과 직접적인 대면이 없는 사람으로 믿음 장에 오를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귀히 보셨던 이유는 드보라를 통하여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의 부족한 믿음을 감추려 하지 않고 조력자를 구하여 함께 동역하는 슬기로움을 가졌습니다. 자신이 부족하였기에 다른 사람의 믿음을 흠모하고 그 믿음을 통하여 자기를 끊임없이 정련하였기에 그 믿음은 빛이 나게 되고 믿음의 영웅들과 함께 그 이름이 올랐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나요?
“나는 아직 믿음이 작고 흔들리는데… 하나님이 나를 쓰실까?” “난 용기도 없고 확신도 없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그런데 성경에는 완벽하지 않아도 하나님께 붙잡힌 사람, 두려워도 믿음으로 한 걸음 내디딘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사사기의 바락입니다.
그가 놀랍게도 히브리서 11장 ‘믿음장’에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의 믿음이 완벽해서일까요?
아니요.
어떤 마을에서 큰 불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당황해 물을 길어 오기도 전에
이미 불이 너무 커져 있었습니다. 그때 한 아이가 자기 물통에 조그만 물 한 컵을 담아
불을 향해 뛰어가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모두 비웃었죠.
“저걸로 불이 꺼질 것 같니?”
“소용없는 짓이야.”
하지만 아이는 말했습니다.
“불이 꺼질지는 모르지만, 나는 할 수 있는 만큼은 하려고요.”
놀랍게도 그 모습을 본 어른들 마음에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씩 물을 퍼 나르기 시작했고 결국 마을 사람들의 힘이 모여
불은 꺼지게 되었습니다.
그 작은 아이가 한 일은 불을 끈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은 한 걸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큰 일을 이루게 만들었습니다.
바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용감하지 않았습니다. 확신이 넘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이 명하신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작은 순종’을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믿음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믿음은 두려움 속에서도 한 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바락의 믿음이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이유는 그가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하나님을 향해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불” 앞에 서 있나요?
진로의 불확실함
미래의 불안
관계의 문제
나의 부족함
바락처럼 흔들려도 괜찮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방향으로”
한 걸음을 내딛어 보세요.
하나님은 우리가 들고 있는
“작은 물 한 컵” 같은 순종이라도 기뻐하십니다.
그 작은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이루십니다.
바락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흔들렸고, 두려워했고, 확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두려운 한 걸음’을 믿음으로 보셨습니다.
오늘 여러분도 그 작은 한 걸음을 내디뎌 보세요.
하나님은 그 걸음을 통해
여러분의 삶 속에,
여러분의 공동체 속에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