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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성령으로(1월19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성경: 고린도 전서12:1-11(신약278)
1901년에 일어난 현대 오순절 운동은 교회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오순절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는 영적인 것 보다는 합리적인 사고와 철학적인 이해를 강조하면서 성경을 철학적인 시선으로 해석하고 합리주의적 이성주의로 해석을 하려고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기적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해석을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런 기독교의 성경 이해와 해석을 바꾸게 된 것이 현대 오순절 운동입니다. 현대 오순절 운동은 성경에 기록된 성령의 역사는 오늘날도 일어날 수 있다고 믿고 기도하던 중에 성령을 받고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경험하면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오순절 운동이 시작될 때 기존 교회에서는 오순절 운동을 비판했습니다. 성령의 역사와 은사는 초대 교회 시대 즉 성경을 기록하던 시대까지만 나타난 것이고 성경이 완성된 다음에는 더 이상 은사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을 은사 중단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현대 오순절 운동을 통해서 계속해서 성령의 은사 즉 신유와 능력 행함의 역사가 나타나고 이런 운동이 오순절 교단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교단 교회들에게도 나타났습니다.
아직도 은사 중단론을 주장하면서 성령의 은사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교회에서 성령의 역사과 은사에 대해서 인정을 하고 성령이 임하시기를 사모하며 기도하고 은사가 임하길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바울 사도께서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해서 기록한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성령의 임재하심을 제외하면 기독교는 철학에 머물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의지해서 살아갈 때 성령님은 우리를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의지해서 기도할 때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에게 은사를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쓰임 받게 하십니다. 오늘 바울 사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같은 성령으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성령은 한 분이시지만 성령님이 각 사람에서 임하셔서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같은 성령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같은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 사도께서는
1. 신령한 것에 대해 알기 원한다.
고린도 교회는 다양한 은사가 나타난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은사들이 나타남에 있어서 은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했습니다. 은사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많은 부작용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은사에 대해서 잘못 이해함으로 나타난 부작용들이 있었고 바울은 그렇기 때문에 신령한 것 즉 성령 충만을 받으므로 나타나는 영적 현상들에 대해서 바르게 알기를 원한다는 말로 12장을 시작한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을 믿기 이전에는 말 못하는 우상에게 끌려갔었다고 지적했습니다. 1-2절을 보면
12: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12:2“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에는 수 많은 우상들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도 많은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 즉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는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 우상숭배와 미신을 믿으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나서 이전에 믿었던 우상을 버렸고 미신과 무속신앙을 따르지 않습니다.
지난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에서 쉬는 동안 TV를 보는데 주일 저녁에 런닝맨을 자주 보니까 런닝맨을 보다가 졸다 보다 했는데 갑자기 런닝맨 멤버들의 운세를 보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운세를 봐주면서 운세 점수를 메기고 있었습니다. 런닝맨 멤버 중에 지예은이란 탈렌트가 나는 기독교인데 운세 안보는데 그러니까 그냥 재미로 보라고 하면서 보게 하고 자기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듣고 맞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화가 났습니다.
유독 SBS프로에 운세나 점을 보거나 절에 가서 절을 하거나 하는 프로가 많은 것 같습니다. SBS의 주일 저녁 그 다음에 또 점을 보는 이야기가 방송이 됐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기 이전에는 점도 보고 운세도 보고 금 년의 신수라고 해서 새로운 해가 되면 그런 일을 했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는 그런 것을 끊어야 합니다.
우리 헌정사에 현직 대통령이 체포되는 불행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고 성탄절에는 찾아가서 예배를 드려준 교회와 목사님도 있는데 불행하게도 대통령 주변에서 이번에 계엄을 주도하게 만든 사람들은 무속신앙과 관련되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실에 행정관으로 역술인을 특채를 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증언이 언론에 보도된 것을 보면 “김씨가 공식적으로는 소수종교 담당이지만, 부가적으로 대통령실에 근무하는 직원, 새로 채용하는 직원들의 사주를 보고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궁합이 맞는지 확인을 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고 언론에 보도가 되었습니다.
(https://news.zum.com/articles/95706023?cm=news_home_rank_article)
바울은 너희가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는 말 못하는 우상에게 즉 미신과 무속과 우상 숭배에 이끌려 갔었다고 지적을 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믿게 된 이후부터는 이런 것을 끊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말 못하는 우상이나 미신이나 무속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오셔서 충만하게 역사하시고 은사를 주시는 성령님으로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예수님은 저주 받아라(예수님을 저주할 수 없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3절을 보면“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공동번역은“그래서 여러분에게 일러둡니다마는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예수는 저주받아라." 하고 욕할 수 없고 또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현대어 성경은 “그리고 지금도 여러분은 자기가 하나님의 영에게서 받은 말씀을 전하고 있다는 사람을 종종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그들이 정말 하나님의 영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가짜로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를 몰라 당황할 것입니다. 그렇거든 이 점을 잘 살피십시오. 하나님의 영을 받아 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수 없고 또 성령의 도움 없이는 아무도'예수는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저주하거나 예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이십니다. 그런데 가끔씩 예수님의 이름을 모욕하거나 예수님을 무시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능력이 많다고 자랑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예수님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거나 예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고, 능력이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그 입으로 예수님을 저주하거나 예수님의 이름을 모독하거나 예수님을 하찮게 말하는 사람은 진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아니라 악한 영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고 그 이름을 모욕하거나 모독하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님을 주시라 할 수 없습니다. 3절을 다시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님의 감동이 없이는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고 성령의 감동이 없이는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고백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진심으로 믿어지십니까?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라고 믿어지십니까? 여러분은 성령의 인도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십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2천 년전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나의 죄를 위해서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부활하심도 믿을 수 없고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받고 영생을 받았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저와 여러분은 성령으로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2. 성령의 삼위일체 사역
성령님이 우리안에 거하시면 예수님의 이름을 모욕할 수 없고 성령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할 수 없다고 말한 바울 사도는 성령님의 사역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의 삼위일체 사역에 대해서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다고 말했습니다. 4절을 보면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여기서 사용된 은사라는 헬라어 단어는 “χαρισμάτων” 인데 이 단어의 기본형은 “χάρισμα”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선물”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자주 듣게 됩니다. 카리스마의 원래 의미는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란 의미이지만 우리는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사람들에게 카리스마적이라는 표현을 하곤 합니다.
은사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특별한 선물이란 의미인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은사는 일반 사람들에게서 볼 수 없고 나타나지 않는 특별한 영적 현상들이기 때문에 카리스마라는 단어는 힘이나 능력이 있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은사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특별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능력이란 이미지가 강하지만 바울 사도는 은사는 여러 가지라는 말로 어떤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신다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은사라고 할 때 오늘 본문에 나오는 9가지 은사를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더 많은 은사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9가지는 은사 중에서 대표적인 은사 목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은사들이 있는데 그 은사들을 주시는 성령님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많은 은사들은 성령님에 의해서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위해서 사모하고 간구할 때 성령님은 우리 안에 충만하게 역사하시면서 각자 다양한 은사를 주십니다.
계속해서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다. 고 말씀했습니다. 5절을 보면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직분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디아코니온’(διακονιῶν) 인데 이 단어는’섬기다’, ‘봉사하다’는 의미가 있는 ‘디아코니아’(διακονία)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바울서신에서 ‘디아코니아’ 는 ‘사랑을 밑바탕으로 한 섬김’ 을 뜻하는 것으로서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봉사와 헌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에서 직분을 받는다는 것은 사랑을 가지고 섬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직분은 계급이나 권위가 아니라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에 감사해서 사랑으로 섬기고 헌신한다는 의미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맡은 직분은 여러 가지 입니다. 즉 다양한 직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직분이 있지만 주님은 같으십니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가 직분을 받아서 섬기는 것은 주님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양한 직분이 있습니다. 목사, 장로, 권사, 안수집사, 집사, 교사와 같이 다양한 직분이 있지만 이 다양한 직분자들이 같은 주님을 섬기는 것이고 한 분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또한 사역은 여러 가지이나 하나님은 같다. 고 말씀했습니다. 6절을 보면“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여기서 사역이란 단어는 에네게르마톤(ἐνεργημάτων) 인데 이 단어의 원형은 활동하다는 의미인 에네게르마(ἐνέργημα)입니다. 사역이란 단어는 일하다 활동하다는 의미인데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교회 안에서 여러가지 직분을 맡아서 일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전 개역 성경에서는 역사라고 번역을 했는데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일하는 모든 것이 사역입니다. 목회자만이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직분자가 하는 모든 봉사와 헌신은 넓은 의미에서 사역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은사는 성령의 역사이고 직분은 주님을 위한 것이고 사역을 하는 우리들을 위해서 그것을 이루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인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을 말씀한 것입니다.
3.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 사도는 성령의 삼위일체적 사역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는 목적에 대해서 7절에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령의 은사의 목적은 교회 공동체에게 유익을 주고 성도 개인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 입니다. 성령의 은사로 인해서 갈등이나 위화감이 조성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은사는 모두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은사의 나타남을 보고 은사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은사는 더 큰 은사이고 어떤 은사는 보잘것 없는 은사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주님의 교회에 유익을 위해서 각자의 은사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우리를 유익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는데 교회와 성도를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을 주십니다. 8절을 보면“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은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실제적인 적용을 하는 것이라고 보고 지식의 말씀은 이론적인 지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이라면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주셔서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말씀을 삶에 적용하게 하시고, 순간순간 말씀을 인용해서 위기를 극복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할 때 성령님은 지혜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는 어떻게 위기의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는지를 알게 하십니다. 이것을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다양한 영적인 형상들에 대한 지식을 깨닫게 하셔서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지혜는 직임의 측면에서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사역에 필요하다고 볼 수 있고, 지식은 교사와 같이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위기를 극복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맡겨 주신 직분과 직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주십니다.
계속해서 믿음의 은사를 주십니다. 9절을 보면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우리는 믿음이 은사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것이지만(롬1:17, 3:22)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일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제한된 은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믿음은 헬라어 ‘피스티스’(πίστις)인데 이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영적인 것을 실제적인 것으로 나타나게 하는 능력의 개념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능력은 예언하고(히11:3), 기적을 행하는(마21: 21, 고전13:2)데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피스티스’는 모든 은사들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의 은사가 없다면 다른 은사들이 구체적으로 나타날 수 없습니다. 물론 믿음의 은사는 특별한 은사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믿고 그 믿음 위에 다른 은사를 받아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쓰임 받아야 합니다.
믿음의 은사와 연결되는 은사로는 병 고치는 은사와 능력 행함의 은사를 주십니다. 9-10절을 보면
12:9“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2:10“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은사 중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신유의 은사를 통해서 고침 받은 것을 인정하지 않느냐? 그러면 은사 중단론자들은 그것은 신유의 은사가 아니라 기도의 응답이라고 답변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령의 은사 가운데 신유의 은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령 충만한 사람들을 통해서 병 고침의 은사를 주셔서 질병을 고쳐 주십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는데 특별히 신유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의 기도를 통해서 질병이 고침을 받습니다.
은사 중단론자들의 말처럼 우리가 신유의 은사가 없어도 간절히 기도하고 믿으면 질병이 고침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능력을 행하는 은사는 자연의 법칙을 초월한 기적을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이 은사는 ‘병 고치는 은사’ 보다 더 포괄적인 힘을 지닙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갑작스런 죽음(행5:1ff.), 박수 엘루마를 소경으로 만든 일(행13:11)등과 같이 마귀를 대적하며, 그 추종 세력을 축출하는데 사용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언과 각종 방언 말함과 통역의 은사를 주십니다. 10절을 다시 보면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예언과 방언과 방언 통역은 같은 은사의 다른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방언도 통역하면 예언이 되기 때문에 예언과 방언과 통역은 같은 은사의 다른 나타남으로 할 수 있습니다.
예언은 앞으로 될 일에 대해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언의 은사를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하고 마치 점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또는 그런 용도로 사용되어서는 안됩니다.
성경에도 거짓 예언자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무속적인 방법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신적이고 무속적인 점치는 것과 예언은 차원이 다릅니다. 예언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유익하게 하기 위함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영들 분별함을 주십니다.10절을 다시 보면“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초대 교회 당시에도 거짓 선지자가 많았으므로 교회의 순결성을 지키기 위해 잘못된 가르침을 분별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해 볼 필요가 있었습니다(요일4:1).
이 은사는 교회를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주시는 은사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에 ‘거짓말 하는 영’이 들어 있는 것을 알았고(행5:1-10), 마술사 시몬의 마음이 ‘악독하고 불의한 영’에 얽매여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행8:23).
오늘날도 여전히 영들 분별함의 은사가 필요합니다. 영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단에 미혹을 당하고 그들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인지를 모릅니다.
은사들에 대해서 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은사들을 통해서 교회와 성도를 유익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은사는 나를 나타내거나 돈을 위해서 사용되어서는 안됩니다. 은사를 통해서 고침을 받고 은사의 나타남을 통해서 위기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12절에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 말씀했습니다. 같은 성령으로 다양한 은사가 나타나고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은사를 받았다 해도 같은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으로 성령의 다양한 은사를 받아서 맡겨진 직분을 잘 감당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역에 헌신함으로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인정하고 하늘의 복을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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